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Nov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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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좋은 도시가 좋은 도시다

걷기 좋은 도시가 좋은 도시다

글.이민정 기자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도시교통 계획 및 정책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20세기에 대두된 자동차 중심의 저밀도 도시가 확산됨에 따라 교통혼잡, 에너지 과소비, 대기오염, 기후변화 등 수많은 도시문제가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중교통 중심 개발, 차 없는 도시, 보행친화도시 등을 구호로 내세우며 전통적인 차량 중심의 거리를 사람 중심의 거리로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보행자 사망자 수 0%, 노르웨이

미국 IT 전문 매체 ‘와이어드(WIRED)’에 따르면 2019년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에서 보행자와 사이클리스트(Cyclist) 사망자 수가 ‘제로(0)’를 기록했다. 물론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 자체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또한 교통사고가 아닌 운전자가 울타리에 들이받아 사망한 건에 불과했다. 이는 실로 엄청난 기록이다. 가까운 예로 같은 해 영국 런던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보행자 사고 73명, 사이클리스트는 6명이었으며, 미국 뉴욕은 보행자 사고 121명, 사이클리스트 28명, 그리고 218명이 교통사고로 생명을 잃었다. 우리나라도 2019년 기준, 246명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는데, 그중에서 보행자 사고는 144명으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오슬로는 어떻게 그러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을까. 오슬로의 위업은 해당 시의 정치적 분위기와 대중의 의지가 한데 모여 더 이상의 교통사고 사망자를 수용하지 않기로 태도를 바꾸면서 시작됐다. 시민과 시의회 등이 자동차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도시를 전환하는 것에 의사를 일치시켰다. 특히 교통사고로 인한 사고 근절이 목표인 해당 시의 캠페인 ‘비전 제로(Vision Zero)’의 실행이 큰 도움이 됐다. 오슬로는 도심 길가에 마련된 주차 공간 1,000여 곳을 없애고, 시민에게 편리한 공공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촉구했다. 또 자전거 도로와 보도를 증설하고 교통사고 발생 위험이 높은 지역에는 자동차 진입을 전면 금지했다. 대표적인 예로 초등학교 주변에 설치된 ‘하트존(Heart zones)’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일각에서는 도시의 보행자화가 지역 산업을 저해한다는 등의 반대 의견도 존재했다. 하지만 이는 오해다. 오슬로의 성공으로 도시의 보행자화가 시민의 목숨을 구할 뿐 아니라 비즈니스에도 도움이 된다는 증거가 늘어나고 있다. 자동차 수가 줄어들자 놀랍게도 도심을 방문하는 사람 수가 10% 증가했기 때문이다. 루나 요스 오슬로 교통부 담당자는 이를 두고 “도심부에 사람이 모이게 되면서 세계 다양한 브랜드가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거리에 출점하고 싶어 하게 됐다. 이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소비자가 이러한 거리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는 점과 자동차로 왔을 때와 동일하게 여전히 소비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교통량이 줄어들자 대기오염도 크게 줄어 인근 주택 부동산의 수요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자동차가 필요 없는 도시들

한편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오슬로 이외의 도시에서도 이러한 시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도시 지역 인구가 1,070만 명인 대도시인 콜롬비아의 보고타의 사례가 있다. 보고타는 세계적인 보행친화도시로 알려져 있는데, 버스·자전거 타기를 통해 교통량을 대폭 줄이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소시키는 데 성공했다. 특히 1982년부터 일요일마다 ‘자동차 없는 일요일(Car Free Sunday)’을 시행하여 도시 주요 간선도로를 자전거 도로로 전환하는 시클로비아(Ciclovia, 자전거 길)를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보고타는 자전거 천국이 됐다. 나아가 2000년부터는 고속버스 노선 네트워크인 트랜스밀레니오(TransMilenio)를 운영하면서 대중교통 시스템을 개선했다. 매일 약 150만 명의 승객을 1,500여 대의 버스로 운송하면서 도시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약 40%가량 감소시켰다.

또한 도시 지역 인구가 560만 명인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대도시 바르셀로나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선보여 화제를 모았다. 바르셀로나는 성 파밀리아 성당을 비롯한 수많은 유적지와 관광지를 보유해 유럽 최고 수준의 관광객을 유치하는 곳이다. 그렇다 보니 다른 곳보다 교통량이 많아 교통체증도 심하고 온실가스를 비롯한 대기오염 배출이 많은 편이다. 이에 바르셀로나시 당국은 2013년 도시 이동 계획을 수립하여 버스 노선 개선 및 자전거 도로·보행로 확충을 진행했고, 저공해 지역(Low Emission Zone)을 설정해 교통 혼잡 시간에는 도심 지역에 이산화탄소 고배출 차량의 진입을 금지했다. 동시에 도시 개발 시에 혁신적인 도시 디자인 콘셉트인 슈퍼블록(Superblock)을 적용하여 자전거와 도보를 장려하는 보행자 친화적 도로와 넓은 녹지 공간을 만들었다. 도시 형성의 기본 단위인 만사나(Manzana, 블록)를 9개씩 묶어서 차량 통행량을 줄이고, 도로변 주차장을 지하 주차장으로 전환하는 슈퍼블록 프로젝트를 통해 교통량을 줄이면서 소음 공해 및 배기가스 배출을 감소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밖에도 독일의 드레스덴, 퀄른, 오스트리아의 빈, 캐나다의 캘거리를 비롯해 여러 도시에서는 보행자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을 늘리기 위해 도시의 광범위한 지역을 자동차 진입 금지로 정했다. 안 이달고 프랑스 파리 시장은 시를 상징하는 리볼리 거리에 일반 차량 진입을 금지했다. 그녀는 팬데믹 사태 종료 후 자동차가 판치는 파리로 되돌아가는 것에 대해 ‘불가능하다’라고 발언해 눈길을 끈 바 있다. 밀라노에서도 35km에 이르는 시내 도로에 보행자·사이클리스트 전용 공간이 마련될 예정이다.

 

보행자들의 천국을 기다리며

미국의 저명한 도시계획가이자 디자이너인 제프 스펙은 ‘걸어 다닐 수 있는 도시(원제 Walkable City)’라는 책에서 ‘보행친화성(Pedestrian-Friendly)’ 혹은 ‘워커빌리티(Walkability)’에 그 도시의 흥망성쇠가 달려있다고 말했다. 보행친화성이란 한 곳에 집중되었을 때 힘을 발휘한다. 도심이 지금보다 훨씬 더 걷고 싶은 보행자들의 천국이 될 때 도시 전체가 좋아진다. 변화는 바로 이렇게 시작된다.

머지않아 앞으로는 어떤 도시에서든 보행자용으로 지정되는 공간이 더욱 늘어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자동차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장애인이나 고령자 등 이동이 불편한 사람에게는 자동차가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 대중교통의 확충 등 대책을 병행하면서 보행자의 편리성과 안전성을 중점적으로 고려한 보행자들의 천국을 한 번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출처 : TS한국교통안전공사 TS매거진 9+10월호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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