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걸음마다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함안
- 여행
- 2022. 10. 13.
발걸음마다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 함안
맑고 밝은 하늘과 부드러운 바람 속에서 자꾸만 걷고 싶은 가을, 가깝고 익숙한 곳에서 벗어나 낯선 세계로 향하고 싶다면 함안으로 가자. 푸르른 자연과 오랜 역사를 품은 곳이 좋고, 잠잠한 사찰이나 고택에서 마음이 풀리는 이들이라면 더더욱. 발걸음마다 또 다른 세계로 향하는 신비와 오래된 새로움 속을 걷는 기쁨이 있는 함안에 틀림없이 끌릴 것이다.
처음 만나는 아라가야 순례
경상남도 한가운데 위치한 함안은 연맹국가였던 가야의 6개국 중 ‘아라가야’의 땅이었다. 금관가야나 대가야에 비해 낯설게 다가오지만, 1500년 전 가야에서는 ‘형님의 나라’로 불렸던 찬란한 문화가 서려 있다. 함안 가야읍에 위치한 함안말이산고분군은 아라가야의 기세가 얼마나 강대했는지 증명한다.
말이산(末伊山)은 ‘머리산’의 소리음을 따서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우두머리의 산’, ‘왕의 무덤이 있는 산’이라는 의미다. 해발 60m 안팎의 야트막한 구릉지대 능선을 따라 파도처럼 솟은 대형 봉분이 무려 37기에 이른다. 발굴 조사를 통해 밝혀진 113기를 포함해 고분의 흔적만 있거나 아직 발굴되지 않은 것을 포함하면 1,000여 기의 고분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13년 프랑스 파리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기도 했다.
함안말이산고분군은 함안군청에서 올라가는 방법과 함안박물관에서 올라가는 방법 두 가지가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진리. 함안박물관에서 아라가야 역사와 문화의 숨을 먼저 느낀 후 고분군으로 향하는 것을 추천한다.
산이라기보다 줄지어 늘어선 큰 언덕 같은 고분군은 제주의 오름처럼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대나무 우거진 길과 수풀 무성한 계단을 오르는 재미가 있고, 분봉 13기부터 37기까지는 오솔길을 따라 걷는 즐거움이 있다. 산 정상에 서면 커다란 고분 너머 함안 도심의 풍경이 중첩된다. 시공간을 초월한 아름다움에 아득해진 마음이 오랫동안 머문다.
고분길을 걷다 보면 한 그루 나무가 눈에 띈다. 이곳이 바로 아라가야 600년 역사를 지닌 고분과 함께 인생샷을 남길 수 있는 절호의 장소다. 주말이면 함안박물관에서 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도 들을 수 있다.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10시 30분, 오후 2시, 오후 3시에 함안박물관 내 북카페에서 열린다.
가을 숲을 거닐다
아라가야 역사의 숨결을 채웠다면, 다음은 가을로 충만해진 자연의 숨결을 채울 차례다. 입곡군립공원은 ‘긴 골짜기로 들어가는 입구’를 뜻하는 이름에 걸맞게 물과 바위, 숲이 우거진 협곡의 세계로 안내한다. 좁고 길게 뻗은 저수지를 중심으로 왼쪽은 기암절벽에 우거진 소나무 숲이, 오른쪽은 활엽수와 침엽수가 뒤섞인 숲 터널이 이어진다. 피톤치드를 흠뻑 들이키며 걷는 입곡군립공원의 둘레는 약 4km. 느린 걸음으로 2~3시간 트레킹하기에 적당한 거리다. 저수지를 가로지르는 초록빛 입곡출렁다리는 바라볼 때는 아름다움을, 걸을 때는 짜릿함을 선물한다.
가족이나 일행과 함께라면 아라힐링카페의 무빙보트와 하늘자전거를 이용해 수상 산책을 해보는 건 어떨까. 물에 뜬 우산처럼 보이는 무빙보트는 8명까지 탈 수 있는 둥근 모양의 배다. 조작이 쉬워 탑승자가 직접 물 위를 자유롭게 오가며 뱃놀이를 즐길 수 있다. 하늘자전거는 두 가지 타입이다. 스릴을 맛보고 싶다면 탑승자 스스로 페달을 굴리는 11m 상공의 사이클을, 편안하게 너른 풍광을 눈에 담고 싶다면 전동장치로 운행되는 바이크를 선택하면 된다.
입곡군립공원에는 숨은 비경이 있다. 진입로에서 오른쪽으로 난 등산길 전망대에서 만날 수 있는 장면인데, 굽이진 입곡저수지의 모습이 영락없는 한반도의 모습을 연상시켜 입소문을 탔다.
꽃길을 걸어 해 저무는 곳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제방이 있는 함안악양둑방은 왕복 6.5km 거리를 자랑한다. 노닐 듯 흐르는 남강과 금빛 모래사장이 펼쳐지고, 드넓은 둔치마다 계절 꽃 잔치가 열린다. 악양둑방길과 악양루, 악양생태공원으로 이어지는 가을 꽃길은 코스모스, 메밀꽃, 댑싸리, 핑크뮬리가 엄청난 규모로 피어난다.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주인공은 단연 핑크뮬리. 9월 말부터 피기 시작해 11월 절정에 이른다. 아련하게 일렁이는 분홍빛 물결 속에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시간이 아로새겨진다.
악양둑방길 끝에는 악양루가 있다. 조선 철종 8년(1857년)에 처음 세워진 정자로 시간과 전쟁의 풍파를 겪은 후 1960년대에 손질해 고쳐졌다. 넓은 제방과 들, 남강의 물줄기가 한눈에 들어오는 절경을 품고 있다. 특히 해 저무는 시간에 오르면 붉어지는 하늘과 끝 간 데 없는 남강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그림 같은 황홀감을 선사한다.
빛에 따라 변하는 구릉, 물, 모래, 꽃, 숲의 아름다움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이 가을 함안으로 떠나자. 오래된 새로움이 깃든 함안을 걷다 보면 고대 로마인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걸으면 해결된다(Solvitur Ambulando)’는 라틴어 경구도 절로 이해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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