헤이그, 열사의 땅
- 컬럼
- 2021. 7. 23.
헤이그, 열사의 땅
1907년, 대한제국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비밀 특사를 파견해 주권 회복을 호소한다. 헤이그 특사들이 목적지에 도착해 공식적으로 처음으로 한 일은 숙소 드 용 호텔<De Jong Hotel, 現 이준 평화 박물관>에 태극기를 매다는 일이었다. 이처럼 한민족의 현존을 알리는 일은 특사들에게 그 어떤 일보다 중요했다.
글|사진. 김동우 다큐멘터리 사진가
헤이그에 도착한 특사들
헤이그 ‘이준 평화 박물관’ 입구, 햇살에 반짝이는 태극기가 바람에 나풀댔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랬을 태극기 휘날리며, 마치 시간을 초월한 느낌이 드는 장면이었다. 박물관 내부는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2층 방문에는 ‘이 방에서 이준 열사가 순국하셨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방 한쪽에는 이준 열사가 헤이그에 묻힐 때 처음 썼던 비석이 놓여 있다. 작은 테이블과 침대도 눈에 띄었다. 특사들이 차를 마시고 지친 몸을 누이던 공간은 환하게 빛이 들고 아늑했다. 1907년 7월 14일 이준 열사가 세상을 떠나던 날도 창을 통해 이런 화사한 빛이 쏟아져 들어왔을까. 그는 어쩌다 이곳에서 목숨을 잃게 된 걸까. 역사의 시계를 1907년으로 되돌려보자.
러시아의 배신
고종은 러시아의 초청과 후원에 힘입어 1907년 6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기로 결심한다. 이를 통해 일제의 불법적 국권침탈과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했다. 먼저 이준이 4월 22일 한양을 떠나 부산을 거쳐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한다. 4월 26일 연해주에 도착한 이준은 북간도 용정에 있던 이상설에게 전보를 보낸다. 두 명의 특사들은 블라디보스토크에 머물며 경비를 모금해 5월 21일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올라 6월 4일 러시아의 수도 페테르부르크에 도착, 이범진 공사를 만난다. 이때 그의 아들 이위종이 특사에 합류한다. 특사들은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Nikolai II)를 예방한다. 하지만 러시아 황제는 애초부터 특사들을 도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만남은 형식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러시아는 러·일 전쟁 패전 이후 쇠락의 길을 걷고 있었는데 일본, 영국 등 주변 강대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관심이 더 컸다. 특히 당시 러시아는 일본과 비밀리에 러·일 협약까지 추진 중이었다. 대한제국은 러시아에게 버리는 ‘패’에 지나지 않았단 이야기다. 결국 러시아는 대한제국 특사들의 회의 참석은 불가능하다고 통보한다. 당혹스러운 결과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고 다시 짐을 꾸려 열차에 오른다.
미스터리한 이준의 죽음
특사들은 6월 25일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헤이그에 도착한다. 이준이 한양을 떠난 지 60여 일만이었다. 일본과 영국 등의 방해로 정상적 회의 참석이 불가능했지만 특사들은 각국 언론인들과의 접촉을 게을리하지 않는 등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 대한제국의 상황을 알리고자 했다. 그러던 중 7월 14일 저녁, 드 용 호텔에서 이준 열사가 갑작스럽게 사망한다. 그의 죽음은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고 있는 그의 죽음을 놓고 홧병설(분사), 단독감염설(일본 정보 문서 기록), 자살설, 독살설, 할복설 등 추측만 무성할 뿐이다.
할복설은 대한매일신보의 의도적 오보로 보인다. 이 신문에서 일하던 양기탁・신채호・베델이 민족 공분을 이끌어내기 위해 허구의 기사를 작성했단 이야기다. 독살설의 경우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헤이그에 머물고 있던 일본인이 많았던 점이 작용했다. 단독감염설은 당시 이준의 뺨에 난 종기를 근거로 든다. 감염 부위 치료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패혈증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분이 차올라 스스로 자기를 희생함으로써 최후의 항거를 한건가.
이준이 순국 한 방 벽에는 그의 사망진단서가 걸려 있다. 애석하게도 거기에는 사인(死因)이 빠져 있다. 핵심이 누락된 사망진단서를 보고 있자 마치 이 미스터리한 문제를 한번 풀어보라는 듯하다. 1907년 7월 어느 날, 우리 역사 최초의 검사였던 그는 도대체 타국에서 어떻게 숨을 거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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