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Nov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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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번의 도전이 일군 성공 레전드로 길이길이 기억되다

수백 번의 도전이 일군 성공 레전드로 길이길이 기억되다

KFC 창립자 커넬 샌더스

‘늦었다고 시작할 때가 가장 빠르다.’
때론 진부한 말처럼 들릴 때도 있지만, 용기와 응원이 필요할 때 이보다 더 좋은 격언이 없다. KFC를 창립한 커넬 샌더스가 좋은 예다.
40세에 육군 전역 후 숱한 실패를 뛰어넘으며 마침내 성공에 이른 그의 열정과 도전 스토리에 귀 기울여보자.

글. 김주희 일러스트. 비올라


육군 전역 후 제2의 인생을 일구다

KFC 매장 앞에 가면 하얀색 정장 차림의 인상 좋은 ‘켄터키 할아버지’를 볼 수 있다. 그가 상상 속 인물이 아닌 실존 인물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결코 적잖은 나이에 제2의 인생을 시작해 세계적인 성공을 이룬 사람, 바로 KFC의 창업자 커넬 샌더스다.

1890년에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태어난 그는 6세의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다. 어머니가 재혼을 하며 고향을 떠난 이후로는 어린 남동생과 여동생을 홀로 돌봐야만 했다. 동생들을 위해 집에서 요리를 자주 하곤 했는데, 그때부터 웬만한 요리를 섭렵하게 되었다. 그는 10살이 되면서 처음 노동에 뛰어들었다. 농장 근처에서 월급 25달러를 받으며 일을 하기 시작한 것. 그리고 17세가 되자 미 육군에 입대한다. 20년 넘도록 육군 사병 생활을 하다가 40세가 되던 해 전역을 하고 제2의 인생을 꾸리기 시작한다.

전역 후, 켄터키주 국도 주변의 조그마한 주유소에서 일을 하면서 일생일대 터닝 포인트를 맞이했다. “이 마을엔 먹을 것이 마땅하지 않아!”라는 손님의 불평 한마디에 자신의 꿈을 펼치기로 결심한다. 어린 시절부터 요리를 즐겨했던 그가 개발한 자신만의 레시피로 요리를 만들기로 한 것. 주유소 옆에 작은 식당을 마련하고 남부식 요리를 선보였다. 당시에는 닭요리는 프라이팬에 굽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그는 압력솥을 이용해 빠른 시간에 닭고기를 튀겼다. 바삭바삭한 식감과 독특한 양념의 닭튀김을 맛본 손님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급기야 그의 음식을 맛보기 위해 일부러 타지역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식당은 미국 전역에서 맛집으로 유명해졌고, 1950년에는 켄터키주로부터 ‘켄터키 커넬(Colonel, 대령)’이라는 명예 호칭까지 수여받았기도 했다.

‘위기’를 ‘기회’로, 600번째에 이룬 기적

순조롭게 식당을 운영하던 그에게 위기가 찾아온다. 식당 근처에 새로운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국도를 오가는 손님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식당에도 발걸음이 뚝 끊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식당에 화재까지 나면서 좌절을 맛봐야 했다. 결국 65세가 되던 해, 눈물을 머금고 식당을 폐업해야 했다. 당시 손에 쥐어진 재산이라고는 월 105달러의 사회 보장금과 낡은 트럭 한 대가 다였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했던가. 그럼에도 그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요리에 대한 애정과 열정으로 다시 사업에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트럭에 조리 도구를 싣고 미국 전역 곳곳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닭요리 조리법을 판매한 것이다. 직접 개발한 11가지 허브 비밀 양념을 내세웠지만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수백 번을 거절당하면서도 절망 대신 희망을 떠올렸다.

숱한 시도 끝에 결국 웬디스 버거 창립자인 데이브 토마스와 거래가 성사되었다. 데이브 토마스는 식당에서 샌더스의 조리법으로 만든 치킨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치킨 1조각당 0.04달러의 로열티를 지불하기로 한 것. 유통 인프라를 갖추게 된 그의 음식은 날개를 달았다. 독특한 풍미와 식감의 치킨이 불티나게 팔려나갔고, 과거에는 미국 남부의 가정식으로 취급받았던 프라이드 치킨이 국민 음식으로 거듭났다. 이후 커넬 샌더스는 사업가 피트 하먼과 계약하면서 유타주 솔트레이크 시티에 KFC 1호점을 열었다.

도전과 열정, 마침내 성공으로!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은 많습니다.
하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드물지요.
저는 남들이 포기할 만한 일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는 대신 무언가를 해내려고 애썼습니다.
실천과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 커넬 샌더스 -

 

KFC가 자리를 잡은 이후 커넬 샌더스는 자신을 샌더스 대령이라고 칭하며 흰 양복을 입고 KFC의 마스코트를 자처하고 다녔다. 장학 재단을 설립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며 유명 인사로 이름을 떨쳤다. 그러다 1980년 90세로 생을 마감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왕성하게 활동한 장수의 비결은 육군 복무 시절 습관화된 규칙적인 생활이라고 밝혀져 주목을 받기도 했다.

도전과 끈기의 아이콘이자 켄터키 할아버지로 기억되고 있는 커넬 샌더스. 현재까지도 전 세계 곳곳 KFC 매장 앞에서 푸근한 미소의 동상으로 사랑받고 있다. 좌절을 딛고 마침내 성공한 그의 인생은 ‘늦었다고 시작할 때가 가장 빠르다’라는 명제를 명쾌히 증명한 대표적인 성공 스토리로 남았다.

 

[ 출처 : 다시 웃는 제대군인 1월호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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