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회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시상 소감 : 김은숙 작가
- 사람
- 2024. 2. 16.
[출처 :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웹진 1월호 바로가기]
안녕하세요. 김은숙입니다. 먹고살려고 시작한 드라마였는데 먹여주고 살려주고, 그렇게 드라마 작가로 산 지 올해로 딱 20년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지난 20년 동안 과분한 영광도 받았고 뼈아픈 지적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전 아직도 시청률 받아보던 아침 일곱 시가 되면 심장이 뛰고 떨립니다. 또 돌이켜 보면 한 작품이 끝나면 다음 작품으로, 그 작품이 끝나면 또 그다음 작품으로, 저는 저를 끊임없이 증명하려고 했었고, 그래서 첫 드라마를 시작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퇴근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안하게도 세상 돌아가는 일과 살림은 모두 식구들의 손을 빌렸습니다. 최근에는 몇 년 전에 사놓았던 무선 헤드폰의 사용법을 익혔는데, 익혔다기보단 식구들이 다 연결해 준 다음 제 머리에 씌워준 것이 더 맞습니다. 암튼 남들은 다 잘만 쓴다길래 저도 써봤더니 매우 편리하였지만, 선도 없는 것이 내내 믿음이 가지 않아서 선을 다시 꽂는 저한테 남편이 당신은 그냥 글만 써라, 언제까지 쓸래, 하길래 그러게, 언제까지 쓰지? 생각하다가 아 그날이겠구나 싶었습니다. 역시나 몇 년 전 손에 익은 자판이 단종된 걸 알고 수개월에 걸쳐 같은 자판은 구해 쌓아놓고 곶감 빼 먹듯 사용 중인데, 더는 이 자판을 구할 수 없는 날에 드라마 그만 써야지 결심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렇게 큰 상을 주신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심사의 말’을 읽으면서 과연 이게 나인가 무서웠습니다. 그러다 그 한 줄 한 줄을 붙잡고 매달려 보라는 동아줄이구나 깨닫고 너무 감사했습니다.
제가 처음 드라마를 시작할 땐 드라마가 모두 밤 10시에 시작하던 조금은 단순했던 시대였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아침에 눈 뜨면 세상의 가치들이 변해 있습니다. 시청자의 취향은 다양해졌고 눈높이는 선명해졌습니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허덕허덕 따라잡고 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갈팡질팡하곤 합니다. 타고난 체력은 이미 다 끌어다 썼고 다음 생의 정신력까지 끌어다 썼으며 그다음 생의 행운까지 모두 끌어다 쓴 것 같아 두렵기도 합니다. 이렇게 부족한 저에게 너무나 큰상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신 번쩍 들게 해주시는 후배 작가님들과 인생작을 선물해 주신 동료 작가님들, 길을 잃고 막막할 때마다 지도가 되어주신 선생님들께 특별히 감사드립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푼어치 새로운 것을 찾아 늘 정진하겠습니다. 그러려면 달달한 것부터 좀 끊어야 하고 지금보다 더 좀 많이 걸어야 하겠지만, 두서없는 이 글이 마음에 걸리지만, 오늘은 일단 아주 기쁜 마음으로 껑충껑충 퇴근하겠습니다. 모두 너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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