癸酉蓮花(계유연화)
- 컬럼
- 2024. 6. 25.
[출처 :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웹진 2024년 5월호]
김성수 한국방송작가협회 회원
PBC-R <PBC 대행진>
SBS-R <서울전망대>, <스포츠저널>
MBC-R <오늘의 스포츠>
TBC-R <남산의 아침>
EBS-R <EBS 정보광장>
국군방송 <국민과 함께 국군과 함께>,
<일요일에 만난 사람>, <다큐드라마 군인 성공시대>
현재 도서출판, 정치컨설팅 기획사 레오 커뮤니케이션 운영
어머니가 태어나신 해는 1933년, 계유년(癸酉年)이다. 이 해는 일본 쇼와(昭和) 8년으로 일본제국주의 칼날이 가장 날카롭게 벼려진 시기였고, 식민지 조선의 상처는 아물 수 없는 깊은 옹이를 남기고 있었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중국 또한 만주를 빼앗긴 ‘상실의 시대’였다. 부산과 봉천(奉天, 펑톈은 중국 선양의 옛 이름이다.) 간 특급열차 운행이 개시되었다. 식민지 조선과 괴뢰국(傀儡國) 만주 사이를 오가며 착취와 수모를 강요하던 시절이었다. 어머니 열두 살에는 광복절이 있었고, 열일곱 살에는 한국전쟁을 직접 체험하셨다. 이것은 한국 현대사에 비춰 본 어머니의 인생사를 거칠게 나열했을 뿐이다.
어머니는 일곱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계부(繼父)와 사이가 안 좋아 이모 댁으로 피신(避身) 했다. 그 후 의붓아버지는 장사를 하겠다며 남북한을 오가다가 한국전쟁 직전 철책선이 설치되면서 인민군에 붙잡혀 옥살이했다고 한다. 이때 그는 동상으로 손가락 발가락을 모두 잘라야 했다. 1970년대에 어머니가 계부와 배다른 동생 부부에게 시장 상점을 알선해 주면서 두 사람은 화해할 수 있었다.
한국전쟁은 어머니에게도 엄청난 재앙이었다. 약혼자가 총살당했고, 여동생 연진은 화상으로 끝내 숨졌다. 어머니는 정혼자가 있었는데, 그는 곧 인민군에 입대해야 했다. 정혼자의 가족들은 입대 전 결혼식을 올려야겠다고 생각해 입대일 직전 결혼식을 하자고 제안했다. 어머니의 계부와 친정어머니는 수락했지만 입대일이 빨라졌다. 전쟁 상황이 긴박해진 것이다. 약혼자는 결혼식을 마치고 입대할 생각으로 동네 인근에 숨었다. 하지만 밀고자가 나타나 그의 신고로 약혼자는 공개 처형, 총살당하고 만다.
어머니의 여동생은 폭침에 사망했다. 여동생은 언니에게 물려받은 ‘세루치마’를 끝내 벗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세루치마를 평소에도 두 번이나 걷어 올리고 다닐 정도로 언니의 세루 치마를 좋아했는데, 폭격이 있던 날도 그 치마를 입고 친구들과 놀다가 사고가 났다. 사고 당시 어린 소녀들은 여동생의 치마에 불이 붙은 것을 보고도 어쩔 줄 몰라 했고, 당사자도 소리 지르며 겅중겅중 뛰기만 했다고 한다. 언니에게서 물려받은 긴 세루치마를 벗어던지지 못해 그녀는 끝내 목숨을 잃었다고 어머니는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필자가 어머니의 인지증(認知症, 일본에서는 치매(癡呆)를 이렇게 부른다. 치매가 주는 한자 의미를 순화시키자는 의미이다. 필자도 앞으로 치매 대신 이런 식의 표현을 쓰자고 제안한다.) 환자 시절 들은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그냥 묻히기엔 너무 아까운 이야기들이다.
돌이켜보니 어머니는 내게 원하는 것이 거의 없으셨다. 늘 “네게 제대로 못 해줘 미안하다, 내가 참 고생 많이 시켰다”라는 말씀뿐이었다. 나는 ‘미안할 거 없는데···’ 생각하면서도 한 번도 입 밖으로 내본 적이 없었다. 지금에서야 후회되는 부분 가운데 하나다.
어머니는 내게 원하시는 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세례를 받을 것과 또 하나는 책을 쓰는 것이었다.
어머니 생각이, 정신이, 의사소통이 자유스러웠던 시절, 일상적이었을 때 하루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 죽기 전 소원이 있는데, 들어주시겠나?” 이 얼마나 무서운 협박인가? 죽기 전 소원이라니, 뭔가 불만 덩어리가 가슴에 있으신 게 분명했다. 나는 이유도 묻지 않고 그러겠노라 했다. 그랬더니 검은 책 두 권을 내미시면서, “성당 좀 다녀주시게” 하셨다. 나는 성경과 찬송가를 받아 본 순간 허탈했다. ‘그까짓 게 뭐 대수라고’ 죽기 전 마지막 소원이란 말씀까지 하시면서 협박을 하셨을까, 그래서 바로 다음 날 성당을 찾아갔다. 하지만 성당 다니는 것도 만만치 않았다. 6개월간 매주 하루도 빠짐없이 성경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쉽지 않았다. 어렵게 어렵게 성경공부 시간을 때워 갈 무렵 담임 수녀님이 숙제를 내주셨다. 신약 복음서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 필사해 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구어체로 풀어 쓴 가톨릭 성경보다는 개신교 성경이 마음에 들었다. 고등학교까지 다녔던 개신교 영향도 있으리라.
그래서 마태복음을 써갔다. 가톨릭 성경과 개신교 성경을 거의 비슷하다. 어미와 조사, 그리고 사람 이름이 조금 다를 뿐이다. ‘마태복음’이 가톨릭에서는 ‘마테오복음서’로 읽히는 것 같은 경우다. 이 정도 차이였는데, 수녀님은 단호했다. 가톨릭 성경으로 다시 써 오라는 것이었다. 와,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속세처럼 따지고 들 문제는 아니다. 할 수 없이 나는 다시 썼다. 이번에는 마가복음, 마르코복음서를 썼다. 그래서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다. 세례명은 레오(LEO), 내 회사 이름이다. 보통 자신의 생일에 포함된 성인 이름을 세례명으로 삼는다고 했지만, 난 레오를 고집했다. 어쨌든 어머니 바람은 하나 이뤄 드렸다.
어머니의 나머지 소원은 쉽지 않았다. 책을 쓰는 것, 이게 그리 쉽던가? 유령작가로 정치인들 자서전 쓰는 건 몸에 뱄으니 그럭저럭 쓸 수 있지만, 어머니 이야기를 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우선 인터뷰가 문제였다. 어머니 삶을 정확히 알아야 글을 쓸 것 아닌가? 그래서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 어머니를 인터뷰했다. 이것이 귀찮아질 무렵 나는, 어머니께 새로운 제안을 했다. 당신 삶을 글로 써 보라는 숙제였다. 그래야 어린 시절 가물가물했던 기억도 다시 새롭게 나고 생각도 정리된다며 어머니를 꼬드겼다. 이를 핑계로 나는 어머니와의 미팅을 일주일에서 이 주, 그리고 한 달에서 두 달로 점점 늘려갔다. 어머니는 아들놈 속셈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정말 열심히 쓰셨다. 처음에는 어머니조차 알아볼 수 없었던 원고가 점점 좋아졌다. 그리고 원고지 키가 내 허리에 이를 정도였다. 이것도 어머니가 인지증을 앓기 전, 5년 전 이야기다.
아! 그 원고를 잃어버렸다. 상계동에서 경기도 화정으로, 다시 목동으로 이사하는 사이 시나브로,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새 나가듯이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책을 써야 할 것 같다.
어머니의 부탁, 하나 남은 소원을 이뤄드려야 할 것이다. 인지증을 앓기 전까지 어머니는 책 제목, ‘계유연화’도 알고 계셨다. 어쩌면 ‘카테터(Catheter 환자의 소화관이나 방광, 기관지, 혈관의 내용물을 빼내기 위해, 혹은 반대로 약제나 세정제, 음식물 등을 신체 내부로 주입하기 위해 쓰이는 고무 또는 금속제의 가는 관)를 낀 상태여서 말은 못 하셨지만,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기억하고 계셨을 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코로나19 끝 무렵인 2022년 9월 유명을 달리하셨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내게 부채감으로 남은 어머니 이야기를 완성할 생각이다. 이것은 어머니 희생과 사랑에 대한 보은(報恩)이 될 것이다.
끝으로, 어머니 성함은 경주 최(崔)에, 연꽃 연(蓮), 꽃 화(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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