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난화로 사라지는 유물들
- 컬럼
- 2021. 8. 20.
지구 온난화로 사라지는 유물들
겨울은 더욱 추워지고 여름은 더욱 더워지고 있다. 갑작스러운 한파와 호우가 종잡을 수 없이 교차하는 지금 북극과 남극의 빙하는 빠르게 녹고 있다. 이제 더이상 기후 변화는 먼 나라 이슈가 아니라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장 심한 위기가 됐다. 기후 문제는 국가 간 정상들의 회담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슈가 됐다. 그런데 온난화가 위협하는 것은 우리의 삶뿐만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지켜야 할 인류의 문화유산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흔히 문화유산이라고 하면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앙코르와트 사원처럼 겉으로 보이는 웅장한 기념물을 떠올린다. 하지만 대부분의 문화유산은 땅속에 묻혀있다. 그리고 고고학자들은 보이지 않는 땅속의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모른다. 박물관에 전시된 대부분의 유물은 일반인들은 쉽게 지나치는 땅속의 유적을 발굴해 꺼내온 유물들이다. 땅속의 유물들도 급격한 기후의 변화로 그 존재를 위협받고 있다.
EDITOR. 강인욱(경희대 사학과 교수, 고고학자)
유라시아 중심에 위치한 얼음왕국
기후 변화로 유적이 파괴된다고 하면 태풍이나 산사태, 아니면 홍수 같은 자연재해로 땅속 유물이 드러나는 것을 떠오르기 쉽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자주 있어서 급작스러운 호우로 땅이 쓸려 내려가면서 그 안에 있는 유적들이 파괴되기도 한다. 그런데 지구의 온난화로 전혀 예상치 않는 지역의 유적이 망가지고 있다. 바로 러시아, 카자흐스탄, 중국, 몽골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아름다운 산악 초원 지역인 알타이 지역의 옛 무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지역의 영구동결대에 묻혀있는 미라와 수많은 황금 유물이 얼음이 녹으면서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알타이 산맥에서 2,500년전 살던 기마민족들에 대해서 그리스의 유명한 역사가 헤로도투스는 ‘황금을 지키는 그리핀’이라고 불렀다. 머리에 새 모양의 모자를 쓰고 옷과 말에 황금 장식을 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고고학자들은 이 사람들의 왕(또는 족장) 무덤이 발견된 지역의 이름을 따라서 ‘파지릭(Pazyryk)’문화라고도 부른다. 여기에서는 화려한 황금과 양탄자, 그리고 다양한 유물이 발견됐는데, 이렇게 유물이 풍부한 이유는 바로 그들의 무덤이 얼음 속에 있기 때문이다. 양탄자나 의복은 물론이요, 무덤 속의 사람도 생생하게 미라가 되어서 발견됐다. 이렇게 유물이 발견된 이유는 이 무덤이 영구동결대의 얼음에 만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지역은 중국과 국경을 하는 지역으로 북극권과는 거리가 멀다. 여름에는 햇볕이 따가울 정도로 더울 정도이다. 하지만 북위 50도도 안 되는 알타이 고원지대에 영구동결대가 남아있는 이유는 이 지역이 해발 2,000~3,000m의 고원지대이기 때문이다. 당시 파지릭문화의 기마인들은 죽은 사람이 영원히 살 집을 위해서 땅속의 얼음을 파서 무덤을 넣었다. 그리고 짧은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눈과 비가 내리면 무덤은 마치 물탱크처럼 물이 차고 겨울이 되면 통째로 얼어버린다. 그렇게 2,500년간 무덤은 거대한 냉장고가 되어서 유물이 보존되는 것이다. 그 덕택에 일반적인 땅속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미라, 가죽옷, 양탄자, 나무 그릇들이 생생하게 발견됐다. 얼음왕국의 이야기가 막연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2,500년 전에 존재한 것이다.
1993년에 나탈리아 폴로스막(N. Polosmak)은 얼음공주라는 별명이 붙여진 유명한 여성 미라를 발굴했고, 1994년에는 그녀의 남편인 뱌체슬라브 몰로딘(V.Molodin)은 그 근처의 또 다른 무덤에서 20대의 남성 미라를 발견했다. 2,500년의 세월을 건너서 생생한 문신과 함께 발견된 이 미라들은 세계적으로 꼽히는 유라시아 고대의 유산이 됐다.
사라지는 세계유산
그런데 알타이 지역에는 수천 개의 파지릭 고분이 남아있다. 그중에서 얼마나 많은 얼음 미라가 발견될지 상상만 해도 기대되지 않은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2000년대 이후에 알타이의 고원지대에서는 더는 발굴이 이루어질 수 없었다. 알타이 주민들이 반대했다. 고대 무덤을 발굴하면 조상의 신이 분노해서 우리에게 재앙이 닥친다는 이유였다. 땅속에서 잘 보존될 수만 있다면 굳이 빨리 발굴할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사정은 급변하고 있다. 급격한 지구의 온난화로 알타이 지역 영구동결대 속의 얼음들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몰로딘 교수의 연구팀은 남성 미라를 발견한 바로 옆의 몽골지역에 위치한 알타이에서 영구동결대의 고분을 발굴했다. 미리 지구 물리탐사를 해서 무덤 속에 얼음이 있다는 것을 확인까지 하고 발굴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아쉽게도 얼음은 바로 직전에 다 녹아서 무덤 안의 많은 유물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어디 이 고분뿐이겠는가. 북극권의 빙하도 녹아 없어지는 상황이니 알타이 고원지역의 무덤 속에 있었던 얼음도 많이 없어지고 있다. 얼음이 사라지면 무덤 속에 있는 미라, 펠트, 나무로 만든 도구 등 수많은 유물도 빠른 속도로 부패해서 없어진다. 그 사이에 황금들도 같이 사라진다. 물론, 황금 자체가 썩거나 부패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황금은 부드러운 성질을 이용해 나무로 만든 장식에 금박을 입히는 데에 썼다. 그러니 황금을 붙였던 나무 유물이 사라지만 마치 구겨진 알루미늄 포일처럼 황금도 형체를 잃어버리게 된다. 몰로딘의 발굴과 같이 고고학자들은 다양한 탐사 조사를 통해서 고분 안에 얼음이 있음을 확인하고 발굴했지만, 지구 온난화로 바로 몇 년 전에 얼음이 빠진 경험이 반복되고 있다. 고고학자들 사이에는 알타이 땅속에 묻혀있는 문화유산의 보존에 대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제기되고 있다.
나도 2018년 7월에 알타이 고원지대의 영구동결대에 있었던 파지릭 고분을 조사했다. 바샤다르라고 하는 이 고분은 약 70년 전에 발굴했을 때에 얼음이 가득 찬 무덤 속에서 미라와 함께 다양한 유물이 발견된 적이 있다(사진 3). 그 덕택에 이 고분은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되었다. 하지만 내가 조사를 할 때는 섭씨 30도를 넘는 무더운 날씨였다. 준비해간 점퍼와 스웨터는 필요가 없었다. 같이 간 러시아 학자들도 몇 년사이에 이렇게 더워졌다면서 안타까워했다. 단지 더워서가 아니었다. 땅속에서 더 이상 미라와 같은 놀라운 발굴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얼마나 많은 유물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사라졌을까 상상하면 정말 주저앉아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난 20세기는 석유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리는 엄청난 양의 화석연료를 사용했다. 우리의 미래인 환경을 파괴하면서 싸게 에너지를 사용했고, 지구는 이제 그에 반발을 했다. 지구 온실효과로 지금 우리 주변의 삶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그리고 우리의 후손에게 전달해야 할 미래와 문화유산을 담보로 위험한 줄타기를 해왔던 것이다. 문화재는 우리의 것이 아니다. 우리의 의무는 과거의 문화재를 최대한 손상 없이 우리의 후손에게 전달하는 역할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전해야 할 문화유산은 비단 박물관에 보관되거나 유적 공원에서 볼 수 있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땅속에 숨겨진 유산도 우리가 지켜야할 의무이다. 고고학자 사이에는 유적은 땅속에 있을 때 가장 잘 보존된다는 원칙이 있다. 아무리 보존 기술이 좋아도 고구려의 벽화 고분같이 대부분의 유물은 한번 세상에 노출되면 그때부터 급격히 원래의 모습을 잃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구 온난화 앞에서 그러한 법칙은 달라진다. 소리 없이 사라지기 전에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서 영구동결대 속의 무덤을 발굴해놓지 않으면 그들은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질 수 있다.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새로운 연료가 개발되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하나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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