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식이법과 업무상 과실어린이보호구역에서 생긴 일
- 컬럼
- 2020. 9. 25.
초등학교 앞 교차로에서 우회전을 하던 김 씨, 우회전 직후 횡단보도가 있지만 보행자 신호는 마침 붉은색이었고, 보행신호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안전하게 통과하고자 속도를 줄여 천천히 횡단보도를 지나던 중에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알고 보니 차가 횡단보도에 들어선 이후 보행신호가 들어왔고 초록불만 보고 달려나간 어린이가 그만 차 뒤편에 부딪히고 만 것이다.
글. 제본승 변호사
이 경우 김 씨는 민식이법으로 가중처벌을 받게 될까? 보행자 정지신호를 보고 진입한 운전자에게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차 옆으로 달려드는 보행자까지 대비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법령과 판례에 따르면 김 씨는 무과실을 자신할 수 없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운전자는 신호에 따라 횡단보도를 횡단하는 보행자가 있을 때 횡단보도 진입 선후를 불문하고 보행자를 방해해선 안 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대법원 2016도17442 사건). 실제로 이 사건의 환송 전 2심 법원은 운전자의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을 인정했다. 다만 이 판례에서 법원은 자동차가 횡단보도에 먼저 진입한 경우 차량이 보행자의 횡단을 방해하거나 통행에 아무런 위험을 초래하지 않을 상황이라면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이 아니라는 예외를 두고 있다.
논란 속 민식이법
어린이보호구역 내에서 규정 속도(30km/h)를 초과하거나 ‘어린이의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하여야 할 의무를 위반’한 경우 매우 강화된 처벌을 부과하는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하 ‘특가법’) 제5조의13은 소위 민식이법이라 불리면서 최근 논쟁의 중심에 있다. 제한속도를 지켜야 한다는 규정은 어렵지 않게 지킬 수 있지만, 어린이의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해야 할 의무(소위 ‘안전운전의무’)를 위반할 경우 가중 처벌한다는 규정은 사실상 어린이보호구역 내 모든 인사사고를 가중 처벌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업무상 과실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차량 사고 가해자는 고의로 죄를 범한 자가 아닌 실수로 사고를 일으킨 과실(過失)범이다. 법원은 누구라도 당연히 기울였어야 할 주의를 하지 않아서 사람이나 물건을 해하는 결과가 발생했다면, 과실이 있다고 본다. 다만 업무에 종사하는 자는 일반인에 비해 더 높은 주의의무가 있다는 이유로 더 무겁게 처벌하고, 이를 업무상 과실이라 한다. 법원은 영업용 차량을 운전하는 자가 아니라도, 차량 운전자는 누구나 업무 종사자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운전자는 ‘교통규칙을 준수하면서, 전방 좌우를 주시하며 언제든지 급제동할 준비를 취하고 전방에 사람이 있을 경우 경적을 울리고 서행하거나 정차하는 등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하고(대법원 70도62 사건)’, 이를 위반하면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본다. 운전자의 업무상 주의의무에는 차도 주변 어린이 보행자가 차도로 뛰어드는 경우를 예견해야 한다는 것도 있다(대법원 70도1336).
주의의무 위반과 신뢰의 원칙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과 처벌은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제3조 제2항의 12대 중과실은 물론이고 도로교통법상 여러 규정들(제25조 교차로 통행방법, 제27조 보행자 보호 등)을 위반한 경우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으로 처벌된다.
한편 법원은 교통규칙을 준수한 운전자가 사고를 냈는데 피해자가 규칙을 위반한 것이 사고의 원인이 됐다면, 운전자의 주의의무 위반이 없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이른바 ‘신뢰의 원칙’이라는 법 원리로, 중앙선 오른쪽 방향 차로로 주행하던 차량은 맞은편 차로의 차량이 중앙선을 넘어올 것까지 대비할 의무는 없다거나(대법원 92도1137), 자동차 전용도로에 갑자기 자전거가 난입할 경우를 대비할 의무가 없고(대법원 80도1446), 고속도로에서 보행자가 무단횡단할 것을 예상해 감속할 의무는 없다(대법원 2000도2671)는 판례 등이 있다..
교통사고의 위험성과 보행자 보호를 고려해 각종 입법이 이뤄지고 있는 사정을 감안하면 앞으로 운전자에게 더욱 무거운 주의의무가 부과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위 판례들처럼 누구라도 예견하기 힘든 사고였다거나, 도로법규를 준수하고 전방을 철저히 주시해서 보행자를 발견한 즉시 적절한 제동을 했음에도 사고가 발생한 경우가 아니라면,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으로 평가되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철저한 규칙준수와 안전운전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다.
TIP어린이 충돌사고 시 주의점
어린이를 상대로 한 인사사고가 발생했다면 아무리 외상이 없어 보여도 반드시 사고 신고와 함께 피해자를 의료기관에 호송되도록 하고, 본인의 인적사항을 피해자의 보호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소위 말하는 뺑소니에 해당하는 특가법 제5조의3 위반죄는 교통사고의 경중이나 피해자의 추격 여부와 상관없고(대법원 2017도15651 사건), 목격자에게 조치를 부탁하고 실제 조치를 보기 전 현장을 이탈해도 처벌되며(대법원 2005도5981 사건), 피해자인 어린이가 괜찮다고 한 말만 듣고 구호조치나 인적사항 제공 없이 이탈해도 뺑소니가 된다(대법원 94도1651 사건).
[출처 사학연금 웹진 9월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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