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November

kyung sung NEWS LETTER

자기돌봄, 좋은 드라마의 시작tvN <일타 스캔들> 양희승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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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한 드라마에 빠졌다. 주말 저녁이면 다 함께 TV 앞에 앉아 드라마의 서사에 울고 웃는 훈훈한 장면이 연출됐다. 세월이 비껴간 로코 퀸 여주와 매력적인 남주의 로맨스는 잠든 연애 세포를 깨웠다. 그뿐인가. 쇠구슬 사건의 진범을 놓고 토론을 벌이는가 하면 쓸데없이 구성을 비틀어보기도 했다. 엔딩 컷이 뜨면 주말이 다 간 것 같아 아쉬웠다. 할 일이 태산인 중에도 초록창에 관련 검색어를 쳐대며 덕질을 하다 보니 한 드라마를 두고 재생산되는 언론 기사와 관련 게시물이 얼마나 많은지, 온에어에 발맞춘 추리 영상에 네티즌의 갑론을박이 얼마나 뜨거운지도 알게 되었다. 이러니 tvN <일타 스캔들>의 양희승 작가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싶었다. 팬심에 설레는 마음으로 마주 보고 앉았는데 양희승 작가는 아쉬움부터 털어놓았다.

글. 김윤양 편집위원사진. 김용철

 

 

 

이번 드라마는 일부러 다양한 장르를 넣었어요. 로맨스만 넣은 게 아니라 청춘의 느낌도 넣고, 쇠구슬 사건도 넣고요. 그랬더니 로맨스 안 좋아하는 남편은 무겁지만 쇠구슬 사건만 기다리고, 또래 학부모들은 로맨스나 학부모들이 실제 겪은 입시에 대한 것 위주로 보고, 젊은 조카는 누구랑 이어졌으면 좋겠는지 선재 파, 건우 파로 나뉘었다며 친구들과 나눈 대화를 캡처해서 보내줬어요. 다양하게 원하는 것을 봐라, 의도적으로 세 개 이상 장르를 넣은 덕분에 시청률은 저희가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이 나왔어요. 그런데 이게 쉽지 않더라고요. 장점이 되기도 했지만 단점이 되기도 했어요. 원하는 장르의 분량이 줄어들면 ‘재미가 없어졌어’하고 마는 분도 계시지만 여기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가 막 나오더라고요. 기호와 취향이 다르니까 그건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정말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15화를 잘못 썼다는 겁니다. 총 16화 분량 중에 13화부터 쇠구슬 라인을 풀어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이야기가 무거워지잖아요. 저는 워낙 시트콤을 많이 한 사람이고 경쾌한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필요해서 쇠구슬 라인을 깔아놨지만 정작 뒷수습을 하자니 너무 무겁게 느껴지는 거예요. 게다가 감독님도 제작사도 “쇠구슬 사건이 15화까지 가는 건 너무 길지 않나. 압축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했어요. 충분히 공감하니까 그 말을 듣자마자 저도 홀랑, 넙죽··· “그게 낫겠죠? 그래야겠죠?”한 거죠.


쇠구슬 사건의 진범으로 밝혀진 지 실장(신재하 분)의 마지막을 다뤘던 15화. 지 실장은 의식을 잃고 병원에 있던 남해이(노윤서 분)까지 죽이려다 실패했고 최치열(정경호 분)에게 정체를 들키면서 옥상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양희승 작가 말마따나 시청자들에게는 다소 급작스러운 전개였다.


원래 초고에서는 병원에서 지 실장이 사라지고 남해이가 깨어나는 그 과정에서 경찰이 지 실장을 쫓는데, 밀항 흔적으로 혼란스러운 틈에 지 실장이 치열의 강의실에 나타납니다. 이런 과정을 다 축약했더라도 지 실장의 정체를 알게 된 최치열이 옥상에서 지 실장과 대치하는 신을 찍을 때 좀 더 감정선을 쫀쫀하게 따라가 줘야 했어요. 죗값을 치르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겠다고 치열이 설득하지만 경찰차를 내려다보며 감정적으로 몰리고 몰린 지 실장이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고 느끼고 ‘너무 지쳤다’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충분히 보여준 다음 뛰어내렸어야 했는데 실제로는 이 감정선이 축약된 거죠. 제가 갈등을 못 견뎌서 버티다 버티다 휘리릭 끝내는 버릇이 있고, 감독님도 연출적으로 부담을 느낀 게 편집본에 오롯이 드러나더라고요. 정말 아쉬웠죠. 그렇지만 16화는 만족해요. 무리한 해피엔딩이라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좋았어요.

 

 


당연하다. 몸도 마음도 팍팍했던 겨울의 끝, 경쾌하고 달달한 이야기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던 시청자들에게 따뜻한 가족의 정서를 채워준 드라마였다. 게다가 대치동의 과열된 사교육 시장은 물론 시험지 유출, 쇠구슬 사건 등 실제 사건들을 극화해 사실감을 높인 것도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은 비결이었다. 이 모든 기획의 단초가 학부모로 대치동에 갔던 경험이었다니 더욱 놀랍다.


아들이 고3 올라가던 겨울에 대치동 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입시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그동안 매일 여의도에 나와 일만 했으니 아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자 싶었죠. 처음으로 대치동에 갔는데 완전 별세계인 거예요. 밤 10시가 넘으면 비상등을 켜고 갓길에 차들이 줄을 서 있고, 일타 강사의 인기는 BTS나 다름없더라고요. 실제로 많은 일타 강사들을 취재했는데 위장장애에 잘 먹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자는 분이 많았어요. 그렇다면 이런 배경의 일타 강사가 동네와는 어울리지 않는 따뜻한 가치관을 가진 여주를 만나 따스함에 스며드는 이야기를 해야겠다! 그러니 두 사람이 도시락, 밥으로 매개가 되게 하자, 했던 거죠.

 

 


여기에 배우들의 연기는 작가가 그린 그림을 더욱 실감 나게 했다. 오랜만에 안방극장에 등장한 로코 퀸 전도연의 귀환, 남주 정경호와의 케미도 좋았지만 조연들의 캐릭터도 하나하나 빛이 났다. 다들 현장에 무섭게 몰입했고 방송이 끝나갈 무렵 배우들은 모두 배역에 완벽히 녹아있었다.


전도연 배우는 정말 여성스럽고 러블리한데 카리스마가 있어요. 처음 만났을 때는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배역인가를 고민하기도 했는데, 촬영 직전에 만났을 때는 감을 잡았더라고요. 그러더니 촬영이 시작하고부터는 100% 행선이 되어있었고요. 종방을 같이 봤는데 전도연 배우의 원래 톤보다 한 톤 올라가 있고 딸 해이와 친구 영주(이봉련 분), 재우(오의식 분)가 다 가족이더라고요. 남동생이 영주를 좋아하게 돼서 영주를 챙겨주는 신을 찍는데 너무 속이 상했다는 거예요. ‘내가 지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런 마음이 들었대요. 하하. 어떻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감정몰입을 할 수 있을까요. 오의식 배우도 재우 캐릭터에 완벽하게 몰입되어 있었고, 촬영감독, 연출진들까지 모두 현장을 엄청나게 애정하고 있더라고요. 끝나면서 누구 하나 해피하지 않은 사람 없고 다 잘 된 걸 보면서 내가 참 복이 많았구나 싶었죠.

 

 


드라마 작가 이전에 양희승 작가는 스타 시트콤 작가였다. 시트콤이 전성기를 달리던 시대, <남자 셋 여자 셋>, <순풍산부인과>, <뉴 논스톱>, <논스톱 4>, <똑바로 살아라>를 쉬지 않고 집필했다. 이후 2014년 드라마 <고교처세왕>을 시작으로 <오 나의 귀신님>, <역도요정 김복주>, <아는 와이프>, <한 번 다녀왔습니다>까지 매 드라마가 각각 다른 모습으로 화제가 됐다. 무엇보다 양희승 표 드라마는 밝고 건강했다. 재미있는 이야기에 명확한 캐릭터, 유머와 공감은 시청자를 유쾌하고 따뜻하게 했다.


제게 웃음은 강박이에요. 저는 대본이 재미있지 않으면 불안해요. 코미디 할 때는 더 그랬죠. 처음 드라마 쓸 때 매 신을 재미있게 하려고 했어요. 지금 다시 대본을 보니 피로감이 들더라고요. 드라마를 10년 이상 하다 보니 이제 좀 조절이 되는데 아직도 약간의 강박이 남아 있어요. 이제까지 했던 드라마의 주제는 조금씩 달랐지만 추구하는 정서는 비슷해요. 밝고 유쾌함. 그게 제 성향이고 제가 지향하는 드라마 세계인 것 같아요. 시트콤이 계속되었다면 어쩌면 지금도 그걸 쓰고 있을지도 모르죠. 시대가 변하면서 시트콤의 캐릭터가 리얼 예능으로 옮겨갔고 저는 자연스럽게 드라마로 넘어왔죠. 처음에는 ‘시트콤 작가가 정극을 잘할 수 있겠어?’ 하는 편견도 있었지만 10년간 쉬지 않고 시트콤 작가로 살았던 경험은 드라마를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어요. 이야기의 재미나 캐릭터 설정은 당연하고 드라마를 쓰는 루틴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있었죠.


작가라면 누구나 안다. 노트북 화면 안에서 깜빡이는 커서와 1대 1로 마주했을 때의 외로움, 글이 제대로 써지지 않을 때의 번민, 작품의 흥행에 대한 중압감, 그럼에도 제때 써내야 한다는 책임감. 게다가 그것이 결혼과 출산, 육아와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면 차원을 달리하는 이야기가 된다. <순풍산부인과>를 집필할 때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니, 양희승 작가의 필모그래피는 이제 곧 제대와 복학을 앞뒀다는 아들과 함께 써나간 셈이다. 대체 이 모든 게 가능한 일인가.


결혼 전에는 저도 글을 밤에 썼어요.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제 인생이 아이와 일, 딱 두 가지로만! 철저히 이중생활을 했던 것 같아요. 아침에 아이 보내고 바로 작업실로 와서 일을 했어요. 시간을 쪼개 쓰게 됐죠.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데 30분이 빈다, 그럼 그 30분 동안 일하고, 아이 재워놓고 다시 일하고. 저는 시트콤 때부터 공동 작업이 익숙해서 후배들과 함께 회의하고 공동 집필도 많이 하는데, 아이가 생기고부터는 드라마 촬영 앞두고 집중적으로 매달려야 할 때도 합숙하며 밤샘 집필을 하지 않았어요. 매일 아침에 출근하고 회의하고 글 쓰고, 밤 10시, 11시 사이에는 꼭 집에 갔어요. 집에 가서 아이 얼굴 보고 다음 날 아이 보내고 다시 출근! 되게 루틴하게 생활했죠. 물론 많은 작가들이 낮에 집중이 안 된다고 해요. 저도 집중이 안 될 때가 있죠. 그때는 공원을 걷는다든지, 주변 사람들과 차 한잔한다든지, 자전거를 타고 한 바퀴 돌든지, 정 안되면 편의점 가서 사람들이 뭐 사 먹는 거라도 지켜봐요. 그리고 들어오면 다시 집중하게 되죠. 아이 엄마로 살면서 빨리, 빨리 전환하는 습관을 들인 거예요. 어쩌겠어요?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고. 그럼 책임감을 갖고 최소한의 엄마 도리는 해가며 제가 상황에 맞춰 살아야죠.

 

 


‘루틴’으로 해냈다, 이 한마디 속에 얼마나 많은 사연이 함축되었을까. 살면서 변수는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럴 때마다 흔들리지 않고 집필을 이어나갈 수 있었던 작가 양희승의 롱런 비결이 궁금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능력이 뛰어나거나 필력이 뛰어나진 않았는데, 확실히 성실감은 있는 것 같아요. 회사와 계약을 해서 파트너로 관계를 맺었다면 너무 그들을 오래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도 있고요. 무엇보다 스스로 객관화하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사람들은 저에게 ‘객관병’이라고 하는데, 어느 순간 정신 똑바로 차리고 객관화하지 않으면 휩쓸리게 됩니다. 인생이 공평한 게 프로그램이 좀 잘 됐다고 거기에 취해 있으면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요. 힘들어도 끊임없이 스스로를 객관화해야 하고요, 또 스스로를 잘 돌봐야 합니다. 스트레스를 그냥 두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힘들 때는 주변 사람들과 차 한잔 마시며 수다로 풀기도 하고, 제가 운동을 좋아해서 요즘은 사람들과 축구를 합니다. 정말 자기만의 낙이 있어야 해요! 제 주변에 낙이 없는 작가들이 너무 많아요. 겉으로는 화려한 직업인데 안으로 들여다보면 벌 받듯 일하고 거의 감금 당하는 생활을 해요. 우리가 누구보다 요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동향을 알아야 하는 작가들인데, 작업실에 문 닫고 들어가 버리고 평범한 일상생활도 못 하게 되면 안 되잖아요. 본인이 숨을 쉴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 해요. 이력에 좋은 것만 나가서 그렇지, 저 역시 시트콤 할 때는 3개월 만에 조기종영한 것도 있고, 인간관계로 속상했던 적도 있어요. 그때 ‘더는 못 견디겠어’ 하면 그대로 끝났겠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걸 끝까지 하려면 멘탈 관리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 가치관이기도 하고 후배들에게도 많이 하는 말인데요. 잘 됐다고 들뜨지 말고, 못 됐다고 너무 힘들어도 말고 스스로를 잘 돌보는 게 작가로 롱런하는 비결 같아요.


<일타 스캔들>이 종영한 지 한 달. 재충전 시간을 가졌다기에는 조금 이르게, 양희승 작가는 다음 일을 시작했다. 함께 여러 차례 작업했던 후배 작가의 작품에 크리에이터로 참여하는 것이다. 이 일은 양희승 작가가 후배들과 공동 집필하며 느낀 점이면서 또한 여러 교육기관과 작가양성 프로젝트 등에서 강의하며 필요를 절감한, 작가양성 시스템에 대한 고민과 맞닿아있다.


요즘 플랫폼이 다양해지면서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작가들에게 기회가 많아졌지만 한편으로 그게 발목을 잡기도 하거든요.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는데 기회가 왔다? 잡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잡아야죠. 그럼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두 배 이상 노력해야 해요. 작가협회 교육원이나 tvN의 오펜에서 수업을 해보면 ‘이 친구 원석이다. 잘 닦으면 드라마에 큰 역할을 하겠다’ 싶은 작가들이 있는데, 아직은 천둥벌거숭이예요. 어떤 이야기를 잡아야 하는지도 모르고 이야기 사이즈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모르죠. 그런 친구들이 덜컥 제작사와 계약을 해요. 제작사라는 곳은 현장을 제작하는 노하우가 있는 분들이지, 대본이나 아이템, 작가들을 컨트롤 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그러니 가령 로코를 써온 작가에게 제작사에서 ‘이 작품 장르는 호러로 해보면 어때요?’ 그럼 호러로 바꿔요. 몇 년 후 또 ‘호러는 아닌 것 같아요. 휴먼으로 해보면 어때요?’ 이러다가 ‘원래대로 로코가 맞는 것 같아요’ 하면 너덜너덜해지는 거죠. 그럼 작가는 ‘내가 이 길이 아닌가 봐요’ 이러기도 하고, 계약해지 소송을 하기도 하고···. 불필요한 소모를 너무 많이 보니까 예비 드라마 작가들에게 작가 데뷔 초반에 핸들링을 해줄 수 있는, ‘작가에게는 작가가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실제로 5, 6개월 동안 대본 두 개를 만들 수 있게 해주는 게 제 역할이었는데, 양몰이를 하다 보면 저쪽으로 가는 애들 데리고 오고, 그다음 주에는 이쪽으로 가는 애 데려다놓고. 그렇게 하다 보면 꽤 괜찮은 작품이 나와요. 그럼 작가들도 ‘제가 이런 걸 써내다니’ 하면서 감동하고, 저도 성취감이 있더라고요. 뭔가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후배의 크리에이터 역할을 하기로 한 것도 어떻게 보면 그런 차원이죠. 노하우가 부족한 첫 작품 때 정도는 울타리가 되어줘야겠다···.

 

 


10여 년 전만 해도 시트콤이나 단막 드라마를 통해 배우도 작가도 자연스럽게 트레이닝이 됐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역할을 해줄 프로그램이 없다 보니 드라마 작가로 데뷔하기까지도 오래 걸릴 뿐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데뷔할 경우 첫 작품에 내상을 입고 사장되는 경우도 많다. 시스템이 없으니 악순환이 반복되어도 대안이 없는 셈이다.


일일시트콤은 일주일에 작품을 열 개씩 해야 하니까 보조작가, 집필작가 해서 작가진만 열 명이에요. 그 많은 작가들을 운영하며 장점을 뽑아내고 단점을 보완하는 메인작가 롤을 해봤기 때문에 저는 지금도 보조작가들과 함께 회의하며 아이디어를 내고 나눠서 글 쓰는 데 능해요. 그런데 그런 작품을 거치지 않고 제작사랑 계약한 경우, 드라마를 기획해 편성이 이뤄지고 온에어 되기까지 너무 오래 걸리다 보니 작가들이 방송하기도 전에 지치기 쉬워서, 앞으로 집단작업을 하거나 크리에이터로 작업하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노력 중이에요. 제작사를 해보라는 얘기도 들었는데 그건 수익구조를 맞춰야 하니까 저같이 창작하는 사람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제작사를 할 생각은 없는데 대신 작가들 창작집단을 만들 생각은 있어요. 이것도 서로 도움이 되는 시스템이라는 확신이 들어야 구축하는 거죠. 한두 번 크리에이터 작업을 해보고 판단해보려고요. 작가협회 교육원에서 뜻있는 선배 작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서 이런 일을 좀 더 공격적으로 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지금은 단막극 위주로 공모 준비에 주력하다 보니 정작 당선 후 단막이 아닌 긴 이야기를 만들어야 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요. 단막이 기본인 건 맞지만 거기에 얽매이지 않게 시스템을 달리할 필요가 있죠.


작가로 살아온 지 30여 년. 수많은 사람들이 드라마를 보고 즐거워하고 감동하는 모습을 보는 일은 양희승 작가에게도 큰 행복이었다. 버겁고 어려운 수많은 일을 묵묵히 버텨낼 수 있었던 건 어려움보다 성취감이 더 컸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철저히 협업이에요. 그 안에서 대본이 작가 몫이면 스태프들은 스태프들의 몫이 있죠. 배우들은 철저히 외워서 표현해야 하고요. 그러니 대본을 늦게 주는 것도 되게 이기적인 거죠. 내 대본 80점, 90점 만들자고 남의 시간을 더 써서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일할 수 있는 시간을 안 주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죠.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 배우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 순간순간 선택을 하고 긴장을 놓으면 안 되는 일이 너무 많아요. 대본 다 썼으니까 다른 건 감독의 영역이다, 나는 할 일 다 했다고 생각하면 안 되고 중간 커뮤니케이션은 물론 캐릭터가 정확히 표현될 수 있도록 굉장히 꼼꼼하게 작업해야 합니다. 드라마가 대단한 건 아니지만 시청자들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이 꽤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책임감을 갖고 써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이왕이면 즐거움을 주거나 가벼운 힐링을 주는 드라마를 쓰고 싶고 앞으로도 변치 않을 거예요. 경쾌함은 꼭 가져갈 거고요. 그 와중에 묵직한 메시지를 주는 작품이 있을 수 있지만, 갑자기 장르를 바꿔서 짙은 격정 멜로? 한번 해보고 싶긴 하네요. 자신은 없어요. 하하.

 

[출처 :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웹진 4월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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