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랐어, 가을이 이리 다채로운지 : 강원도 정선 드라이브 여행 문지채
- 여행
- 2022. 11. 17.
몰랐어, 가을이 이리 다채로운지
강원도 정선 드라이브 여행 문지채
어느새 가을이 훌쩍 찾아왔다. 성급하기도 하지. 그동안 짧아서 아쉬웠던 가을을 이번에는 제대로 누리리라.그렇다면 조금 부지런할 필요가 있겠다. 가을의 온도를 느낀 어느 날, 강원도 두메산골 깊은 곳으로 드라이브를 다녀오기로 했다.목적지는 가을의 다채로운 매력을 한데 품고 있는 정선이다.
59번 국도의 남다른 매력
강원도 평창에서 정선으로 향하는 길을 좋아한다. 사방으로 높이 솟은 산봉우리들, 깊은 골짜기를 흐르는 물줄기와 그 곁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지는 59번 국도. 통행량이 많지 않다는 점을 비롯해 여러 여건상 도로 개량 공사를 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꽤 오랫동안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었던 길이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어느 정도는 편안하게 달릴 수 있는 길이 되었지만, 여전히 강원도 내륙 지역이 품은 백두대간 고유의 정취만큼은 그대로다.
59번 국도는 정선아리랑시장이 있는 읍내를 가볍게 스친다. 북적거리는 읍내보다야 때 묻지 않은 자연이 더 낫지 않느냐며 손짓을 하는 것만 같다. 그렇다면 따를 수밖에. 그렇다고 마냥 59번 국도만 달리는 것은 아니다. 잠시 국도에서 벗어나 정선의 가장 구석진 마을을 찾아 무작정 탐험가 정신을 발휘해보기도 한다. 워낙 산세가 깊은 탓에 길의 끝자락이 막혀 있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괜찮다. 그곳으로 향하는 동안 창문 밖으로는 그야말로 그림이 펼쳐지니까.
가을의 시간이 시작되는 곳
그렇게 찾아간 곳이 문치재라는 곳이다. 해발고도 1,000m를 우습게 넘어서는 봉우리 사이에서 ‘그나마’ 낮은 높이인 732m의 고갯길이다. 그 형상이 마치 거대한 산의 한가운데 뚫린 문과 같다며 문치재라는 이름이 붙었단다. 지그재그로 이어진 길을 천천히 넘다 보면, 그저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있을 뿐임에도 숨이 차오르는 기분이다.
지금의 S자 도로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아마 이 길이 놓이기 전까지는 웬만한 체력을 자랑하는 봇짐꾼들도 쉽사리 넘나들지 못했을 터. 그 정도로 경사가 심하다.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이 많아져 전망대가 생기기도 했지만, 예전에는 그저 삶의 애환이 가득 스며든 고갯길이었을 뿐이라는 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길을 가운데 두고 양옆으로 솟은 산은 거의 대칭한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빚어냈다고 해도 될 정도로 완벽한 협곡이다. 그야말로 두메산골인 문치재 너머에도 사람이 산다. 동북리 일대에는 수십 년 전에 화전으로 시작했을 법한 밭이 곳곳에 자리한다. 깨끗한 자연, 700m 지점의 고랭지라는 점을 내세워 배추와 깨 등의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문치재를 넘는 유일한 도로는 서예가가 큼지막한 붓으로 휘갈긴 것처럼 한 지점으로 향한다. 누군가가 그 끄트머리에 붉은색 점이라도 하나 찍어놓은 걸까. 사방으로 아주 조금씩 단풍의 화사한 빛깔이 퍼져나가기 시작한다. 가을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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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성이 절로 나오는 풍경, 소금강계곡길
정선 곳곳에는 어디에서도 쉬이 볼 수 없을 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운 절경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곳은 소금강계곡이다. 어천을 중심으로 화암리에서 몰운리까지 이어지는 4km 길이의 소금강계곡은 자연이 만들어 낸 역작이다. 어찌나 아름다운지, 선조들도 이곳에 최고의 찬사처럼 여기는 이름을 붙이지 않았나. 작은 금강산을 의미하는 ‘소금강(小金剛)’이라는 이름을.
작은 금강산답다. 진부한 표현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그 말이 딱 들어맞는 풍경이 이어지니 말이다. 100~150m 높이의 기암괴석이 길을 따라, 계곡을 따라 솟은 채 오가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울창한 숲 사이에서 한껏 존재감을 과시하는 바위들은 누군가가 정성껏 깎아내지 않고서야 나올 수 없을 법한 자태를 자랑한다. 계곡이 밀어낸 바람이 소금강의 바위 사이를 유영할 때마다 이리저리 날아드는 낙엽이 가을의 감성을 한껏 자극하기도 한다. 탄성이 절로 나오는 순간이다.
여름철 피서지로 인기가 높은 계곡이지만, 깊어가는 가을이 선사하는 마지막 공연만큼 화려할 때도 없다. 창문을 활짝 열고 소금강계곡을 따라 달려보자. 달리는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을 거다. 나도 모르게 멈추어 서고 싶다는 생각이 찾아오고야 말 테니까. 우리의 마음을 이미 안다는 듯이 곳곳에 쉼터와 주차장이 있다. 유명한 바위를 찾아 그 이름과 형태를 비교해보는 것도, 잠시 계곡에 내려가 맑디맑은 물에 손끝을 적셔보는 것도 좋다. 소금강계곡길을 따라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등산로와 오솔길도 조성되어 있으니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반짝이는 억새, 황홀한 노을
소금강계곡길에서 고개를 하나 더 넘으면 무릉리에 닿는다. 그 유명한 민둥산이 있는 마을이다. 가을의 정취를 찾아 이곳까지 왔다면, 민둥산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이름처럼 정상부에 나무가 거의 없는 민둥산에는 대신 억새가 가득하다. 억새는 가을마다 새하얀 꽃을 피워내는데, 이들이 한데 모여 이리저리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바다의 파도를 보는 것만 같다. 장관이다.
무릉리에서 민둥산까지 오르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주차장에서 한 시간 남짓이면 정상부에 도착한다. 숲을 지나 탁 트인 하늘을 마주할 즈음, 마중을 나온 억새 무리가 반갑게 손 인사를 건넨다. 정상석 옆에 올라 사방을 살피는 순간 가을을 한껏 머금은 억새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민둥산의 정상부는 독특한 모양새로 이루어져 있다. 제주의 오름과 닮았다. 화산체는 아니다. 땅속 석회암에 물이 닿아 녹아내리면서, 지반이 푹 꺼져 만들어진 카르스트 지형이다. 유려한 곡선, 마치 화산의 분화구처럼 가운데가 쏙 들어간 지형이 어우러지며 이색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능선을 따라 산책로가 있다. 슬렁슬렁 억새밭의 한복판을 거닐어보기를 바란다.
이왕이면 늦은 오후에 민둥산 산행에 나서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도 높다는 가을의 하늘을, 저 멀리 서쪽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을 만나기 위함이다. 해가 서쪽으로 솟은 능선 사이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억새 군락지가 점점 반짝이기 시작한다. 짙푸른 하늘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시간은 그저 찰나일 뿐이다. 그래도 괜찮다. 그 뒤로 길게 이어지는 핑크빛 여운이 아쉬운 마음을 대변할 테니까.
문치재를 넘는 유일한 도로는
서예가가 큼지막한 붓으로 휘갈긴 것처럼 한 지점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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