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회 한국방송작가상 드라마 부문 시상 소감 : 박진아 작가

[출처 :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웹진 1월호 바로가기]

 

 

 

고백하건대 늘 부러웠습니다.
작가상, 이 상 만큼은 유난히도 부러웠고 감히 욕심이 났습니다.
시사교양 작가는 마치 그림자와 같아서 프로그램에 쏟아지는 관심과 사랑이 그림자에까지 닿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상은 제게 더없이 소중하고 귀합니다. 작품 안에서 온전히 작가에 주목해서 작가의 이름으로 수여되는 상이니까요.
24년을 동경해왔던 이 상에 제 이름이 새겨지는 날이 왔습니다.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이런 귀한 상을 받을 만큼 잘 해낸 건지, 노트북 안 수많은 대본 파일들이 저를 노려보고 있지만 밀려드는 민망함과 부끄러움을 이 순간만큼은 뻔뻔하게 외면해 보겠습니다.

SBS <국가수사본부>는 OTT 플랫폼인 웨이브(Wavve)의 투자를 받아 제작된 OTT 오리지널 콘텐츠입니다. 사건의 발생부터 검거까지 끈질기게 지켜보고 물음표가 아닌 마침표를 담아내는 ‘순도 100%’ 수사 리얼리티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하고 기획부터 제작까지 1년이 걸린 프로젝트였습니다.
돌이켜보면 참 무모한 도전이었습니다. 세상에 쉽게 태어나는 프로그램은 없겠지만 <국가수사본부>는 제작의 과정 하나하나가 모두 새로운 길이었습니다. 특히, 강력한 리얼리티를 지향하다 보니 이야기와 시청자의 거리는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 가까웠지만, 시청자를 지속적으로 몰입시키고 상황에 대한 개연성을 부여하는 장치인 내레이션을 포기하는 일은 작가로서 쉽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내레이션 없이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했고 밀도를 높이면서 감정을 불어넣을 수 있는 다른 방식을 찾아내야 했습니다. 9개월간의 기록이 담긴 촬영본 속에서 작가들은 바람 소리, 숨소리 하나까지 놓치지 않았습니다. 나직하게 뱉어내는 한숨에도 감정을 넣었고 발걸음 소리 하나에도 서사를 부여했습니다. 무겁게 내려앉는 침묵 역시 <국가수사본부>에서는 작가가 선택한 내레이션이었습니다.
<국가수사본부>는 그간의 관행과 관습을 깨는 시간들이었습니다. 이 상은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시사교양 작가들의 새로운 도전과 시도를 환영하고 격려해 주는 마음이 담긴 것임을 느낍니다. 버거웠던 시간을 충분히 다독여 주고 있습니다.

고마운 분들이 참 많습니다.
범죄 앞에서 반드시 끝을 본다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가감 없이 보여주겠다는 제작진을 믿고 예민한 수사의 시간을 내어주신 형사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전국 팔도 경찰서를 종횡무진하면서 불안과 초조함으로 잔뜩 독이 오른 작가를 안심시켜주느라 애쓴 배정훈 PD와, 불안함과 걱정을 들키고 싶지 않아 냉랭하게만 굴었던 저를 끝까지 믿어주고 곁을 지켜주었던 신소원, 박혜민, 박은빈 작가와 김규리, 정인혁 PD에게도 감사 인사 전합니다. 새벽녘 해장국에 토해내던 우리들의 이야기를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24년 전 큰딸이 방송작가가 되었다며 10만 원도 안 되는 주급 바우처를 건네던 날, 조용히 방 안에서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리셨던 엄마. 이 상으로 그 눈물을 닦아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믿어주고 지켜준 엄마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작가로 살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나조차 모르는 나를 발견해 주는 사람, 대단하지 않은 날들의 대단함을 일깨워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장 소중한 친구이자 창작의 동지인 사랑하는 신랑, 시사평론가 고현준 씨에게 무한한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무모한 도전에 대한 후회나 반성이 아닌 무한 도전의 가능성과 에너지를 얻을 수 있도록 귀한 상을 주신 선배님들, 고맙습니다. ‘무엇무엇 때문에’라는 핑계 뒤에 숨지 않겠습니다.
새로운 도전이 위험이라면, 한없이 위험하게 이야기하고 글을 쓰는 작가로 살겠습니다.

[출처 :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웹진 1월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