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February

kyung sung NEWS LETTER

코미디, 다시 도약할 수 있을까 코미디의 아슬아슬한 선 타기,성패의 기로에 서다

[출처 :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웹진 10월호 바로가기]

 

 

 

“웃자고 하는 거에 죽자고 달려드니까···.”
올가을 제11회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에서 만난 한 개그맨이 이렇게 말했다. 왜 TV 코미디 프로그램이 재미가 없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한때 KBS-2TV <개그콘서트>에도 출연했던 그는 “TV 방송은 제약이 너무 많다. 소재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며 말끝을 흐렸다. 실은, 우리 모두가 다 아는 문제다.

이지영 중앙일보 논설위원

1994년 중앙일보 입사
대중문화팀장, 문화팀장 역임
현재 중앙일보 논설위원 겸 콘텐트제작에디터

 

막 내린 <코미디빅리그>, 부활하는 <개그콘서트>

TV 코미디라는 장르 자체가 존폐의 기로에 섰다.
tvN <코미디빅리그>가 지난 9월 13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무기한 휴지기에 들어가면서, 현재 TV로 방송되는 코미디 프로그램은 지상파ㆍ케이블ㆍ종편을 망라해 하나도 없다. tvN 측은 “새로운 포맷과 소재 개발을 위한 휴지기”라고 밝혔지만, <코미디빅리그>는 올해 들어 두 차례나 방송 시간을 바꾸며 사실상 폐지 수순을 밟고 있었다. 시청률이 0%대까지 떨어져 존재감이 미미해진 상황이었으니, 쓸쓸한 퇴장마저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한편 2020년 6월, 21년의 역사를 뒤로한 채 무기한 중단 선언을 했던 <개그콘서트>는 3년여 만의 ‘부활’ 소식을 전했다. 오는 11월 5일 첫 방송된다.
하지만 이는 시청자들의 요구에 따른 결정이라기보다, 방송사 차원의 필요성에 의해 재개되는 것이라 보는 게 맞을 듯하다. 최근 KBS는 수신료 분리 징수가 결정되면서 ‘수신료의 가치’를 입증하는 게 방송사 존립을 좌우하는 이슈가 됐다. 실제 KBS는 <개그콘서트> 부활을 공식 발표하면서 “지상파에서 사라진 공개 코미디의 명맥을 이으며 수신료의 가치를 실현해갈 계획”이라고 했다.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에서 선보인 ‘2023 개그콘서트 리프트’. ©부산국제코미디페스티벌 조직위원회


<개그콘서트>와 <코미디빅리그>의 쇠락 원인에 대해선 이미 여러 분석이 나왔다. 그중 하나가 공개 코미디란 ‘포맷’의 한계다. 시대에 따라 대세가 되는 TV 코미디의 형식은 계속 바뀌어왔다. <유머1번지>, <웃으면 복이 와요>로 대표되는 콩트 형식 코미디에서, <일요일 일요일 밤에> 형식의 버라이어티쇼로 바뀌었다가, <개그콘서트>, <웃음을 찾는 사람들> 등 공개 코미디의 전성기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제 공개 코미디의 수명이 다했다는 것이다. 한때 35.3%(2003년 8월 31일 방송)까지 기록했던 <개그콘서트> 시청률은 1050회 마지막 방송에선 3.0%에 불과했다.
이는 TBC에서 시작해 방송 통폐합 이후 KBS에서 계속됐던 <쇼쇼쇼>(1964∼1983)의 쇠퇴 과정과 비교해 볼 만하다. <쇼쇼쇼>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함께 무용·코미디·토크 등을 함께 다뤄 세대를 아우르는 ‘가족 오락’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시청 행태가 변화하고 음악적 취향의 분화가 일어나면서 <쇼쇼쇼>의 설 자리는 좁아졌다.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음악 장르가 따로 생겼고, 이들을 겨냥한 대중음악 위주의 프로그램들이 득세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 가족과 함께 볼 수 있는 프로그램보다는 자신의 취향에 맞는 프로그램을 따로 시청하려는 요구가 커져갔다. 이런 세태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쇼쇼쇼>는 시청률 급락과 이에 따른 종영의 수순을 밟고 만다. ‘온 가족이 함께 보는 음악 버라이어티 쇼’의 종말이었다.


달라진 시대, 방송 속 코미디는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

<개그콘서트> 방송 화면 갈무리, ©KBS

 

새 출발하는 <개그콘서트>가 ‘주말 저녁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온 가족이 함께 모여 TV 앞에서 웃고 대화 나누며 즐기는 프로그램’을 표방한다면, 이의 성패는 이미 ‘패’로 기울어져 있는지 모른다. 저마다 핸드폰을 들고 각자가 구독하고 맞춤으로 추천되는 숏폼 영상을 즐기는 시대에 ‘온 가족’, ‘TV 앞’ 등의 설정 자체가 허상이기 때문이다. 2021년 11월부터 넉 달간 <개그콘서트> 후속작 격으로 방송됐던 공개 코미디 프로그램 <개승자>(‘개그로 승부하는 자들’이란 뜻)가 별다른 화제를 모으지 못하고 종영한 것도 더 이상 <개그콘서트> 스타일이 통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다. 총 16회 방송된 <개승자>는 토요일 밤 10시 30분이란 황금시간대에 편성됐음에도 불구하고 줄곧 3∼4%대 시청률에 머물렀다.

보편적 시청자를 상대해야 하는 TV의 태생적 환경도 TV 코미디 프로그램의 운신의 폭을 좁혔다. 특히 정치인들의 ‘팬덤’이 강화되면서 정치 풍자는 완전히 위축돼 버렸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 세력에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뉘앙스가 감지되면 곧바로 인터넷 게시판과 댓글창을 통해 ‘응징’한다. 이런 정치 팬덤이 무서워 ‘감히’ 소재로 삼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코미디 역사에 시사 코미디가 없었던 건 아니다. 1980년대 김형곤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KBS2 ‘유머1번지’)과 최양락의 ‘네로25시’(KBS2 ‘쇼 비디오 자키’) 등 전설적인 코너뿐 아니라 <개그콘서트>에서도 ‘비상대책위원회’, ‘사마귀 유치원’, ‘민상토론’ 등이 일정 부분 그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여야를 막론하고 강성 지지자 세력이 커지면서, 201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TV에서 정치 풍자가 아예 사라져 버리고 만다. 건드리는 순간 어느 한 편 시청자들에게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위험한 아이템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 TV에서 코미디 웃음의 본질인 풍자와 해학도 점차 사라졌다. 사회적 억압과 권위를 비틀어 해방적 웃음을 터뜨리는 대신, 외모 등 타인의 약점을 희화화해 억지웃음을 끌어냈다. 2019년 임인숙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등이 발표한 논문 ‘외모 비하ㆍ차별 개그의 폭력성과 성별성 및 제재의 한계’의 몇몇 사례를 봐도 그 웃음의 얄팍한 실상이 보인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개그콘서트>의 최장수 코너 ‘달인’에서 달인 김병만이 뚱뚱한 진행자 류담의 몸에 맥주를 뿌리며 “이래야 돼지 잡내가 없어져요”라고 놀리고, 콘센트를 류담의 코에 꽂은 뒤 “통돼지 전기구이”를 외친다. <코미디빅리그>의 ‘사망토론’에선 “스무 살 여자는 딸기잖아요. 빨갛고 보기만 해도 너무 예쁘잖아요. 하지만 서른 살이 넘은 여자는 토마토입니다. 과일도 아닌 게 과일인 척을 해요”라며 방청석을 향해 농담을 던진다. 대사 하나하나마다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자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런 유치한 말장난은 짜증과 불쾌감을 유발하고 결국 시청자들을 떠나가게 한다.


과감하되, 영리하게

 

TV 코미디 프로그램의 소멸이 결코 코미디의 소멸은 아니다. 대중에겐 언제나 웃음이 필요하고, 대중은 늘 적극적으로 웃음을 찾아다닌다. <개그콘서트> 중단 이후 TV에서 무대를 잃은 개그맨들이 유튜브란 플랫폼을 적극 공략하면서 도리어 코미디의 중흥기가 시작된 모양새다. 케이블 채널 tvN을 떠나 OTT 플랫폼 쿠팡플레이로 자리를 옮긴 <SNL 코리아>도 유력 정치인들을 직접 출연시켜 곤란한 질문으로 쥐락펴락하며 정치 풍자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시청자가 직접 선택해 찾아보는 유튜브나 OTT 콘텐츠는 보편적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방송 프로그램에 비해 소재와 표현 수위의 제약에서 훨씬 자유롭다. 넷플릭스도 곽범ㆍ이재율ㆍ이선민 등 유튜브 스타 개그맨들이 출연하는 개그쇼를 오는 11월 론칭할 예정이다.

TV가 다시 코미디 시청자들을 붙잡으려면 각 프로그램마다 타깃 시청층을 좁히고 소재를 특화하는 등 새 포맷 개발에 대한 시도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차별과 혐오를 부추기는 반윤리적 웃음은 지양하되, 그것이 아니라면 ‘눈치’ 보지 말고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

유튜브 채널 <숏박스>, <빵송국>, <피식대학> 등을 운영하는 메타코미디 정영준 대표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선을 잘 타는, 시대정신에 맞는 좋은 농담”을 코미디의 본질로 꼽았다. 정 대표는 “예술은 위험했을 때 비로소 예술이고 안전함을 추구했을 때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는 듀크 엘링턴의 말을 인용하며 “적절한 어휘와 어미를 제대로 선택하지 못하면 대단히 위험할 수 있는데, 그걸 잘 해냈을 때 코미디의 순기능을 100%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아슬아슬 선 타기는 코미디의 숙명이다. 위험하다고 지레 겁을 먹고 피해버리면 죽도 밥도 안 된다. TV 코미디 프로그램의 재부흥을 위해서는 정치 권력의 눈치를 보는 것만큼이나 정치 팬덤의 눈치를 보는 것도 비겁한 행태라는 공감대부터 절실하다.

 

 

 

[출처 :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웹진 10월호 바로가기]

댓글

웹진

뉴스레터

서울특별시청 경기연구원 세종학당재단 서울대학교 한국콘텐츠진흥원 도로교통공단 한전KPS 한국해양교통안전공단 한국벤처투자 방위사업청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한국중부발전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방송작가협회 한국지역난방공사 국방기술진흥연구소 한국수력원자력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지방공기업평가원 한국과학기술한림원

Designed by 경성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