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2025

kyung sung NEWS LETTER

최선을 다하니 기회는 찾아왔다

[출처: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VOL.228 2025년 3월호]

조희정 청강문화산업대학교
만화콘텐츠스쿨 웹소설창작전공 교수

글. 김지완 편집위원  사진. 김선미  장소. 일직동 미오커피앤베이커리

 

방송작가 출신들은 어느 분야를 가더라도 성공할 거라는 말에 딱 맞는 사람이었다. 아나운서, 작가, 웹소설 PD, 콘텐츠 기획자를 거쳐 지금은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그의 이력은 과연 한 사람의 서사인가 싶을 정도로 다양하고 스펙터클했다. 굵직한 다큐 프로그램을 하면서도,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때때로 실패인 듯해도 결국 다시 일어서 성공을 이뤄낸 조희정 교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방송작가들이 확장해 나갈 수 있는 문화 영역에 대한 가능성을 보았다.

Q. 교수님의 이력을 보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대체 얼마나 열심히 사신 건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방송작가 시절부터 강단에 선 지금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국문학을 전공했는데 졸업할 무렵 IMF가 터졌어요. 글을 쓰고 싶었지만,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 싶었죠. 근데, 지방 방송사에서 공채 공고가 뜬 거예요. 사실 가장 근사치는 방송작가였지만, 저는 방송 문법을 몰랐거든요. 진행자 모집이 보여서 거기에 지원했는데 합격했어요. 다른 동료들은 아카데미에서 훈련을 받고 입사했지만, 저는 바로 입사해서 1년 반 정도 고난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래도 지방 방송사라 뉴스 진행도 하고, 기사도 쓰고 라디오 원고도 쓰며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는 많아서 나름대로 해소는 했지만, 늘 글에 대한 갈망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정리하고 서울로 와서 신문사 쪽 닷컴 기업에 들어갔어요. 2000년대 초반에 닷컴 붐이 불어서 채용을 굉장히 많이 했거든요. 하지만 기존 레거시 미디어와 닷컴사라는 뉴미디어 사이에서 제 일에 대한 정체성이 모호하더라고요. 직종이 뚜렷하지 않고 오만가지 일을 했는데 전략기획실에 들어가 있는 거죠. 그 시절 했던 일 중 기억 나는 건 네이버에서 옛날 뉴스를 디지털화하는 프로젝트의 막내로 그 시대의 변화를 지켜본 거예요. 그렇게 밋밋한 20대를 보냈어요.
그러다 결혼으로 경력 단절이 됐죠. 경력 단절이 되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은 했어요. 육아를 병행하며 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보니 논술 글쓰기 과외도 했고요. 개인적 침체기가 왔을 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 끝에 봉사활동을 시작했는데, 거기서 제 멘토이신 이정호 신부님을 만났고 방송작가가 되어야겠다는 계기를 찾았죠. 지역에서 초등학교 2, 3학년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글쓰기 반이 있었는데, 그중 한 아이가 눈을 반짝반짝하면서 “선생님 다음 주에도 오세요.” 이러는 거예요. 이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정말 오랜만에 느꼈던 것 같아요. 사회적 필요성이라 해야 할까요? 거기서 만난 아이들, 뭐랄까 기득권층이 아닌 주목받지 못한 애들인 거죠. 그때 결심했던 게, 이 아이들한테 소위 ‘빽’이 되고 싶었어요. ‘내가 조희정이라는 사람을 알아.’ 했을 때 ‘와, 너 그런 사람도 알아?’ 이렇게요. 그런데 그 당시 저는 너무 보잘것없어서 그렇게 되려면 어느 길이 가장 빠를까 생각했어요. 마침, 그때 <울지마 톤즈>가 나왔는데, 묻힐 뻔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발굴해서 조명한 그 힘, 사회로 퍼져가는 선한 기운의 파급력이 커서 ‘저거다!’라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인간극장> 작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역아동센터 봉사활동 당시 직접 만든 글쓰기 교재
서브작가 시절 EBS <교육 대기획 - 학교의 고백 태봉고 편>에서 인터뷰 하는 모습 (2012)

 

그때 제 나이가 34살이었는데, 일단 MBC 아카데미에 등록해서 띠동갑 이상 차이 나는 어린 친구들에게 그냥 이름 부르고 반말하면서 친구처럼 대하라고 했죠. 제가 그 친구들한테 이모처럼 느껴지는 순간 방송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선생님이 그러셨거든요. (웃음) 그렇게 재밌게 보냈는데, 어느 선생님도 ‘너는 취업할 수 있을 거야’란 말씀은 안 하셨어요. 그래도 계속 이력서를 냈죠. 물론 연락은 안 왔고요. 그러다 딱 한 군데, 나이를 빼고 이력서를 보낸 <KBS 스페셜 글로벌 대기획> 팀에서 연락이 왔어요. 면접은 봤지만, 제 나이를 알고 메인 작가님부터 난색을 표하셨어요. 같이 일하기 부담스럽다고요. PD님도 뭐 하는 곳인지 알고는 왔냐고 계속 물으시고요. 우여곡절 끝에 그 팀에 들어가서 1년간 막내 작가 생활을 했어요.

직업방송에 출연해 방송작가 직무 소개하는 모습(2016)

 

그다음에 EBS 서브 작가로 들어갔는데, 물론 거기서도 나이 때문에 반대가 좀 있었어요. 다행히 PD님이 편견 없고 합리적인 분이셔서 들어갈 수 있었기에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PD님이 저를 데리고 다니면서 훈련시켜 주셔서 진짜 많이 배우기도 했고요. 그땐 EBS가 원래 그런 분위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저한테 되게 많은 권한을 주셨던 거였더라고요. 저는 원래 그런 시스템인 줄 알고, 주도적으로 일을 많이 저질렀거든요. 이럴까 저럴까, 고민하는 대신 미션이 있으면 그냥 해버렸어요. 아마 저의 그런 면이 EBS에서는 신선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EBS 뉴스팀에서 일하면서 다큐 입봉도 하고, 꿈꾸던 <EBS 다큐프라임>의 메인 작가로도 일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KBS <동행>에서 공고가 났길래 지원했는데 거기가 <인간극장> 제작사더라고요. <인간극장> 작가를 하고 싶어, 방송작가가 됐는데, 그 옆 팀에 가서 일을 하게 된 거죠. <동행>을 하면서 제일 행복했던 것 같아요. 인문학 다큐도 너무 좋았지만, 휴먼 다큐 쪽을 하면서 많은 분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행복했어요. 작가 일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기회들이 많이 생기잖아요. 책을 써 보라든지, 어떤 프로젝트도 해보라든지. 하다 보니 캠프에 들어가기도 하고 라디오도 하면서 매체들을 조금씩 확장해 나갔던 것 같아요.

 

Q. 작가에서 확장된 영역으로의 진출은 그러한 제안에서 시작된 건가요?

저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아요. 마음먹으면 그냥 했어요. 열심히 최선을 다하니 기회는 자연스럽게 찾아온 것 같아요. ‘팩트스토리’ 고나무 대표님과의 만남도 그랬어요. 이분은 한겨레 탐사보도팀장 출신이세요. 전두환 책을 쓰거나, 지존파의 마지막 생존자 인터뷰를 하시고 펀딩해서 성공하셨죠. 그때 실화인데 이야기가 될 수 있구나, 그래서 팔 수 있구나를 깨달으셨대요. 내부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하면서 자회사를 만들겠다 하니 회사에서 밀어준 거예요. 그래서 팩트스토리 창립 멤버로 같이 일하겠냐고 제안을 해 주셨는데, 저는 뭐든 다 하는 사람이니까, 바로 합류하게 된 거죠. 일반적인 출판사면 논픽션 내고 끝냈을 텐데, 그때 마침 카카오, 네이버에 웹소설 플랫폼이 붐을 탄 거예요. 거기서 그쪽 관계자들을 많이 알게 됐어요. 웹툰도요. 웹소설과 웹툰은 플랫폼을 같이 쓰는 거지 사실 속성은 이질적입니다. 한쪽은 텍스트고, 다른 쪽은 이미지 기반이니까요. 하지만 작가 중심의 서사가 강한 콘텐츠라는 동질성이 있죠. 메이저 플랫폼에서 이 두 개의 콘텐츠를 묶어 서비스하면서 서사를 즐기는 독자들을 끌어모으는 시너지 효과가 일어났고 저희 대학은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선제적으로 국내 최초의 웹소설창작전공을 만들면서 새로운 시장의 작가군 양성에 눈을 뜬 것이죠.

 

Q. 대학에서 웹소설을 가르치고 있으신데, 그 인연으로 시작하신 건가요? 웹소설 쪽 진출 과정이 궁금한데요. 현재 시장 상황과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견해도 듣고 싶습니다.

일단, 웹소설은 가성비가 있어요. 예를 들어 선인세를 적게는 50만 원에서, 많게는 200~500만 원 정도 주면 몇백 편은 만들어 낼 수 있어요. 근데 웹툰은 억대가 들거든요. 제대로 하려면 가성비 있게 한번 돌려보고 이게 조금 입질이 온다 싶으면 웹툰화를 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트랜스미디어 같은 형태로 해서 이 작품이 잘되면 그 팬덤을 이용해서 계속 확장해 나가는 거예요. 근래에는 <나 혼자만 레벨업>을 웹툰화하고 굉장히 많은 수익을 벌어들였어요. 넷플릭스에서 방영됐고, 넷마블에서 게임도 만들면서 계속 확장해 나가는 거죠. 원천 스토리 하나로 엄청난 부가가치를 벌어들이는 이런 모델들이 나오면서 웹소설과 웹툰이 굉장히 조명받게 됐어요.
하지만 논픽션이 웹소설 시장에서는 통할 수가 없기 때문에 저희는 전략을 전문직물 그중에서도 현대 판타지를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재벌집 막내 아들> 같은 류, 즉 현대사와 적당한 판타지 요소를 버무려 놓은 작품들이 있죠. 최근에 나온 작품 중에서는 <중증외상센터>를 들 수 있는데, 원작은 웹소설이에요. 원작자인 한산이가 작가님은 본업이 의사이시거든요. 의사에서 작가로 전향하셨는데 이분은 본인이 가지고 있는 전문성을 활용해서 자기 이야기를 웹소설의 문법으로 풀어내셨고, 그게 다시 웹툰화가 된 겁니다. 의학물이나 법정물은 드라마 소재로도 많이 쓰이잖아요. 그래서 이런 것들을 타깃팅하는 거죠. 팩트스토리에서 제일 성공적이었던 작품은 <악의 마음을 읽는 자들>이에요. 권일용 프로파일러의 이야기들을 논픽션으로 냈는데, 그 판권이 팔려서 드라마 시리즈가 된 거죠.

 

Q. 교직을 염두에 두고 학위 준비를 하셨던 건가요? 일과 육아의 병행으로도 힘들었을 텐데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공부는 제가 아는 게 너무 없어서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거였어요. 막내 때 ‘공부를 해보려고 하니 일주일에 이틀은 수업을 보장해 달라’고 했죠. (웃음) 제가 방송 일을 늦게 시작해서 분위기를 전혀 몰랐으니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대학원(석사)은 학부보다 더 오래 다녔어요. 일과 병행하느라요. 그러다 어느 날 청강대에서 웹소설 전공을 전국 최초로 개설하면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산업이 확장했다 보니 웹소설을 IP로 해서 웹툰화는 기본이고 다양한 트랜스 미디어가 일어나고 있는데, 그 안에서 교육을 맡다 보니 학생들의 진로가 문제더라고요. 웹소설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가 하는 기대도 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물론 산업은 1조 규모로 커졌지만 실제로 이 안을 들여다보면 저희 학생들이 신진 작가로 들어가기에 좋은 시장은 아니게 돼버렸어요. 이미 소위 고인물들이 있고 그 안에서의 문법들이 정착화된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죠. 지금은 로맨스 판타지, BL류는 사실 계약이 되게 어려워요. 남성향 판타지, 무협 쪽은 상대적으로는 조금 괜찮은데 시장이 이렇게 양분화되면서 되게 어려운 상황이거든요. 신진 작가가 무조건 쓰는 대로 계약을 했던 시절은 플랫폼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카카오랑 네이버가 서로 경쟁했던 그 시절이었어요. 그때는 서로 많은 작품들을 확보해야 하니까 유리했는데, 지금은 포화 상태가 됐거든요.

Q. 그럼 포화 상태의 시장에서 어떤 비전을 찾고 있으신가요?

현재는 이 문제를 타개할 중요한 기회를 글로벌 시장으로 보고 있어요. 솔직히 글로벌 시장에서는 웹소설보다는 웹툰이 유리해요. 웹툰은 이미지 콘텐츠잖아요. 드라마 시리즈든 애니메이션으로 만들든 웹툰 쪽이 더 친밀하기 때문에 웹소설이 바로 나가기에는 장벽이 많아요. 웹소설은 정형화된 장르적 문법이 강해 스토리를 만들 때 그 경계를 넘어서야 하는 것 같아요. IP라는 게 결국에는 콘셉트인데 이걸 어떤 플랫폼에서 푸느냐, 원래 독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언어를 얼마나 친숙한 언어로 풀어내고 그들이 좋아하는 재미의 요소들을 잘 짚어내서 버무려 내느냐가 관건이에요. 그런데, 사실 어렵습니다.

 

Q. 글을 쓰는 직업으로 인생 2막을 준비하는 후배 작가들은 어떤 준비를 하면 될까요? 실질적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작가님들은 다 자기만이 가지고 있는 어떤 이야기가 있잖아요. 가장 중요한 건 자기만의 이야기를 텍스트 IP로 만들어 내시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그 IP를 거래하는 유일한 마켓인 <부산 스토리마켓>의 포맷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부산 국제영화제 열리는 시즌에 같이 부대 행사처럼 들어가 있는 행사인데 원천 IP들을 거래해요. 거래되는 작품은 대부분 소설(웹소설 포함)이지만, 웹툰도 있고 아직 출판이 안 된 원천 스토리도 있어요. 그건 이야기의 원석 같은 거잖아요. 어떤 플랫폼의 포맷에 맞춰진 게 아니라 그것을 어떤 식으로 어떤 플랫폼에 넣어도 활용 가능한 거죠. 하지만 이야기의 코어를 어떻게 잡느냐 하는 부분에 대한 어떤 고민들은 필요해요. 시사 교양 작가님들 경우 자료 조사나 취재를 끝내주게 잘하시잖아요. 저는 대중한테 파고드는 현실적인 부분이 핵심적 요소라고 생각해요. 문제의식을 찾아내거나 디테일을 살리는 부분은 방송작가에게 특화된 능력일 겁니다. '어떻게 자기 경험을 스토리로 만들 것인가?'라는 부분에서 작가님들이 발견한 이야기들을 자기 IP로 가지고, 기회가 있으실 때 적극적으로 노력해 보면 좋겠어요. 서브 컬처들이 어떤 문법으로 이루어져 있나 연구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우리가 잘하는 스타일로 한번 만들어서 올려본다든지 하는 이런 적극성이요. 지금은 너무 많은 플랫폼이 있기 때문에 그게 어디에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시대잖아요. 오히려 누구도 선점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자기 스타일을 먼저 찾는 사람이 위너가 될 것 같아요. 결국에는 나다운 것을 찾아서 자기만의 스타일을 먼저 만들어 내는 사람이요.

 

[출처: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VOL.228 2025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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