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에서 걷다가 또, 바라보다가
- 여행
- 2022. 10. 19.
창원에서 걷다가 또, 바라보다가
글. 임혜경 사진. 정우철
남들 따라 가본 팽나무가 시작이었다. 그러다가 만난 가을날, 창원의 모습들. 작위적인 모습 없이, 자연 그 자체였던 창원의 모습을 돌이켜 보니 시작이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기분 좋게 가을을 시작하고 싶다면, 창원이 어떨는지.
창원의 재발견
창원이 뜨고 있다. 여행지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창원특례시의 북부리 동부마을이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나오면서부터다. 드라마의 주요 촬영지는 아니고, ‘소덕동 이야기’ 에피소드의 배경이 북부리 동부마을이었다. 500년 된 팽나무가 나오면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끈 것이다. 드라마를 보면서도 시선을 압도하는 거대한 팽나무에 어느 곳에 있는지, 호기심이 생겼었는데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나 보다.
창원을 뜨게 만든 팽나무를 보러 창원으로 향했다. 창원중앙역에서도 20여 분을 달리면 작은 마을이 하나 나오는데, 정겨운 모습을 간직한 마을에 들어서자 마치 시골 할머니 댁에 왔다는 느낌이 든다. 아직 추수 전인 노란 벼, 들녘에 핀 호박꽃, 나팔꽃, 주렁주렁 달린 호박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런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마을 초입에 주차를 하고, 이정표를 따라 움직였다. 갑자기 인기를 얻게 돼서 인지 마을 주변은 관광지 느낌이 나는 상점이나, 흔한 음료를 파는 곳이 없었는데 부녀회에서 임시방편으로 시원한 먹거리를 판매하는 부스를 마련해 놓은 게 인상적이었다. 드라마의 장면들을 그려놓은 벽화, 어느 주민이 나무로 뚝딱 만들어 놓은 손글씨 이정표도 마찬가지.
마을 곳곳에 때 묻지 않은 느낌들이 마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부디, 시간이 흘러서도 이 정겨운 모습들이 그대로 간직되어야 할 텐데….
“소덕동 언덕 위에서 함께 나무를 바라봤을 때 좋았습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대사 中
팽나무와 주변을 돌아보면
언덕을 조금 올라가면 보이는 팽나무의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외지 사람들이 봐도 위엄 있는 팽나무는 꽤 오래전부터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1980년대 이전, 북부리에는 많은 주민이 북적거리며 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농현상으로 지금의 가구만 남게 되었고, 남은 주민들은 오순도순 농사를 전업으로 하며 마을을 지키고 있다. 그들의 삶과 함께 해온 게 팽나무인데, 마을 뒤편 묵묵히 자리하며 때로는 쉼터로, 때로는 마을 아이들의 놀이터로 지금까지 그 역할을 톡톡히 하는 중이다.
팽나무 아래서 바라보는 마을의 모습도 장관이지만, 개인적으로는 팽나무를 등지고 바라보는 풍경이 아직도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다.
팽나무 뒤편에는 ‘대산문화체육공원’이라는 이름으로 넓디넓은 공원이 하나 있는데 팽나무 언덕에서 바라보면 그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알고 보니 그곳은 마을 사람들의 산책로로,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는 라이더들의 필수 코스로, 낚시꾼들의 성지로 사랑받고 있는 곳이라고. 아직은 가시지 않은 더위에 해가 뜨기 전부터, 그 길을 따라 산책하는 사람들을 몇몇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을 따라 천천히 걸어본다. 조용한 분위기에 오며 가며 생각에 잠기기도, 쉬어가기도 참 좋은 곳인 것 같다.
그리고 이대로 돌아가는 게 못내 아쉬워 다시 팽나무 언덕으로 올라가 주변을 눈에 담았다. 드라마가 방영될 때에는 사람이 줄을 설 정도로 많았다는데, 알려진 것은 좋으나 마을 주변의 자연이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며 발길을 옮겼다.
자세히 보니 더 예쁜
북부리 팽나무에서 한참 시간을 보낸 뒤, 가을의 정취를 조금 더 느끼고 싶어 주변을 돌았다. 주변을 맴돌다가 알게 된 주남돌다리는 팽나무의 인기로 함께 뜨고 있는 곳. ‘주남새다리’라고도 불리는데, 간격을 두어 돌을 쌓아 올린 뒤 위에 평평한 돌을 걸쳐놓았다. 집중호우로 붕괴된 것을 1996년, 창원시에서 복원했다고 한다. 주변에는 큰 느티나무가 있어 주남돌다리에 걸터앉아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다. 다만, SNS에서 돌아다니는 주남돌다리만을 보고 간다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돌다리와 느티나무가 다인지라 사진만 찍고 오기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주남돌다리를 보고, 주남저수지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농업이 생업인 주민들이 홍수피해를 막기 위해 9km에 걸쳐 4~5m 높이의 제방을 쌓아서 지금의 모습이 된 주남저수지는 철새 도래지로도 유명하다. 산책로가 워낙 잘 되어있는 덕분에 마을 주민들이나 관람객들은 산책을 하러 자주 찾는다고 한다.
주남저수지를 걷다가 멀리 보이는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아름다워 무작정 그곳으로 향했다. 푸른 나무들이 만들어주는 그늘이 더위를 식혀줄 듯했기 때문. 정확한 목적지는 죽동마을 메타세쿼이아 길이다. 알고 보니 이곳은 팽나무와 주남저수지를 찾는 여행객들이 자연스럽게 들르는 여행 코스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추수를 앞둔 벼와 시원하게 뻗은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어우러진 그림 같은 풍경을 보면, 길을 가다가도 멈춰 서고 싶다.
걷다가 보다가를 반복하다가 끝이 난 창원에서의 하루. 너무 번잡하지 않은 자연을 오롯이 간직한 모습이 좋아서 그랬나 보다. 발이 가는 대로, 시선이 멈추는 대로 편안하게…. 특별한 게 없어서 더 특별했던 창원이라 더 오래 기억될 것만 같다.
걷다가 보다가를 반복하다가 끝이 난 창원에서의 하루.너무 번잡하지 않은 자연을 오롯이 간직한 모습이 좋아서 그랬나 보다. 발이 가는 대로, 시선이 멈추는 대로 편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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