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영균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KBS-2R <김지선의 행복충전>, <이영자, 심현섭의 싱싱한 12시> 등
국방FM <귀로 읽는 소설>, <병영 문학관> 등
한국교통방송 <곽영일의 팝스 하이웨이> 등
내가 어렸을 때, 아이들 세계에서는 ‘깍두기’라는 배려의 문화가 있었다. 나이가 어린 동생이나 몸이 아픈 친구들을 ‘깍두기’로 정한 후 놀이에 끼워줬는데, 그들이 놀이 방식이나 규칙을 이해하지 못해서 종종 흐름이 깨지곤 했다. 그래도 다들 ‘깍두기’라 그러려니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아이들 세계에서는 나이가 많으면 ‘깍두기’가 아니었는데, 나는 중년에 ‘깍두기’가 됐다. 2년여 전, 라디오 방송작가 생활을 정리한 후 새롭고 다양한 일을 했다. 글을 쓰는 것과 전혀 관계없는 업무라 일이 서툴고 실수를 연발했다. 업무 방식이나 규정을 이해하지 못해서 종종 흐름을 깨기도 했다. ‘놀이’가 아니라 ‘업무’이고, ‘놀이터’가 아니라 ‘근무지’이다 보니 아이들과 달리 그들은 나를 이해해 주지 않고 배려해 주지도 않았다. ‘당연하다’ 생각하면서도 때로는 서운하고, 때로는 서글픈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어느 날,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는데 버스 안 스피커에서 CBS라디오 <배미향의 저녁 스케치>가 흘러나왔다. 그날따라 진행자의 목소리와 올드팝이 유난히 정겹고 아늑하게 들렸다. 또 어느 날은 동네 이불 가게에서 새어 나오는 라디오 방송 소리를 듣고 한참 동안 우두커니 서 있기도 했다. 어떤 프로그램인지도 모르고, 진행자가 누구인지도 몰랐지만, 그 순간 라디오 방송이 너무나 친근하게 들려왔다.
영어 Hear와 Listen은 똑같은 의미인 듯하면서도 다른 차이가 있다. 내가 버스 안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배미향의 저녁 스케치>와 동네 이불 가게에서 새어 나오는 라디오 방송에 귀를 기울였던 건 Hear가 아닌 Listen이었다. 그때마다 내가 라디오 생방송을 하던 날들이 떠올랐다. 그때가 너무 그립고,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그때 일과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날들은 그저 ‘놀이’처럼만 느껴졌다.
삶이 계획한 것처럼 되지 않다 보니 언젠가부터 사람들을 멀리했다. 김성 선배님이 전화해도 이런 핑계, 저런 핑계를 대며 ‘라디오 연구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마지못해 참석해도 라디오 작가 선후배들은 쭈뼛거리는 나를 늘 그렇듯 반갑게 맞이해줬다. 그들과 수다를 떨다 보면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라디오 생방송 스튜디오에 앉아있는 것 같고, 내가 지금도 라디오 방송작가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마음이 편해졌다.
대학생인 딸도 아빠인 내가 라디오 방송작가로 일할 때 행복해 보였는지 얼마 전 “나도 방송작가 될 거야”라고 말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한국무용을 시작했고, 예중과 예고를 졸업한 후 지금도 전공이 그대로인 딸이 한 말이라 의아했다. “방송작가? 어떤? TV? 라디오?” 내가 물으니 라디오 방송작가가 되겠단다. 딸의 말을 듣고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라디오 생방송 스튜디오에서 내가 아닌 딸이 작가로 일하는 모습만 떠올랐다.
지난해 어쩌다 보니 에너지 전문지의 취재기자가 됐다. 이 업계에서도 여전히 나는 ‘깍두기’다. 방송작가는 자신이 맡은 프로그램에만 집중하면 되지만, 이 일은 다른 전문지 기자들과 취재부터 보도까지 경쟁해야 한다. 방송작가 때 출연자를 섭외한 경험이 있어서 신문의 필진 등을 섭외하는 업무는 어렵지 않지만, 광고 영업은 쉽지 않다. 게다가 신문 발행은 공동 작업인데 내가 편집에 서툴다 보니 다른 기자들에게 피해를 줄 때도 많다.
그나마 다행이고 감사한 건 기자와 방송작가는 서로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서인지 국장을 비롯해 다른 기자들이 나를 이해해 주고, 배려해 준다. 나 역시 글을 쓰는 일과 전혀 상관없는 업무를 할 때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내가 주문하지 않은 불안을 정기 구독하며 희망 장애를 겪을 때 나에게 가장 위로가 되고, 활력을 불어넣어 준 것은 라디오 방송이었다. MZ 세대와 청소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중년과 노년 세대에게 라디오 방송은 ‘감성 영양제’다. 라디오 방송을 청취하는 건 ‘감성 투자’다. 그렇듯 라디오 방송은 묘한 끌림이 있고, 공감되는 부분이 있다. 내가 힘들고, 우울할 때 웬만한 친구보다 더 큰 위로와 더 깊은 울림을 준다.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행복하기를 바랐던 그 시절이 실은 행복한 순간이었다. 오늘도 버스 안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라디오 방송에 귀를 기울인다. 뿌옇게 김이 서린 버스 창문에 나의 행복했던 시절이 무성영화처럼 영상화된다.
'컬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한민국을 지키는, 보이지 않는 힘 F-35A 추가 도입 (0) | 2024.04.22 |
---|---|
2024 이렇게 달라집니다 방위사업 달라지는 주요 제도 (0) | 2024.04.18 |
지금은 안무 저작권을 논의할 때 (0) | 2024.04.11 |
튼튼한 안보를 뒷받침 하는 2024년도 국방예산 편성 (0) | 2024.03.29 |
상상력과 열린 마음 (0) | 2024.03.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