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Nov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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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싸하고 향긋한 냄새에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춘천 김유정 문학촌

“알싸하고 향긋한 냄새에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춘천 김유정 문학촌

글. 윤진아   사진. 정우철

마을 따라 늘어선 생강나무가 새순을 틔우며 좋았던 옛 시절을 더듬는다. 겨우내 움츠렸던 자연이 기지개를 켜는 시간, 봄을 마중하러 간 길 끝에서 소설가 김유정(1908~1937)을 만났다. ‘온 마을이 김유정’인 춘천 실레마을에서 절로 걸음이 느려지는 이야기길을 따라 삶의 쉼표를 찍어본다. 남도에서 불어온 바람결에 노란 동백이 환히 꽃등을 밝힐 즈음엔 부디 우리의 마음도 만개하여 모두 유정(有情)하기를!


무정했던 유정의 사랑

춘천 신동면 실레마을은 한국인이 사랑하는 소설가 김유정의 고향이다. 봄을 기다리는 실레마을은 아늑하고 평온하지만, 김유정의 삶은 그렇지 못했다. 만석꾼 집에서 태어났지만 어머니를 일찍 여의어 모정을 모르고 성장했고, 젊은 나이에 지병을 앓았다. 허약한 몸에 말더듬이였던 김유정은 절절한 짝사랑에도 실패했다. 당대 명창이자 기생인 박녹주의 공연을 보고 한눈에 반해 열렬히 구애했지만 끝내 이룰 수 없었다. 가난과 폐결핵, 영양실조로 고생하다 29세에 요절했지만, 김유정의 이야기는 지금도 춘천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다. ‘점순이’와 ‘들병이’처럼 어딘가 부족한 인생들이 펼치는 이야기가 예나 지금이나 독자를 웃기고 울린다. 김유정은 31편의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일제강점기 농촌의 암울했던 현실을 해학적인 언어로 풀어나갔다. 특히, 모든 작품에 단 한 글자의 한자도 쓰지 않고 순우리말을 사용했는데, 미학적 기교나 도덕적 잣대 없이 우리네 삶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며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했다.

 

느 집엔 이거 없지? 하고 생색 있는 큰소리를 하고는 제가 준 것을 남이 알면은 큰일 날테니 여기서 얼른 먹어 버리란다. 그리고 또 하는 소리가, 너 봄 감자가 맛있단다. 난 감자 안 먹는다. 너나 먹어라.
- <동백꽃> 중에서

 

 

점순이가 꼬시던 동백길로 가자!

강원도 사람들은 생강나무꽃을 동백꽃이라고 불렀다. 불우한 생에 기댈 곳이 없어서였을까. 김유정은 고향을 쉬 잊지 못했다.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에서 김유정은 실레마을을 이렇게 풀어놓았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 리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닿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움푹한 떡시루 같다 하여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집이라야 대개 쓰러질 듯한 헌 초가요, 그나마도 오십 호밖에 못 되는, 말하자면 아주 빈약한 촌락이다.”

김유정이 남긴 30여 편의 작품 중 10여 편의 배경이 바로 실레마을이다.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야 했던 마을은 고속도로가 놓이고 전철로도 갈 수 있게 됐다. 경춘선 김유정역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사람의 이름을 역명으로 사용하는 기차역이다. 본래 신남역이었던 역명을 2004년에 변경했다. 역사 안에는 난로와 주전자, 열차시간표 등이 옛 시절을 간직한 채 복원돼있다. 철길을 건너면 더 이상 달리지 않는 옛 열차도 만날 수 있다. 겉모습은 열차지만 실제로는 도서관이다. 김유정은 1937년 실레마을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2년 후 경춘선이 개통됐다. 만약 김유정이 천수를 누렸다면 마을에 기차가 들어온 것을 보고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지어냈을 터이다.

 

“닭 죽은 건 염려 마라, 내 안 이를 테니.” 그리고 뭣에 떠다밀렸는지 나의 어깨를 짚은 채 그대로 퍽 쓰러진다.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서 쓰러지며, 한창 피어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 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고만 아찔하였다.
- <동백꽃> 중에서

 

김유정 문학촌

주소 춘천시 신동면 김유정로 1430-14
관람 시간 09:30~17:00 (동절기)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

김유정역에서 내리면 바로 실레마을이다. 금병산 밑 옴폭한 시루에 담겼던 이야기들은 이제 김유정의 품을 떠나 실레마을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정을 안긴다.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 ‘들병이들 넘어오던 눈웃음길’, ‘덕돌이가 장가가던 신바람길’, ‘근식이가 자기 집 솥 훔치던 한숨길’ 등등 소설 속 인물들의 자취를 찾으며 걷는 것은 실레마을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이야기를 따라 걷다 보면 김유정이 태어난 집이 나온다. 마을 제일가는 지주 집안이던 김유정 생가는 중부 지방에서 보기 어려운 ‘ㅁ’ 자형 기와 골격에 초가를 얹었다. 이야기가 복작대는 마당에는 <봄봄> 주인공들의 동상도 서 있다. <봄봄>은 주인집 딸과 결혼하려고 억척스럽게 일하는 데릴사위가 장인에게 빨리 혼례를 치러달라고 떼쓰다 된통 당하는 내용이다. 장인이 딸의 작은 키를 핑계 삼아 차일피일 혼인을 미루는 장면, 결국 폭발한 데릴사위가 장인의 ‘거시기’를 잡고 흔드는 장면 등등 소설 속 장면이 오버랩되며 웃음 짓게 한다. <동백꽃>은 농촌 아이들의 풋풋한 애정을 그린 작품이다. 소작농의 아들인 ‘나’는 이성에 일찌감치 눈뜬 점순이의 구애를 좀처럼 이해하지 못한다. 조숙한 사춘기 소녀와 순진한 산골소년이 엮은 성장소설의 결말은 알싸하고 향긋한 냄새가 퍼드러진 동백꽃 속에 파묻혀있다.

기념전시관 건너편에는 김유정 이야기집이 있는데, <봄봄>과 <동백꽃>을 애니메이션으로 상영한다. 김유정의 작품을 연도별로 갖춰놓은 유정책방도 있다. 가난했지만 정겨웠던 이웃들과 어우러져 살던 추억이야말로 관람객에게 선사하고자 하는 주된 전시품이리라. 성실한 사람들의 분주한 발걸음이 또 다른 하루를 힘차게 여는 2022년 2월. 미소 하나, 눈물 한 방울의 힘을 공유하며 김유정 문학촌이 소시민들의 삶을 뜨겁게 위무하고 있다.

 

카페 더웨이

김유정 문학촌을 지나 시골길을 걷다 보면 갤러리형 카페 더웨이가 나온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낮은 등성이에 있고 마당이 널찍해, 창문 밖으로 보이는 공간도 작품처럼 느껴진다.

주소 강원 춘천시 신동면 풍류1길 72

 

[출처 : 사학연금 2월호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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