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Nov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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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흔드는 K-드라마, 무엇이 달라졌는가! 보편 정서로 넘어선 벽,넘어야 할 장르적 한계

세계를 흔드는 K-드라마, 무엇이 달라졌는가

보편 정서로 넘어선 벽, 넘어야 할 장르적 한계

‘우영우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최근 종영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이하 <우영우>)는 국내에서 거대한 열풍을 불렀다. 작중 주인공이 앓는 자폐성 장애에 관심이 쏠리고, 촬영지에는 구름처럼 관광객이 몰려들었다. 전국 시청률 17%를 넘어선 예상 밖 인기에 제작사와 방영 채널은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한국에서 기록적 인기를 끈 이 드라마는 새로운 질문을 마주한다. <우영우>는 ‘제2의 <오징어 게임>’이 될 수 있을까.

이상원 시사IN 기자


세련된 인간 정서 묘사, 장르가 만들어내는 차이

이 질문이 자연스레 나온 까닭은 <오징어 게임>의 흥행이 너무도 새롭고 거대한 현상이었기 때문이다. <오징어 게임>은 단순히 ‘넷플릭스 한국 드라마’ 흥행 기록뿐만 아니라 서구권을 포함한 ‘넷플릭스 드라마’ 흥행 기록을 새로 쓴다. 이 예외적 성공을 조명하기 위해 한국은 ‘K-드라마’라는 말을 역수입하기에 이르렀다. 한국 문화상품이 세계를 휩쓴 충격에서 채 벗어나지 못하던 와중, <우영우>가 메가히트한 것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에이스토리

한국 드라마는 장르 불문 인간적 정서를 그려내는 데 능하다고 정평이 나 있다. ‘서바이벌 게임’이나 좀비, 자연재해와 같은 사태를 다루면서도 한국 작품은 상황 속 인간 심리에 집중한다. 알려진 바와 달리 한국에서는 호불호가 갈리는 특유의 ‘신파’ 요소도 해외에서는 호평 요인이다. 인간 정서 묘사의 정수로 여기는 것이다.

인간 정서를 세련되게 묘사하는 기술이 한국 드라마의 해외 성공 요인이라면, 미묘한 감정이 ‘주된 제재’인 로맨스·드라마물은 특히 더 호응을 얻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지난 1년간 제작된 한국 드라마들 중 세계의 주목을 받은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차이는 장르다. 공포·스릴러가 떴고 로맨스·드라마는 졌다.

지난 1월 넷플릭스에 공개된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은 미국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하는 등, 막대한 인기를 몰았다. <지옥>은 시청률이 그만 못했지만 해외 매체들의 호평을 얻었다. 반면 <갯마을 차차차>, <나의 해방일지>는 국내에서 화제를 모았으나 해외 인기는 아시아권 등에 머물렀다. <우영우>는 예외적일 만큼 인기를 끌고 있을까? 전 세계를 범위로 잡아, ‘인기 총량’으로 따지면 그렇게 볼 수 있다. OTT 시청률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FlixPatrol)은 영화 드라마의 인기를 누적 점수로 평가한다. 넷플릭스 톱10 순위와 그 지속 기간을 분석하는 방식이다. 8월 14일 기준 <우영우>의 점수는 5434점으로 세계 5위다.

서구권에 한정해 보면 이야기가 다르다. 플릭스패트롤 조사에 따르면 <우영우>는 홍콩, 일본,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에서 가장 흥행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서구권에서는 인기가 많이 떨어진다. 전 세계 콘텐츠의 각축장인 미국에서는 톱5 안에 든 적이 없다(8월 18일 기준). 미국에서 활동하며 대중 반응을 피부로 느끼는 대중문화평론가 레지나 킴은 “현재 <오징어 게임>과 <지금 우리 학교는>은 미국에서 <우영우>보다 훨씬, 훨씬 더 인기 있다. 주류 언론들의 조명 역시 앞선 두 작품에 더 쏠린다”고 말했다. <지금 우리 학교는>이 <우영우>보다 인기라고? 그의 말이다. “(앞선) 두 작품의 공통점은 폭력적이고, 사람이 많이 죽었다는 것이다. 같은 장르인 <기묘한 이야기>의 미국 내 인기도 맥락이 같다.”

 

보편 정서의 허들을 넘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K-드라마 현상을 ‘시장 확장’만으로 여긴다면 미국과 유럽 관객들의 반응에 주목하지 않아도 된다. 전통적 한류 시장인 아시아에 신흥 팬덤이 급성장한 중남미를 더하면 인구 50억 명이 넘는다. K드라마 현상을 ‘(아시아가 중심이었던) 한류의 확장 버전’으로만 보는 시각은 <오징어 게임> 열풍을 설명하기에 간편하기도 하다. 넷플릭스 덕이다. 한국 콘텐츠는 언제나 국제적 경쟁력이 있었는데, OTT로 접근성이 오르자 해외 관객이 ‘발견한 것’이다. 배우 윤여정 씨는 지난해 “한국에는 늘 좋은 영화와 드라마가 있었다. 세계가 갑자기 우리를 주목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문화콘텐츠의 서구권에서의 성공은 OTT 덕에 찾아온 행운으로 볼 일이 아니다. 서구 관객이 공유하는 ‘보편 정서’라는 질적 허들을 넘었음을 의미한다. 미국이 세계 문화콘텐츠시장을 석권해온 까닭은 가장 강하거나 부유해서만은 아니다. 민주주의, 자유, 시민권 등 할리우드가 전파해온 사상을 세계가 보편타당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콘텐츠의 기술적 수준은 자본으로 높일 수 있으나 보편 사상을 콘텐츠에 녹여내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다수 해외 매체들은 한국 문화콘텐츠가 국제 경쟁력을 높인 시기를 2000년대로 잡는데, 김대중 정부 때 꽃피운 민주주의를 한 원인으로 꼽는다. 적지 않은 국가가 이 기준 앞에 좌절한다. 예컨대 중국은 정권 차원에서 문화산업에 막대한 투자를 감행했으나, 중화주의에 물든 ‘중국형 블록버스터’는 좀처럼 해외 시장을 뚫지 못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의 성공은 그래서 중요한 사례다. ‘기이한 게임’이란 요소로 할리우드와 차별화를 꾀했고, 자본주의 체제의 살풍경을 꼬집어 보편 정서에 발맞추는 곡예에 성공했다. ‘경제효과’나 ‘국가 이미지 제고’가 아니라, 인류 보편 정신을 본고장 이상으로 벼려냈다는 게 이 드라마 성공의 참 의미다.

 

<오징어 게임>, ©넷플릭스

 

서구권의 또 다른 벽

서구권에서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서 질적으로 열등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작품이 보편성을 갖추었더라도, 서구권 관객들에게 또 다른 벽이 있다. 레지나 킴에 따르면, 한국의 공포·스릴러물만 서구 관객의 벽을 뚫은 것은 ‘본래 인기 있는 장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국과 서구의 ‘정서 차이’를 뚫기에 이 장르가 용이하다. “공포 시리즈를 즐기기 위해 지역 문화를 이해할 필요는 없다. 무서운 좀비에게서 도망쳐야 한다는 사실은 (전 세계) 누구에게나 명확하다.” 로맨스·드라마에 장벽이 되는 이 정서는, 민주주의나 인간 존엄처럼 전 세계가 기꺼이 수용한 인류 보편의 정신과는 좀 다르다. 지역 특유의 ‘심미관’에 가깝다.


레지나 킴은 이렇게 전했다. “한국 드라마의 일부 연기가 ‘지나치게 귀엽다’, ‘과장되어 있다’는 평이 있다. 애교 부리는 연기를 몹시 불쾌하게 보는 사람들이 미국에는 많다.” 인종주의에 가까운 시각도 한몫한다. “동양인은 매력적이지 않고, 그래서 로맨스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편견이 아직 있다. ‘한국계 미국인 배우’들과 달리 너무 창백하고, 어려 보이고, 화장이 과한 듯한 배우들도 부자연스럽게 여긴다.”

그 결과 미국에서 ‘K-드라마’는 ‘한국 드라마’와 나뉘어서 거론된다. 주류 매체가 즐겨 논하는 K-드라마란 서구권에서 선풍적 인기를 얻은 ‘인간 정서 묘사가 탁월한 호러·스릴러물’들을 뜻한다. 국내에서 인기를 끈 다수 드라마는 여기 들지 않는다. 킴을 비롯해 한국 사정에 밝은 이들은 ‘K-드라마가 한국 문화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설파하지만, 현지에서는 좀처럼 통하지 않는 듯하다.


한국 영상 콘텐츠에 대해 지난 1년간 세계가 보인 태도는 간명하다. 세계 절반이 넘는 곳의 관객은 한국 인기 드라마에 이전보다 더 큰 환호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서구권 관객 다수는 호러·스릴러를 ‘편식’한다. 정서적 골이 원인이다. 이 진단은 <오징어 게임>이 <우영우>보다 문화적으로 우월하다는 결론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다른 모든 국가 관객들처럼 미국이나 유럽 관객들도 저마다 장벽이 있다. 이 장벽 일부는 ‘글로벌 스탠다드’로 삼을 만하지만, 몇몇은 지역적 편견에 불과하다. 서구권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창작자들은 고유한 기준에 맞춘 장르와 서사를 차용한 ‘수출형 작품’을 기획하는 게 유리하다. 다른 이들에게 해외 흥행 여부는, 이제는 일희일비할 것 없는 먼 나라 이야기로 여겨도 괜찮다. 문화는 올림픽이 아니니 해외 시장에서 얻은 성적표를 부풀릴 필요도, 결과에 자책할 필요도 없다는 의미다.

 

[출처 : 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웹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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