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타트업의 글로벌 디지털 경제 선점을 위한 전략은?
- 경제
- 2022. 12. 28.
K-스타트업의 글로벌 디지털 경제 선점을 위한 전략은?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으로 디지털 경제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알파벳(구글), 메타(페이스북), 아마존, 엔비디아, 텐센트 같은 디지털‧플랫폼 기업들이 디지털 경제를 이끌고 있다. 한국 정부도 최근 벤처·스타트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촉진하고 그 기반이 되는 국내 창업·벤처 생태계의 개방성을 높이기 위해 4대 추진전략을 마련했다. 4대 추진전략의 핵심과 시사점 등을 통해 향후 글로벌 유니콘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인지 점검해본다.
글. 노정용(글로벌이코노믹 국장)
디지털 경제의 확산
디지털 경제는 노동과 자본 등 전통적인 생산요소에 의존하는 기존의 경제와는 달리 경제활동이 디지털화되고 네트워크화된 정보와 지식이라는 생산요소에 주로 의존하는 경제다. 정보통신(IT)‧생명공학(BT)‧전자상거래가 중심 역할을 한다.
디지털 경제의 가장 큰 특징은 생산과 소비가 중간단계를 거치지 않고 직접 연결됨으로써 비용을 크게 절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정보와 지식 등 생산요소들이 어디든지 빠른 시간 내에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점도 디지털 경제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이다. 글로벌 시총 10대 기업 중 애플‧마이크로소프트‧알파벳‧메타‧엔비디아‧텐센트 등 7개 사가 이같은 디지털 경제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준다. 이 기업들은 스타트업에서 출발해 세계를 무대로 끊임없이 도전한 결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는데, 모두 디지털‧플랫폼 기업이란 공통점을 안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창업‧벤처 생태계에서도 유니콘 기업(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비상장 기업)이 탄생하고 있지만 유니콘 기업의 83%가 내수 중심의 디지털‧플랫폼 기업이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해외 진출을 진행하고 있는 스타트업은 전체 창업기업 중 1.4%에 불과하다. 한국 스타트업들의 양적‧질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아직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벤처·스타트업 글로벌 시장 진출 4대 전략
기획재정부와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 9월 국내 창업‧벤처 생태계의 개방성을 높이고 해외 진출을 도모하는 ‘K-스타트업 글로벌 진출전략’을 내놓았다. 정부가 제시한 목표는 오는 2027년까지 해외 매출 비중 25% 이상인 글로벌 유니콘 기업을 10개 이상 육성하고, 해외 진출 K-스타트업 5만 개를 달성하는 것이다.
첫 번째 전략은 민간 역량 활용과 부처 협업을 통한 맞춤형 지원이다. 구글‧MS‧엔비디아‧다쏘시스템‧앤시스‧지멘스‧AWS(아마존)‧오라클‧에어버스 등 9개 글로벌 기업과 협업해 270개 K-스타트업의 성장과 해외 진출을 지원한다. 특히 인공지능‧헬스케어, 우주‧항공 등 딥테크 분야 K-스타트업 지원을 강화할 예정이다. 각 부처 간에도 소관 분야별 유망 스타트업을 발굴하면 중기부가 액셀러레이팅을 지원하는 협업방식을 도입하기로 했다.
두 번째 전략은 글로벌 네트워크 구축과 해외거점 확대다. 대기업이 보유한 해외거점을 스타트업 보육 공간인 ‘K-스타트업 센터’로 지정해 현지 상황에 맞는 네트워킹을 지원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와 함께 재외공관을 활용해 K-스타트업 해외네트워크를 구축하며 유럽권 벤처‧해외투자 거점을 설치하기로 했다. CJ‧SK이노베이션‧네이버 클라우드‧KB금융그룹‧KT가 협업기업으로 나서며, 식품‧물류‧미디어‧배터리 재활용‧핀테크 프롭테크 등 분야를 집중적으로 육성한다.
세 번째 전략은 글로벌 컨설팅사를 활용해 유니콘 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한다. 정부는 K-유니콘 프로젝트를 통해 발굴한 아기‧예비 유니콘 등 유망 벤처‧스타트업 중 글로벌 지향 기업의 글로벌 전략 수립을 지원하는데, 1단계 아기유니콘 기업에는 시장개척자금 3억 원, 2단계 예비유니콘 기업에는 특별보증으로 최대 200억 원을 지원해준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전략은 한국 스타트업의 해외 인지도를 높여주기 위해 K-팝, K-드라마 열풍을 ‘K-스타트업’ 대표브랜드로 확립하고 확산한다. 혁신 아이템이 있어도 인지도가 부족한 탓에 해외 기업을 만나기 어려운 스타트업을 K-스타트업 브랜드로 만들어 대한민국 스타트업의 우수성과 글로벌 인지도를 높여 나가는 것이다.
프랑스의 ‘라 프렌치 테크’와 싱가포르의 ‘스타트업 SG’와 같이 대외적으로 대한민국의 벤처‧스타트업을 대표하는 브랜드를 만들어 스타트업 행사뿐 아니라 재외공관, 해외 스타트업 거점 등에서 일관되게 통합 브랜드를 사용한다면 글로벌 시장 진출이 한결 수월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프랑스의 빅테크 기업 10곳 육성 정책
프랑스는 벤처창업 육성 정책으로 ‘라 프렌치 테크’를 운영해 왔다. 세계 최대의 스타트업 캠퍼스인 파리 스테이션 F와 ‘에콜 42’가 창업 캠퍼스로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프랑스 정부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는 2030년까지 1,000억 유로 가치의 빅테크 기업 10개사를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탄생한 애플‧MS‧메타‧엔비디아‧알파벳‧테슬라 등과 같은 빅테크 기업처럼 유럽에서 디지털 거인의 출현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국가적 차원에서 유럽의 기술 스타트업 생태계를 유럽의 디지털을 되찾기 위한 지렛대로 만들기 위한 몇 가지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먼저 유럽투자은행(EIB)의 자회사인 유럽투자기금(BIF)이 관리하는 ‘펀드 오브 펀드’를 출범시켰는데, 기존 벤처캐피탈 펀드를 충전하고 자금조달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설계된 새로운 펀드다. 이 펀드는 최소 10억 유로의 자본금을 가진 최대 20개의 유럽 펀드를 만드는 게 목표다.
스타트업에 대한 자금 지원을 위해 프랑스 정부가 조성하고 주도하는 펀드 규모는 약 100억 유로(약 13조 8,500억 원)에 달한다. 프랑스 경제 규모로 볼 때 큰 편은 아니지만 알차게 지원함으로써 시드 머니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한국은 정부 차원의 예산 지원 규모를 2018년 7,796억 원, 2020년 1조 4,517억 원, 2022년 1조 6,243억 원 등으로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으며, 글로벌 벤처캐피탈 자금도 39개 펀드 4조 9,000억 원이 조성돼 있다.
브뤼노 르 메르 프랑스 경제장관은 “프랑스는 스타트업 국가였고, 거대 기술 기업의 국가가 될 것”이라며 인재 유치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2017년 1월부터 프랑스에 정착하고자 하는 비유럽 투자자, 창업자, 스타트업 직원을 위한 간소화된 절차인 ‘라 프렌치 테크 비자’를 출시했다. 이제는 여기서 더 나아가 ‘유럽 원스톱 숍’을 도입해 EU 수준에서 인재 유치에 나서기로 했다.
지난 2021년 3월에 출범한 유럽혁신위원회(EIC)는 신흥 기술에 주목하고 파일럿 가속 프로젝트와 전용 투자기금을 보유하고 있다. EIC는 프랑스가 넥스트 40/120 라벨 내에서 하는 것과 유사한 개발을 위한 지침과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가장 유망한 100개의 딥테크 스케일 업(Scale Up)을 하나로 묶는 ‘스케일 업 100’ 프로그램을 시범적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프랑스 벤처 창업 육성 정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라 프렌치 테크'를 통한 브랜딩이다. 기존에는 개별적으로 존재하던 스타트업들을 ‘라 프렌치 테크’라는 강력한 브랜드로 묶어 하나의 이미지로 보이게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많은 스타트업과 중소·대기업이 각자 비용을 들여 혹은 정부의 지원으로 각종행사에 참여하고 있으며 규모에서도 결코 프랑스에 뒤지지 않는다. 정부가 추진하는 ‘K-스타트업’ 브랜드도 프랑스처럼 일관된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글로벌 유니콘으로 도약할 수 있는 전략은
한국 스타트업 가운데 ‘배민’과 ‘토스’가 동남아 시장에서 현지화를 통해 안착한 사례에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지난 2019년 경쟁사보다 늦게 베트남 음식배달 시장에 진출한 배민은 라이더 교육과 식품매장 지원에 주력하며 현재 호찌민‧하노이 등 21개 도시에서 월 이용자 350만 명을 확보해 배달 주문 앱 3위에 올랐다.
배달 주문 앱 1위 업체인 그랩푸드는 기성세대에게, 배민은 젊은 세대에게 인기가 많다. 배민은 다른 음식 배달업체와 달리 두 번에 걸친 엄격한 시험 과정을 거쳐 라이더를 선발하고, 고객관리, 광고, 전통에 중점을 둔 차별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전래동화를 활용한 에코백을 만들고 ‘이거 엄마한테 맡기지 마’ 같은 재미난 문구를 담은 ‘뗏(설날)’용 세뱃돈 봉투 등을 제공하며, 유용한 결제 수단을 제공해 플랫폼에 참여하는 파트너들과의 네트워크에도 신경을 썼다. 이러한 전략 덕분에 배민은 고객만족도에 있어서 그랩푸드를 제치고 주문 배달 앱 부문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간편 송금‧대출 금융 앱’ 토스도 마찬가지다. 2019년 베트남에 진출해 송금과 직불카드 서비스로 300만 명의 활성 사용자를 확보한 후 현재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인도 등 5개국으로 확대하고 있다. 이승건 비바 리퍼블리카 대표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한국 시장의 플레이어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라며 처음부터 글로벌 무대를 대상으로 한 전략을 펼쳤다고 말했다. 토스는 신용분석과 소비자 행태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에 집중하는 접근 방식을 택했다. 걸으면 돈 주는 ‘만보기 앱’으로 초기 이용자를 끌어모은 뒤 송금, 계좌 개설, 소액 대출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갔다. 최소 기능 제품으로 최대한 빨리, 최대한 많은 시장 테스트를 통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이용자를 끌어모은 것이다.
배민과 토스가 베트남 시장에서 성공한 데에는 가수 싸이, 방탄소년단, 블랙핑크로 시작된 K-팝에서부터 영화 ‘기생충’, ‘오징어 게임’, 그리고 불닭라면, 짜파게티, 비비고 만두 등 K-푸드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라이프 스타일이 주목받고 있는 덕분이기도 하다. 영국의 유명 일간지 더 가디언은 한국 문화의 세계적 대유행을 ‘K-everything’이라며 대서특필했다.
K-스타트업도 한국 문화를 기본 바탕으로 깔되 과감하게 세계 보편적인 음악 정서를 수용하여 세계인이 공감하는 음악을 만들어낸 K-팝의 성공 방정식을 따른다면 글로벌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하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구글이나 애플이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한국을 테스트 베드(새로운 기술·제품·서비스의 성능 및 효과를 시험할 수 있는 환경 혹은 시스템, 설비)로 여기며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도 한국인의 DNA 속에 글로벌 스타트업이 될 수 있는 자질이 있기 때문은 아닐는지.
정부는 이번에 마련한 K-스타트업 육성전략에 따라 스타트업에 대한 지원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창의적인 아이템이라면 담보물이 없더라도 기획과 아이디어에 과감히 투자해 주어야 한다. 중소‧벤처기업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아무리 기술력을 높게 평가받아도 실제 자금 지원에는 대단히 인색했던 것으로 보인다. K-컬처의 융성 덕분에 요즘 K가 붙은 브랜드가 상한가를 치고 있으니 한국 스타트업들이 K-스타트업 브랜드를 달고 훨훨 날기를 기대해본다.
※ 본문의 견해와 주장은 필자 개인의 것이며, 한국벤처투자의 공식적인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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