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Nov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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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쓴다, 'keep going on' 넷플릭스 <퀸메이커> 문지영 작가

[출처 :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웹진 7월호 바로가기]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퀸메이커>에 출연한 윤지혜 배우가 서예를 한다는 걸 알고선, ‘참을 忍’자를 써달라고 부탁을 했단다. 실제로 문지영 작가의 작업실에는 아주 잘 보이는 자리에 ‘참을 忍’자가 적힌 액자가 있다. 참을 忍이 한두 개도 아니고, 세 개다. 드라마 작가는 어쩌면 가슴에 참을 ‘인’을 품고 사는 직업이 아닐까. 대본을 잘 써놓고도 편성에, 캐스팅에, 대본 수정 등등에 참을 ‘인’을 수도 없이 삼켜야 할 테니 말이다. 드라마 작가로 15년. 그녀의 가슴에는 얼마만큼의 참을 ‘인’이 쌓였을지 문득 궁금하다.

글. 신미경 편집위원사진. 김용철




드라마 <퀸메이커>가 호평 속에 종영했습니다. 소감이 어떠신지요?

드라마 대본을 쓰기 시작한 건 2018년이었고, 대본을 완성한 건 2022년 3월이었어요. 촬영이 작년 6월에 시작됐고요. 사실 그 사이에 새 드라마 집필에 들어간 상태예요. 그래서 드라마가 잘 끝난 것에 대한 감사한 마음은 있지만 개인적인 감상, 감흥 그런 게 있었다기보다는 그냥 평상시처럼 글 쓰면서 일상을 살았죠.


이번 작품 <퀸메이커>는 어떤 이야기인지 작가님의 생각을 들려주신다면요?

저는 이렇게 요약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주 치열하게 사는 여자들의 짧은 여행’ 혹은 ‘꿈같은 시간을 통과하는 여자들의 이야기’.
처음에 <델마와 루이스>라는 영화를 보고 이런 작품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keep going on’이라 말하면서 자동차를 타고 절벽으로 떨어져요. 그런데 저는 그 여자들의 인생이 거기서 끝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신을 다 던졌지만, 그 너머에 더 좋은 세상을 향해서 간 것 같은, 그래서 그 이후의 여자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거든요. 두 사람이 연대해서 자신들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걸 같이 부수려고 하는 로그 라인이 굉장히 멋있다고 생각했고, 그걸 확장하다 보니까 여자들의 정치 이야기가 된 겁니다.


여자들의 정치 이야기가 <퀸메이커>라는 완성된 드라마로 시청자를 만나기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기간을 관통하면서도 이것만은 포기할 수 없다 했던 한 가지가 있었다면 무엇일까요?

처음에는 ‘정치색이 약간 걱정된다’ 그런 얘길 들었어요. 여성 노동인권 변호사라는 오경숙(문소리 분)의 직업군에 대한 지적이 있었죠. 특정 인물이 연상된다든가, 여성 노동인권 변호사가 일단 호감이 아니다, 직업을 바꾸자 그런 얘기들이 나왔는데, 그때 그냥 ‘포기하겠습니다. 저희는 이 전투에서 물러나서 다른 데랑 얘기해 볼게요’ 하고 나와 버렸어요. 제작사 대표님이랑 ‘믿을 건 우리 대본밖에 없는데, 바꾸지 말고 그냥 우리가 버티자’ 그랬거든요.


<퀸메이커>엔 정말 독보적인 캐릭터의 여성 출연자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예상했던 것보다 더 잘 구현됐다 싶은 캐릭터를 꼽아본다면요?

주인공을 비롯해서 출연 배우들이 다 잘 해주셨지만, ‘서민정’이라는 여성 정치인을 연기한 진경 배우가 캐릭터를 정말 잘 살려주셨어요. 원래 16부로 준비하다가 이게 11부로 한 번 줄었거든요. 그래서 많은 이야기를 쳐내야 했어요. 그래서 서민정 역할도 처음에는 4회 차 정도 등장하다가 분량을 줄이면서 2회 차 분량만 나왔었는데, 너무 캐릭터가 재미있다 보니 저도 모르게 분량이 늘어난 거예요. 근데, 그걸 진경 씨가 또 너무 잘 해주셨어요. 코믹한 이미지가 있으시더라고요. 정치인 특유의 ‘조’가 있는 말투라든가 말끝마다 안경을 올리는 설정 등 준비를 정말 많이 해오셔서 서민정 캐릭터는 정말 한 곳도 편집된 부분이 없이 다 나갔을 정도죠.


캐스팅 과정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문소리 배우가 남편 역할을 직접 섭외했다고요.

문소리 배우가 오경숙 역할을 하게 됐을 때, 무조건 남편은 현봉식 배우여야 한다, 섭외도 본인이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오경숙이 왜 노동인권 변호사가 됐는지에 대한 전 서사가 있고, 또 봉건사회 축소판인 시댁에 내려가서 오경숙이 고생하는 이야기도 있는데 편집 과정에서 잘려나간 부분이 있거든요. 그 부분에서의 두 분 연기도 참 좋았는데 더 못 보여드려서 아쉽죠. 또 파업 중인 마트 지부장 배역은 김선영 씨가 적임이라며 적극 추천하고 섭외도 본인이 해줬어요. 아무래도 문소리 씨는 영화감독도 하고 제작도 직접하고 그래서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재벌가 자매 역 두 분은 제가 추천을 했는데요. 김새벽 배우는 <벌새>라는 영화를 보고 굉장히 좋은 느낌을 받았어요. 김새벽 배우가 대본을 보고는 ‘왜 본인을 캐스팅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재벌 이미지도 없고, 음성도 저음인 데다 막 소리 지르고 그런 걸 안 해봤다고… 그러고선 촬영할 때는 ‘촬영장에 혹시 그분이 다녀갔냐’ 할 정도로 잘했어요(웃음). 연기하기 괜찮았냐고 문자를 보냈더니, 부모님도 여러 번 보셨고 주변에서 잘 봤다는 얘길 많이 들었다고 좋아하더라고요. 다행이죠.


비영어권에서 시청률 1위에 오를 만큼 대단한 인기를 누렸습니다. 귀한 결실을 맺기까지 감사 인사를 전할 사람이 있다면?

오진석 감독과 인사이트필름 신혜연 대표님. 두 분 다 일로 만난 사인데 신 대표님은 그동안 영화만 만들었고 드라마를 아예 한 번도 안 해보셨거든요. 처음엔 제가 영화 각색 요청을 받아서 만났어요. 근데 그 일은 잘 안됐고,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로 10장 정도 되는 트리트먼트를 보여드렸더니 ‘각색 말고 시나리오를 하나 쓰자’ 그러시더라고요. 또 이게 영화로 담기엔 이야기가 길어서 ‘드라마로 쓰고 싶은데요’ 했더니 ‘그냥 드라마로 써보자’ 하시고, 그런 식으로 지금까지 같이 해주셨어요. 중간에 일이 잘 안 풀릴 때도 한결같이 ‘그냥 쓰자. 재미있으면 된다’ 그런 말을 계속하면서 힘을 주셨어요.
또 제가 계약을 하고 나서, 오진석 감독한테 ‘이게 이야기가 되겠냐, 드라마가 되겠냐’하고 조언을 구했는데, 재미있으니 그냥 이대로 하면 되겠다고 해줘서 제가 용기를 가지고 계속 쓸 수 있었어요. 정치색이 어떻고, 특정 인물 연상이 어떻고 그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대로 밀어붙여서 쓰라는 얘길 고맙게도 많이 해줬죠.

원래 시작은 예능으로 하셨다고요. 작가의 출발점은 언제부터였나요?

다른 작가님들도 다 그렇겠지만 어렸을 때부터 워낙 책 보고 드라마 보는 걸 좋아했어요. 글 쓰는 것도 좋아해서 학교 대표로 백일장에 나가서 상도 타고 그랬죠. 자연스럽게 대학 문예창작과에 진학했고요. 졸업반이 되니까 다들 신춘문예 등단 준비를 하더라고요. 반으로 딱 나뉘어서 ‘소설 대비반’, ‘시 대비반’.
저는 소설반이었는데, 어느 날 교수님이 절 부르시더니 ‘네 글은 신문사에서 좋아하는 글이 아니다. 신문사 신춘문예에서 좋아하는 소재와 글은 따로 있는데, 너는 그쪽이 아니니까, 재수를 해서 문예지 쪽으로 내자’ 그러시더라고요.
그 바람에 6개월이라는 시간이 더 생긴 거예요. 그래서 친구들이 신춘문예 준비한다고 도서관에서 글 쓸 때 저는 유럽 배낭여행 다니고 그랬어요. 마침 그때 SBS에서 <웃찾사>라는 공개 코미디를 만들면서 예능 작가 공채를 했거든요. 그때 예능 작가로 들어가서 시트콤반에서 아이디어 작가로 활동을 했는데, 내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드라마 제작사 기획 작가로 들어갔고 드라마 작가로 데뷔하게 됐어요.


어린 시절에 좋아했던 드라마를 떠올려본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그땐 재미있는 게 텔레비전밖에 없었어요. 저는 좀 성숙한 톤의 드라마를 일찍부터 좋아했는데, 초등학교 때 <여명의 눈동자>를 굉장히 감명 깊게 봤어요.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최재성 배우랑 채시라 배우가 애틋하게 연기했던 그 부분이 많이 생각이 나고요. <사랑이 뭐길래>라는 드라마에서 김혜자 배우가 ‘타타타’ 부르시면서 가슴을 막 치잖아요. 어린애가 그거 흉내도 내고 노래도 따라 부르고 그랬죠. 또, 사춘기 때는 유동근 배우랑 황신혜 배우가 나온 <애인>이랑 <푸른 안개>라는 드라마도 좋아했고요. 드라마 OST를 CD플레이어로 종일 들으면서 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생각해 보면, 로맨틱 코미디가 나오기 전인 1980~1990년대 드라마들이 지금 드라마보다 이야기적으로 훨씬 풍부하고 현실적이었던 거 같아요.

글을 쓰는 일은 에너지가 굉장히 많이 소비되는 일이죠. 글 쓸 때 힘을 받는 에너지원은 무엇, 혹은 누구일까요?

부모님께 늘 감사하는 마음이 있죠. 제가 싱글이라서 주변에 특별히 챙겨야 할 사람이 있진 않아요. 계속 부모님으로부터 챙김을 받고 있죠. 이건 좀 웃길 수도 있는데, 제가 고양이를 키우거든요. 수아랑 수지. 사실 이 아이들을 챙기면서 굉장히 도움을 많이 받아요.
두 번째 고양이인 수지는 구조를 한 아이인데, 아픈 애를 구조해서 동물 병원에 갔더니 환자 카드를 쓴다고 이름을 대래요. 갑자기 이름을 대라고 해서 수아 동생이니까 수지라고 해야겠다 해서 이름이 수지가 됐고, 키우기까지 하게 됐죠. 드라마 작가라면 다들 공감하실 텐데, 글을 쓰다 보면 삶이 되게 단조로워요. 눈떠서 작업실 와서 글 쓰고 밥 먹고, 운동 좀 하고 또 글 쓰다가 집에 가고, 어떤 날은 분량이 다 안 찼으면 집에 가서 또 쓰고요. 그런데, 단조로운 일상에 이 아이들을 케어해야 한다는 게 저는 좋더라고요. 누군가 맹목적으로 저를 기다리고, 저를 좋아해 주는 존재가 있다는 게 굉장히 위안이 됩니다. 요즘 제 에너지원이 되어주고 있죠. 그래서 수아는 지금 쓰고 있는 드라마 주인공 이름이기도 해요.

진행 중인 새 드라마 집필을 포함해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사실 2009년에 드라마 작가로 데뷔를 하고 나서, 중국에 가서 대본 작업을 한 적도 있고 해서 꽤 오랜 시간 작품을 안 했어요. 아니, 안 했다기보다 아이디어 노트에는 수십 개의 대본 후보가 있지만 그중 아직 제대로 빛을 본 아이들이 없다는 말이 맞겠죠.
요즘은 시스템이 잘 갖춰져서 그런지 한꺼번에 세 작품을 쓰는 작가님도 계신다는데, 저도 그렇게 열정적으로 하고 싶지만 손이 두 개밖에 없어서 그게 안 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하루하루 주어진 분량만큼만 쓴다고 생각하고 계속 쓰고 있어요. 이번에 OTT 드라마 하면서 새롭게 배운 게 있어요. OTT 드라마의 생리를 좀 알게 됐다고나 할까요? 지금 새 드라마 대본이 4회차 정도까지 나왔는데, 일단은 그 드라마 열심히 쓰겠습니다.

 



좋은 대본은, 아니 좋은 대본이라기보다 열심히 써서 완성도를 높여 놓은 대본은 언젠가는 된다. 때로 조급한 마음도 들지만, 그냥 열심히 써놓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빛을 보고 살아남는다. 대본은 죽지 않는다. 특히 좋은 대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는 문지영 작가의 말이 마음에 작은 파동을 일으킨다.




문지영 작가
- 집필 약력
데뷔작
2009 SBS 주말특별기획 <스타일>

2012 tvN <아이러브 이태리>
2013 tvN <후아유> (공동집필)
2015 TRENDY <사랑하면 죽는 여자 봉순이>
2016 K STAR <스파크>
2023 넷플릭스 <퀸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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