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도 머물다 가는 절경, 영동
- 여행
- 2022. 9. 15.
달도 머물다 가는 절경, 영동
한반도의 한가운데 자리한 충청북도 영동은 총면적의 약 78%가 숲과 들로 이뤄진 임야다. 그만큼 산이며 하천이 많다. 각 산에서 발원한 하천은 다 금강으로 흘러든다. 이를 따라 양산팔경, 한천팔경 등 숨은 절경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는데, 가을이면 그 정취가 절정에 달한다.
신비로운 수채화 속으로
양산팔경이란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을 꿰고 굽이치는 금강 주변의 아름다운 절경 여덟 곳을 가리킨다. 그중 다섯 곳은 2017년 개통된 ‘금강 둘레길’을 걸으며 만끽할 수 있는데, 송호관광지를 중심으로 이뤄진 6km가량의 순환형 코스다. 느긋하게 돌아봐도 2~3시간이면 충분하다. 참고로 송호관광지는 28만㎡ 부지에 조성된 힐링공간으로 캠핑장과 물놀이장, 조각공원, 삼림욕장 등이 마련돼 있다.
송호관광지에서 출발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곳은 2경에 해당하는 강선대다. 양산팔경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도 손꼽히는 강선대는 노송들을 병풍 삼아 금강 물속에 우뚝 솟아있는 바위다. 선녀가 목욕하러 왔다가 비경에 취해 넋을 잃은 나머지 하늘로 돌아가지 못할 뻔했다는 전설이 있을 만큼 강선대는 지상 낙원으로 불린다. 실제로 강선대의 육각정자에서 바라보는 금강의 풍경은 비단을 깔아놓은 듯 눈부시다.
강선대를 지나 1.4km 정도 가면 5경 함벽정이 있다. 함벽정은 봉황대의 동쪽 강변 바위에 있는 정자로, 경관이 매우 수려해 옛 선비들도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기 위해 자주 찾던 곳이다. 함벽정은 비봉산의 근사한 낙조도 감상할 수 있는 명소다. 숲길을 지나 강변을 끼고 놓인 데크길에 들어서면 3경 비봉산을 조망하기 좋은 전망대가 등장한다. 벤치에 앉아 한숨 돌린 후 이제 강을 건널 차례다.
수두교를 건너 강변을 따라 2km쯤 가면 출발지였던 송호관광지가 다시 나타난다. 6경 여의정은 이 송호관광지에 있다. 금강을 사이에 두고 강선대와 마주해 있는 여의정은 솔밭 바위 위에 세워져 있는 정자다. 조선 연안부사(延安部使) 만취당 박응종이 관직을 내려놓고 낙향해 지은 정자로, 처음에는 자신의 호를 붙여 만취당이라 했으나 후손들이 1935년에 다시 지으면서 여의정이라고 이름을 고쳤다 한다. 여의정을 감싸고 있는 송림은 박응종이 손수 뿌린 소나무 종자가 자라서 이뤄진 숲인데, 100년 묵은 소나무가 무려 1만여 그루나 된다. 여의정을 지나 금빛으로 물든 은행나무숲을 통과하면 목욕하는 선녀를 훔쳐보다 승천하지 못하고 바위가 됐다는 제8경 용암이 나온다. 강선대의 선녀 이야기와 맞닿는 부분이다. 금강의 물살을 묵묵히 견디고 있는 용암의 자태가 어쩐지 안쓰러우면서도 우직하다.
역사의 숨결이 물씬 피어오르고
금강 둘레길 코스에는 빠졌지만 양산팔경 제1경 영국사도 송호관광지에서 그리 멀지 않으니 꼭 들러보길 추천한다. 천태산 동쪽 기슭에 자리한 이 고찰은 풍광이 좋기로 유명해 영동에서 제일가는 관광지다. 특히 가을이면 단풍이 장관이다. 영국사에는 천연기념물 제223호인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그 크기가 하도 거대해 천년은 족히 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 영험한 기운 때문일까, 형형색색 소원을 적은 종이가 은행나무 주변으로 가득하다.
하산하는 길에는 옥계폭포를 만날 수 있다. 박연폭포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20m가량의 폭포수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타고 쏟아져 내리는데, 그 모습이 주변 산수와 어우러져 더욱 기품 있게 다가온다.
봉우리마다 깃든 절경들
영동에는 양산팔경만 있는 것이 아니다. 황간면에 있는 월류봉의 한천팔경 또한 지나치면 섭섭한 명승지다. ‘달이 머물다 가는 봉우리’란 뜻의 월류봉은 높이 400m 봉우리로 이름처럼 달밤의 정경이 무척이나 아름답다. 우암 송시열 은 한때 이곳에 머물며 한천정사라는 작은 누각을 짓고 학문을 연구했는데, 거기에서 한천팔경이란 이름도 유래했다. 이외에도 한천팔경에는 월류봉의 1봉과 2봉인 산양벽과 가을이면 청학(靑鶴)이 깃든다는 월류봉 중턱의 자연동굴 청학굴, 월류봉 앞에 우뚝 솟아나 있는 절벽 용연대, 백사장에 솟은 물줄기인 냉천정, 그 앞의 작은 암자 법존암, 설경이 일품인 사군봉, 봄철이면 꽃나무가 무더기로 피는 산봉우리 화헌악이 있으나 인적이 닿지 못하는 곳도 있어 일일이 다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괜찮다. 월류봉 둘레길만 걸어도 그 정취를 충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월류봉 둘레길은 세 코스인데 여울소리길인 1코스는 월류봉 광장에서 2코스인 목교로 이어진다. 산새소리길이라고도 불리는 2코스를 지나다 보면 석천에서 다슬기를 잡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3코스인 풍경소리길에 들어서면 천년고찰 반야사를 만날 수 있다. 백화산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물이 태극문양으로 산허리를 감아 돌면서 연꽃 모양의 지형을 이루는데, 그 중심에 세워져 있다. 반야사의 대웅전 앞마당에 서서 요사채 뒤편 산자락을 바라보면 거대한 호랑이 형상이 보인다. 그 때문인지 이곳에서 소원 빌면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처럼 영동 곳곳 정제된 자연 속에서 오롯이 걷다 보면 어느덧 몸도 마음도 후련하게 비워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여유와 휴양의 끝판왕 영동 1박 2일 캠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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