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il. 2025

kyung sung NEWS LETTER

클래식은 영원하다

[출처: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VOL.228 2025년 3월호]

아무리 변주해도 오리지널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요리 예능의 대표주자, <냉장고를 부탁해>가 그렇다. 이번 겨울 <냉장고를 부탁해 since 2014>로 다시 시청자를 찾아왔다. 전보다 더 깊고 맛깔스러워졌다. 서울로 간 자식들이 오랜만에 손자 손녀 손 잡고 다시 찾아온 고향 집처럼 낯익은 반가움이 넘친다. 2014년, 첫 시작부터 줄곧 <냉장고를 부탁해>를 지켜온 강윤정 작가를 만나고 싶어졌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 since 2014> 강윤정 작가

글. 허정원 편집위원  사진. 김용철  장소. 상암 Attat home

 

Q. 한 프로그램이 하나의 장르가 되는 것, 모든 방송 작가가 꿈꾸는 일인데요. <냉장고를 부탁해> 시즌 2는 시작하는 마음도 남다를 것 같아요.

11년 전에 처음 <냉장고를 부탁해> 시작하면서 함께했던 원년 작가 멤버들 4명이 새 시즌에도 그대로 뭉쳤어요. 지금 작가들이 당시엔 냉장고 빼던 어린 연차였거든요. 11년이 지나고 15~16년 차가 돼서 세컨드 작가로 성장해서 다시 만난 거예요. 다시 뭉치게 돼서 너무 좋죠.
(신기했던 게) 새 시즌 편성이 결정되기 한 달 전에, 저희끼리 다시 뭉쳐서 회식하면서 ‘제작비 없으면 우리가 알아서 만들게’ 이런 얘기를 웃으면서 했거든요. 어렸던 PD들은 ‘나 혼자 예고, 자막 다 쓸게’ 이러면서. 그런데 실제로 편성이 한 달 뒤 이뤄졌어요. <냉장고를 부탁해>를 했던 사람들이니까 빨리빨리 시즌 2를 시작할 수 있었죠.

Q. 11년 전 처음 <냉장고를 부탁해>를 시작할 땐 어땠나요?

일단 새롭게 하고 싶었어요. 크게 무모한 도전 두 가지를 시도했죠. 한 가지는 남의 냉장고를 통째로 떼어온다는 것이었고요. 다른 한 가지는 이미 더 얻을 게 없는 스타 셰프들에게 대결을 시켜보자는 것이었어요. 처음엔 이게 되겠어? 하는 의구심도 있었죠. 그만큼 무모했거든요. 하지만, 첫 기획이기도 하고 새로운 그림을 만들고 싶어서 욕심을 내서 밀어붙인 게 있었죠. 저희 작가들이 진짜 고생을 많이 했어요. 특히 후배 작가들이 진짜 아마 대한민국 모든 연예인한테 다 거절당했을 정도로···. 거의 녹화 일주일 전까지 섭외가 안 됐고 미친 척하고 일단 연락을 다 돌려보자 하는 상황이었어요. 처음 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어떤 프로그램인지도 모르니까 대부분 거절했던 것 같아요. 고민하던 와중에, 저희 프로그램 뒤 시간이 <비정상회담>이었는데 그 프로그램이 되게 핫했어요. 그래서 외국인들의 냉장고를 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 그 팀에 부탁을 드렸죠. 그렇게 급하게 <비정상회담> 출연진의 냉장고를 갖고 왔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방송이 나가고 나니 반응이 빠르게 오기 시작했어요. 진짜 냉장고를 가져가냐며 놀라기도 했지만, 방송이 나가고 난 이후부터는 많은 분들이 응해주셨죠. 출연자들이 생각보다 만족도가 더 높았어요. 자기의 냉장고 음식으로 자기만을 위해서 경쟁하는 것 자체가 감동스럽다고 하더라고요. 계속 나오고 싶어 하실 정도로요. 출연자들이 방송이 끝나고 나서도 너무너무 즐거웠다고 할 때 작가로서 보람도 컸죠.

Q. 시즌 2 <냉장고를 부탁해 since 2014>를 시작하면서 가장 신경 썼던 점은요?

전체적인 포맷은 흔들면 안 된다, 큰 틀은 바꾸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세부 구성과 출연자에서 변주를 줘야겠다고 생각했죠. <냉장고를 부탁해> 하면 떠오르는 대표 셰프님들이 받쳐주시고, <흑백요리사>를 통해서 새롭게 떠오른 셰프를 대비시키되 손종원 셰프나 <마스터셰프 코리아> 김소희 셰프같이 새로운 셰프의 등장도 염두에 뒀어요. 새로운 요리를 많이 보여주는 게 목표니까요.
소소하게 바꾼 것들이 재미를 줄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1분 먼저’ 혹은 ‘1분 멈춤’을 시도해 보기도 했고요. 방송 중 자연스럽게 ‘유니셰프’라고 다른 셰프가 도와주는 형태가 예전 시즌에 있었는데, 최근에 박은영 셰프가 유니셰프 역할을 하기도 했죠.

Q. 냉장고 그대로 옮겨오려면, 준비부터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사전 인터뷰를 출연자분 집에서 직접 냉장고를 보면서 해요. 제작진이 연출을 할 수가 없죠. 댁에서 직접 인터뷰를 하고 어떤 냉장고 상태인지 다 보거든요. 제작진이 오기 전에 미리 냉장고를 정리해 버렸다면 어쩔 수 없지만요. 유효기간을 넘긴 식재료가 있다면 그 상황도 그대로 살리려고 하죠.
그러고 나면 녹화 전날, 이삿짐센터와 같이 가서 냉장고 운반을 해요. 요즘엔 빌트인 냉장고가 많아서 냉장고 재료만 가져오기도 하고요. 막상 냉장고를 옮겨가면 진짜 당황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출연자들은 그날은 냉장고가 없으니 아예 못 드시게 되거든요.

Q. 지금껏, ‘냉장고를 부탁해’를 거쳐 간 출연자만 500여 명이 넘는데··· 기억에 남는 출연자가 있다면요?

너무 많죠. 한 분 한 분 다 기억에 남지만, 배우 박철민 씨 편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어머니께서 치매에 걸리시고 이제 그 옛 맛을 못 내시는 거예요. 그런데 셰프님들이 어머니의 옛 맛을 똑같이 살려줬다고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GD와 태양 씨의 회차도 기억에 남아요. GD는 파리에서, 태양은 제주도에서 재료를 공수해 오는 배틀(?)을 방불케 하는 준비 과정이 있었고요. 프로그램 사정 때문에 촬영 일정이 좀 밀렸었는데, 밀린 일정 동안 GD 씨가 파리에서 공수해 온 트러플을 냉장고에서 매일 같이 꺼내서 물을 뿌려주고 정성껏 관리해서 가져왔던 기억이 나네요.
이번 시즌에서는 손석구 씨가 인상 깊었는데요. 요리 대결을 보면서 진심으로 감동하셨고요. 녹화 전후에 쉴 틈이 있거든요. 요리 준비하는 시간이나, 정리하는 시간에도 쉬지 않고 키친에서 본인 냉장고 재료들 보면서 신기해하고 셰프님들 요리를 궁금해하고 했던 모습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런 냉장고 주인분들을 볼 때 가장 뿌듯한 것 같아요.

Q. 강윤정 작가의 예능 경력을 들여다보면 우리 예능의 트렌드가 고스란히 보입니다. <미녀들의 수다>, <위대한 탄생>, <K팝 스타>, <대화의 희열>, <씨름의 희열>, <냉장고를 부탁해>까지··· 예능작가 돼야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우연히 대학교 졸업하기 직전에 인터넷에서 방송아카데미 작가 요강을 우연히 봤어요. 방송작가가 있는지도 모른 상태에서 ‘재밌겠는데?’ 하면서 마감 한 시간 전에 원서를 냈고요, 붙으면 생각해 보자는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막내 작가 일을 시작해 보니 생각할 겨를이 없더라고요(웃음). 첫 프로그램을 엠넷에서 시작했었는데, 일주일에 다섯 개씩 매일 다른 구성의 데일리 프로그램이었어요. 거기에다 오픈스튜디오도 있고 생방송도 있었고요. 작가 2명이서 거의 잠을 못 자며 일하다 보니 생각할 시간이 없었죠.

그때는 충동적으로 시작했지만 일을 하다 보니 막연하게나마 어린 시절에 꿈꿔오던 상상 속의 뭔가가 느껴졌어요. 어렸을 때부터 예능 프로그램을 너무 좋아해서 수, 금요일에 어떤 프로그램을 봐야 한다 하면 수, 금요일엔 학원도 안 가고 과외를 잡을 정도였거든요. 상상 속으로 다음 대사를 떠올리고 할 정도로 좋아했어요.
물론, 실제로 작가 일을 시작해 보니 너무 힘들었죠. 그래서 욕심 안 부리고 10년 동안은, 유학 가거나 대학원을 간다고 생각하고 일했어요. 10년간은 공부한다고 생각하니 페이나 프로그램보다는 작가 선배님만을 보기로 마음먹었죠. 소개 소개로 움직이게 됐고, 좋은 프로그램을 많이 하면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어요.

Q. <냉장고를 부탁해>도 첫 시즌부터 쭉 함께하셨고, <대화의 희열>도 <K팝 스타>도 여러 시즌이 연이어 사랑을 받았어요. 시즌을 이어가는 예능의 가장 큰 특징은 뭘까요?

당연한 말이지만 시즌 1에 비해 시즌 2가 쉬운 것 같아요. 서바이벌 프로그램도 그렇고 <대화의 희열>도 그렇고, 맨바닥부터 시작을 해야 하니까 처음엔 구성도 출연자 섭외도 힘들었어요. 서바이벌 같은 경우는 맨땅에서 출연자 모집을 해도, 방송을 하기 전이니까 섭외가 잘 안 돼요. 대화의 희열 시즌 1도 처음엔 섭외가 힘들었거든요. 시즌 2에 나왔던 대부분의 분들이 시즌 1을 유심히 보고 납득이 된 후에 나온 거였어요.

Q. 리스크가 있더라도 새로운 시도가 우선이었던 건가요?

이미 있는 거나 다른 방송에서 했던 걸 그대로 할 거라면 의미가 없겠죠. <대화의 희열>을 시작할 때도 그랬어요. 그동안 누군가의 성공한 인생에 대해서 훑는 프로그램은 많이 있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좀 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대화를 해보자. 그분의 인생 스토리도 듣지만,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가슴 아팠던 얘기들, 뻔하지 않은 걸 담아내고 싶었어요. 그리고 제작진과 카메라들이 포진해서 스케치북 들고 이 얘기 안 하면 안 넘어가는 형태의 그런 개입은 안 하려고 했어요. 정말 자기들끼리 대화를 할 수 있도록요. 녹화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일단 녹화를 시작하면 제작진은 다 빠지고 카메라만 있도록 했어요. 제작진 입장에서는 프롬프터가 있는 게 편하지만요.

Q. K-예능의 시대에, 예능작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플랫폼이 많이 넓어졌어요. 유튜브도 있고 OTT도 있고요. 저는 어린 작가들도 막내 작가들도 프로그램 제작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20대는 가장 신선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나이거든요. 회의 때 늘 어린 작가들에게 많이 물어봐요.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만 그 한마디가 프로그램 방향을 잡을 수도 있거든요. 성취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직업이 예능작가죠.
물론, 전반적인 제작 환경은 쉽지 않은 건 맞아요. 예전보다 제작을 많이 못 하고 작가들 일자리도 줄었지만, 그래도 어린 작가들은 늘 구하기 힘들어요. 그래서 블루오션일 수 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해요. 저는 회의 시간에 말로 아이디어를 내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아이디어를 페이퍼로 내라고 하면 너무 좋았어요. 며칠을 고민해서 써갔죠. 너무 행복했어요. 나도 한몫한다는 느낌··· 회의할 때 즐거웠어요. 예능은 회의가 재미가 없으면 방송도 재미없거든요. 무조건 재미있는 회의여야 하죠.

Q. 경쟁이지만 깔깔거릴 수 있는, 긴장되지만 뭉클할 수 있는 <냉장고를 부탁해>가 그렇게 탄생했나 봅니다. 마지막으로 10년 뒤, 20년 뒤 강윤정 작가님은 어떤 모습일까요?

곱게 늙고 싶은데(웃음)··· 그냥 열려있고 소통 잘하는, 어렵지 않은 사람이고 싶어요. 한 번씩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내가 혹시 이상한 소리 하면 꼭 알려줘.” 가끔 그럴 때 있잖아요. 꼰대 같거나, ‘내가 맞아’라는 고집을 피운다거나, 자기 생각에 갇혀서 ‘이건 이렇게 해야 해’ 이런 식이 돼서는 안 되는 것 같아요. 세상엔 정답이 없잖아요. 정답을 고집하지 않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요.

 

 

[출처: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VOL.228 2025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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