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Nov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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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과 K-웹툰, 2D와 3D 사이 아이돌의 탄생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N콘텐츠 매거진> Vol.29 웹진 바로가기]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한 ‘아이돌 웹툰’이 성장하고 있다. 아이돌과 웹툰 각각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그 두 차원이 만나는 교묘한 균형점을 정확히 짚는다면 아이돌이라는 IP를 웹툰으로 확장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글. 최윤주(웹툰평론가)

 

©Shutterstock

 

‘아이돌 웹툰’에 대한 의구심

그룹의 정체성이나 앨범에 관한 스토리텔링을 위해 실제의 아이돌을 주인공 삼아 고유의 세계관을 만화로 선보이는 ‘아이돌 웹툰’. 아이돌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웹툰 소비자들은 그런 아이돌 웹툰을 ‘일반’ 웹툰 플랫폼에 올리는 일에 거부감을 표하는 경향이 있다. 방탄소년단의 앨범 <화양연화>의 세계관을 만화로 그려낸 웹툰 ‘화양연화 Pt.0 <SAVE ME>’에 대한 초기 반응이 그랬다. 아이돌 웹툰이 지금보다 생소하던 2019년에 연재되었던 만큼 웹툰과 아이돌 콘텐츠 사이의 경계를 명확히 갈라 배타적으로 반응했던 것이다. 방탄소년단 팬들도 호의적이기만 하지는 않았다. 난해한 세계관을 설명해주는 기획 의도나 새로운 방식으로 제공된 팬을 위한 콘텐츠라는 사실을 반가워하던 팬도 있었지만,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시도를 한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걱정과 불만을 뒤로한 채 아이돌 웹툰은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다. 앨범 <화양연화>를 웹툰화했던 방탄소년단의 소속사 하이브는 현재 자사의 아이돌을 주인공으로 한 웹툰을 그룹당 한 편씩 다섯 편이나 연재하고 있으며, SM 엔터테인먼트의 그룹 NCT 드림 역시 최근 단편 웹툰을 연재한 바 있다. 그렇다면 자연히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아이돌은 왜 자꾸 웹툰의 주인공으로 호출되는 것일까? 과연 어떤 배경이 그 호출을 가능하게 했을까?

BTS의 앨범 <화양연화> ©하이브 / 웹툰 ‘화양연화 Pt.0 <SAVE ME>’ ©네이버웹툰

 

2D도 3D도 아닌 2.5D적 소비

‘만화 속 인물은 2D, 현실의 사람은 3D, 아이돌은 2.5D’라는 농담이 있다. 화면 밖 오프라인에서 만나볼 수 있으니 만날 수 없는 2차원 캐릭터보단 현실에 가깝지만 그 이상 다가갈 수는 없으니 3차원도 아니라는 것이다. 끝내 닿을 수 없는 존재를 향한 거리감을 표현한 아이돌 팬의 슬픔이 담긴 유머다. 그런데 최근 아이돌이 소비되는 양상을 보면 3D 인간을 향한 바람과 2D 캐릭터를 향한 기대가 공존한다는 뜻에서 2.5D라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좋은 노래와 아름다운 얼굴, 매력적인 인격을 통해 판타지를 제공하던 아이돌들이 이제는 차원을 오가며 보다 복잡다단한 형태의 판타지를 제공한다. 이 판타지가 운영되고 소비되는 방식을 보면 아이돌을 둘러싼 팬들의 기대가 얼마나 ‘2.5D적’인지 실감할 수 있다.

아이돌이 현실의 연인이나 친구 같은 존재가 아니라 이 세계의 황태자나 이 세계의 뱀파이어가 되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 지는 오래되었다. ‘인외적 존재’라는 설정에 거리낌이 없고 이를 일시적인 콘셉트가 아닌 그룹의 태생적 정체성으로 삼으며 훨씬 더 전방위적이고 본격적으로 판타지를 운영해낸다. 견고한 스토리, 알듯 말듯 수수께끼 같은 노래 가사와 뮤직비디오,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비주얼. 판타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활용되는 이 모든 장치들은 그 출처가 현실보다는 만화, 즉 2D에 있어 보인다. 동시에 가상의 2D 캐릭터와 달리 현실의 몸을 가진 3D 인간이기에 해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무대 아래서는 다정한 얼굴로 인사를 건네고 깜짝 라이브 방송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고, 멤버들과의 사담 속에서 본래의 솔직한 성격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때로는 인간 아닌 모습을 통해 만화보다 만화 같은 판타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으로 또 다른 판타지를 자극하는 이런 경계적인 매력은 오로지 2.5D인 아이돌을 통해서만 발견될 수 있다.

©Shutterstock



아이돌 웹툰의 소비자를 살펴라

이런 소비 흐름은 아이돌 소비층과 만화 소비층의 교류를 논하기 이전, 애초에 소비층이 상당 부분 동일한 주체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이돌 웹툰을 왜 만드는가’라는 질문 앞에 ‘아이돌 웹툰을 보는 이들은 어떤 이들인가’를 물어야 하는 이유다. 좋아하는 아이돌을 설명하기 위해 2D와 3D를 비교하는 방식부터가 아이돌 소비층이 얼마나 만화 문화에도 익숙한지를 증명한다. 이들은 좋아하는 아이돌에게 만화 속 여신이 할 법한 ‘페이스 체인’(비즈로 장식된 가는 체인을 얼굴에 부착하는 액세서리)의 착용을 요청하고,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의 굿즈로 가상의 사원증이나 증명사진을 제작하는 데 어색함이 없다. 정리하자면 아이돌 웹툰의 중심 독자는 3D를 2D로, 2D를 3D로 치환해 읽어내는 문해력과 경험으로 쌓아 올린 뛰어난 감식안의 주인들이며, 아이돌 웹툰의 제작은 이런 소비층을 의식한 대응인 셈이다.



<DARK MOON: 달의 제단>으로 본 아이돌 웹툰 성공 요인

현재 네이버웹툰에서 연재되고 있는 하이브의 아이돌 웹툰 다섯 편은 아이돌 웹툰의 원활한 제작과 향유를 위해 이 2.5D적 감각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함을 보여준다. 웹툰으로서도 아이돌 콘텐츠로서도 애매한 수준의 완성도로, 뮤직비디오의 공백을 설명한다는 인상에 머물렀던 ‘화양연화 Pt.0 <SAVE ME>’와 달리, 현재는 다섯 편의 작품 모두 웹툰 그 자체로서도 꽤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눈에 띄는 흥행을 보여준 것은 2.5D적 욕망을 가장 정확하게 충족하고 있는 <DARK MOON: 달의 제단>(이하 <달의 제단>)뿐이다.

<DARK MOON: 달의 제단> ©네이버웹툰 / 그룹 엔하이픈 ©빌리프랩

 

적절한 공백이 이야기할 거리를 만들어주다

그룹 엔하이픈을 주인공으로 한 <달의 제단>이 다른 작품들과 명백하게 구분되는 점은 이 작품만 유일하게 로맨스가 가미된 판타지라는 점이다. 이번 흥행에 있어 ‘로맨

스’ 여부가 중요한 변인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엔하이픈의 팬덤이 대부분 여성이기 때문에 로맨스 웹툰을 좋아할 것이라는 단순한 추측 때문이 아니다. 로맨스를 통해 유사 연애 대상으로서 아이돌을 소비할 수 있게 해서도 아니다. 남성 아이돌의 팬덤 모두가 로맨스 장르를 선호하는 것은 아니며 아이돌을 유사 연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 역시 소비 유형의 하나에 불과하다. 그보다 로맨스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여자 주인공이라는 외부인의 존재가 인물들의 매력을 포착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남자 주인공을 바라보며 독백할 수 있는 여성 주인공은 관찰자의 시선 안에서 가장 최적의 구도로 캐릭터의 매력을 발견하는 중요한 장치가 되어준다.

르세라핌을 주인공으로 한 웹툰 <크림슨 하트> ©네이버웹툰


결국 팬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 자체로 독립적이고 온전한 이야기가 아니라, 관찰되고 논의됨으로써 완성되는 ‘적당한 공백을 지닌 이야깃거리’다. 눈 밑의 점에서 실제 멤버의 얼굴을 발견하고, 주인공의 친절함이 담긴 컷에서 팬을 향한 다정한 모습을 읽어내는 식이다. 여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목격되는 해당 모습들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그저 평범한 가상의 만화일 뿐이지만, 팬들에 의해서 이야기되고 의미가 덧붙여질 때 비로소 아이돌 콘텐츠로서 역할을 다하게 된다. 아이돌이라는 존재가 2D도, 3D도 아닌 2.5D에 머물 때 팬들을 가장 만족시키듯 웹툰의 시점은 1인칭도 3인칭도 아닌 1.5인칭일 때 가장 적절히 기능한다고 할 수 있다. 방탄소년단을 주인공으로 하는 전투 중심의 판타지 <7FATES : CHAKHO>와 여성 아이돌 르세라핌을 주인공으로 한 판타지 <크림슨 하트> 또한 <달의 제단>과 비교해 뒤지지 않는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음에도 아이돌 콘텐츠로서 매력이 부족한 것은 팬의 시선과 잡담이 끼어들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웹툰 독자와 아이돌 팬을 함께 만족시켜야

당연하지만 웹툰 그 자체로서도 재미를 놓쳐서는 안 된다. 기억해두자. 2.5D를 유영하는 소비자들은 어설프게 연출된 ‘최애(가장 좋아하는 멤버)’의 모습에 분개하는 아이돌 팬인 동시에 재미없는 만화의 감상을 가차 없이 중단할 웹툰 독자다. 만화도 좋아하고 아이돌도 좋아하니 둘을 적당히 섞어 만들면 된다는 어설픈 태도로는 이 엄격한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 아이돌과 웹툰 각각에 대한 정확한 이해, 그리고 그 두 차원이 만나는 교묘한 균형점을 정확히 알아야 팬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 팬들의 애정과 안목을 호락호락하게 보지 않는 이만이 2.5차원의 세계에 입장할 자격을 얻을 것이다.

 

[출처 : 한국콘텐츠진흥원 <N콘텐츠 매거진> Vol.29 웹진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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