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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에서 다시 시작하는 새해, 전남 해남

땅끝에서 다시 시작하는 새해 전남 해남

1월에 해남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지난해의 힘들었던 기억, 잊고 싶었던 순간, 우울했던 나에게 이별을 고할 장소로 ‘땅끝’을 찾았다. 땅끝 호젓한 겨울 산사에서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묵은 감정은 훌훌 떠나보내고, 새 희망을 품는다. ‘끝’에서 다시 시작한다.

글|사진. 김혜영 여행작가

 

땅끝 달마산 아래 아름다운 미황사

해남의 미황사를 찾아가는 길은 늘 설렌다. 첫사랑을 만나러 가는 기분이 이럴까. 미황사에서 첫 템플스테이를 한 것이 좋은 추억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가게 하나 보기 힘든 들판과 산길을 달려 달마산 중턱 미황사에 닿는다. 달마산을 병풍 삼고, 높은 석축 위에 올라앉은 대웅보전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남쪽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달마산은 바위가 툭툭 불거진 바위산이다. 산세가 용맹한 영웅호걸 같다. 대웅보전은 그런 달마산 기세에 눌리지 않고 당당하다. 날개를 활짝 펼친 듯한 처마가 기개가 넘친다.

미황사는 신라 경덕왕 8년(749)에 창건한 사찰로 전해온다. 창건 설화에 따르면, 인도에서 도착한 배에 실려 있던 경전과 불상을 소에 실어 달마산을 오르다가, 소가 넘어진 곳에 지은 절이라고 한다. 미황사 스님이 “대웅보전은 창건 설화에 나오는 인도에서 온 배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주춧돌에 바다를 상징하는 게, 자라가 새겨져 있습니다. 또 배를 끈 것이 용이라 하여 처마에 용머리를 조각했다고 합니다”라고 설명한다. 미황사 부도전의 부도 기단부에도 다람쥐, 게, 거북, 토끼, 두루미, 두꺼비 같은 동물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이 부도전에서만 볼 수 있는 특징이다.

미황사는 잠시 머물기에는 아쉬운 곳이므로 시간을 넉넉히 들인다. 해 질 녘 또는 새벽녘 어스름에 대웅보전 등이 켜지고, 달마산 능선만 또렷하게 보이는 시간을 기다린다. 단청이 벗겨진 대웅전에 온화한 노을빛이 물드는 때이다. 비바람에 나무가 터져 잔주름이 낱낱이 드러난 기둥마저도 곱게 보인다.

미황사 템플스테이 아침 공양
미황사의 고즈넉한 풍경

 

나를 돌아보는 시간, 템플스테이

미황사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좋기로 소문나 전국에서 많은 체험객이 찾아온다. 템플스테이는 불교 신자가 아니어도 참여할 수 있다. 사찰문화 체험형 프로그램과 휴식형 프로그램으로 나뉘는데, 미황사는 현재 코로나19 방역 차원에서 휴식형만 진행한다. 템플스테이를 통해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1박 2일 프로그램은 첫날 오후 3시에 시작한다. 겨울 산중은 해가 더 일찍 저문다. 숙소를 배정받고, 산책하다 보면 그새 어둑해진다. 저녁 공양은 6시. 공양 시간에 맞춰 스님이 타종한다. 고요한 산사에 종소리가 “둥-둥-” 울려 퍼진다. 빈 뱃속도 덩달아 울린다. 절밥은 다 맛있다고 하는데 미황사 공양은 특히 맛깔나다. 절이니만큼 식탐을 억누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저녁 예불과 금강스님과의 차담을 마치고, 이불장과 옷걸이밖에 없는 단출한 방에 몸을 누인다. 새벽 4시 반 새벽 예불과 아침 6시 반 공양을 놓치지 않으려면 일찍 잠을 청해야 한다.

미황사 템플스테이 중 금강스님과의 차담이 가장 인상 깊다. 금강스님은 2000년에 미황사 주지가 되어 미황사 재건에 공헌한 분이다. 금강스님이 달마산 걷기 길인 ‘천년 옛길 달마고도’를 만든 이야기를 들려준다.

“달마산에는 옛날부터 이 지역 사람들이 미황사에 들르거나 읍내 장터에 갈 때 오가던 옛길이 있었습니다. 방치됐던 이 길을 되살리기 위해 40명이 250일 동안 애썼습니다. 중장비를 사용하면 자연이 훼손되기 때문에 호미, 삽, 지게, 손수레만 이용해 길을 냈습니다. 기존 옛길 9km에 새로 낸 길 9km를 합쳐 총 18km의 둘레길이 완성되었습니다.”

달마산에 너덜지대가 스무 곳이나 되니, 얼마나 고된 작업이었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대가 없이 베푸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금강스님이 주관하여 만든 천년 옛길 달마고도
금강스님이 달마선원에서 템플스테이 참여자들과 차담을 나누는 모습

 

달마산이 품은 암자 도솔암

미황사 열두 암자 중 하나인 도솔암은 달마산 꼭대기 송곳니 같은 암벽 사이에 숨어 있다. 쳐다보기만 해도 아찔한 위치다. 다행히 도솔암 입구까지 차로 갈 수 있다. 미황사에서 꼬불꼬불한 임도를 타고 도솔암 표지판이 있는 등산로 입구까지 오른다. 이곳에서 약 800m 걸어가면 도솔암에 도착한다.

달마산 암릉이 매우 험준해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돌 박힌 산길이 거칠어도 경사가 완만하다. 등산로 옆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완도와 남해, 진도와 서해가 막힘없이 보인다. 창끝을 세운 듯한 바위에 감탄사가 절로 난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달마산 능선을 공룡 등뼈 같다고 표현했다.

도솔암으로 올라가는 돌계단은 신선 세계를 잇는 징검다리처럼 보인다. 바위 사이를 통과하면 손바닥만 한 마당에 암자 한 채가 들어앉아 있다. 암자 옆에는 배롱나무 한 그루가 사천왕인 양 지키고 섰다. 도솔암 아래 삼성각에서 올려다보면 V자 형태로 갈라진 바위틈을 돌멩이로 메꿔 석축을 쌓고, 평평하게 터를 닦아지었음을 알 수 있다. 암자의 터가 겉보기와 달리 태풍이 불어도 끄떡없을 것처럼 안락하다. 게다가 앞마당이 망망대해라니. 서해와 남해가 만난 다도해가 팔딱이는 생선의 비늘처럼 반짝인다. 이보다 낭만적인 암자가 있을까.

달마산 중턱 깎아지른 암벽 사이에 자리한 도솔암

 

두륜산 자락, 천년 고찰 대흥사

해남 대흥사는 해남을 대표하는 사찰로 정조대왕의 ‘표충사’, 추사 김정희 ‘무량수각’, 원교 이광사의 ‘대웅보전’, 이삼만의 ‘가허루’ 등 유명 인사들의 현판을 보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흥사의 부도전이 그 위상을 보여준다. 일주문을 지나 오른쪽을 보면 나지막한 담장 안에 80여 기나 되는 부도와 탑비가 모여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부도전이다. 임진왜란 이후 대흥사를 중흥시킨 스님들의 부도비가 모여 있는데, 서산대사 부도(보물 제1347호)가 가장 화려하다.

대흥사 유적의 진수는 천 개의 불상이 모셔진 천불전이다. 천불전 목조 삼존불상 뒤로 작은 부처상 천 개가 놓여있다. 불상을 자세히 보면 생김새와 표정이 모두 다르다. 문화해설사 말로는 불상이 천 개니 절을 한 번만 해도 천 번을 한 것과 같다고 했다. 천불전 아래 800년 된 느티나무 두 그루도 볼만하다. 이 나무들은 뿌리가 이어진 연리지다. 이 나무 앞에서 소원을 빌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두륜산 쪽으로 1.3km 정도 올라가면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국보 제308호)도 만날 수 있다. 통일신라 시대 불상이며, 천연 암반에 본존불과 공양비천상이 양각과 음각으로 조각돼 있다. 마애여래좌상의 온화한 미소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감동이 잊히지 않는다.

천불전 아래 수령 800살인 대흥사 느티나무 연리지

 

국보 제308호인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

 

한반도 최남단 땅끝탑에서 만난 희망

해남에 왔다면 왠지 땅끝마을은 꼭 들러야 할 것 같다. 땅끝마을 사자봉 정상에는 횃불을 상징하는 38m 높이의 땅끝전망대가 있다. 15분 간격으로 운행되는 모노레일을 타고 약 13분 정도 오르면 전망대에 도착한다. 땅끝전망대에서 인근 다도해가 손금 보듯 훤히 보인다. 맑은 날에는 한라산까지 보인다고 한다.

진정한 한반도 땅끝은 땅끝전망대 500m 아래, 땅끝탑이 세워져 있는 지점이다. 한반도 최남단으로 북위 34° 17분 21초이며, 해남군 송지면 갈두산 사자봉 끝이다. 서울에서는 천 리나 떨어진 곳이다. 한반도에서 일출과 일몰을 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어서 연말 연초에 새해 소원을 기원하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 삼각뿔 모양의 땅끝탑을 위에서 굽어보면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돛단배의 돛처럼 보인다.

땅끝마을에 특별한 볼거리가 있는 건 아니지만, ‘땅끝’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천 리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다른 때도 아닌 새해 첫 달이니까.

1987년 한반도 최남단에 세워진 땅끝탑

 

해남 여행 팁

1. 이색 숙소 대흥사 입구에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등장하는 유선관(061-534-2959)이 있다. 원래 신도들이나 수행 승려의 객사로 쓰였는데, 1960년대 여관으로 바뀌었다. 100년 된 한옥으로, 기와지붕과 디딤돌, 창호지 발린 문살, 툇마루, 굴뚝의 연기 등 옛 정취가 가득하다. 숙박 및 식사가 가능하다. 조식 8,000원.

2. 해남 별미 원조장수통닭(061-535-1003)에서 토종닭 코스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삶은 달걀부터 닭가슴살 육회, 생닭모래주머니, 생닭발무침, 닭주물럭, 백숙, 닭죽까지 한 상 차려진다. 흔히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부위의 닭 육회를 맛볼 수 있다.

대흥사 입구에 위치한 유선관
해남의 별미인 토종닭 요리

 

 

[ 출처 : 사학연금 1월호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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