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온기가 부순 벽 : SBS <SBS 스페셜 – 곰손카페> 이선영 작가
- 사람
- 2023. 3. 21.
당신의 온기가 부순 벽
SBS <SBS 스페셜 – 곰손카페> 이선영 작가
글·사진 김선미 편집자 장소협조. 화곡동 광커피
서울 성수동 한복판에 곰 네 마리(?)가 출현했다. 벽 너머로 수줍게 내밀며 멈칫거리던 복실한 곰손들이 언제부턴가 손님들에게 장난을 치더니, 손만으론 아쉬운지 세상 무해한 미소의 곰 얼굴이 빼꼼히 문밖으로 튀어나오기도 한다. 이때만 해도 누가 상상했을까. 오랜 시간 온기 하나 없는 차가운 적막 속으로 숨어들었던 은둔자들이, 어느 날 견고했던 벽을 부수고 세상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오리란 것을.
<SBS 스페셜 - 곰손카페> 편은 <당신이 혹하는 사이> 기획팀을 함께했던 배진희 PD의 기획으로 시작됐다. 몸과 마음이 지친 시기가 찾아왔고, 칩거 생활을 하면서 은둔형 외톨이라는 영역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된 것. 오래전부터 일본의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어온 히키코모리를 비롯해 오사카의 쿠마노테 곰손카페, 이보다 앞서 장애인들이 구멍을 뚫은 벽을 사이에 두고 일하는 상하이의 카페, 더 거슬러 올라가 과거 피렌체에서 전염병을 피해 술과 아이스크림을 팔던 창문형 가게들까지 이번 프로그램의 테마 ‘곰손카페’의 모티브가 되었다. 건강상의 이유로 일을 잠시 멈추고 있던 이선영 작가는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고, 아이러니하게도 아팠던 지난 시간이 이번 프로그램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출연자들을 이해하는 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됐었어요. 제가 몸이 아프다는 이유로 동료들이 정말 걱정을 많이 해줬거든요. 몸이 아프면 주변에서 다 걱정을 해주고 ‘일하지 마, 좀 쉬어’ 이런 말들을 듣는데, 마음이 아픈 친구들은 ‘젊은데 왜 일을 못 해?’ 이런 식으로 하나도 이해를 받지 못하는 거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입이 많이 되더라고요. 마음이 아픈 것도 사실은 못지않게 괴로운 일이잖아요.
대한민국 여심을 사로잡은(?) 카페 사장 최준 CEO의 관리와 격려 아래, 벽의 작은 구멍을 통해서만 소통하며 영업이 이루어지는 ‘곰손카페’. 저마다의 상처로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자신만의 세계로 숨어버렸던 청춘들이 다시 세상 밖으로 한걸음 내디딜 수 있도록 격려하고 함께하기 위해 고안된 공간이다. 꿈같은 기회에 700명이 넘는 절박한 마음들이 모였고, 수많은 인터뷰 끝에 네 명의 참가자가 선정됐다. 우리, 자몽, 민발, 모카. 짧게는 1년부터 길게는 10년까지, 은둔의 기간도 이유도 다양했지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박한 마음에는 차이가 없었다. 세상의 시선을 피해 숨어들었던 이들이 방송에 얼굴을 내비치기까지 과연 얼마만큼의 용기가 필요했을지, 생각해본들 가늠할 수 있을까.
처음부터 명확했던 것 중 하나가 ‘모자이크는 하지 말자’였어요. 이들이 극복하고 도전하는 모습을 긍정적으로 보여주고 싶은데, 모자이크를 하게 되면 뭔가 숨기는 것 같은 모습에 시청자가 이입하는 방향이 달라질 것 같은 거예요. 모자이크를 하는 이유는 범죄자거나 범죄의 피해자이거나 할 때잖아요. 물론 모자이크 없이 얼굴이 그대로 노출이 됐을 때 우려되는 점들도 있었어요. 악의적인 외모 평가라든지··· 그런데 놀랍게도 나쁜 댓글들이 없었어요. 오히려 이 친구들을 응원해주는 댓글들이 너무 많아서 신기했죠.
많은 사람들 속에서 늘 에너지가 넘쳤던 자신을 완전히 잃어버린 이, 학교 폭력 후 10년이 훌쩍 넘는 세월을 고통 속에 보내온 이,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외면하지 못한 죄책감에 무너져버린 이,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이. 아무리 이 시대 현대인이 어느 정도의 고독감과 우울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지만, 겪어온 시간이 너무도 다른 만큼 공감이 쉬울 리 만무했다.
사실 저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저희 출연자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많이 시도했던 사람들이에요. 저는 이해를 잘 못 했어요. 아마 출연자와 인터뷰 한 번 하는 선에서 끝났으면 결국 깊이 이해하지 못한 채로 끝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인터뷰를 정말 많이 했거든요. 이 친구들 인생을 하나하나 다 뜯어봤잖아요. 그러다 보니 완전한 공감까진 안 되지만 어느 순간 조금 이해가 가기도 하더라고요. 근데 저 같은 사람이 되게 많을 거란 말이에요. 보면서 다 공감할 순 없겠지만 조금 더 이해는 할 수 있게 해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보자, 그게 시작할 때 목표였던 것 같아요. 제가 이 친구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처럼, 이 친구들이 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 이런 환경에서 이런 일들을 겪었으면 마음이 어땠을지 하는 것들을 헤아려볼 수 있게요.
남들에겐 당연하고 쉬운 모든 것들이 낯설고 어려웠던 참가자들. 중도 이탈 등 돌발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지 방송이 끝나기까지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제작진에게 가장 어려웠던 것은 역시 출연자들의 어떤 모습을 어디까지 어떻게 보여주느냐 하는 적정선의 문제였다.
공황장애가 있는 민발이라는 참가자 부분을 편집할 때 좀 많이 어려웠는데요. 다른 것보다도 자신이 아픈 사람으로 그려지지 않았으면 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이 친구를 이해하려면 공황으로 사람이 이렇게까지 괴로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사람들이 이해를 할 수 있는 거죠. 은둔형 외톨이를 바라보는 전형적인 시선들이 있잖아요. 단순히 부모한테 기생을 한다거나, 한심하다, 나태하다, 게으르다, 이런 표현들이 많이 떠오르죠. 저만 해도 이번 프로그램을 하면서 나도 모르는 어떤 선입견, 편견 같은 게 모르는 사이에 나한테도 존재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많이 반성하기도 했거든요. 이런 이유 때문에 이들이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는지 있는 그대로를 보여줘야 했지만, 그래도 그 모습들을 다 내보내진 않았어요. 본인이 원하지 않았으니까요.
방송 전에는 여러모로 걱정도 하고 경계도 했는데, 끝나고 나서는 다들 너무 만족해했어요. 특히 자기가 노력하는 사람, 도전하려는 사람으로 방송에 나왔던 게 좋았다고 하더라고요.
손을 내밀어 주문을 받고 음료를 건네는 행위는 단절돼있던 타인과의 관계 회복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에서 ‘노동’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요소다. 각각의 참가자들에게 유니폼과 사원증을 부여했고, 현장 투입을 위한 바리스타 교육도 받게 했다.
실제로 일본에서도 그렇고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시도하려고 한다는데요. 이런 은둔형 외톨이 친구들에게 일 경험을 심어주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들 보더라고요. 단순히 상담만 하고 돈을 지원해주는 이런 방식들로는 다시 이전으로 쉽게 돌아가는 거죠. 일시적인 도움인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노동이라는 경험을 심어주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느끼게 해주면 이들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거죠. 이 친구들이 방송 끝나고 다시 돌아가면 안 되잖아요. 그게 저희한테는 정말 최악의 결과거든요. 방송은 끝났기 때문에 어차피 모르겠지만, 저희한테는 사실 이게 되게 중요한 문제예요. 이 친구들이 다시 돌아가지 않는 것. 실제로 지금도 취업도 하고, 자신의 경험을 살려서 의미 있는 일을 찾기도 했어요. 평범한 일상도 누리면서 잘 지내고 있죠. 이 친구들한테도 이 기회가 진짜 변화할 수 있는 절박한 하나의 계기였던 것 같아요. 이게 아니면 이만큼 나를 세상 밖으로 끌어줄 뭔가가 없을 수도 있겠다고요. 그래서 모두가 정말 진심으로 참여했고 열심히 했었어요.
이 모든 과정을 두고, 자신은 그들을 도와준 것이 아니라 ‘함께한 것’이라는 이선영 작가. 인터뷰 제안을 받았을 때도 그가 했던 것은 출연자들의 안부를 한 번 더 확인하는 일이었다. 잘 지내고 있지 못하다면 인터뷰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토록 타인을 향해 갖는 깊은 진정성의 시작은 방송 일에 뜻을 품었던 대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로에 고민이 많았던 시기에 평소 좋아하던 교양 프로그램들을 보던 중, 카메라 안에 있는 제작진의 따뜻한 시선을 느꼈다고. 공고를 보고 지원해 <그것이 알고 싶다>의 막내작가 일을 시작, 이후 <모닝와이드>, <김어준의 블랙하우스>,<궁금한 이야기 Y>, <미래수업>, <당신이 혹하는 사이>, <당신의 문해력+> 등을 거쳤다. 올해로 만 10년을 맞이한 작가 생활 가운데, 이번 <곰손카페>가 그에게 주는 의미는 남다르다.
이번 프로그램만큼 이렇게까지 보람을 느낀 건 처음인 것 같아요. 좋은 프로그램들을 많이 거쳐왔지만 누군가의 인생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생각을 그렇게 많이는 못 했거든요. 이번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의 인생에 어느 정도의 책임감도 느끼게 돼서, 지금 이 친구들이 잘 지내고 있는 게 제가 너무 감사해요. 제작진들끼리도 ‘우리 때문에 잘됐다’가 아니라 ‘그냥 이렇게 잘 살아주는 게 너무 고맙다’는 얘기를 하곤 합니다.
네 명의 참가자들은 영업 마지막 날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곰손카페의 벽을 부수고 밖으로 나왔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깨부수지 못했을까’라는 말과 함께. 깨고 보니 쉬웠을 뿐, 쉬운 변화는 없다. 다만 그 변화를 한결 수월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있다면, 바로 ‘함께하는’ 누군가일 것이다.
프로그램 관련 사진 출처_SBS 홈페이지
[출처 :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웹진 3월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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