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October

kyung sung NEWS LETTER

한국의 저작자, 놓쳐선 안 될 정당한 보상

[출처 :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웹진 6월호 바로가기]

 

양상헌DGK(한국영화감독조합) 저작권/해외사업 담당

지난 2020년 11월, 문체부 주최로 열린 저작권법 전부 개정안 공청회에서 ‘추가보상청구권’ 조항이 논의되었다. 출판업계에서 추진한 추가보상청구권은 저작재산권을 양도 계약한 이후 계약 시 예측하지 못했던 수익의 현저한 불균형이 발생한 경우 양수인에게 일정한 보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로, 영상물 산업계는 이 권리를 행사할 수 없도록 예외를 두어 영화업계 창작자 단체에서 반발이 일었다. 현재 DGK(한국영화감독조합)을 중심으로 시나리오작가조합 등 영화업계 단체에서 영상물제공사업자(방송사 등)가 저작자에게 별도의 보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별도의 저작권법 개정안을 추진 중인 가운데, 우리 협회에서는 최근 OTT 기업으로 인해 달라진 방송작가의 집필 계약 방식과 연관되는 쟁점을 확인하고 동참하기로 했다.
이번 호 ‘이슈&현장’에서는 영상업계가 개정안의 근거로 주장하는 정당한 보상의 개념은 무엇인지, 이번 개정으로 창작자가 기대할 수 있는 유의미한 실익은 무엇인지 짚어 본다.


내 작품이 해외에서 방영된다면 나는 정당한 보상(Fair Remuneration)을 받을 수 있다.
정당한 보상(Fair remuneration)은 저작물을 만들어 낸 자연인 개인에게 보장되는 ‘돈’이자 ‘권리’의 이름이다. 나는 이 권리를 사용하고 있는가? 한국에서는 ‘아직’이고, 유럽에서는 ‘이미’이다.
재방료와는 다른 이 ‘정당한 보상’은 무엇이고, 이 권리에 따라 유럽에서 보장받은 나의 보상금은 어디에 있는가?



나는 모르지만 ‘이미’ 해외에 존재하는 나의 권리

저작자(Author)는 저작권법상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행위를 하여 저작권을 발생시킨 자연인(사람)을 의미한다.
스페인 드라마 <종이의 집> 작가 에스더 모랄레스(Esther Morales)는 2021년 국제저작권관리단체연맹(CISAC)과 세계작가감독(W&DW)이 공동 주최한 포럼에서 정당한 보상(Fair Remuneration)과 관련하여 “이미 글로벌 시장인 영상물 업계에서 글을 쓰는 우리는 진작부터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글을 쓰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전 세계의 모든 작가가 동일한 권리를 갖도록 보장할 충분한 이유들이 있다”, “사람들은 내가 쓴 작품을 계속해서 즐기고, 그것을 소유한 채널은 그 작품으로부터 계속해서 수익을 창출한다. 그리고 나는 분기별로 그에 대한 정산을 받고 있다. 그것이 비록 재판매로 인해 발생하는 상징적인 2~3유로뿐일지라도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2023년 초 한국영화감독조합을 통해 스페인과 아르헨티나 넷플릭스(Netflix)는 영화, 드라마 등 영상저작물의 공동저작자인 감독, 작가들에게 처음으로 정당한 보상(Fair Remuneration)이라고 불리는 보상금을 지급하였다. 작품 이용량에 따라 몇십 원에서부터 수천만 원까지 많은 한국인 창작자들이 정산을 받았다. 3년 전 한국영화감독조합과 스페인, 아르헨티나의 저작권관리단체가 상호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드디어 그 첫 보상금을 지급받은 것이다. 해외에 ‘이미’ 존재한다고 들어왔던 한국인 저작자들의 ‘정당한 보상’의 권리가 가시화된 순간이다. 그날 이후 한국 영화감독들에게 해외에 정말로 내 ‘정당한 보상’ 권리가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한 논란은 없다. ‘앞으로 어떻게 잘 받아올 것인가?’의 단계로 넘어간 것이다.

대부분 영상물에 대한 판매 및 수익 권리는 방송사나 제작사, 투자사가 가진다. 하지만 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권리만큼은 창작자 개인에게 발생하고, 사전/사후에 계약으로 양도할 수도 없고 포기할 수도 없으며, 저작권과 동일하게 저작자의 사망일로부터 70년간 보호되는 배타적 권리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오롯이 내 권리이기 때문에 ‘나’ 또는 내가 정당한 보상 권리를 위탁한 ‘단체’가 직접 해외에서 받아와야 한다는 뜻이다.



해외에 ‘이미’ 쌓여있는 내 돈, 한국에서는 ‘아직’ 이 권리가 없다?

계약금, 인센티브, 고료, 재방료 등이 아닌 새로운 돈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국경을 벗어나면 존재하고, 내가 죽고 나서도 내 작품이 어디선가 사용되면 자식들에게 상속도 해줄 수 있는 이 권리가 아직도 생소할 수 있다.
한국에서 최종적으로 저작물을 사용하여 구독료, 건별 판매, 광고 수익으로 매출을 일으키는 OTT 사업자나 방송사는 이 정당한 보상(Fair Remuneration)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를 구구절절 복잡하게 설명할 수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지금까지는 한국의 저작자들이 이를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한국에서는 참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최근까지 한국의 저작자들은 이러한 권리가 있는지 몰랐고, 어떻게 요구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한국에서 돈을 받기 위해서는 이 권리를 유럽, 남미 등과 같이 법제화하거나, 지금 미국 작가들처럼 노조를 만들고 파업을 통해 단체협상을 이끌어내야 한다. 둘 다 가시밭길이다.
한국의 영화감독들은 두 가시밭길 중 첫 번째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작년 9월 더불어민주당 유정주 의원과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이 각각 ‘정당한 보상’을 명시한 저작권법 개정안 발의하였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방송작가,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등 영상물의 저작자는 한국에서도 ‘정당한 보상’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천만영화 감독들 마침내 국회로 : 정당한 보상을 논하다> 정책토론회 (2022년 8월 31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 필자 제공


방송작가가 받는 ‘재방료’와 ‘정당한 보상’의 관계는?

한국에서 ‘재방료’와 ‘정당한 보상’은 상호보완적이다. ‘재방료’는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는 작가가 계약을 통해 방송사 등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돈이고, ‘정당한 보상’은 작가가 제작사, OTT 등에 저작권을 양도하여 저작권이 없는 경우에 받을 수 있는 돈이다.
전 세계적으로 OTT 기업의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이 활발해지고 있는 가운데, 작가가 저작권을 일체 양도하는 형태의 계약을 맺는 관행이 굳어지고 있다. 이 관행이 굳어질 경우 향후 작가가 글로벌 OTT를 통해 집필활동을 하더라도 국내에서는 초기 원고료(계약금) 외에는 일체의 수익을 기대할 수 없게 되는데, 이 법안이 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다.


정당한 보상 (Fair remuneration)

Q. 누가 받을 수 있는가?
A. 저작권을 양도한 영상물의 저작자 (연출, 작가 등)

Q. 누가 지급하는가?
A. 저작물을 대중에게 제공하는 최종 사업자 (방송국, OTT 등)

Q. 얼마를 지급하는가?
A. 저작물을 사용하여 발생되는 매출에서 최대 2.5% 가량 (예상)

(해외 창작자들의 경험에 따르면 ‘정당한 보상’은 개인의 저작 활동으로 발생하는 수입에서 10% 가량을 차지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이 저작권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해외에 존재하는 내 ‘정당한 보상’을 받아 올 수 있는 길이 막힌다. 해외에서는 일시적으로 정당한 보상을 한국으로 보내주었지만 계속해서 한국이 해외 저작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한국의 저작자에게 보상금 지급을 중단하겠다고 계약서에 명시하였다. 에스더 모랄레스 작가가 말한 ‘전 세계의 모든 작가가 동일한 권리를 갖도록 보장할 충분한 이유’ 중에 하나다. 한국에서 이 권리를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 여부는 ‘발의되어있는 저작권법 개정안이 통과되느냐’에 달려있다.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결국 지금과 같이 ‘정당한 보상’ 권리는 국경 너머에만 존재하고 정작 내 저작물이 가장 많이 이용되는 한국에서는 보장받지 못하게 된다. 나아가 해외에 존재하던 권리까지 실질적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될 예정이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 보호받지 못한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 보호받지 못한다’는 전 세계에서 권리행사의 태만(Laches)을 표현하기 위해 통용되는 법언이다. 법언에 따르면 우리는 지금까지 ‘정당한 보상’의 권리가 있는지조차 몰라서 의도치 않게 그 위에서 잠을 자고 있었던 태만한 자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것을 알게 된 이상 나의 권리를 요구하고, 제도가 미비하다면 당사자로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법 개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해외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보장되어온 저작자의 ‘정당한 보상’ 권리가 한국에서 아직도 보장되지 않았다는 것은 권리라는 것이 ‘당사자’가 가만히 있다면 그 누구도 먼저 나서서 챙겨주지는 않는다는 이 법언의 실질적 예시로 안성맞춤이다.
영화감독들이 먼저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하였지만 거대한 미디어 산업에서 500여 명의 영화감독들은 애써 무시할 수 있을 만큼의 작은 존재이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더 많은 영상물 저작자들이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한목소리를 내어야 한다.

 

[출처 :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웹진 6월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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