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라이터에서 스토리텔러로 파리 여행 가이드 김지혜
- 사람
- 2024. 5. 22.
[출처 :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웹진 2024년 4월호]
계획적으로 살았던 사람이라도 뜻하지 않게 지구의 모퉁이에서 인생의 각도가 바뀌는 수가 있다. 180도가 상상도 못 할 반전이라면, 110도나 135도는 상상 가능한 범주에서의 변신 정도겠다. 스토리라이터에서 스토리텔러가 된 김지혜 가이드의 인생은 언제부터 몇 도쯤 기울어진 걸까?
10년 차 방송작가에서 파리의 골목을 누비는 여행 가이드가 된 그녀의 인생 2막 이야기! 파리 시내 골목을 사부작사부작 따라 걷는 느낌으로 사연에 귀 기울여 본다.
글. 신미경 편집위원 사진. 인터뷰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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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프랑스 파리에서 지낸 지는 얼마나 되었나요? 하고 있는 일을 소개해주세요.
2019년부터 파리에서 쭉 살고 있습니다. 처음 파리를 여행했던 게 2011년이었고, 그 이후 매년 파리에서 한두 달씩 지내고는 했었으니 파리여행과 파리 생활까지 합해 총 14년 정도 되었네요. 2021년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살면서 프리랜서 가이드로 활동을 하고 있어요. 원래는 취미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어쩌다 보니 1인 사업이 되었습니다.
Q 방송작가에서 여행 가이드로의 변신이 다소 의외이긴 합니다. 가이드를 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파리는 제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도시에요. 지독히도 사랑스럽고 뜨겁게 애틋한 곳이죠. 파리에서 살다 보니 파리의 낭만은 에펠탑, 노트르담 대성당, 루브르 박물관 같은 랜드마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이전엔 대부분의 파리 시내 투어가 파리의 여유보다는 큰 관광지를 찍고 돌아보는 것에 포커스가 맞춰진 느낌이 들어서 아쉬웠어요. 그래서 파리의 진짜 매력은 관광지가 아닌 그 옆의 골목들, 이름 모를 작은 공원들, 무심하게 늘어선 파리의 작은 카페들에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가이드 투어를 시작했죠. 제가 사랑하는 파리를 다른 사람들도 사랑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파리의 낭만과 사랑스러움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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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수많은 도시 중에 선택한 곳이 왜 프랑스 파리였는지가 궁금한데요.
제가 왜 파리로 처음 여행을 오게 됐는지부터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요. 조금 무거운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요, 첫 번째 파리로 여행을 오기 전에 굉장히 큰 번아웃을 겪으면서 우울증 진단을 받았어요. 우울증약도 먹게 되고, 딱히 죽고 싶지는 않았는데 딱히 살고 싶지도 않아서, 한국에서 최대한 멀고, 최대한 빨리 떠날 수 있는 곳으로 무작정 온 곳이 파리였어요. 사실 예전부터 미드 <섹스 앤 더 시티>를 보면서 뉴욕에 대한 로망이 있었는데, 저도 왜 뉴욕이 아닌 파리였는지 그 부분은 의문입니다. 그냥 에펠탑 사진을 보고 ‘저걸 보러 가야겠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때 한 달 정도 파리를 여행하면서 굉장히 큰 위로를 받게 됐고, 이후로는 일상에 지쳐 위로가 필요할 때마다 파리를 찾아 한두 달씩 지내고는 했죠.
그러다가 2019년 여름에 ‘그냥 한번 물어나 볼까’ 해서 유학원에 전화를 했는데 정신 차려보니 제가 유학비자 서류작업을 하고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8개월만 있으려고 했는데 비자 유효기간이 끝나가던 시점이 왔어요. 한국으로 갈지, 파리 체류증 신청을 할지 고민하던 때 코로나19가 터지고 도시가 봉쇄됐죠. 이대로 한국에 가면 다시 못 돌아올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고민 끝에 장기 거주 체류증 신청을 했고, 지금껏 파리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Q 여행을 좋아하는 방송작가들이 많지요. 김지혜 가이드의 일상을 엿본다면 사촌이 땅을 산 듯 배가 아플 것 같기는 한데요. 파리에서의 일과를 소개해 주세요.
배 아프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파리는 낭만적인 도시이지만 저는 여기에서 일상을 살고 있으니까요. 가이드로 오전 투어를 할 때는 아침 6시 30분에 일어나서 준비합니다. 가이드가 되니 자연스럽게 아침형 인간이 되더라고요. 투어가 없는 시간에는 코스 내에 있는 장소에 대해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없을까 공부도 하고, 새로운 여행 정보가 있나 찾아보기도 합니다. 요즘은 야경 투어를 추가하려고 상품 개발을 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좀 더 색다르고, 좀 더 나답게 파리의 밤을 소개할 수 있을까 고민의 시간을 보내고 있죠. 일을 하지 않을 땐 마트에서 장도 보고, 쌓여있는 집안일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합니다.
참고로, 해가 나온 날엔 무조건 밖으로 나간다는 게 한국에서와는 달라진 일상이죠. 파리는 맑은 날이 귀하다 보니 해가 뜨는 날이면 일단 나가요. 그냥 걷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센 강을 달리기도 하고, 에펠탑을 바라보며 피크닉을 하기도 하고요. 예전엔 유럽 사람들은 왜 해만 나면 밖으로 뛰쳐나가나 했는데, 살다 보니 저도 그러고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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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방송작가만큼이나 여행 가이드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인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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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라는 직업의 특성상 매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건 설렘도 있지만, 긴장이 되기도 해요. 말 그대로 ‘불특정 다수’의 사람을 만나는 거니까요. 제 투어는 소수 정예로 운영되기 때문에 여행자들과의 유대감이 중요하거든요. 투어 상품페이지에 제 감성이 담겨 있어서인지 보통은 저랑 비슷한 감성을 가지신 분들이 많았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자는 첫 번째로 제 투어를 신청하셨던 분입니다. 이미 파리를 서너 번 여행한 분이셨는데, 그동안은 ‘에펠탑 보면 파리는 다 보는 거지!’라는 마음이셨대요. 그러다가 제 투어를 신청하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가이드를 마무리할 때, 가이드님 아니었으면 또 에펠탑만 보고 갔을 거라며 좋아해 주셔서 감사했죠.
그리고, 최근에 투어를 함께 한 모녀도 기억에 남아요. 특히 어머니께서 투어 내내 소녀처럼 좋아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투어 마지막 장소인 에펠탑 앞에서 저에게 이 에펠탑이 왜 특별한가에 대한 멘트를 들으시곤 눈물을 흘리시더라고요. 저도 그만 울컥해서 울면서 마지막 멘트를 했어요. 그때 어머님이 저를 꼬옥 안아주셨는데 너무 따뜻했고 감사했어요. 헤어질 때 “덕분에 오늘 하루가 행복했어요”라는 말을 해주셨는데, 집에 와서도 여운이 남아 한동안 울었네요. 앞으로 어떤 가이드가 되어야 할지 해답을 얻은 기분도 들었고요.
제가 처음 파리를 여행할 때 느꼈던 그 감정 그대로, 내가 사랑하는 파리를 다른 사람들도 사랑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투어인데 그 의도를 알아주는 여행자를 만나면 이런 생각을 해요. “나, 가이드 하길 잘했네!”
Q 방송작가로 일했던 시간이 가이드를 하는 데 있어서도 도움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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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방송작가 경력이 가장 도움이 되는 부분은 전체 투어 구성이죠. 또, 상품의 구체적인 소개 페이지를 작성할 때도 그렇고요. 아무래도 여행자들은 투어의 상품페이지를 보고 가이드를 선택하게 되는데요. 투어의 제목이나 상품페이지를 작성할 때, 자랑 같지만 ‘아, 나 괜히 작가가 아니었구나’ 싶은 순간들이 있거든요. 그리고 현장에서 할 이야기나 장소 설명을 위한 대본도 필요한데, 그 부분에서도 절대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어떤 여행자들은 제 설명을 듣고 ‘소설 한 편 읽은 느낌이다’, ‘시 한 편 읽은 것 같다’고 하시거든요.
여행자를 대할 때도 도움이 많이 돼요. 저는 원래 누구한테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방송 일을 하면서 일반인 출연자, 연예인, 각계 전문가까지 다양한 출연자를 만나다 보니 아이스 브레이킹을 위한 스몰토크를 건네야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방송을 하면서 그런 부분을 많이 배웠고, 덕분에 여행자들과 친해지기까지 어려움이 없지요.
Q 가끔 방송국 스튜디오가 그리운 순간도 있나요? 어떤 프로그램들을 하셨는지도 궁금한데요.
여기서도 한국 프로그램을 즐겨 보는데, ‘아, 프로그램 세팅하기까지 힘들었겠다’라든가 ‘작가님들 엄청 고생했겠다’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또 ‘편집할 때 엄청 고생했겠네’라는 생각도 하고요. 한동안은 방송 스튜디오가 사무치게 그리웠던 때도 있었죠. 또, 더는 저를 ‘작가’라고 소개할 수 없다는 게 슬펐던 때도 있었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꿈꿨던 작가라는 직업을 무척 좋아했거든요. 최근에 <텐트 밖은 유럽 남프랑스 편>을 재미있게 봤어요. 파리를 담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현지 코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려면 제 프랑스어가 지금보다 더 유창해져야 가능하겠지만요(웃음).
Q 기사를 보는 분들 중 프랑스 파리를 여행할 분들에게 영업할 기회를 드립니다. 어떻게 하면 프랑스 파리에서 낭만을 느껴볼 수 있습니까?
현재 [파리 시내 로컬 트립] / [몽마르트+에펠탑 산책] 투어를 운영하고 있어요. 오전 투어는 파리 시내를 산책하듯 걸어보는 시간이고 오후 투어는 ’라 벨 에포크 : 아름다운 시절‘을 살았던 몽마르트와 에펠탑 속 예술가들의 삶과 사랑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투어입니다. 투어는 여러 플랫폼을 통해 운영되고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투어 플랫폼을 소개합니다. 이 글을 통해 이어지게 될 멋진 인연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인생 2막의 주인공으로 만났지만 김지혜 가이드는 여전히 작가다. 방송국 대신에 프랑스 파리로 무대를 옮겨 야무지게 혼자만의 생방송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방송 스튜디오가 그리웠단 이야기며 해외 로케이션 프로그램의 코디네이터가 되고 싶다는 말에서 확신이 생겼다. 지금은 파리 가이드를 하고 있는 방송작가 김지혜! 언젠가 방송에서 그녀의 이름을 다시 마주했을 때 ‘왜?’가 아니라 ‘잘하고 왔지!’라는 말로 환영해 줄 준비를 하고 기다려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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