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Nov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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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면서 배우는 ‘찐’ 인생 KBS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 오유선 작가

[출처 :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웹진 12월호 바로가기]

 

 

한때 최고의 스타였던 네 사람이 한 집에 모여 산다. 특별한 일을 하지도 않는다. 편한 옷을 입고 장을 보고, 손님이 오면 수다를 떤다. 힘겨웠던 지난날에 함께 탄식하고, 어렵게 꺼낸 이혼 이야기에 ‘잘했다’고 공감한다. ‘찐’으로 솔직하게 말하고, ‘찐’으로 귀 기울인다. 왕언니인 배우 박원숙을 필두로 혜은이, 안소영, 안문숙 등 혼자 사는 네 사람이 살아온 세월을 나누며 함께 사는 프로그램,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이하 <같이 삽시다>)가 화제다. 어느새 시즌3를 맞은 본격 실버 예능 프로그램 <같이 삽시다>를 기획하고 진행 중인 오유선 작가를 만났다.

글. 김윤양 편집위원사진. 차주용장소협조. 합정 vbb

 


처음에 시작할 때는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어요. 올봄에 100회를 맞았고 세 번째 시즌 중입니다. 제가 박원숙 선생님께 농반진반으로 그런 말씀을 드려요. ‘선생님, 저 환갑 때까지 계속하셔야 해요’라고요. 처음 프로그램 기획할 때가 제가 40대 초반이었어요. 그때 한창 나이 고민하잖아요. ‘내가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내 인생은 어떻게 될까’ 치열하게 답을 찾아다닌 건 아니었지만 걱정이 떠나지도 않았죠. 그때 저보다 어른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당시 남해에서 생활 중이시던 박원숙 선생님을 만나 뵈러 갔어요. 박원숙 선생님은 솔직한 분이시고, 언어로 표현하는 해학이 뛰어난 분이시잖아요. 그래서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제일 먼저 선생님이 떠올랐어요. 처음 뵈었을 때, 단호하게 거절하시진 않았고, 그저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을 하셨어요. 저희 제작진은 선생님을 믿었고, 시즌마다 조금씩 달라지고 있지만 최고의 전성기를 지나 인생 2막을 사시는 스타 배우, 가수분들을 모시고 ‘함께 살고’ 있죠. 저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초대되어 오는 분들이나 시청자분들에게 박원숙 선생님에 대한 이미지가 좋으세요. 비결이라면 정말 이야기를 잘 들어주세요, 진심으로.

출처_KBS&nbsp;<박원숙의&nbsp;같이&nbsp;삽시다>&nbsp;공식&nbsp;홈페이지


배우 박원숙.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고도 카메라 앞에 서서 덤덤하게 타인의 삶을 연기하며 보여준 삶의 자세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어느 구름에 비 들었는지 모른다’는 옛말은 박원숙을 거치며 해학이 된다. 절묘한 공감 타이밍, 너도 알고 나도 아는 말인데 찡한 위로가 된다. 슬픔도 힘이 된다.


최근에 이계진 선생님이 나오셨는데, 예전에 프로그램 진행할 때 박원숙 선생님이 출연해서 했던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는 거예요. ‘열흘 운 년이 보름 울지 못하겠나’라는 말이었어요. 힘든 날들 견뎌내자고 한 말인데 그 말이 마음에 남아, 그 많은 세월을 지나고도 잊히지 않는다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쉬운 말인데 확 와닿죠. 시청자분들이 그런 데서 힐링이 많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다른 프로그램으로 만나면 까다로운 분들도 박원숙 선생님을 만나면 그 순간 확 풀어져서 가실 때는 ‘내가 왜 그런 말까지 다 했지?’하면서 가세요. 늘 큰언니처럼 사람들 말을 다 들어주시던 선생님도 힘드실 때가 있겠죠. 촬영 현장에 심리상담사가 온 적이 있는데 그때 박원숙 선생님이 속에 쌓아뒀던 감정을 터뜨리셨어요. 어디 울 데도 없었던 선생님이 아들 이야기하시면서 눈물을 쏟아내시는데, 저희 제작진이 다 울었어요.

 


매회 초대되는 게스트와 나누는 이야기는 ‘함께 사는’ 네 명의 삶과 더불어 한편의 인생 영화다.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가고, 현재의 고민을 함께 나누며 출연자와 시청자는 물론 제작 스태프들까지 이들의 이야기에 젖어 든다. 게다가 사흘간 제작진도 매번 함께 살다 보니 몇 시간의 녹화로 끝냈다면 보지 못했을, ‘찐’모습을 만난다.


진성 선생님이 나오셨는데 다들 선생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 푹 빠졌어요. 어릴 때 부모님과 헤어져 혼자 살아온 지난 삶이 놀랍고 찡했어요. 더 인상적이었던 건 이야기를 다 듣고 마을회관에 갔을 때였어요. 마을회관의 오디오 시설이 좋지 못했거든요. 그런데도 선생님이 노래를 하셨어요. 그 열악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노래하시니, 관객들 마음이 쫘악··· 그야말로 진성 선생님께 ‘진며든다’고 해야 하나. 마을 주민들과 이야기도 하시고, 노래도 하시고, 음식도 해주셨는데 저희 선생님들은 물론 마을 주민들도 정말 좋아하셨어요. 카메라가 있거나 없거나, 오디오 시설이 좋거나 나쁘거나, 마음을 다하는 모습에 감동했죠. 가수 이지현 씨가 왔을 때는 선생님들이 진심으로 지현 씨의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아이 키우는 고민에 조언도 해주셔서 기억이 나고요. 뮤지컬 배우 김소현 씨가 왔을 때는 선생님들이 예쁜 딸처럼 대해주셨어요. 하춘화 선생님은 촬영에 임하는 태도가 정말 ‘프로’시더라고요. <같이 삽시다>를 하면서 ‘인생이 이럴 수가 있어?’ 싶은 순간들이 엄청 많았어요.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제게도 보이지 않는 경험이 되죠. 안으로 쌓여서 제가 살아가는 데 큰 가르침이 되는 것 같아요.

이지현, 김소현, 진성 편, <같이 삽시다> 홈페이지, ©KBS

 

대학 학보사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글을 쓰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방송아카데미를 거쳐 작가가 되었다. 퓨전 음악프로그램 <샘이 깊은 물>을 시작으로 <가요콘서트>, <21세기 위원회>, <일요일 일요일 밤에>를 거치는 7, 8년 차까지 매번 새로운 장르를 만날 때마다 긴장하며 살았다.


늘 어떤 프로그램이든지 창피하게 하지는 말자고 생각했어요. 프로그램이 바뀔 때마다 새로 적응하는 것도 힘들고, 작가들끼리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하는 게 피 말랐죠. 예능 작가라고 하면 연예인 버금가는 포스에 굉장히 ‘셀’ 거라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그렇지 못했어요. 배짱이 없었던 것 같아요. '나 여기서 잘한다는 소리 한 번만 들어보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매번 녹화 때마다 출연자 대기실 들어갈 때 ‘심장아 나대지 마라’ 이러면서 살았어요.

 



MBC 일을 주로 하다가 KBS로 넘어가 <상상플러스>를 할 때였어요. 낯선 터전으로 옮기고 변화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부담이 너무 컸던 것 같아요. 시청률이 안 나오는 거예요. DJ DOC 편이었는데 시청률 2%로 바닥을 찍었어요. 그때 여의도 거리를 걸어 다니며 수많은 생각을 했어요. 내가 바닥에 서 있구나··· 지금도 힘들면 자동으로 그때, KBS 근처 여의도 공원 앞을 혼자 멍하니 걸었던 장면이 떠올라요. 그럴 때 선배님들이 큰 힘이 되어주셨어요. 위기의 순간, 다들 실의에 빠져 있는데 웃으면서 ‘다시 하면 되지!’하시며 다독이시더라고요. 다 함께 머리를 모아 코너를 다시 바꾸고 ‘올드 앤 뉴’가 터지면서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어요. 선배님들의 내공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죠. 최근에 힘들었던 건 한 3, 4년 전에 했던 <리틀 포레스트>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요. 이서진 씨와 만든 프로그램이었는데 결과물이 생각보다 안 나왔어요. 기대가 너무 컸던 걸 수도 있는데 12회를 하기로 하고 들어가서 매일매일이 힘든 날의 연속이었어요.

 

 

기획도 어렵지만 수정은 훨씬 어려운 것 같아요. 사실 출연자를 바꾸고 그러면 새로워 보일 수 있거든요. 그렇지만 이 출연진들로 인해 여기까지 온 거고, 서로 간의 시너지가 있는데 위에서 변화를 위한 변화를 요구한다고 해서 당장 출연자를 바꾸는 게 쉽지 않죠. 제 성격상 기획을 새로 하는 게 낫지, 생각했던 대로 안 된다고 기존 출연자 자르고 새 출연자로 바꾸는 건 영··· 어떻게 그래요. 그렇게 결과에 대한 부담감으로 속이 탈 때, 도망가고 싶죠. 그런 날은 출근하면서 ‘무슨 일이 생기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서강대교, 마포대교 넘으면서 ‘오늘은 사고도 안 나나’ 그런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요즘 테니스가 인기가 많은데, 저는 그 전부터 했어요. 수영 강습과 달리 테니스는 10년을 해도 레슨을 안 받으면 자세가 망가져요. 테니스를 하며 번아웃을 이겨냈고요, 등산을 좋아해서 코로나19 전에 엄홍길 대장님하고 히말라야 가는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했어요. 비행기 티켓까지 다 끊고 3월 30일에 출발하기로 했는데 3월 초에 셧다운이 됐죠. 프로그램이 무산되면서 엄홍길 대장님을 따라 국내에 있는 산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원래 산을 좋아했지만, 좋아하는 것과 직접 가는 건 다르잖아요. 여럿이 함께 가기도 하고, 북한산 탐방센터 쪽으로 혼자 가기도 해요. 일하러 가는 것 외에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데, 운동을 안 했으면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을 것 같아요. 운동을 하며 ‘내가 사람들과 사회에 속해있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운동하길 정말 잘했죠.

 

연차가 높아지고 나이가 들수록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그렇다고 불안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백세시대 먹고사니즘을 해결하는 것은 여전히 숙제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도 여전히 고민이다.


백세시대 노후 준비 중에 가장 좋은 건 은퇴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잖아요. 오래 일하고 싶고요. 그래서 기획을 많이 하려고 합니다. 추상적인 이야기일 수 있는데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프로그램 제작을 위한 글 말고 저만의 콘텐츠를 키워가기 위한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과연 내 콘텐츠가 뭘까 하는 고민도 많이 해요. 작년에 유튜브를 잠깐 해봤는데 하다 보니 여러 개를 동시에 진행했어요. 스타가 나오는 유튜브, 골프 유튜브, 의사들이 나오는 전문가 유튜브. 결과적으로 잘 안 됐어요. ‘남들이 한다고 따라가는 유튜브는 안 되겠다, 철저히 내가 가진 아이템이어야겠구나’ 싶더라고요. 단기간에 접었고요. 지금은 전통주와 맥주 관련된 술 공부를 하고 있어요. 그걸로 뭔가 콘텐츠를 만들어볼까 생각하고 있죠.



좀 더 집요해라. 나이가 들어서인지 몰라도 후배들이 출연자들에 대한 접근법이 다소 가볍다는 걸 느낄 때가 있어요. 사람들의 인생이나 스토리에 대해 조금 더 고민했으면 좋겠다 싶은데 그냥 겉핥기로 지나가 버리는 거죠. 인터뷰를 하거나 편집할 때, 좀 더 그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공감하라는 것. 그리고 프로그램을 3개월, 6개월하고 다 한 것처럼 이야기하지 말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쯤은 지켜보면서 프로그램이 가진 진짜 가치를 이해하라는 것. 열심히 일하며 연차가 올라가면 어느 시기에 돈 벌 기회가 생긴다고도 말해요. 연차 어릴 때 조급해하지 말고 능력을 키우면 더 많은 기회가 생길 거라고요.

촬영장에 온 출연자 한 분 한 분의 삶이 살아있는 인생 교과서였다. 그들이 프로그램을 통해 나를 깨우고, 내 인생의 스승이 되었다. 일일이 셀 수 없는 큰 소득이었다. 그러니 촬영장에서 이뤄지는 오유선 작가의 인생 수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출처 :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웹진 12월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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