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화는 정치선전인 경우가 많다. 사진이나 신문, 잡지 같은 미디어가 발달하기 전에는 미술이 그 모든 일을 도맡았다. 그림이나 조각은 예술인 동시에 역사적 기록, 정치선전이기도 했으며 그림책, 장식이기도 했다.
이 그림은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중 일어난 일을 묘사하고 있다. 1798년 나폴레옹은 영국의 교역로를 차단할 목적으로 오토만 제국이 지배하던 이집트에 쳐들어갔다. 이집트를 점령한 나폴레옹 군은 인접한 오토만 제국의 영토를 공격했다. 1799년 3월 3일 나폴레옹 군대는 항구도시 자파를 공격해 점령했다.
폭력적인 점령은 페스트를 확산시켰다. 군대 내에는 1월에 이미 페스트가 돌고 있었는데 병사들이 도시를 헤집고 다니면서 병이 퍼진 것이었다. 나폴레옹 군은 아르메니아인이 세운 성 니콜라스 수도원에 환자들을 수용했다.
3월 11일 나폴레옹은 수도원을 방문했다. 안뜰은 신음하는 병사들로 가득하다. 아케이드 사이로 화염과 연기에 싸인 도시가 보이고, 무너진 성벽 위에 프랑스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왼쪽에는 이슬람 복장을 한 사람이 환자들에게 빵을 나눠주고 있다. 그 뒤에는 들것을 든 인부가 죽은 사람을 실어내고 있다.
빛이 비쳐드는 한 가운데에는 나폴레옹이 있다. 옆에 있는 부관은 손수건으로 코를 막고 있지만, 나폴레옹은 태연하게 환자가 내보이는 겨드랑이의 림프선종을 만져보고 있다. 다른 부관은 그를 만류한다. 앞에는 아랍인 의사가 환자의 종기를 절개하고 있다. 오른쪽 끝에는 천으로 눈을 가린 병사가 나폴레옹에게 다가가려고 애쓰고 있다. 이집트의 먼지바람과 강한 햇빛은 프랑스군에 심각한 눈병을 유발했다. 바닥에는 환자들이 이리저리 쓰러져 있다.
이 그림은 1804년 살롱에 전시되어 나폴레옹 신화를 만드는 데 한몫했다. 이 그림은 나폴레옹이 전술에 능한 장군일 뿐만 아니라 부하를 아끼는 인품을 겸비한 사람이라고 선전한다. 화가는 나폴레옹이 환자를 만지는 장면을 통해 그를 왕의 위치로 슬쩍 끌어올린다. 프랑스인들은 전통적으로 왕의 권력은 신이 내린 것이고, 왕은 예수가 한 것처럼 환자를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고 믿었다. 프랑스 왕들은 가끔 환자의 몸을 만져주는 행사를 열어 백성들 앞에 자신의 능력과 인품을 과시했다. 대혁명이 일어났지만, 근거 없는 신앙이 하루아침에 없어지진 않았다. 이 그림이 살롱에 전시되었을 때 나폴레옹은 자신을 황제로 선언한 상태였다. 이 그림은 거기 맞장구쳐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기에 합당하다고 역설한다. 그해 12월 나폴레옹은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거행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나폴레옹이 페스트에 걸린 병사들을 찾아간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죽어가는 병사들로 인해 진군이 지체될까 봐 책임 군의관에게 아편을 먹여 죽이라고 명령했다. 군의관은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미술에서 오리엔탈리즘은 이집트 원정을 계기로 등장했다. 화가들은 이집트를 무대로 해서 나폴레옹을 위대한 전략가, 관대한 장군으로 묘사했다. 나폴레옹을 추켜올리기 위해 동방은 야만과 질병에 짓눌린 지옥으로 묘사되어야 했다. 하지만 이집트 원정은 실패였다. 프랑스군은 육지에서 승리를 거두었으나 해상에서 영국군에게 패해 이집트에 갇힌 꼴이 되었다. 나폴레옹은 이집트를 왕처럼 지배하면서 서구 문명과 제도를 이식하려고 했다. 그동안 군대를 따라간 학자들은 고대 유물과 유적을 파헤치고 약탈했다.
정치적 야심이 컸던 나폴레옹은 국내 정세가 혼란해지자 혼자 이집트를 빠져나와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는 브뤼메르 쿠데타에 가담해 프랑스 대혁명을 좌절시키고 권력을 잡았다. 이집트는 장 밥티스트 클레베 장군에게 맡겼으나 그는 한 시리아 청년에게 암살되었다. 프랑스는 무수한 유물을 빼돌린 것 외에는 소득없이 1801년 이집트에서 철수했다.
[출처 방위사업청 웹진 청아람102호 바로가기]
'컬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졸혼 이혼 사유가 될까? (0) | 2020.11.06 |
---|---|
세대소통을 막는 당신은 Hoxy…, 꼰.대?! (0) | 2020.10.28 |
제호탕부터 생맥산까지조선 시대 청량음료 무더위를 쫓다 (0) | 2020.09.28 |
화려한 보호색으로 무장한위장술의 달인, 문어! (0) | 2020.09.28 |
민식이법과 업무상 과실어린이보호구역에서 생긴 일 (0) | 2020.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