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성비를 넘어 시심비까지 해외 프로스포츠의 시성비 전략
- 문화
- 2024. 6. 24.
[출처 : 한국프로스포츠 협회 매거진 - 프로스뷰 VOL.12]
시성비 시대, 해외 리그에서는 팬들의 시간을 점유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취하고 있을까. 경기장을 찾은 팬들의 불필요한 대기 시간을 줄여주는 것은 물론, 혁신 기술을 통한 혁신 경험을 선사하면서, 극한의 시간 효율을 추구하는 팬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심비’까지도 고려한 해외 프로스포츠 사례를 모아보았다.
글. 이현우
텍사스 A&M교수.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스포츠매니지먼트 박사 학위를 받은 스포츠 전문가. 스포츠 관중 심리를 중심으로 감성과학을 기반으로 한 융·복합연구를 수행 중이다.
불필요한 시간은 줄이고, 경기 시간은 알차게!
- 스마트 경기장 & 피치 클락
24시간 온라인에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알고리즘 피드백은 매 순간, 매력적인 대체재를 제시한다. 가격 대비 성능인 ‘가성비’나 가격 대비 만족도인 ‘가심비’를 넘어서 시간 대비 성능을 나타내는 ‘시성비’가 부각되는 이유다.
전광판의 초시계에 따라 경기를 시작하고 끝마치는 스포츠야말로 ‘시간은 금이다’라는 격언이 가장 잘 어울리는 세계다. 경기 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코치진과 선수들이 고심하듯, 각 구단의 프런트 오피스는 팬들에게 가장 만족스러운 시간을 선사하기 위해 고심한다. 이른바 ‘시성비’는 프로스포츠에 꼭 필요한 덕목이다.
시성비가 부각됨에 따라 각 리그는 경기 시간을 알차게 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이에 따라 팬들의 경험도 바뀌고 있다. 예를 들어 피치 클락을 도입한 MLB의 경기 시간은 이전보다 30분 정도 줄었고, 피치 클락 도입 전엔 7회까지만 맥주를 팔던 구장들이 이젠 8회나 그 이후에도 맥주를 판다.
한편, 경기 시간을 알차게 구성하는 것과 더불어 경기 시간 외에도 팬들의 시성비를 위한 고민이 늘어나고 있다.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분야는 단연 최신 기술을 도입한 스마트 경기장이다. 스마트 경기장의 시대를 연 것은 NFL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의 리바이스 스타디움이다. 2014년 개장하면서 선보인 모바일 앱은 발권·주차·식음료·경기장 입장·편의시설 대기 시간 등 팬들의 불필요한 시간을 줄여주는 혁신을 일으켰다.
이후 모바일 주문을 전문으로 관리하는 앱 회사들이 등장했다. 여기에 애플 지갑과 연동되면서, 온라인 주문 직후 바로 경기장에 입장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팬들의 시성비 위해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다
- 완성도 높은 타임 아웃 이벤트
불필요한 시간을 줄이는 것만이 시성비의 영역은 아니다. 같은 시간이라도 효율적으로 보내기를 추구하는 팬들을 위해 구단은 경기 전후는 물론, 경기 중에도 다양한 이벤트를 선보이고, 팬들은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나 팬들의 경험은 단지 절대적인 시간의 양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상대적인 가치, 몰입, 그리고 전체적인 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듯 팬들의 경험을 관리하는 것은 대규모 교향악단을 지휘하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 예를 들어 보자. 경기가 중단된 몇 초 사이 경기장 내에는 이벤트가 펼쳐진다. 다시 경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장내에는 신나는 음악이 흐르고, 카메라는 관중석을 비추며 경기의 흥을 이어간다. 이때 숙련된 음악 담당자를 데리고 있는 구단은, 경기가 중단되고 재개되는 순간의 음악과 분위기 전환이 자연스러워 관중들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다.
NFL 애틀랜타 팰컨스는 메르세데스-벤츠 스타디움의 최신 영상·음향 시스템을 통해 팬 경험을 차별화시킨다. 재즈의 고향에 위치한 뉴올리언스 세인츠는 경기장에 라이브 공연을 올리면서 지역색도 살리며 팬들에게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했다.
피치 클락을 도입한 MLB의 경기 시간은 이전보다 30분 정도 줄었고,
7회까지만 맥주를 팔던 구장들이 이젠 8회나 그 이후에도 맥주를 판다.
©MLB
©Atlanta Falcons
경기장 안에서의 시간을 특별하게! AR 기술로 혁신적 경험을 선사하다
- AR로 구현한 팀 마스코트
경기장을 찾은 팬들의 차별화된 경험을 위해 첨단 AR 기술도 적극 활용되고 있다. 모든 영화가 히트를 치는 것이 아니듯, 모든 AR 기술 시연이 각광을 받는 것은 아니다. AR 기술에도 콘텐츠 파워가 필요한데, 같은 AR 콘텐츠라도 그 기술의 완성도와 몰입감에 따라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NFL 캐롤라이나 팬서스 팀은 팀의 마스코트인 흑표범을 AR로 구현하여 몇 번의 점프로 경기장 꼭대기까지 달음질하는 영상을 만들었다. 거대한 흑표범의 사실적이고도 환상적인 움직임이 대형 경기장의 웅장함과 어우러져서 장관을 이루었다. 해당 영상은 X(구 트위터)에서 수십만 개의 ‘좋아요’를 기록했다. 볼티모어 레이번스 팀도 마스코트를 초대형 까마귀로 구현해서 큰 호응을 얻었다.
해당 콘텐츠들을 제작한 회사는 더 페이머스 그룹(The Famous Group)이라는 AR 전문회사로 2020년 슈퍼볼에도 증강현실 콘텐츠를 제작했고, 2017년 리그 오브 레전드 결승 경기장에 초대형 용을 소환시켜서 화제가 되기도 한 기업이다. 혁신적인 기술 적용으로 팬들에게 혁신적인 경험을 선사하며 극한의 시간 효율을 추구하는 팬들의 시성비를 만족시켰다.
모든 악기가 조화를 이루는 교향악과 마찬가지로 스포츠 경기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사회적 의미가 어우러지며 그 시대의 문화적 경험으로까지 진화한다. 첨단 기술은 쉽게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협업을 통한 시너지 효과는 쉽게 이루기 힘들다. 이에 팬들의 시성비를 챙기는 동시에 온·오프라인 경험을 사로잡으면서, 사회적 의미를 입히는 컬래버레이션 사례들을 모아본다. 특히, 이러한 사례들은 시성비를 넘어서 시심비에까지 이른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Carolina Panthers
2020년 슈퍼볼 경기 중 구현된 AR ©The Famous Group 홈페이지 캡처
자투리 시간까지 효율적으로! 최첨단 모바일 기술의 향연
- AT&T 스타디움
NFL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홈구장인 AT&T 스타디움은 평소 8만 명, 최대 10만 명까지 수용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초대형 돔구장이다. 이곳은 다양한 첨단 기술을 활용해 팬들이 더욱 경기에 몰입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한다.
경기장을 건설할 당시의 이름은 카우보이스 스타디움이었으나, 2013년 AT&T가 명명권(Naming Right)을 획득해서 지금의 AT&T 스타디움이 되었다. AT&T는 댈러스에 본사를 둔 이동통신 업체로, 전화기를 발명한 알렉산더 벨이 세운 회사로 유명하다. 최신 정보통신 기술과 혁신을 앞세우는 AT&T가, 본사와 같은 도시에 위치한 카우보이스 경기장의 명명권을 사들인 것이다.
©AT&T
전국적으로 5G 통신망을 확보한 AT&T는 AT&T 스타디움을 미국 최초의 5G 지원 경기장으로 만들고, 최첨단 모바일 기술에 기반한 팬 경험 서비스를 경기장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제공한다. 모바일 티켓으로 AT&T 스타디움에 입장하면, 핸드폰을 통해 경기장 위로 우뚝 서 있는 스타 선수들을 만날 수 있다. 증강현실 기술로 구현된 11m 크기의 스타 선수들이 게임 데이 분위기를 고취시킨다.
경기장 내부에는 선수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키오스크가 있다. 핸드폰에 설치한 실시간 데이터 앱(StARview)을 통해 각종 경기 현황을 분석할 수 있는가 하면, AR 게임 등으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
AT&T는 가장 충성도가 높은 스포츠 팬들에게 최신 통신 기술을 시연하고, 댈러스 카우보이스는 AT&T의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스타디움의 홈 팀으로서 혁신적인 움직임에 동참하는 진취적인 이미지를 얻는다. 팬들이 사랑하는 팀의 역사와 문화를 기반으로, 새로운 기술을 통해 현재 경기장의 경험이 더욱 빈틈없이 채워진다.
©AT&T
미래로 나아가는 혁신을 지향하다! 시심비로 새로운 가치 창출
- AT&T 5G 헬멧
이러한 협업은 더 나아가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 제시하면서, AT&T와 카우보이스가 댈러스 지역에서 함께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징적인 사례로 AT&T가 연구 중인 5G 헬멧이 있다.
AT&T가 연구 중인 5G 헬멧은 최신 통신기술을 사용해서 청각장애를 가진 미식축구 선수들의 안전을 도모하는 동시에, 선수들의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혁신적인 기술이 접목돼 있다. 증강현실 기술을 통해 코치와 선수들 간에 작전 지시 및 수행을 원활히 하고, 실시간 데이터 및 영상을 전송하여 게임 전략을 최적화한다. 또한 내장된 센서와 카메라를 통해 선수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충격을 탐지하여 부상의 위험을 줄인다.
이 헬멧은 팬들의 경험 확장으로도 활용 가능하다. 내장된 카메라는 팬들에게 선수들의 시야를 간접 경험할 수 있게 해 더욱 몰입감 있는 경험을 선사한다. 경기 중 선수들의 시야와 현장 목소리를 담아서 소셜미디어로 공유할 수 있는 확장성도 지닌다. 기술의 적용과 활용으로 미식축구 경기에 소외되기 쉬운 선수층에게 희망을 선보이고, 또 하나의 팬 경험 가능성을 엿보게 하면서 미식축구 커뮤니티에 희망을 심는 것이다.
이처럼 최신 기술의 적용은 단순히 팬들의 시간을 확보하는 현재의 시성비 경험을 넘어서 문화적이고 인문학적인 가치창출로까지 이어지는 시심비 작업이다. 특히 업계를 선도하는 기업과 구단의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양측 간에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파트너십 활성화(activation)의 측면에서 여러 시사점을 제시한다.
현재의 시간 효율성을 확보하는 시성비 작업은 단순해 보일 수 있고, 투자수익률을 산정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시성비 작업이 미래로 나아가는 혁신을 지향하는 시심비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새로운 가치가 창출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구단에서 막연하게 미래지향적인 계획만 구상하는 것은 뜬구름 잡는 공치사로 보일 수도 있다. 특히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팬들과의 공감대를 실시간으로 확인하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팬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창구 중 하나가 소셜미디어다. 구단의 새로운 시도들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확인할 수 있다.
©AT&T
선수들의 경기장 밖 시간, 온라인 팬들의 즐거움이 되다
- 비하인드 더 신 behind-the-scenes
소셜미디어에서의 반응이 팬 경험과 고객 참여의 척도로 활용되면서 여러 구단에서 검증된 프로스포츠 콘텐츠들도 있다. 바로 구단에서 독점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 비하인드 더 신(behind-the-scenes) 영상들이다.
비하인드 더 신 영상은 경기가 중계되는 시간 외에 막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스토리텔링으로 이루어진다. 락커룸과 훈련장에서 이루어지는 선수들의 교감에 따라 팬들은 구단의 분위기를 감지하고 늘 함께하는 동지의식도 느낀다.
일상 영상을 공유하는 인터넷 채널이 BTS의 팬덤 형성에 큰 몫을 했듯이, 프로 구단들도 비하인드 더 신 영상을 통해 팬덤을 끌어들인다. 선수들의 사생활이 줄어든 측면도 있지만, 선수들도 일상 영상을 올리는 채널의 역할을 잘 알고 프로답게 대응한다. 손흥민 선수만 보더라도 경기장에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비하인드 더 신 영상으로 팬들과 만난다. 경기장 내외를 비추는 미디어에서 노출될 때마다 친근하고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 일관된 이미지를 형성한다.
NFL 필라델피아 이글스는 선수들의 사생활도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보여주면서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경기 결과나 하이라이트 영상보다 독점적인 비하인드 더 신 영상들이 더 많은 조회수와 좋아요를 얻는다. NBA 팀들은 히스패닉 팬층을 공략하기 위해 히스패닉 계정을 따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팬층에 따라 포스팅이 맞춤 제작되기도 하지만, 팬들 반응의 온도도 언어와 지역마다 천차만별이다. 히스패닉 팬들은 팀의 대소사에 대해 더욱 열정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인다.
특히 구단 채널에서 선보이는 라이브 영상들은 경기 전후 분위기와 현장감을 고조시키고, 이벤트성 예능 영상들은 팬들의 반응을 살피고 소통할 수 있는 중요한 창구 역할을 한다. 경기 시간 외에도 실시간으로 채팅창에서 소통하면서 여럿이서 공유하는 시간을 늘린다.
©@philadelphiaeagles
©@spursofficial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공감대 형성이 중요
- 모든 순간, 팬들을 사로잡아야
우리 구단의 팬 성향과 공유되는 문화의 의식을 감지하고, 거기에 발맞추려는 노력은 한순간에 이루어질 수 없다. 점진적으로 양방향 소통을 늘려가며, 경기 외의 시간에도 ‘팬심’을 파악해야 한다. 구단의 본 계정에 반응이 많으면 정말 감사할 일이다. 팬들의 온라인 참여가 주로 자발적으로 운영하거나 따로 유기적으로 형성된 팬페이지를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분절된 커뮤니티를 하나로 연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구단의 색깔과 공동체 문화를 함께 그려 나아간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이 중요하다.
한 편의 교향곡처럼 조화로운 팬 경험을 위해서는 절대적인 시간을 채우는 시성비와 시성비 경험이 가지는 의미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시심비까지 고려해야 한다.
첨단 기술을 적용한 시간 단축은 팬 경험 향상을 위한 서곡에 불과하다. 기술을 가치와 조합하여 의미를 만들어내고, 그 의미에 팬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킬 때 스포츠 문화는 팬들의 삶에 선물이 되고, 팬들은 조화로운 심포니에 초청된 관객이 된다.
시간 효율성 시대에는 지휘되지 않는 것이 없다. 프로스포츠는 모든 순간, 팬들의 몰입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
'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송작가 뉴미디어 저작권 법제화를 위한 협의체 구성 착수 (2) | 2024.07.16 |
---|---|
TV 앞 지키는 ‘중·장년층’ 잡아라?··· 놓칠 수 없는 ‘2049’의 지지 (2) | 2024.07.11 |
TV가 된 유튜브 (6) | 2024.06.18 |
‘K-콘텐츠 해외 소비 1위’ 웹툰의 성공 비결은? (1) | 2024.06.17 |
K-팝, 이젠 시작부터 글로벌 (5) | 2024.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