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위로 그려내는 삶 : Wavve <더 타투이스트> 김근애 작가
- 사람
- 2023. 2. 16.
몸 위로 그려내는 삶
Wavve <더 타투이스트> 김근애 작가
글. 김선미 편집자사진 제공. 타투이스트 도이(Doy)
삼청동 어느 골목의 고즈넉한 한옥, 그리고 이따금 조용히 문턱을 넘나드는 사람들. 문밖으로 나오는 그들의 몸 한 편 어딘가에는 비밀스러운 삶의 흔적 하나가, 얼굴에는 은은한 미소가 피어나있다. 몸 밖으로 나온 나의 이야기. 여전히 엄격한 시선에 둘러싸인 타투는 어쩌면, 그저 삶을 이야기하는 하나의 아름다운 언어가 아닐까.
시작은 세월호 생존자와의 만남이었다. 몸담고 있는 프로덕션에서 세월호 관련 인물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여러 차례 진행했고, 각자의 방식으로 상처를 풀어내고 있는 생존자들을 만나게 됐다. 그중 자해를 통해 그 시간을 견디고 있었던 한 생존자가 상처를 가리기 위해 타투 숍에 방문했는데, 누워서 시술을 받는 동안 타투이스트가 툭툭 던지는 질문에 그렇게 자기 이야기를 술술 하더란다. 그 모습을 보고 타투이스트라는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최정호 PD가 기획을 제안했고, 당시 다른 프로그램을 하며 휴식을 앞두고 있었던 김근애 작가는 한 차례의 망설임 뒤 팀에 합류했다.
제가 사는 곳 인근에서 언제부턴가 타투를 한 친구들이 정말 많이 보이더라고요. 사실 제가 뜨악했던 게, 다리에 핏줄 같은 문신을 한 사람을 보게 됐어요. ‘와,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저건 좀 아닌 거 같다’ 이런 생각을 솔직히 했었죠. 그런 선입관이 꽤 깊이 있었어요. 그러다 프로그램 제안을 받으면서 이번에 출연하신 타투이스트 도이 님의 타투를 봤는데 제가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이게 타투야? 이게 가능하다고? 브래드 피트를 시술한 유명한 타투이스트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분이 어떤 걸 하시는지는 몰랐거든요. 그때 아, 이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상처를 내서 상처를 덮고 회복을 염원하는 아이러니한 행위라는 데서 재미를 느끼기도 했고요. 타투의 의미, 즉 이 프로그램이 무슨 이야기를 할지는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타투를 실제로 보기 전에는 타투로 대중에게 공감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었는데요. 도이 님의 타투를 비롯해 그동안 몰랐던 스타일의 타투들을 보고 나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걱정이 안 되더라고요.
K-타투. 현재 전 세계 타투 시장에서 가장 핫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일 줄 누가 알았을까. 과거 야쿠자들의 상징으로 인식됐던 타투는 국내에서도 역시 조폭들의 향유물 정도로 여겨지지 않았던가. 언제부턴가 시작된 이 새로운 흐름은 아주 조용히 전 세계의 판도를 뒤엎고 있었다. K-팝, K-드라마, K-무비로 비롯되는 K-웨이브의 한 축에 ‘K-타투’가 있다는 것 역시 결코 과장이 아니다. K-컬처의 심상치 않은 흐름에 주목한 영국 한 출판사에서 이를 토대로 시리즈물을 내고 있는데, K-타투가 당당히 한 시리즈를 차지할 정도니 말이다.
요즘 우리나라 타투를 보면 정말 섬세하고 예쁘거든요. 그냥 캔버스에 그릴법한 그림을 피부에 옮겨놓은 수준이에요. 한국 사람들이 정말 손재주가 좋은 것 같아요. 해외에는 여전히 강하고 센 느낌의 타투가 많은데, 지금 흐름이 많이 바뀌고 있고 우리나라의 영향이 굉장히 크다고 해요. 우리 타투이스트들이 정말 K-타투라는 ‘장르’를 만드셨더라고요. 외국인들이 한국 타투 스타일에 열광하고 있고, 타투를 받기 위해 한국에 오는 외국인들이 아주 많대요.
실제로 해외에 나가 활동하는 국내 타투이스트들이 정말 많은데요. 가령 뉴욕에 가보면 유명한 타투 숍에는 당연히 한국 타투이스트가 있고, 가장 예약이 많고 돈도 제일 많이 버는 거죠. 해외에서는 예술가로서 엄청난 대우를 받고,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불법시술을 하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당초 걱정했던 심의는 의외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앞서 한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타투하는 장면이 MBC의 심의를 통과했던 바가 있었고, 정부 기관인 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을 받는 데도 어려움이 없었다. 더 긴장해야 했던 부분은 다른 데 있었다. 오직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불법’으로 분류된 타투의 현실이었다.
‘타투가 불법이다, 아니다’는 사실 처음 시작할 때는 아주 큰 문제가 아니었는데, 실질적으로 제작에 들어갈 때는 정말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았어요. 일단 타투이스트들을 만나보니 고소·고발이 굉장히 많다는 거예요. 시술을 받아놓고는 고발하겠다면서 돈을 안 낸다거나, 경쟁 업체가 신고를 하기도 한다는 거죠. 방송에서 이분들을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이분들이 알려진다면 그만큼 위험에 노출되기도 하는 거거든요. 문제가 생기면 법적으로 대응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변호사를 따로 준비하기도 했어요.
사실 가장 필요했고 중요했던 건 병원 측 협조였는데요. 그런데 병원들이 협조적일 수 없죠. 의사들이 타투 합법화를 반대해서 하지 못하고 있는 거니까. 위생문제가 굉장히 중요한데, 해외에는 관련 매뉴얼이 있거든요. 우리나라에는 그게 없어서 타투 합법화 운동에 여러모로 도움을 주고 있는 병원에서 같이 매뉴얼을 만들어주셨어요. 베드와 베드 사이에는 간격이 얼마나 되어야 하고, 어떤 것들이 소독이 되어 있어야 한다 등… 해외 기준보다 더 엄격하게 기준을 세워서 만들었죠. 촬영 현장에도 나와 점검 및 감수도 해주셨고, 저희는 시술과 촬영이 매뉴얼을 준수하면서 진행되고 있다는 걸 프로그램에서 명확하게 보여줬어요.
위험을 감수하고 작업시간을 할애해가며 촬영에 참여한 타투이스트들의 취지를 생각하면 방송에서 이런 사회 쟁점의 측면에 대해서 더 깊이 다뤘으면 좋았겠지만, <더 타투이스트>는 철저히 휴먼 요소에 집중하고자 했다.
휴먼 외에 다른 포커스는 하나도 없길 바랐어요. 위험부담이 크다고 판단했던 소재인 만큼 공격할 여지를 최소화하고 싶었죠. 그렇다고 타투를 옹호하거나 권장하려고 하지도 않았고요. 다만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지금의 타투에 대해 보여주고 많이 알려진다면 사회의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로, 그리고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화두를 던지는 역할 정도가 되길 바라는 방향으로 마음을 모았어요.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이유로 타투를 하거든요. 그렇다고 사례자를 무작위로 찾거나 우연히 찾아낸 건 아니에요. 저희가 생각하고 원하는 유형의 사례자들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었어요. 가령 커버업(상처를 덮기 위한 시술)은 꼭 하려고 했던 건데, 해외에서는 유방암 수술을 받은 분들이 수술 자국 위에 타투를 많이 한다고 해요. 부위는 달랐지만 유사한 사례로 소하랑 님을 찾아서 모시게 됐고, 업무 중 사고로 절단된 손가락에 손톱을 그려 넣은 엔지니어 이상진 님 같은 경우도 산업재해로 아픔을 겪은 분을 찾아서 시술해드리려 한 거였어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뒤 그들과 함께한다는 의미로 별을 새겨 넣은 스턴트우먼 김차이 배우도 액션 배우가 있었으면 좋겠다 해서 여러 분들을 취재하다가 찾게 된 케이스죠. (김차이 배우의 <오징어 게임> 에미상 스턴트 퍼포먼스 부문 수상은 예기치 못한 경사였다.)
저 외에 4명의 작가들이 함께했는데, 사례자들은 이들이 다 찾은 거예요. 너무 열심히 찾아줬고, 포커싱하는 아이디어도 정말 잘 내줬고요. 동료들이 잘해줬기 때문에 재밌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등장하는 열 명의 타투이스트들만 보더라도, 성향도 작업 스타일도 그야말로 각양각색이다. 단 하나의 타투만 몸에 새긴 채 사실상 현재 업계를 주도하고 있는 타투이스트(도이)를 비롯해, 아직 타투가 하나도 없는 상태로 고심하고 있는 타투이스트(연식)도 등장한다. 누가 봐도 다소 많은 타투를 가졌고 후회는 없지만, 타인이 느낄 수 있는 불편함에 대해서 인지하며 고찰하는 타투이스트(휴고)도 있다.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확신 없이 찾아온 손님에게 그 누구도 섣불리 시술을 권하지 않고 돌려보낸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들이 하는 일에 ‘진심’이라는 것 정도랄까. 아티스트들이 각자 선보이는 다채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더 타투이스트>가 선사하는 하나의 즐거운 경험이다.
휴먼 다큐를 표방하면서 원래는 사연자의 이야기와 타투이스트들의 이야기까지 엮으려 했었어요. 그런데 사연과 사연을 연결하는 게 결코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래서 사연자들의 이야기에 집중했고, 타투에 대한 균형 있는 시각을 전해줄 수 있는 가수 이석훈 님과 댄서 모니카 님의 깊이 있는 공감이 더해져 진정성이 잘 드러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1999 <한밤의 TV연예>로 시작해 <동물농장>, <SBS 스페셜>, <아트멘터리>를 비롯해 수많은 프로그램들을 해왔지만, 이번 프로그램은 방송에서 생소했던 소재만큼이나 여러모로 자신에게도 각별한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며 소회를 전했다.
인터뷰를 앞두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타투이스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앞서 말했듯 포커스가 사연자에 맞춰지게 됐지만, 타투이스트들에 대한 선입견을 걷어내고 싶은 마음이 컸죠. 너무나 친근하고, 평범하고, 너무나 좋은 사람들이었어요. 그렇지 않았다면 프로그램이 이렇게 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타투 시술이라는 행위 이상으로, 사람과 깊이 대화하고, 그걸 토대로 작품으로 구현하고, 몸에 새겨주고. 이 과정이 본인들이 의도를 하든 안 하든 받는 사람에게 굉장한 힐링이 되고 의미가 큰 행위가 되는 거예요. 타투 시술을 받고 나오는 사람들은 마음이 편해져서 나오는데, 타투이스트들은 그저 자기 할 일을 했을 뿐이죠. 이분들을 만나보고 나서 너무 선하고 진심인 사람들이구나, 멋지다, 같이 해도 좋겠다 하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던 것 같아요. 만약 우리 프로그램에 긍정적인 아우라가 있었다면 그건 타투이스트분들 덕분일 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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