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OTT의 날개를 달다 : 넷플릭스 저널리즘? OTT 오리지널 다큐멘터리의 현재
- 컬럼
- 2023. 12. 27.
[출처 :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웹진 11월호 바로가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8부작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하 <나는 신이다>)의 성공은 한국 방송계에 세 가지 화두를 던졌다. 첫째, 해외 OTT 이용자들도 다큐멘터리에 대한 수요가 있다. 둘째, 다큐멘터리도 OTT를 통해 돈을 벌 수 있다. 셋째, OTT에서도 저널리즘이 가능하다. 이제 시사교양 분야 작가와 PD들의 ‘OTT 저널리즘’ 시대가 열리는 것일까. 섣부른 기대는 안 된다. 하지만 <나는 신이다> 이후 ‘하나의 문’이 새로 열린 것만은 분명하다.
정철운 미디어오늘 저널리즘팀장저서《뉴스와 거짓말》(2019),《손석희 저널리즘》(2017) 등
2022년 제49회 한국방송대상 심사위원
넷플릭스여서 가능했던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사이비 교주들의 실체를 집중 조명한 <나는 신이다>는 지난 3월 공개 전부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성범죄 혐의로 구속 기소 된 JMS 정명석 측이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에 나선 것. 국내에서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에 가처분 신청이 제기된 첫 사례로, 해외 OTT를 ‘저널리즘 플랫폼’으로 인식하게 만든 유의미한 순간이었다.
<나는 신이다>는 공개 3일만인 3월 5일 넷플릭스 한국 TV 시리즈 부문 1위를 기록했다. 다큐멘터리 장르로는 최초였다. 3월 15일엔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TV쇼(비영어) 부문 5위에 올랐다. 사회적 파급력은 적지 않았다. 이 무렵 이원석 검찰총장은 정명석을 두고 “엄정한 형벌이 선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고 지시했다.
<나는 신이다>는 <PD수첩> 출신의 현직 MBC 시사교양 PD가 연출에 나서 화제를 모았다. MBC 안팎에 따르면 MBC에서 먼저 넷플릭스에 오리지널 콘텐츠 협업을 제안했고, 넷플릭스 쪽에서 △해녀 △무당 △엽기적 살인 등을 구체적 아이템으로 제시하자 제작진이 ‘오대양 사건’에 주목한 뒤, 점점 판이 커져 사이비 종교 전반으로 아이템이 확장되었다고 한다. MBC의 한 시사교양 PD는 <나는 신이다>를 가리켜 “19금 PD수첩”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수월했던 건 아니다. 2020년 3월 취임한 박성제 MBC 사장이 ‘MBC는 지상파TV를 소유한 글로벌 콘텐츠 그룹’이란 방향성을 갖고 플랫폼 확장을 추진했기에 가능했다. 당연히 MBC 내부에서부터 넷플릭스와의 협업에 거부감이 있었지만 경영진이 돌파했다. 과거 MBC가 방송에 내보낼 수 없었던 촬영본 등을 활용해 기어코 제작에 성공했다.
<나는 신이다> 연출자 조성현 PD는 넷플릭스 기자간담회에서 “(JMS 피해자) 메이플을 만나서 직접 인터뷰하기까지 40일을 기다렸다. <PD수첩>으로 만들었다면 아쉽지만 만나지 않겠다고 결정했을 것이다. 편성이나 취재 시간에 구애받지 않았다는 게 큰 차이였다”고 했으며 “넷플릭스는 다큐멘터리가 소비될 수 있는 좋은 플랫폼”이라고 평가했다.
활기를 띤 OTT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제작
복수의 MBC 내부 관계자에 의하면 <나는 신이다>는 현재 넷플릭스와 시즌 2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나는 신이다> 이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로는 <킹 오브 클론 : 황우석 박사의 몰락>(이하 <킹 오브 클론>)이 지난 6월 등장해 한국에서 주목받았다. 10월 말에는 봉준호 감독이 1993년 청년 시절 활동했던 동아리 ‘노란 문 영화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다큐멘터리 <노란 문: 세기말 시네필 다이어리>가 공개됐다.
사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는 <베컴>, <라스트 댄스>, <네이마르> 같은 스포츠 분야부터 <미디어 재판>, <해저 왕국의 황금시대>, 세계 2차대전 당시 실제 선전 영상을 담은 <Five Came Back> 시리즈까지 다양하고 보편화되었다. <블랙핑크: 세상을 밝혀라>도 2020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로 전 세계에 공개됐다. 국내에서는 <레인코트 킬러: 유영철을 추격하다>(2021년),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2022년)처럼 꾸준히 오리지널 다큐멘터리가 제작되는 상황이다.
<나는 신이다>의 성공은 시사교양 분야 작가와 PD들에게 명확한 자극제가 되었다. 일례로 KBS 시사교양 PD들은 ‘넷플릭스 협업을 적극 권장한다’는 일종의 사내 지침도 받았다. 현재 KBS 내에서 자체 준비 중인 OTT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는 없지만, KBS의 한 시사교양 PD는 “관심 있는 PD들끼리 MBC의 OTT 오리지널 팀장을 만나는 등 사례를 계속 스터디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상파가 OTT의 하청기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는 내부에서 여전하지만, 현재의 흐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지적도 맞서고 있다. 지상파 밖에서는 독립제작사들을 중심으로 OTT가 관심 가질 만한 아이템을 놓고 브레인스토밍이 계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OTT 속 ‘다큐멘터리’는 점점 장르파괴적 경향을 보이고 있다. 최근 넷플릭스가 공개한 신개념 토크 버라이어티쇼 <성+인물>이 일례다. 예능PD가 만들고 신동엽·성시경이 출연하는 예능처럼 보이지만 일본 편에선 실제 AV 배우들의 인터뷰를 통해 일본의 성문화를 알렸고, 대만 편에서는 게이 부부·레즈비언 부부 인터뷰를 통해 2019년 동성결혼 합법화 이후 변화된 대만 사회를 들여다볼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다큐멘터리와 유사한 효능감을 보여줬다.
국내 OTT도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제작을 이어가고 있다. 티빙에선 ‘MZ세대 150명과 함께하는 대규모 실험 다큐멘터리’ 콘셉트의 <MBTI vs 사주>를 공개했고, 음식 이야기를 다룬 <푸드 크로니클>, K-POP을 분석한 <케이팝 제너레이션>, 야구팬들을 겨냥한 <아워 게임 : LG 트윈스>까지 여러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를 내놨다. 웨이브에선 ‘100% 리얼 수사물’을 표방했던 <국가수사본부>가 올해 상반기 오리지널로 공개된 바 있다.
한 지상파 고위관계자는 “지금 넷플릭스에 등장하는 오리지널은 몇 년 전 계약했던 것들이고, 넷플릭스는 지난해부터 오리지널 제작비를 줄이고 있다”고 전하며 향후 OTT 시장 전망이 어둡다면서도 동시에 “한국 콘텐츠의 퀄리티가 너무 좋고, 설령 넷플릭스가 망해도 다른 누군가가 넷플릭스 해외 플랫폼망을 가져갈 것”이라며 긍정적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국내 OTT도 티빙과 웨이브의 합병 논의 속에 K-OTT 확장 논의가 이어질 것이고, 다큐멘터리 장르는 꾸준한 관심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OTT 저널리즘의 역할, 가능할까
다만 소위 ‘OTT 저널리즘’에 대해선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오랜 기간 국내 심의체계에 익숙해져야 했던 작가와 PD들이 경험했을 ‘심의 없는 세계’는 연출에 있어 분명한 자극제였을 것이다. 그러나 또 다른 제약도 있다. SBS의 한 시사교양 PD는 “넷플릭스에 심의 제재가 없어 상대적으로 수위 표현은 자유로워 보이지만 제작‧촬영 방식에 있어서는 넷플릭스만의 가이드라인이 존재한다”며 “촬영 카메라의 기종을 제한하거나, 화면에 제작진이 등장하는 걸 제한하는 등 연출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OTT 오리지널 다큐멘터리가 ‘피해구제 사각지대’가 될 수 있는 상황도 우려할 대목이다. 일례로 <나는 신이다>는 엽기적인 성범죄 피해 사실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선정성 논란을 빚었다. 사회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아도 국내 방송·통신 심의체계로는 OTT 오리지널을 심의·제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OTT 오리지널 콘텐츠 심의에 나서려면 정보통신망법상 방송 심의가 아닌 통신 심의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킹 오브 클론>의 경우 ‘황우석 사태’ 공익제보자 류영준 씨와 관련해 명예훼손성 발언이 담겨 당사자가 사실관계 정정을 요구했지만 넷플릭스가 거부하는 일이 벌어졌다. 제작사 및 넷플릭스 측은 류 씨에게 “우리는 다큐멘터리에 나온 주장의 진실성에 대해 어떤 견해도 표명하지 않았다”며 정정 불가 입장을 냈다. 이에 지난 9월 참여연대가 넷플릭스 본사에 정정을 요구하는 성명을 내는 일까지 있었다.
OTT가 점점 보편적인 미디어 플랫폼이 되는 상황에서 OTT 오리지널 다큐멘터리에 대한 관심과 영향력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OTT 플랫폼 사업자들은 다큐멘터리 콘텐츠의 저널리즘적 역할보다는 상업성에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높고, 이 같은 동기는 콘텐츠의 선정주의로 흐를 위험성을 갖고 있다. 이를 견제할 마땅한 사회적·법적 제도가 없는 상황에서 OTT가 저널리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여부는 현재로선 이용자들의 저널리즘적 비평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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