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Nov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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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리딩의 짜릿함으로 오늘도 쓴다 : SBS <소방서 옆 경찰서> 민지은 작가

첫 리딩의 짜릿함으로 오늘도 쓴다

SBS <소방서 옆 경찰서> 민지은 작가

글. 신미경 편집위원 사진. 김용철


“대한민국 1% 이내에 드는 천재가 쓴 작품이다.”
드라마 ‘소방서 옆 경찰서’를 본 시청자들의 반응을 살피던 중 눈에 띈 댓글이다. 나 역시 드라마를 보면서 감탄을 연발했던 터라 이런 빈틈없는 드라마를 써내는 작가의 작업실은 어떤 곳일까 궁금했다. 현재 시즌2 집필에 여념이 없을 작가의 작업실 문을 가만히 두드려 보았다.

 

<소방서 옆 경찰서> 시즌1이 종영했습니다. 시즌2가 이미 예고되어 있지만 그래도 2022년의 시즌1을 끝낸 소감이 어떻습니까?

사실 시즌1을 쓸 때부터 이미 시즌2 편성이 정해져 있었어요. 그래서 계속 대본을 쓰고 있기 때문에 끝났다는 느낌은 전혀 안 들어요. 촬영도 아주 잠깐 쉬고 바로 시즌2 촬영에 들어갔고요. 내용도 시즌1 마무리를 짓지 않은 채 시즌2로 연결하는 방향으로 끝냈기 때문에 아직은 시즌2라는 숙제가 남아있는 거 같아요. 아직은 긴 여정의 중간에 있다는 느낌 정도라고 할까요.

<소방서 옆 경찰서>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지금까지와 다른 범죄 수사의 형태를 다루고 있어요. 소방과 경찰의 공조 이야기로 드라마를 만들고 싶다는 아이디어가 언제 마음으로 들어왔나요?

제가 <검법남녀>를 끝내고 부산에 여행을 갔었거든요. 여행 끝 무렵에 택시로 김해공항으로 이동하고 있을 때였어요. 소방서랑 경찰서가 나란히 붙어있는데, 그 밤에 불을 환히 밝히고 있는 거예요. 근데 소방서와 경찰서의 특징이 365일 불이 꺼지지 않고 문이 닫히지 않는 곳인 거잖아요. ‘이 시간에도 저 안에는 사람들이 있을 거고, 같은 현장에 출동을 나가 일을 같이하면 서로 알게 될 것이고··· 저 사람들끼리는 되게 친하겠다. 밤에 야식도 같이 먹고 그러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날 택시에서 생각한 걸 가지고 서울에 와서 자료조사를 시작했어요. 찾아보니까 실제로 공동 대응을 많이 하더라고요. 그리고 소방과 경찰이 사건을 대하는 관점이 다르다 보니까 현장에서 많이 싸운대요.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느낌이 왔어요. 갈등의 지점이 명확하고, 전문가들의 이야기고, 제가 좋아하는 소재고요. 그래서 아, 이건 확실히 드라마가 될 수 있겠다 싶었죠.

 

드라마 전반에 걸쳐 자료조사를 굉장히 꼼꼼하게 했겠다는 생각이 들던데, 자료조사 기간은 얼마나 걸렸나요?

기획 단계에서 최대한 많이 찾아놔야 제가 쓸 수 있는 에피소드나 사건, 그리고 화재조사나 과학수사의 방식들이 확실해지기 때문에 초반에 많이 찾고요. 제가 대본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계속 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에 집필이 끝날 때까지 자료조사를 해가면서 보완합니다.

또, 자료조사를 할 때는 한두 분에게 깊게 듣고, 그분에게 대본 자문도 부탁하는 편이에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분들에게는 되게 아무렇지 않은 일상 이야긴데, 저는 ‘어, 그거 되게 재미있어요’하면서 디테일을 캐치해내려고 해요. 현장에 계신 분들에게는 평범한 일들이 제게는 엄청나게 큰 소재가 되었던 경험들이 있거든요.

 

대본을 쓰다 보면 잘 써지는 날도 있고 뭔가 잘 안 풀릴 때도 있고 그렇죠. 어떤 부분이 특히 힘든지 궁금해요.

제 실제 성격은 갈등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근데 드라마에서는 주인공들이 갈등을 회피하는 순간 응원할 거리가 없어져 버려요. 그래서 드라마에선 그 갈등을 증폭시켜야 하는 순간이 오거든요. 특히나 범죄 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삶과 죽음이 갈리는 상황처럼 인물들이 갈등의 극한에 처할 때가 많은데 그걸 이끌어내야 해요. 드라마를 처음 쓸 때부터 지금까지 이 부분이 실제의 제 성향과 달라서 고민이에요. 과학수사를 통해서 파헤치고 그런 건 제 성향과도 잘 맞아서 되게 재밌게 쓰는데, 갈등의 지점에서 갈등을 증폭하고 터뜨리는 그런 장면들이 쓰기가 어려워요. 그런 부분을 쓰고 나면 저도 좀 감정적으로 지치게 됩니다.


이번 드라마에서도 경찰인 진호개(김래원 분)가 납치범인 곽경준(허지원 분)과 대치하는 장면이 있는데, 진호개가 사적으로 범인을 죽여서라도 정의를 구현하려는 극한에 다다른 심리가 분출되거든요. 그때 납치범의 도발이 더해져서 진호개가 곽경준을 죽이기 직전까지 가는 갈등이 극에 달했던 장면이 있어요. 그런 신을 쓸 때 정말 심리적으로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어요.

 

이번 작품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범죄 스릴러를 쓰면서 가지고 있는 주제 의식은 딱 하나예요. “영원한 거짓말은 없다.”
어떤 범죄 상황에서 그 범죄자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들은 항상 거짓말을 통해서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 착각에서 범죄가 생기는 거거든요. 그리고 본인이 잡히지 않기 위해서 끝없이 거짓말을 해나가죠. 반대로 해결하고 풀어가는 사람들은 법의학이 됐든 경찰 수사가 됐든, 혹은 화재 수사가 됐든 그들의 목표는 ‘영원한 거짓말은 없다’라는 단 하나의 진리를 두고 접근해 가는 거예요. 거짓이 아닌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고 밝혀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평소에 시청자들의 반응을 챙겨보는 편이세요?

네. 댓글을 좀 챙겨보는 편이에요. 제가 쓰는 드라마가 추리를 해야 하는 장르물이다 보니까, 시청자들이 어디까지 추리하고 있는지 체크하는 게 대본을 쓸 때 도움이 되더라고요. 극 초반부 힌트만 보고도 굉장히 정확하게 추리해내는 분들이 늘 있거든요. 그래서 항상 작가로 하여금 더 긴장하게 만들죠.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이 범죄자와 두뇌 싸움을 하는 것처럼, 저는 시청자들과 두뇌 싸움을 통해 밀당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점에서 힌트를 너무 안 줘도 안 되고 너무 많이 줘도 안 되고 적정선을 지켜야 하는데, 그 선을 정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요.

 

혹시 기억에 남는 시청자 반응이 있을까요?

저는 아직도 안방극장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예전에는 TV가 보여주는 영화나 드라마가 스토리 매체의 전부였던 경우가 있었죠. <소방서 옆 경찰서>는 초반에 한 회당 하나의 에피소드가 마무리되도록 진행했거든요. 그걸 보고 시청자들이 ‘진짜 안방극장 같다’, ‘결말까지 앉은 자리에서 보니까 영화 한 편을 본 것 같다’라고 해주셨고, 그 댓글을 봤을 때 뿌듯했어요. 제가 이 대본을 쓸 때가 코로나19 때문에 전 국민이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 있어야 하던 시절이었거든요. ‘극장도 못 가는데, TV 앞에 앉아서 한 시간 만에 극장에서 스릴러 영화 한 편 본 것처럼 재밌고 편하게 볼 수 있으면 좋겠다.’ - 딱 이 정도의 느낌으로 봐주길 기대했는데, 제 의도가 달성된 것 같아 기뻤죠.

 

이전에 영화사와 홍보 마케터로 일한 경험이 드라마 쓰는 데 도움이 됐는지도 궁금합니다.

원래는 신춘문예에 도전하려고 국어국문과를 갔고요, 졸업하고 영화사 명필름에서 6년 정도 일했어요. 심재명 대표님 같은 여성 제작자가 너무 멋져서 ‘아, 나도 제작을 해야겠다’라고 결심을 하고선 글 쓰는 꿈을 잠시 접기도 했었네요.


이후 홍보대행사를 3년 정도 했는데, 사실 홍보대행사 일이 굉장히 힘들어요. 특히 마케팅 대행이라는 게 다른 사람이 만든 작품을 어떻게 하면 관객들에게 가장 잘 효율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거든요. 9년 정도 홍보 일을 하고 보니까 ‘내 거를 하고 싶다’라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알맹이가 내 거였으면 정말 행복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어요.

제가 홍보마케팅을 하면서 느낀 건 ‘대중의 시선을 읽어야 한다. 물건을 팔려면 영화건 드라마건 대중들이 원하는 걸 정확히 알고, 그 트렌드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는 점이죠. 그래서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대중의 시선을 놓치지 않으려고 늘 노력하고 있어요.

 

대본 작업이라는 게 주변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드라마 쓰는 동안 가장 고마웠을 분들 한 번 떠올려볼까요?

고마운 분들 정말 많죠. 저희 드라마 자문해주셨던 소방관분들, 경찰관분들,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다양한 전문가분들··· 그 모든 분들이 늘 항상 고맙고요. 그분들이 안 계셨으면 대본 쓰기가 힘들었을 거예요.


그리고 이번 드라마에는 불을 지르는 장면이 많아서, 감독님과 특수효과팀, 미술팀, 촬영팀을 비롯한 스태프분들이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대본을 쓸 때는 키보드로 ‘불이 난다. 화염이 전체를 감싼다’라고 쓰면 그만이지만, 현장에서 그걸 구현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분이 고생을 하시죠. 불이라는 건, 극 중 대사에도 나오지만 ‘컨트롤이 안 되기 때문에’ 특수효과팀이 너무 고생하셨고요. 그래도 현장에서 최대한 불 느낌을 내야 CG를 입혀도 자연스럽다고 해서 매번 감독님이 실제로 불을 지르셨거든요. 저로서는 감사하죠.

드라마 작가가 되기를 참 잘했구나 싶은 순간! 언제인지 생각을 해보셨을까요?

잘했구나 싶다기보다는··· 드라마를 하면서 가장 긴장되고 설레는 순간이 ‘첫 리딩’인 것 같아요. 처음엔 저 혼자서 머리로 대본을 쓰잖아요. 그런데, 첫 리딩을 하려고 배우들과 제작진이 한곳에 모이면, 저의 활자들을 사람이 하는 대사로 처음 듣게 돼요. 작가로서는 대본 리딩까지 보통 1년 이상이 걸리는데, 1년 넘게 해온 작업의 숙제 검사를 받는 것 같은 느낌. 그래서 그 순간, 첫 리딩이 진행되는 그 순간이 작가로서 되게 행복한 순간이고 긴장되는 순간이고, 내가 이 순간 때문에 지금까지 1년을 그렇게 썼구나 싶고 그렇습니다.


얼마 전에 <소방서 옆 경찰서> 시즌2 첫 리딩을 했거든요. 제가 쓴 대본을 시즌1에서 충실히 이해하고 연기해낸 배우들을 다시 만났을 때의 느낌도 참 좋았어요.

 

경찰, 소방관, 구급대원, 모두 현장에선 치열하게 수사하고, 불을 끄고, 사람 목숨을 구하지만, 근무 시간이 끝나면 그들도 데이트를 하고, SNS도 하고, 장 보러 마트에도 가는 일상이 있더라고 했다. 인터뷰 도중 아이의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는 동안은 모니터를 응시하며 다음 장면을 떠올리는 드라마 작가가 아니라 오롯이 수민이의 엄마였다. 그런 일상을 살면서, 작가로서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써내는 글이기에 더더욱 2023년 하반기 <소방서 옆 경찰서> 시즌2가 기다려진다.

 

 

[출처 :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웹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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