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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드라마는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가?

K-드라마는 어떻게 진화하고 있는가?

한국 드라마는 그야말로 진화 중이다. 진화의 속도도 빠르고 그 양태도 전방위적이어서 특히 기획자들의 입장에서는 어떤 드라마를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는지 가늠하기조차 힘든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원인이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고 모든 일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최근 성공한 K-드라마들을 분석해 보면 일련의 성공원칙을 발견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가장 그 원칙에 충실한 주요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김성수 시사문화평론가

현 경기문화재단 이사


K-드라마의 핵심 DNA는 무엇인가

넷플릭스라는 유통 혁명을 만나면서 K-드라마는 고유의 경쟁력을 다시금 확인했다. 한류라는 달콤한 꿈에 취해있던 1990년대부터 콘텐츠 산업계가 꾸준히 품었던 고민은, 한국 콘텐츠들의 DNA는 무엇이며, 그것을 통해 어떤 경쟁력을 구축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막연하기만 한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레토릭은 수많은 시행착오의 근본 원인으로 작동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 시장에서 성공한 사례들이 많이 쏟아졌고 이들을 연구하면서 비로소 K-드라마의 DNA와 경쟁력이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나아갈 방향과 전략을 본능이 아니라 과학으로 획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K-드라마의 핵심 DNA는 ‘경계성의 미학’이다.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지만, 어디에든 다 속할 수 있는 경계에 K-콘텐츠가 있다. BTS는 이미 ‘Butter’라는 콘텐츠에서 동명의 상징을 통해 이를 완벽히 설명해 낸 바 있다. (하얀 빵 위에 노란 버터라는 이 놀라운 상징을 보라!) 서구적 스타일과 표현방법을 가지고 있지만, 정서와 메시지는 서구적이지 않아서 어떤 문화공동체에서도 새롭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K-드라마는, 경계에 서 있다는 확고한 정체성의 인식과 그를 확장함으로 이뤄지는 통섭을 일관되게 적용하고 있다. 구체적인 캐릭터 구축과 스토리 전개는 물론 그야말로 변화무쌍한 방식으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는 이런 방향과 전략에 든든히 뿌리를 두고 있는 영리하고도 원칙적인 기획의 승리다. <우영우>는 그야말로 전방위적으로 경계성을 활용해 이미 식상하다고 할 수 있는 기획 아이디어를 훌륭히 차별화해 냈다. 경계성을 잘 확보하면서 구축한 세계관과 캐릭터, 구체적인 에피소드, 문제 해결의 방식과 심지어 연출적 기법까지! <우영우>에 녹아든 경계성이라는 K-드라마 DNA가 강력한 힘으로 다양한 문화 공동체의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곳곳에서 드러나는 경계성의 미학

<우영우>는 우선 캐릭터의 구축에서부터 경계성의 미학을 가장 확실히 적용했다. 주인공인 우영우(박은빈 분)는 자폐 스팩트럼 장애를 가진 인턴 변호사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들 입장에서는 장애 정도가 약하고 전문직업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비장애인의 입장에서는 자폐 스펙트럼의 전형적 특성을 고스란히 갖고 있으면서도 천재적 능력까지 가졌다는 점에서 경계인이다. 여기에 변호사라는 직업적 설정도 마찬가지다. 의뢰인이 아니면서도 재판 과정 중에 의뢰인을 변호해야 한다는 경계성을 획득하고 있으며, 인턴이라는 특수한 상황 역시 정규직이 아니면서 정규직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에서 경계성을 획득하고 있다.

우영우는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이 경계성을 지나치게 극대화해서 ‘비현실적’인 캐릭터란 비판까지 받았다. 하지만, 연출은 오히려 박은빈 배우의 정형화되지 않은 장애인 연기력까지를 얹으면서 더욱 경계성을 강화했는데, 이 정반대의 접근이 오히려 더 많은 시청자들로부터 공감을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은 ‘같은’ 것이 더 많다는 사실을 수시로 발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영우의 강력한 소수자성이 처음에는 ‘다르다’는 것에만 관심을 갖게 했지만, 극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는 재미를 만드는 근거가 되었던 것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copy;에이스토리

 

<우영우>는 빌런이 없는 드라마라는 수식어도 갖게 되었는데, 이 역시 인문학적 토대 위에서 경계성의 미학을 잘 활용한 성과라 볼 수 있다. 갈등은 동일한 목적을 가진 서로 다른 인간을 통해 만들어지며, 이는 강력한 명분을 갖고 있을 경우 더욱 격렬해진다. 또 주인공이 가지는 명분이 다수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라면 이 격렬한 갈등 속에서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은 주인공의 편에 서길 원한다. 빌런은 이렇게 탄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영우>는 정명석과 같은 이상적 시니어를 내세워 우영우의 강력한 우군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후반으로 갈수록 밉상인 권민우조차 시청자들에게 평범한 비장애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납득시켰다. 이런 선택이 일부 평론가들로부터 ‘핍진성’이란 이름으로 비난받기도 했는데, 그것은 사실 표피적인 판단에 불과하다. 리얼리즘의 반대말이 ‘핍진성’인가? 아니다. 비현실성이다. <우영우>는 탄탄한 고증을 통해 현실에 존재하기 어려운 인물과 상황을 현실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것이 허구의 힘이다.

 

현실적이면서도 인문학적인 접근의 연출

여기에는 연출의 치밀한 계산도 한몫한다. 가령 아침에 아버지의 김밥집에서 김밥을 먹으며 하루를 시작하는 인턴 변호사가 몇 명이나 될까?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영우에서 빈번하게 나오는 이 장면이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은 없다. 자폐 스팩트럼 장애인이 모든 재료가 눈에 들어오는 익숙한 음식을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고, 서민이라서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아버지가 혼자서 딸을 성인으로 키웠다면 아침부터 밤까지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 일의 공간에서 딸이 아침을 시작하는 것이 ‘현실적’인 표현이지 않은가? 이 장면은 그 어느 문화권에서도 친숙함과 신선함을 함께 선물하는 <우영우>의 정체성이 깃든 장면인데, 그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은 철저한 현실의 고증이다.

또 <우영우>의 상징과도 같은 고래가 등장하는 갈등의 해소 장면은 흔히 판타지적 연출이라 언급되는데, 바다에 사는 포유류라는 고래가 가진 경계성을 극대화한 이 장면은 단지 만화적 기법이나 판타지에 그치지 않는다. 경계성의 시각이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 내는 각성의 장면이면서 경계에서 사고하는 자의 힘을 보여주는 멋진 인문학적 상징이기도 하다. 이미 고래는 세월호 참사를 통해서 희망의 상징이 되었는데, 그것은 특정한 정치인 때문이 아니다. 침몰한 배에 갇혀있는 아이들을 구할 수 있는 존재가 고래처럼 거대한 힘을 가진 인간과 소통하는 존재여야 했기 때문이다. 정치인과 우영우를 연결시켜 코인팔이에 나선 우익 사이버렉카의 몰상식은 사실 한국 공교육의 인문학적 실패를 입증하는 것이다.

 

우연이 아닌 원칙의 일관성으로 이끌어낸 성과

<우영우>는 서로 ‘다른’ 존재인 자폐 스팩트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일상 속에서 서로 ‘같은’ 인간이라는 깨달음을 쌓아 가는 과정을 16화 내내 그리고 있다. 이들이 비로소 화해에 이르는 내적 동기는 바로 ‘측은지심’이며 이를 통해서 관계가 회복되고 공동체가 회복된다는 사실은 인문학이 발견한 ‘인간다움’의 본질이다. 이로써 <우영우>는 시대정신까지 획득한 것이다.

우연처럼 보이는 초짜 드라마 작가의 성공과 신생 채널에서의 기적은 사실 이런 원칙을 일관되게 관철시키려는 노력에서부터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었다. 하지만 역시 변화된 매체 환경과 프로슈머화된 시청자들의 능동적 소비행태의 측면에서 해석해 보면 오히려 경계성의 확대를 통해 새로움을 극대화시킨 마케팅 전략이 되었다. 물론 넷플릭스를 놓치지 않은 현명함이 큰 힘이 되었지만.

앞으로 우리 드라마 업계가 <우영우>의 사례를 더 다양하게 조명하길 바란다. 이런 연구를 통해서 획득되는 전략은 더욱 탄탄하게 우리 드라마의 성공 확률을 높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제작진들이 만들었기에 단지 우연히 획득된 DNA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 일종의 무기로 만들어 내려면 이런 연구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출처 : 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9월호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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