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February

kyung sung NEWS LETTER

대중은 왜 학폭에 이리도 뜨겁게 분노하는가

넷플릭스 〈더 글로리〉의 영향일까? 2021년 이미 한 차례 학교폭력(이하 학폭) 논란이 휩쓸고 지나간 연예계는 2023년 다시 한번 학폭 논란으로 뜨거워졌다. MBN 〈불타는 트롯맨〉의 결승 진출자 황영웅은 학폭 및 상해 혐의로 사상 초유의 결승전 중 하차라는 기록을 세웠고, JTBC 〈피크타임〉의 출연자 김현재 또한 자신에게 제기된 학폭 의혹을 벗을 때까지 프로그램에 폐를 끼칠 수 없다며 하차를 결정했다. 학폭 이슈를 다시 상기시킨 〈더 글로리〉는 출연자 전원의 학폭 전력 여부를 확인하고 제작에 들어갔다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연출자 안길호 PD의 학폭 전력이 확인되면서 씁쓸한 뒷맛을 남기기도 했다.

 

이승한 TV 칼럼니스트한겨레S ‘이승한의 술탄 오브 더 티브이’ 칼럼 연재 중
MBC 옴부즈맨 프로그램 〈탐나는 TV〉 출연
저서 ≪예능, 유혹의 기술≫, ≪나는 지금 나의 춤을 추고 있잖아≫, ≪잘 봐 놓고 딴소리≫ 등

 

 

학교폭력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 변화

한때 폭행 전력이 있는 연예인들이 큰 문제 없이 받아들여지던 시절도 있었다. 심지어 폭행 전력이 있는 배우 이훈이나 DJ DOC의 경우, 그들의 거친 과거가 예능 프로그램의 농담거리로 사용되기도 했다. 사회인이 된 이후 저지른 폭력에 대해서도 이만큼 너그러웠으니, 학생 시절의 폭력은 ‘철없던 시절의 방황’ 정도로 넘어가는 게 대다수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사뭇 달라서, 연예인의 학폭 의혹은 커리어를 중단시킬 만큼 중차대한 일이 되었다. 학폭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어떻게 이렇게 극적으로 변했을까?

학폭에 대한 인식이 엄중해진 이유로는 사회 전반의 인권의식 향상도 있겠으나, 환경적인 측면으로는 학생들의 삶이 갈수록 더 치열해진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과거에 비해 입시에 대한 압박이 가중되면서 학생들이 체감하는 스트레스의 수준 또한 꾸준히 증가해 왔는데, 학교에서 바로 학원으로 이어지는 사이클이 반복되면서 그 속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할 만한 짬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아졌다. 이 학교-학원 사이클에서 접하게 되는 사람들은 높은 확률로 동일 지역 내 또래 무리 집단인데, 스트레스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 하루 종일 거리를 두지 못한 채 붙어 있으면 발생하는 압력은 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단일한 무리 집단 안에서 불화가 한번 발생하면 온종일 그 불화를 벗어나기 어렵다.

온라인의 발달 또한 학폭의 양상을 바꿨다. 학생들이 바쁜 일정 중 그나마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창구가 온라인 게임이나 소셜 미디어 활동인데, 이 또한 주로 길드 단위로 움직이거나(게임) 친구들의 네트워크로 유지되는 형식(소셜 미디어)이다 보니 또래 무리 집단에서 벗어나는 일은 요원하다.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밤에 눈을 감을 때까지 동일 또래 무리 집단을 벗어나기 힘든 구조인 셈이다. 심지어 피해 학생이 전학 가서 새로운 환경에서 새 삶을 모색한다 하더라도, 소셜 미디어를 통해 ‘왕따 출신’이라는 식의 라벨이 따라다니는 탓에 과거와의 완전한 단절도 쉽지 않다. 아울러 폭력의 무대가 눈에 쉽게 띄는 물리적 공간에 제한되는 게 아니라 소셜 미디어, 메신저 등의 온라인 공간으로 이동해 은밀하고 끈질기게 이루어지는 탓에, 어른들이 더 일찍 눈치채고 개입하기가 힘들어졌다.

높은 스트레스 수준, 벗어나기 어려운 폐쇄적인 또래 무리 집단, 은밀하고 끈질겨진 폭력의 양상까지. 학폭을 ‘철없던 시절 학생들이 싸우면서 크는 과정’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과거와 달리 ‘영혼을 파괴하는 악질적인 범죄’로 인식하는 이들이 증가한 것에는 이와 같은 배경이 존재한다.

 

‘어떤 처분을 받았는가’를 믿지 않는 대중

물론 어떠한 범죄든 제대로 처벌이 이루어져서 잘못에 상응하는 대가를 다 치렀다면, 논란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 실제로 마약 전과나 도박 전과가 있는 연예인들도 처벌을 받은 뒤 자숙 기간을 거쳐 복귀해 활동을 이어가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학폭에 있어서는 대중의 인식이 그렇게 너그럽지 않다. 실제로 걸그룹 르세라핌의 전 멤버 김가람은 중학교 재학 시절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학폭위)에서 5호 처분을 받고 이미 특별교육을 이수한 바 있으나, 사람들은 ‘5호 처분씩이나 받은 사람이 데뷔를 강행하려 했다’며 분노했다. 김가람은 끝내 르세라핌을 떠나야 했다.

대중의 이와 같은 엄격한 기준은 학폭의 특성에 기인한다. 학폭은 1) 좁은 또래 무리 집단 안에서 2) 대체로 무리를 지어서 발생하는데 3) 사건 해결에 많은 시간과 자원이 소모되는 탓에 피해자가 고발하는 일 자체가 어렵다. 그래서 상당수의 학폭은 피해자가 해당 시기를 일방적으로 견뎌내는 방식으로 은폐된다. 설령 피해자가 용기 내어 신고한다고 해도 상황은 간단치 않다. 정순신 변호사 아들 학폭 논란에서 보았듯, 학폭위의 조사와 분쟁 조정, 항소 과정에 소요되는 시간은 길고 지리하며, 그동안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리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렇게 은폐되거나 흐지부지되며 제대로 해결이 안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특성 탓에, 학폭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다른 범죄와 비교해봐도 극히 부정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예인에게 학폭 의혹이 제기되는 순간 대중은 일단 경계심을 품는다. 어떤 식으로든 처벌을 받지 않은 채로 지나갔거나, 처벌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저지른 비행에 비하면 경미한 수준으로 끝났을 것이라는 암묵적인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이다. 자신의 비행에 대한 제대로 된 대가를 치르지 않은 사람이 근사한 이미지로 자신을 꾸며가며 대중의 사랑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반감은 거의 본능적으로 작동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중의 용서 내지는 승인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의혹 제기 자체가 거짓이거나 오해였음을 증명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나면, 남는 방법은 ‘사과를 통해 피해자에게 용서받는 것’ 하나다. (보이그룹 스트레이 키즈의 현진이 이 과정을 통해 활동을 재개했다.) 대중은 ‘어떤 처벌을 받았는가’를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 대신,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용서받았는가’에는 더 무게를 둔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하면 좋은가

안타깝게도 프로그램 제작진 차원에서 학폭 논란을 완전히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출연자들의 학폭 전력을 조사한다 해도, 공식 기록으로 남지 않은 경우까지 검증하기는 어렵다. 그 경우 전적으로 출연자의 양심에 의존해야 하는데, 출연 여부가 달려있는데 솔직하게 과거를 고백할 가해자가 있을까? 설령 양심적으로 이야기한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안길호 PD의 사례처럼 가해자가 해당 사건을 ‘학폭’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거나 아예 기억을 못하는 경우에는 사전 검증이 불가능하다.

사후적인 대응으로는 〈피크타임〉의 사례를 참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김현재에게 학폭 의혹이 제기되자, 제작진은 “김현재의 중학교 시절 담임 선생님과 교과 선생님, 교우들 그리고 거주했던 지역의 경찰관에게 당시 상황을” 물으며 상황 파악에 나섰고, 그 과정을 대중에게 공개하며 합당한 조처를 약속했다. 이후 진위 여부를 놓고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리자, 제작진은 단시간 내에 명확하게 종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판단하에 김현재와 논의 끝에 하차를 결정했다. 비록 출연자의 하차로 끝났지만, 제작진은 상황 파악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며 그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프로그램의 신뢰도를 지킬 수 있었다.

그렇다면 방송계 말고 우리 사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혹자는 처벌 수위를 높여서 학폭의 발생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엄벌주의의 범죄 예방 효과는 극히 미미하거나 없다는 게 학계의 정설이며,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학폭위를 통해 학폭의 진위 여부를 가리는 일 또한 길고 지리하다. 처벌 수위가 높아질수록 학폭위의 처분에 불복해 항소하는 사례는 더더욱 증가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논의는 처벌 수위 조정보다는 더 근본적인 방향을 향해야 하지 않을까? 학생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학폭의 근본 원인을 억제하고, 학폭 진위 여부를 가리는 동안에도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고 2차 가해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보다 적극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 ‘처벌’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를 중재하고 피해자의 회복을 돕는 것. 지나치게 원론적인 이야기라 맥이 빠지겠지만, 지금껏 벌어진 그 많은 피해들은 모두 이 원론을 지키지 못해서 생긴 일들이었다.

 

[출처 :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웹진 5월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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