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October

kyung sung NEWS LETTER

인생 2막 어쩌다 농부블루베리 농사로 전업한, 이지예 작가

[출처: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웹진 VOL. 220 2024년 9월호]

작년까지 SBS에서 <편먹고 공치리> 프로그램을 만들던 16년 차 예능 작가가 어쩌다 전라남도 장흥에서, 어쩌다 블루베리 농사를 짓게 된 걸까? 막내 작가가 되어 빡센(?) 야외 촬영을 매일 하는 기분이라는 귀농 1년 차, 이지예 작가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글. 이은별 편집위원 사진. 인터뷰이 제공

 


 

작년까지 SBS에서 <편먹고 공치리> 프로그램을 만들던 16년 차 예능 작가가 어쩌다 전라남도 장흥에서, 어쩌다 블루베리 농사를 짓게 된 걸까? 막내 작가가 되어 빡센(?) 야외 촬영을 매일 하는 기분이라는 귀농 1년 차, 저는 방송작가 일이 좋았어요. 감사하게도 방송작가가 천직이라는 말도 많이 들었고요. 특히 MBC <무한도전>이란 프로그램을 5년 좀 안 되게 했는데, 그때 너무너무 재미있게 일했거든요. 편히 쉬어본 기억은 없지만 촬영 끝나고 뿌듯함에 울기도 많이 울었고요. 처음으로 메인 입봉을 했던 tvN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프로그램도 3일 밤을 새우고 링거를 맞으며 일했지만 촬영장만 가면 너무 재밌고 행복했어요. 작년까지 했던 <편먹고 공치리> 시리즈도 마찬가지예요. 사람들이며 프로그램이며 다 잘 맞아서, 지금도 작가 일을 생각하면 너무 좋아요.
근데 그래서, 좋을 때 그만두고 싶었어요. 정이 다 떨어져서 다시는 방송국 쪽은 쳐다 보지도 않겠다는 마음으로 그만두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야지 같이 일했던 사람들도 더 오래 볼 수 있을 거 같았거든요. 조금 힘이 남아 있을 때 다른 일을 시작하자 생각한 거죠. 코로나19 이후 방송국 상황이 안 좋았잖아요. 스스로 어디까지 더 진취적으로 일할 수 있을까 고민되더라고요. 일이 끊기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언제까지 하며 살아야 할까 회의감도 있었고요. 근데 지금보다 더 전투적으로는 못 할 거 같더라고요.

<무한도전> 마지막 녹화 현장 / <편먹고 공치리> 기념 촬영
<미운 우리 새끼> 녹화 현장 /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해외 촬영 현장에서 한 컷


전부터 만약 방송작가 일을 관두게 된다면 어떤 걸 할 수 있을까 생각은 많이 했죠. 그때는 막연하게 글을 쓰는 다른 직업을 갖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연차가 쌓이고 보니 아예 벗어나서 다른 일을 해보는 건 어떨까 싶더라고요. 타일 기능사 같은 자격증을 따볼까, 오만가지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그러다 부모님이 하고 계시는 블루베리 농사가 눈에 들어왔어요. 제가 막내 작가 때 부모님이 전라남도 장흥으로 귀농을 하셨거든요. 옆에서 볼 때마다 농사짓는 게 너무 힘들어 보여서 저는 절대 못 하겠다 싶었죠. 근데 재작년에 일을 도와드리러 갔는데 희한하게 이전과는 다른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래도 농사라는 일은 직업의 허들이 높은데··· 갑작스럽게 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용기가 어떻게 생겼을까?

제가 매번 작가들한테 하는 얘기가 있는데요. ‘방송작가 몇 명만 있으면 나라도 구할 수 있을 거 같다’였어요. 우린 어디에 갖다 놔도 적응을 잘하잖아요. 엄청난 능력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가 필요하다고 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은··· 그런 마음이 용기를 줬던 거 같아요.
특히 제가 농사일에 마음을 열게 된 계기가 있는데요. 부모님 주변에 농사를 짓는 분들이 많거든요. 근데 신기하게 나이가 많으셔도 다 에너지가 넘치는 거예요. 저에게 에너지가 느껴질 정도로요. 땀 흘리며 바쁘게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게 건강한 삶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죠. 농사는 막연하게 노동만 할 거 같았는데, 공부도 엄청 하시고요. 그런 게 멋있어 보였어요. 이런 삶을 살아도 나쁘지 않겠다··· 소소하게 농사를 지으면서 재밌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저는 삶의 모토가 그냥 즐겁게 살면 좋겠다는 거예요. 행복은 가끔 하면 되고, 자주 즐거우면 그게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이게 농사일을 선택하게 된 이유예요. 물론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니까 블루베리의 수익성을 보고 끌린 것도 있어요. 선택에 대해 후회하진 않지만, 아직 옳은 선택을 했다는 생각도 하지 않아요. 그냥 해보는 거죠.




귀농 생활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김태리가 떠오른다. 고단한 도시의 삶을 뒤로하고 자연 속에서 제철 음식을 손수 해 먹으며 힐링하는 그런 모습. 농부 1년 차 예능 작가의 현실은 어떨까? 일과가 궁금했다.

현재는 부모님 농장을 도와드리면서 제 농장을 준비 중인데요. 블루베리 농사는 여름이 농번기라서 엄청 바빠요. 날이 많이 덥잖아요. 그래서 5시에 일어나서 6시쯤 농장에 가요. 한창 더울 땐 밥 먹으면서 좀 쉬고, 거의 저녁 6시까지 일을 하고 옵니다. 일은 진짜 힘들어요. 낭만적이고 여유로울 거 같다는 생각으로 오는 건 절대 안 돼요. 농사를 안 지으면 모를까, 아쉽게도 영화 속 김태리처럼 살 수 없습니다.
근데 신기한 게, 생각을 덜 하게 돼요. 삶이 좀 단순해진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좋았어요. 방송작가 일을 할 때 매 순간 무언가를 생각한다는 게 힘들었거든요. 지금은 몸은 힘들지만 마음과 머리는 확실히 편해요.




평상 하나 놓을 수 있는 마당 있는 시골집.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가만히 있으면 꼭 절간 같다고 한다. 자연이 주는 고요함 속에서 개구리 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지내는 평화로운 삶. 무척이나 부럽기도 하다.

30여 년을 서울에서 살았는데요. 저는 도시 생활이 참 좋았어요. 서울에 살면서 답답하다고 느낀 적이 없을 정도니까요. 근데 생각해 보니 도시에서의 저는 약간 강박이 있었던 거 같아요. 뭔가 유행에 뒤처지면 안 될 거 같고, 앞서가야지 마음이 편했죠. 새로 생긴 핫한 카페가 어딘지, 나만 모르는 건 아닌지 늘 조바심을 느끼며 살았던 거 같아요.
특히 서울에서의 저는 집에 혼자 있는 걸 싫어하고 무조건 누군가를 만나야 하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여럿이 모여서 노는 것도 좋아했고요. 그래서 귀농을 결심하고 처음엔 이러다 도태되는 건 아닐까, 인간관계가 끊기면 어떡하나··· 걱정도 많았어요.
근데 살아보니 이런 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더라고요. 없어도 충분히 살 수 있구나 깨닫고 있어요. 멀리 떠나서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는데 오히려 인연이 더 끈끈하게 연결돼요. 우린 어차피 일하는 게 바빠서 1년에 몇 번 못 만나는 지인들이 많잖아요. 서울 살아도 그런 지인들이 태반인데, 시골로 내려가도 별로 달라질 건 없겠구나 싶었죠.
신기하게 작가들, 친구들이 자주 놀러 와요. 서울에서 꽤 먼데 고맙죠. 이곳에 온 지 1년 됐는데 아직까지는 잘 지내고 있어요. 가끔 서울을 그리워하면서요.
가장 적응이 필요했던 게 배달 음식이 거의 없다는 거? 매일 마라탕 시켜 먹는 게 낙이었는데, 이제 자연스럽게 직접 해 먹게 돼요. 요즘에는 옥수수도 자주 쪄먹고요. 오이랑 고추랑 토마토도 수확해서 먹어요.

토요시장, 직접 가꾸고 있는 텃밭 채소들

 


앞으로 또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남편이랑 귀농하면서 얘기했던 게 있는데요. 토마토나 상추 같은 채소는 1년 내내 일을 해야 해요. 계속 자라거든요. 근데 블루베리는 때가 정해져 있어요. 지금이 한창 바쁠 농번기이고 겨울에는 한가해지거든요. 그래서 겨울에는 같이 여행을 다니자 얘기했었죠. 방송작가 할 때는 휴가가 딱히 없었고, 프로그램이 갑작스럽게 끝나니까 계획을 미리 세워서 여행하기 쉽지 않았거든요. 앞으로는 봄, 여름, 가을엔 열심히 일하고 겨울은 길게 겨울 방학처럼 휴가를 가지면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해요.
그리고 시간 날 때마다 다른 형태의 글을 써보려고요. 방송작가 생활을 하면서 아쉬웠던 게 내 글을 쓴 적이 별로 없다는 거였어요. 요즘 에세이 수업을 듣고 있는데요. 이제야 내가 살아가는 삶에 대해, 내 글을 써보자 결심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귀농을 꿈꾸는 작가들에게 조언 한마디

귀농을 하고 보니 몰랐던 혜택들이 참 많더라고요. 저도 현재 ‘청년 창업농’이라는 제도에 선정이 돼서 나라에서 3년간 정착비를 받고 있어요. 그동안 제 농장을 열심히 준비할 계획입니다. 비닐하우스 하나를 짓더라도 지원 사업 같은 게 있으니까 알아보고 하면 좋을 거 같아요. 생각보다 지역사회 공무원분들이 엄청 밀접하게 잘 도와주세요. 두려워 마시고 뭐든 물어보시면 됩니다.

장흥군 농업아카데미 블루베리 전문가반 멘토링 수업 현장




농업은 확실히 비전이 있다고 생각해요. 귀농을 하고 보니 저희가 정말 젊은 편이거든요. 어른들이 항상 잘 왔고 잘 선택했다는 얘길 해주세요. 꼭 땅 파서 농사짓는 거 외에도 6차 산업이라고 해서 체험 농장을 운영하거나 가공품을 만들어서 브랜딩을 하거나 뻗어나갈 수 있는 방향이 많아요. 그래서 꼭 얘기하고 싶어요. “농업의 미래가 밝다!”

싱싱한 블루베리를 사고 싶다면 인☆그램에서 ‘blueone_korea’를 찾아봐도 좋을 듯하다.이지예 작가와 서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출처: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웹진 VOL. 220 2024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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