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다
- 문화
- 2023. 7. 19.
[출처 : 한국남부발전 KOSPO FAMILY 6월호 웹진]
음악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소비자가 음악을 즐기는 방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수동적 청자를 넘어 적극적으로 음악을 가지고 놀며 새로운 놀이 문화로 즐긴다.
글. 배순탁(음악평론가,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 배순탁의 비사이드 진행자)
달라지는 음악 소비
인류가 발명한 놀이 중 가장 오래된 것, 바로 음악이다. 음악은 예술의 맏형이기도 하다. 요리 정도를 빼면 음악이야말로 인류가 창조한 최고(最古)의 놀이요, 예술인 셈이다. 그러나 20세기까지 음악을 통한 놀이는 대략 다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었다. 음반을 듣거나 공연을 보거나. 하긴 그렇다. 모든 음악은 본래 라이브였다. 공기 중에 울려 퍼지고는 이내 사라졌다. 이렇듯 휘발해버리는 음악을 반영구적으로 보존할 수 있는 저장 매체, 즉 레코드가 등장한 건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20세기 초반이 되어서였다.
그것은 가히 코페르니쿠스적 혁명과도 같았다. 음반의 발명과 함께 사람들은 음악을 컬렉션하기 시작했다. 시대를 초월하는 명곡이 등장하고, 명반이 탄생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과연 어떤 시대인가. 과거 음악을 듣는다는 건 어느 정도 수동적인 행위였다. 음반을 플레이하고, 그것을 감상했다. 그러나 이제 음악을 듣는다는 건 더 이상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다. 한층 능동적으로 그것에 ‘개입’하는 것이 현재의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다름 아닌 틱톡이라는 매체가 이러한 현상을 증거한다.
틱톡이 몰고 온 변화
틱톡이란 무엇인가. 요약하면 틱톡은 짧은 동영상을 올릴 수 있는 플랫폼이다. 무엇보다 틱톡은 음악 시장에, 그것도 물리적인 측면에서 거대한 변화를 몰고 왔다. 첫째로, 러닝타임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는데 영향을 줬다. 모두가 3분도 길다고 말한다. 차트 100위권 안을 들여다보면 2분짜리 곡이 대부분, 그중에는 2분 안에 끝나는 곡도 있다. 물론 틱톡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는 건 아니다. 이런 흐름은 틱톡 이전에 이미 진행하고 있었다. 틱톡은 이런 흐름을 보다 가속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순서가 뒤바뀌었다는 데 있다. 즉, 유명한 곡을 틱톡 BGM으로 쓰는 게 아니다. 틱톡 사용자가 음악을 사용했는데 이게 화제가 되면 명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음악은 전곡이 다 사용되지 않는다. 곡의 핵심 부분만 추려야 틱톡 사용자들이 원하는 러닝 타임에 맞출 수가 있다. 그러니까, 사용자가 하나의 음악을 자신이 원하는 바대로 갖고 놀 수 있게 된 것이다.
틱톡을 통해 흥한 뒤에 슈퍼스타가 된 뮤지션은 차고도 넘친다. 올리비아 로드리고(Olivia Rodrigo)는 틱톡 BGM으로 인기를 끈 곡 ‘드라이버스 라이선스(Drivers Licence)’로 빌보드 차트 1위를 8주 연속 거머쥔 뒤 그래미까지 수상하는 슈퍼스타가 됐다. 더 키드 라로이(The Kid LAROI) 역시 틱톡 출신(?)이다. 그는 저스틴 비버와 함께 발표한 싱글 ‘스테이(Stay)’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4주간 머물렀다. 이제 여러분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스테이’의 러닝타임은 짧다. 그것도 매우 짧다. 2분 21초다.
실제로 레코드 회사 홍보팀이 현재 화력을 집중하고 있는 매체는 단연코 틱톡이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틱톡 사용자 중 3분의 2 이상이 틱톡에서 들었던 음악을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다시 찾아서 듣는다고 한다. 상당한 유입률이다. 따라서 ‘틱톡 인기 BGM=차트 히트곡’이라는 등식이 성립될 수 있다.
짧아지고 빨라지다
이제 정리를 한번 해보자. 대중음악은 이미 짧아지고 있었다. 틱톡이 등장하면서 전곡이 아닌 부분만 취하는 방식이 대세가 됐다. 자연스럽게 틱톡에 맞추기 위해 음악은 ‘더욱’ 짧아졌다. 한데 핵심은 이제부터다. 이런 경향에 맞춰 뮤지션들이 곡을 더 짧게 에디팅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걸 스페드 업(Sped Up) 버전이라고 부른다. 오리지널의 속도를 올렸다는 뜻이다. 기실 스페드 업은 이미 대세다. 여러분이 사용하고 있는 스트리밍 사이트에 Sped Up이라고 한번 쳐보기 바란다. 노래가 끝도 없이 나올 것이다. 최근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던 곡으로 한번 비교해 볼까. 시저(SZA)의 ‘킬 빌(Kill Bill)’을 보면 원곡의 러닝타임은 2분 33초, 스페드 업 버전은 2분 17초다. 그 결과, 묘하게 서로 다른 분위기가 연출된다. 심지어 스페드 업 버전을 먼저 플레이하고 원곡을 감상하면 엄청나게 느린 것처럼 들린다. 이전까지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말이다. 더 중요한 점이 있다. 이렇듯 뮤지션들이 틱톡용으로 쓰라고 편집한 스페드 업 버전 역시 틱톡 사용자들의 기호에 맞게 또 편집되어 쓰이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음악을 편집하는 건 뮤지션의 전유물이었다. 그것은 스튜디오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마치 비밀스런 의식을 치르듯 행해졌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렇다. 무엇보다 틱톡의 부상은 편집권이 더 이상 뮤지션만의 독점적 권리가 아님을 선포했다는 점에서 음악 역사에 있어 중요한 터닝 포인트로 기록될 것이다. 뮤지션만 음악을 갖고 노는 게 아니다. 수용자도 이제는 음악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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