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웹진 9월호 바로가기]
김재형 KBS광주 PD
<구례 수해 30일의 기록-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코리아 온 스테이지-진도 운림산방>, <나랑갈래?>, <언니랑 쏠래?>, <1980, 로숑과 쇼벨> 연출
2020년 9월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
2022년 3월 이달의 PD상
2023년 5월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 최우수상
첫 회의, 충격적이었던 그 말 “이건 아이템이 안돼요.”
3년 전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때 툭 던지듯이 나왔던 질문. “그 사진(꼬마 상주)은 누가 찍었어?” 어쩌면 아무 의미 없던 그 질문. 그래도 가장 유명한 사진인데 누가 찍었는지 모른다는 의문이 들어 조사했다. 마침내 만나게 된 사진의 주인, 프랑스 사진기자 ‘프랑수아 로숑’. 그때는 몰랐다. 이 사람이 내 첫 다큐멘터리의 아이템이 될 거라곤.
그로부터 시간이 지나 작년 겨울. 눈이 많이 오던 날이었다. 코로나19로 갑갑했던 사회가 회복되어가고 있었고 하늘길도 열리기 시작했다. 제작부장이 나에게 ‘프랑수아 로숑’을 특집으로 취재하라고 했다. “네가 찾은 아이템이니까, 내년에 네가 제작해라.” 그 말을 들은 순간 일단은 겁이 났다. ‘제대로 입봉도 못한 PD가 이 아이템을 소화할 수 있을까?’ 마침 로숑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어떻게 할 거냐? 나를 만날 생각이 있는 거냐?’ 그렇게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채 특집은 시작됐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깊게 이해하고 있는 작가님과 회의를 시작했다. 첫 회의 날 자신 있게 쏟아 냈다. 그동안 생각날 때마다 봤던 사진, 이미 짜인 ‘스토리라인’이 있었고 이를 정리해서 회의에서 말했다. 그때 되돌아온 답이 여전히 기억이 난다. “이건 다큐 아이템이 안 돼요.” ‘로숑’과 그의 미공개 사진으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자고 모인 첫 회의에서 아이템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 기분을 말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저 막막했고 어두웠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아찔했다. 하지만 작가님이 회의가 끝나갈 즈음 덧붙여준 말에서 정신 차렸다. “PD가 궁금한 게 시청자도 궁금한 부분이다.” 작가님의 이 말이 이 다큐가 시작될 수 있는 길이 되었고 핵심이 되었다.
이 회의가 끝나고 나는 ‘물음표 살인마’가 되었다. 참고로 회사에서 나의 자리는 작가님 맞은편이다. 작가님이 업무차 회사에 오실 때마다 물어봤다.
“사진 속 이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이게 어떤 상황인지 아세요?”, “이 사람의 표정이 너무 궁금하지 않아요?” 어쩌면 조금 귀찮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질문할 때마다 답을 찾아 주셨다. 그리고 많은 질문 중 하나가 “이 아이를 아세요?”였다.
이 아이들이 왜 이 순간에?
로숑의 미공개 사진과 그의 소개로 알게 된 ‘패트릭 쇼벨’. 그는 원본 필름과 컬러 슬라이드를 포함해 몇 장의 인화된 사진을 보관하고 있었다. 처음 사진을 마주할 때는 신기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당시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몇 장의 사진을 뒤로 넘기다가 눈에 들어온 아이들의 모습. 이창현 군의 사진은 단숨에 알아볼 수 있었다. 당시 행방불명자로 기록된 이창현 군은 KBS가 발굴한 자료 영상에서만 확인이 가능했다. 계엄군이 나눠준 것으로 추정된 간식을 입에 물고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호송 차량에 있던 창현 군. 그의 모습을 1980년 5월 26일(추정), 계엄군의 진압으로 희생된 시민군을 운구하는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쇼벨은 자세하게 기억하지 못했지만, 계엄군이 아이들을 어디론가 데려가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가운데 아이와 창현 군을 동일 인물로 생각하고 취재했다. 한국에 있던 작가님은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와 정수만 상임이사 등 이 아이들을 알만한 사람들을 통해 누구인지 조사를 진행했다. 취재를 통해 이 두 아이는 서로 다른 인물임을 확인했고 이들의 행적이 모호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를 통해 큰 틀에서 다큐멘터리의 방향이 정해졌다. 이 아이들은 누구이며, 어디로 갔으며, 어떤 사연을 갖고 있는가?
“‘엄마’하고 당장이라도 뛰어나올 것 같아” “유일한 내 사진이기 때문에···”
이창현 군의 누나에게 연락해 어머니를 뵙게 됐다. 시간이 많이 지나 이제는 차분하게 그날의 상황을 이야기해주신 어머니. 어머니에게 사진을 건넸을 때 조심스러웠다. 처음으로 선명한 창현이의 모습을 다시 마주한 것이기에 충격을 받으시면 어쩌나, 걱정도 많이 했다. 누가 있는지도 모른 채 사진을 보다가 이내 창현이의 모습을 발견하신 어머니는 “‘엄마’하고 당장이라도 뛰어나올 것 같아”라며 눈물을 흘린다. 방송에는 편집됐지만 당시 창현이의 모습을 찍은 쇼벨과 창현이의 어머니는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만났다. 창현이의 마지막 모습을 찍은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어머니의 바람을 이뤄주고 싶었다. 두 사람은 서로가 말이 통하지 않지만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듯했다. 서로가 껴안으며 위로해주고 또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두 분의 모습이 선명하다.
조영운 씨는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에 의해 강제 이송된 과정에서 탈출해 서울에 있는 보육원에 강제 위탁된 사례다. 어렴풋이 어릴 때 광주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쇼벨의 사진을 통해서 뚜렷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어릴 때 자신의 유일한 모습이라며 사진을 꼭 쥐고 있었다.
제삼자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말하자
다큐멘터리를 구성함에 있어서 작가님과 공감대가 형성된 부분이 있었다. 내레이션 없이 인물들의 인터뷰로 채워가자는 것이었다. 그 의도는 단순했다. 사진에 기록된 인물들이 그날의 상황을 직접 이야기를 해주는 것만큼 진심을 보여줄 방법은 없다. 그래서 사진으로 기록된 인물들을 찾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을 취재했다. 5.18 관련된 분을 포함해 총 28명을 취재했다. 그들의 목소리로 촘촘하게 이야기의 흐름을 짠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시청해주신 많은 분들이 이 부분에서 공감하신 것 같다. 어느 한 PD는 “KBS광주에서 이를 제작했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다. 시민군들의 솔직한 마음이 묻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촬영에 임해준 한 시민군은 “내 이야기를 이렇게 하는 게 신기하다. 사진 덕분에 1980년 광주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고 그때 감정이 다시 느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제작진뿐만 아니라 취재에 도움을 주셨던 분들도 이 구성 덕분인지는 몰라도 진지하게 임했던 것 같다. 인터뷰를 하면서 시민군들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시청자도 함께 공감을 해줬으면 좋겠다.
사실은 처음 시작할 때 쉽게 생각했다. 그저 ‘인터뷰를 많이 받으면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도 예상하듯이 이런 안일한 생각은 1차 편집하는 과정에서 쉽게 무너진다. 정말 필요한 이펙트는 없을 때가 많고 후회하는 부분도 많다. 왜 이 질문은 안 했을까? 아쉬움도 크다. 이러한 부족함을 큰 틀로 채워준 게 메인 작가님이고 이를 서포트 해준 서브 작가님이 있었다. 편집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디테일한 부분을 잡아준 국장님과 제작부장님이 있었다. 회사생활을 위해 하는 말이 아니다. 남이 아닌 내가 쓴 글을 통해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이분들이 없었다면 만족할만한 결과물이 안 나왔을 거라 생각한다. 한 번 더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자 한다.
“이 자리에서 나와 만나 얘기를 나눴으면 용기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많은 분들이 로숑과 꼬마 상주 조천호 군의 만남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두 사람이 살아서 만나는 날이 있구나.’ 뿌듯했다. 아주 작은 질문이 이런 만남을 가져올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모두가 이 둘의 감동적인 장면을 보고 있을 때 쇼벨에게 미안해진다. 로숑처럼 그도 만나고 싶었던 시민군이 있었다. 계엄군의 진압으로 허벅지에 총탄을 맞은 시민군. 그가 자신의 눈을 애처롭게 바라보며 마치 “보고 있나요?” 이렇게 묻고 있는 듯했단다. 그날의 참상을 기록해주길 바라는 듯이. 또 이종기 변호사를 뒤에서 껴안고 있는 소녀가 있다. 둘의 애틋한 모습과 호송 차량 너머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종기 변호사에게 기억해달라는 메시지를 읽었다고 한다. 그는 이 두 사람을 꼭 만나고 싶어했다. 수소문 끝에 두 사람 중에 한 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끝내 시민군은 만남을 거절했다. 여전히 5.18 트라우마로 고통받고 있다는 소식만 전달받았다. 이 소식을 전했을 때 쇼벨의 표정은 복잡해 보였다. “어쩔 수 없다. 이해한다”고 말하면서도 “이 자리에서 나와 만나 얘기를 나눴으면 용기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못내 표현했다.
“이것이 저희가 이 일을 하는 이유입니다”
쇼벨의 말을 통해서 장황한 이 글을 마치려고 한다. 그의 말이 내가 5.18민주화운동을 취재하고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유일하게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사진 속에 그 사람을 영원히 남기는 겁니다. 그 사건을 지워버리려는 어떠한 시도가 있어도 당신들이 조사하고 내 사진들과 우리들의 증언이 있으니 광주에서 싸웠던 분들에 대한 기억은 잊힐 수 없겠죠. 이것이 저희가 이 일을 하는 이유입니다.”
“여전히 5.18에 대해서 할 이야기 있어?”, “이제는 지겹지 않아?”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끊임없이 1980년 5월에 대해 질문하기 때문에 그 가치가 있다는 작가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1,073장의 미공개 사진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작은 질문에서 시작되지 않았는가.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고, 대중이 잊을 수 없도록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이날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이유다.
*프로그램 관련 이미지는 필자에게 제공 받은 이미지입니다.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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