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Nov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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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마음, 그 간절함에 대하여 <미씽: 그들이 있었다> 반기리 작가

기다리는 마음,

그 간절함에 대하여

<미씽: 그들이 있었다> 반기리 작가

글. 정윤미 편집위원  사진. 김용철  장소. 일산 카페콘타


“◯◯구에서 실종된 60대 여성을 찾습니다. 160cm, 검정 바지, 흰색 운동화···” 일주일에 한두 번은 받게 되는 실종신고 문자. 별다른 생각 없이 무심히 흘려보내던 이 문자를 최근 들어 유심히 보게 된다. 그리고 실종자를 기다리고 있을 가족의 마음을 떠올려 본다. 1분 1초가 수억 년처럼 느껴질 그 마음. 드라마 <미씽: 그들이 있었다(이하 미씽)>는 이 간절한 기다림에 관한 이야기다. 현실에서의 고통에는 비할 바가 못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라마를 통해 아주 작은 위로라도 건네고 싶었다는 반기리 작가. 시즌1에 이어 시즌2까지 호평 속에 완주한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뉴스나 방송에서 실종 사건을 다룰 때가 있어요. 전 국민이 다 알게 되는 큰 사건일 때는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다 보니 실종자를 찾기도 하죠. 하지만 방송에 나오는 것 외에도 수많은 실종자들이 있을 텐데 일일이 다 관심을 갖지는 못하잖아요. 실종된 사람은 정말 많은데, 그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이 물음이 <미씽>을 쓰게 된 이유예요. 실종된 이들에 대해 모두가 좀 더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고요. 사실 가족들은 너무 두렵잖아요. 어디서 어떻게 잘못됐으면 어떡하나, 별별 걱정이 다 되잖아요. 그런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아직 돌아오진 않았지만 어디선가 잘 지내고 있을 거라고, 그런 소망을 담아서 만든 드라마가 <미씽>이에요.

 

드라마 <미씽>에는 실종된 망자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등장한다. 죽은 영혼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니 뭔가 오싹하거나 초현실적인 곳이 아닐까 싶겠지만, 뜻밖에도 마을은 너무나 인간적이다. 슈퍼 아주머니는 누가 오더라도 밥부터 챙겨 먹이고, 학교에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마을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너도나도 돕겠다고 팔을 걷어붙인다. 망자들이 사는 곳이니 마을은 그 자체로 판타지이지만, 더 큰 판타지는 따로 있는 것 같다. 이런 따뜻한 마을을 현실에서 보기란 너무 힘든 일이니.

 

실종된 망자들의 마을을 그릴 때 그곳이 고통스럽게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가장 컸어요. 감독님과도 이 얘길 많이 했거든요. 마을은 무조건 따뜻해야 한다, 가족들의 간절한 마음을 판타지로 이뤄주자. 드라마를 통해서라도 잠시나마 위안을 받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시즌2에서는 마을에 학교가 등장하거든요. 학교에 가면 아이들이 있잖아요. 실종 아동이 많다는 현실을 보여주고 싶어서 학교를 넣었어요. 실제로 실종 사건을 취재해보면 범죄의 피해자들인 경우가 많은데, 그 대상이 주로 어린이나 장애인이에요. 들여다보면 사연 없는 사건이 없겠지만, 아이들이 집에 돌아오지 못하는 건 정말 너무 가슴 아프잖아요. 실종된 아이들이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꼭 보여주고 싶었어요.


드라마를 쓰기 전에 실제 사연에 대한 취재도 많이 했거든요. 실종자를 여러 명 찾아냈던 실종 전담반 형사님이 계셨는데, 그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실종은 현재진행형이야. 우리가 사람 찾는 걸 포기하는 순간 끝나는 거야.” 그러니까 실종 전담반은 정말 뭐든지 한다는 거예요. 점쟁이를 찾아가든 굿을 하든, 뭐라도 단서가 될 만한 게 있으면 어디든 가고 뭐라도 한다고. 그만큼 간절한 거죠. 드라마를 통해 이런 얘기를 꼭 하고 싶었어요.

 

 

‘실종’을 이야기하는 드라마지만, 실종 문제를 드라마의 소재로만 활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행여 실종자 가족들이 보고 상처받지나 않을까 신중하게 생각하고 접근했다. 작가의 마음이 글에도 그대로 묻어났던 게 아닐까. 드라마에 참여한 모든 배우들이 진심으로 실종 문제에 관심을 갖고, 현실 세계에서 실종을 알리는 데 기꺼이 앞장섰다.

 

<미씽> 시즌2 때는 배우들이 ‘실종아동찾기’ 캠페인을 했거든요. 캠페인 촬영하고 온 날 이정은 배우와 통화를 했는데 그러시더라고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억장이 무너진다고. 우리가 아무리 드라마에서 실종 얘기를 해도 드라마는 현실을 따라갈 수 없다, 현실은 더 기가 막히고 더 가슴 아프다며 한참 얘기를 했어요. 허준호 배우는 이런 이야기는 계속해야 한다면서 시즌10까지만 하자고 계속 그러세요. 사실 시즌2를 하자는 얘기도 배우들에게서 먼저 나왔거든요. 마치 모두가 처음부터 이 얘기를 같이 시작한 것처럼 같은 마음을 보여주셨는데, 그게 너무 고맙죠.

 

 

<미씽>은 주인공이 실종된 망자들의 마을을 드나들며 그들의 사연을 추적해 나가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판타지, 미스터리, 추리가 절묘하게 뒤섞인 독특한 장르물. 덕분에 쫄깃쫄깃한 긴장과 통쾌한 반전, 가슴 후비는 진한 감동을 종합선물세트처럼 받게 된다. 어떻게 이런 실종 문제를 드라마로 쓰게 됐냐고 물었더니, 작가는 엉뚱하게도 꿈 이야기를 꺼낸다.

 

<미씽>은 저랑 정소영 작가가 같이 쓴 첫 습작 드라마인데요. 이게 후배의 꿈에서 시작이 됐어요. 어느 날 후배가 와서 자기가 꿈꾼 이야기를 하는데, 꿈에 어떤 마을에 갔는데 다 죽은 사람들이 살고 있더라는 거예요. 그걸 듣는데 스토리가 막 떠오르는 거죠. ‘마을 사람들이 다 죽었는데 주인공은 살아있는 거야. 그리고 마을에서 어릴 때 날 버렸던 엄마를 만나.’ 이러면서 스토리를 막 만들었어요. 저랑 정소영 작가는 교양 프로그램을 오래 같이 한 사이거든요. 우리 이번에는 같이 드라마를 써 보자 했어요. 보니까 KBS 공모가 두세 달쯤 남았더라고요. 그때는 4부까지 대본을 내야 해서, 저희가 진짜 두 달 동안 미친 듯이 썼어요. 그런데 공모를 내고 나서, 아는 분 통해 드라마 PD를 만나게 됐는데 이러시는 거예요. 최종까지는 올랐는데 당선되기는 쉽지 않겠다고. 아이템이 너무 나갔다는 거죠. 당시에는 이런 판타지물을 방송사에서 하지 않을 때였거든요. 그래도 자신감을 가지고 써 보라는 얘기를 해 주셨어요. 대본을 MBC 공모에도 내봤는데 거기서도 최종까지 갔는데, 결국 당선은 안 되더라고요.

 

이후에 저는 <후아유>로 드라마 데뷔를 했고요. <후아유> 끝나고 <닥터 프로스트>를 썼고, 그리고 다음 드라마를 의논하던 때였는데 그때 제가 하고 싶은 아이템이 있다고 이야기를 한 거죠. 그동안 아무한테도 안 보여주고 계속 가지고만 있었는데, 10년이 훌쩍 지나서 드디어 <미씽>을 꺼낼 수 있게 된 거예요. 정소영 작가랑 같이 기획한 작품이니까 꼭 둘이 같이 쓰고 싶었는데, 정말 그런 기회가 와서 저한테는 더 의미가 있는 작품이고요. 그 옛날에 같이 밤새우면서 회의하고 인물도 써놓고 한 걸 다시 꺼내 봤는데, 지금 하라고 해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열정적으로 했더라고요.

 

10년도 훨씬 전에 쓴 첫 습작을 성공한 드라마로 만들어냈으니, 작가에게 그야말로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것 같아 마냥 부러웠다. 교양 작가를 하다 드라마로 넘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모두가 롱런하는 것은 아닐 터. 그 치열한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된 건 선배 작가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고 한다. “넌 왜 드라마를 안 쓰니? 넌 참 드라마적인 사람인데.”

 

1999년 전주 MBC 에서 구성작가로 방송 일을 시작했어요. 전주에서 1년 8개월 정도 있다가, 서울로 와서 <생방송 오늘>, <체험 삶의 현장>, <VJ 특공대> 같은 프로그램을 했고요. 시청률 잘 나오는 프로그램도 해보고 다큐도 해 봤는데, 다음에는 뭘 해야 재미있을지 모르겠더라고요. 그 무렵에 최란 선배가 드라마 <일지매>를 집필하고 있었는데, 선배가 저한테 <일지매> 보조작가를 해보라는 거예요. 그렇게 선배 옆에서 일을 배우면서 드라마가 온에어 되는 과정을 쭉 지켜보다 보니 트레이닝이 빨리 됐던 것 같아요.


드라마를 시작하고 나니 이야기를 만드는 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런데 그만큼 압박감도 있어요. 짓눌리는 듯한 책임감을 느껴요. 뭐가 됐든 잘못되면 다 내 탓 같아요. 모든 건 다 대본에서 시작되잖아요. 대본이 안 좋으면 드라마가 잘 되기 쉽지 않거든요. 제작비도 크고 스태프도 엄청나게 많은데, 잘 돼야 하잖아요. 그래서 책임감이 너무 크고, 참 못 할 짓이다 싶어요. 하지만 이걸 견딜 만큼 재미가 있으니까요. 재미없으면, 절대 못 할 일이죠.

 

<닥터 프로스트>, <미씽> 같은 장르물이 작가의 주특기인 것 같지만, 필모그래피에는 <마녀의 연애>처럼 달달한 로맨스도 있다. 다음 작품은 어떤 걸 하고 싶냐고 묻자, 갖고 있는 아이템들이 술술 나온다. 힘들어도 재미있다는 말이 얼마나 진심인지 알겠다.

 

저는 웃음을 주는 드라마가 좋아요. 슬픈 드라마도 슬픔 속에서 웃을 수 있잖아요. <미씽>에서도 죽은 사람들이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이러면서 태연하게 웃기거든요. 죽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농담인 거죠.
<마녀의 연애>를 쓸 때는 힘든 일이 좀 많았어요. 세월호 참사가 터진 시기이기도 했고, 개인적으로는 그때 아버지가 암 선고를 받고 3개월 만에 떠나셨거든요. 저는 아빠가 돌아가시면 못 살 줄 알았어요. 근데 제가 장례식장에 오는 사람들이랑 밥도 먹고 웃기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사람이 그렇더라고요. 장례 치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랑 오빠, 동생을 보는데 너무 슬픈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이제 우리는 아비 없는 자식이네, 어디 가서 행동 잘해야 해, 그러면서 웃었어요. 삶이 그렇잖아요. 울기도 했다가 웃기도 했다가. 드라마도 그래야 하는 것 같아요. 결국은 사람의 이야기니까요.

에너지가 좋은 사람을 만나면 힘을 얻는다. 혼자 있을 땐 그렇게도 심각하고 고민되던 일을 툭툭 털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좋은 에너지로 써내는 글은 또 얼마나 따뜻하고 위로가 될 것인가. <미씽>에 ‘따뜻한 드라마’라는 수식어가 유독 많이 붙는 이유를 이제 알겠다. 따뜻한 이야기꾼, 반기리 작가의 다음 이야기를 너무 늦지 않게 꼭 만나고 싶다.

프로그램 이미지 제공_스튜디오 드래곤

 

[출처: 한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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