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November

kyung sung NEWS LETTER

다름을 이해하며 다양성을 존중하다

[출처: 서울대 사람들 웹진 vol.75]

우리는 모두 타인이다. 한국인이 단일민족이라는 생각은 과거가 된 지 오래. 다양한 배경과 문화를 지닌 세계인이 더불어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다양한 존재와의 공존은 피부에 와닿는 현실이다. 신혜란 교수는 이런 흐름을 놓치지 않고 지리학자의 눈으로 삶의 장소를 둘러싼 다양성에 대해 고민하고 살펴보고 있다.

신혜란 지리학과 교수

 

지리학자로서 다문화주의와 다문화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해오셨습니다. 다문화주의와 다문화 공간은 무엇인가요.

다문화주의는 1990년대 서구에서 급진적인 사회운동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이주민이 정착하려면 그 나라의 표준과 같아져야 한다, 즉 ‘동화(同化)’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강했습니다. 이주민들이 모여 사는 밀집 지역도 시간이 지나면 해체될 것이라고 했고요. 하지만 점점 많은 이주민이 동화 압력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동화해보려고 해도 예전 정체성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그러자 왜 굳이 동화해야 하나 하는 비판이 시작된 거죠. 그래서 ‘초국적주의(transnationalism)’ , 다문화가 떠올랐어요. 반면, 한국에서는 결혼이주여성을 시작으로 행정적인 편의에 따라 다문화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고 있지요.

 

교수님께서 연구하시는 ‘이동의 정치’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이동의 정치는 이주, 이동의 원인과 결과가 정치적이라는 의미예요. 국가가 노동, 결혼의 수요와 공급을 맞추고자 하거나 국가 간의 관계에서 결정되는 법률적이고 정치적인 면을 간과하기는 어렵죠. 예를 들어 인구 감소가 중요한 이슈로 부상한 한국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문을 열거나 코로나19 팬데믹 때 이동을 제한함으로써 사회구성원을 통제하는 이동통치가 이뤄졌지요. 그런데 이러한 이동의 정치는 수요와 공급 관점에서 규제 중심으로 이루어질 때 사회문제가 야기될 수도 있습니다.

 

이동의 시대이자 다문화 시대인 지금, ‘정체성’의 개념은 더 중요해졌습니다.

정체성이 중요해진 이유는 역설적으로 정체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과거 한국에는 대대로 살아오던 ‘우리 고장’이 있었습니다. 국가주의가 강했을 때는 ‘대한민국 사람’으로서의 충성과 의무를 내재화했고요. 하지만 조상이나 신의 자리를 과학기술 등이 대체하면서 소속감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주의 개념도 과거와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이주’하면 새로운 문화권으로 귀속되는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지구 반대편 국가에 가더라도 온라인을 통해 한국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죠.

 

다양한 정체성과 문화권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당연해진 지금, 벗어나야 할 고정관념은 무엇일까요.

선진국에서는 이주민을 대하는 태도를 교양의 척도로 여깁니다. 한국에서도 인종차별을 문제시하는 인식이 생겼고요. 하지만 이를 교양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부터가 인위적으로 여겨지는 면이 있어요. 일자리가 많은 세계도시는 모두 다문화 도시입니다. 갈등은 있겠지만 그곳에 이주민이 없다면 도시 유지 자체가 어렵습니다.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지면서 혁신도 생겨나고요. 이제는 인종을 넘어 동성애, 채식, 동물과 로봇 등 사회적으로 논의해야 할 다양성의 범위가 계속해서 확장되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도 미국과 영국 등 다른 국가에 머물면서 이주민으로서의 경험을 하셨습니다. 당시의 경험이 교수님의 삶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쳤나요.

미국에서 유학한 뒤 영국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아이를 키우면서 ‘생활인으로서의 이주민’ 경험을 깊이 체감했습니다. 제가 학과에서 첫 아시아인 교수였기 때문에 저의 사소한 행동도 아시아인의 특성으로 해석되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저 따뜻한 물을 마셨을 뿐인데, ‘아시아인은 따뜻한 물을 좋아한다’고 여긴다든지요.

 

‘현대사회에서는 다른 환경과 다른 직장, 다른 집단으로 이동하는 것도 다문화’라고 언급하기도 하셨는데요.서로를 포용하기 위해 개인과 사회는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다문화사회가 본격화되면 새로운 갈등이 시작될 수 있어요. 하지만 융복합 시대에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죠. 단지 인종, 민족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낯선 곳에 가면 이방인이 되는 걸 느낍니다. 사실 누구에게나 이주의 경험이 있어요. 과거에는 여성이 결혼하면 남편이 사는 곳으로 갔죠. 남성은 군대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생활해야 합니다. 개인에게 새로운 환경이 고통거리일 수 있지만 그 덕분에 사회 혁신은 급속도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의견 차이로 충돌이 일어나더라도 개인과 사회가 더 과감하게 다양성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서울대 구성원들은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교내 다양성위원회에서 활동했는데, 이러한 위원회가 논의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위원회의 존재 여부 자체로 정책과 활동에도 많은 영향을 주기도 하고요.

 

타인과의 공존을 위해 우리가 그리고 우리 사회가 기울여야 할 노력과 관심은 무엇일까요.

‘따로 또 같이’의 마음가짐이죠. 다문화에 포용적인 사람도 일상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하물며 MBTI로도 서로 섞이기 어렵다고 여기기도 하잖아요. 타인이 불편하다는 걸 인정하고 들어가야 해요. 그리고 내 정체성도 하나가 아니고요. 불편한 마음이 드는 자신의 불안함을 이해하고, 관대해지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출처: 서울대 사람들 웹진 vol.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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