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하다, 즐겁다, 재미있다 : MBC <금수저> 김은희·윤은경 작가
- 사람
- 2023. 1. 13.
따뜻하다, 즐겁다, 재미있다
MBC <금수저> 김은희·윤은경 작가
글. 장주연 편집위원 사진. 김용철 장소협조. 여의도 하우스카페
지난해 11월 종영한 MBC 금토드라마 <금수저>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아이가 우연히 얻게 된 금수저를 통해 부잣집에서 태어난 친구와 운명을 바꿔 ‘후천적 금수저’의 인생을 살게 되는 이야기이다. 한류열풍을 일으켰던 <겨울연가>의 주역 김은희, 윤은경 작가. 전작 <총리와 나> 이후 8년 만의 복귀작으로 시작부터 화제가 됐다. 한예종영상원 동기로 만나 20여 년 넘게 같은 드라마를 쓰는 두 작가. 이제는 과천의 아파트 앞, 뒷동에 함께 살고 있는 이웃 주민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은 가족보다 더 닮은 친구의 얼굴이다. ‘화장 하나 안 한 맨얼굴로 와서 어떡하냐’ 걱정을 하며 웃는 소녀 같은 웃음이 신기하리만치 닮아 있었다.
뜨거운 반응 속에 작품을 끝낸 지금, 두 분 마음이 어떠세요?
윤은경
8년 만의 작품입니다. 그동안 작품으로 시청자를 만나지 못했지만, 작가는 늘 작품을 준비 중인 상태거든요. 한시도 쉬고 있던 적은 없었어요. 그동안 준비하고 있던 다른 작품이 있었죠. <겨울연가 2>도 오랫동안 준비를 했고요. 결국 <금수저>가 먼저 시청자와 인연이 된 거예요. 저희는 계속 작품을 구상하고 만들고 쓰고 있었습니다.
김은희
감사할 따름입니다. 촬영 기간 내내 별다른 큰 사고 없이 잘 마무리된 것 자체도 감사할 일이고··· 감사할 일들이 정말 많아요. 예전엔 당연하다 생각했던 일들이 시간이 지나니 감사해야 할 일이란 걸 알게 되었죠.
드라마 <겨울연가>부터 시작해 KBS <여름향기>, <낭랑 18세>, <총리와 나> 그리고 최근 <금수저>까지··· 두 분은 계속 함께 작품을 만들어오셨죠. 작품이 끝나고 이렇게 쉴 때도 두 분은 함께 시간을 보내는 편이신가요?
김은희
저희는 동네 이웃 주민이기도 해요. 윤 작가가 과천으로 이사를 와서 아파트 앞, 뒷동에 나란히 같이 살고 있어요. 아들 둘 키우는 것도 똑같고, 아들끼리도 친구예요. 친구이자 동료이자 워킹맘으로서 동지이기도 하죠. 그래서 쉴 때 일부러 같이 뭘 해야 할 필요는 없어요. 일상을 늘 같이하니까요.
판타지와 로맨스는 기본이고 ‘인생 체인지’까지 굉장히 전개가 복잡한 구조였습니다. 판을 짤 때 헷갈리거나 어려운 부분들이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김은희
두 주인공이 금수저로 밥을 먹을 때마다 서로의 인생이 바뀌는 설정 때문에, 현장에서 스태프들도 주인공 몸이 바뀔 때마다 혹시나 실수할까 봐 긴장을 많이 했다고 해요. 대본을 쓰는 저희도 그랬고요. 확인하고 또 확인했지만 쉽지 않았어요. 주인공들도 “지금 내가 승천이야, 태용이야?” 현장에서 그랬다고 들었어요(웃음).
드라마 중반에 금수저 태용이 흑수저 승천의 가난한 부모님을 선택하게 됐을 때 시청자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윤은경
승천이보다도, 원치 않게 몸이 바뀌어야 하는 태용에게 어쩌면 더 잔인한 설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팠던 기억도 나빴던 기억도 어찌 됐든 나만의 오리지널한 기억인데, 극 중 금수저 태용은 그 기억 자체가 다 없어져 버리는 거잖아요. 사람이 살면서 나쁜 기억이라고 해도 더 나은 발전을 위해서라면 찾아야 하는 것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아무리 금수저라도 황태용으로 살 때는 전혀 사랑받지 못하는 지옥 같은 삶을 살았으니, 몸이 바뀌어 가난한 승천으로 살 때 어쩌면 진정한 가족의 행복을 느끼는 것은 시청자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작가님들은 두 아이의 엄마이시기도 한데, 이번 <금수저>를 본 자녀들의 반응이 어땠을지 궁금하네요.
김은희
어느 날 고등학생 아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이러면 나도 친구 집 가서 밥 먹고 온다!” 하더라고요, 하하하. 그래서 “누구 집?” 하면서 윤 작가네 얘기가 나왔는데, 윤 작가 아들이랑도 친구 사이거든요. “그 집 가서 밥 세 번 먹어봤자 우리 집이랑 별반 다를 게 없을 텐데?”라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웃음).
웹툰 원작과는 다른 드라마 <금수저>의 엔딩은 이미 집필을 시작하실 때부터 미리 정해졌던 결말인가요?
윤은경
네, 처음부터 엔딩은 지금의 결말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아직 우리 사회는 권선징악에 대해 확실히 보수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웹툰이나 웹소설은 2030 젊은 세대가 주로 보기 때문에 세대가 한정되어 있지만, 아직 지상파 드라마는 보편타당성에 맞는 주제의식을 정확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부자 부모와 가난한 부모를 바꾼 주인공이 어떤 결말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는 처음부터 정확히 가지고 시작했어요.
드라마 자료조사를 위해 만났던 분 중에 가장 기억에 남으셨던 분이 있나요?
윤은경
이번 <금수저> 말고 다른 작품의 자료조사 때문에 만났던 분 중에, 예술의 전당에서 피아노 조율을 하시는 조율사분을 만나서 인터뷰를 한 적이 있어요. 저희가 드라마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조율사로서 살아온 본인의 삶에 대해 고스란히 내어주신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드라마에선 그분의 삶이 양념처럼 쓰일 수도 있지만 그 삶 자체로도 충분히 훌륭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드라마 작가 하길 정말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직업에 대한 보람도 느꼈고요. 아마 우리가 드라마를 쓰는 과정 중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 아닐까 해요.
자, 이제 본격적으로 두 분 이야기도 좀 해볼까 합니다. 두 분은 <겨울연가>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 작품을 하고 계시잖아요. 친구도 이십 년을 함께 하다 보면 웃고 울고 오해도 하는데, 하물며 드라마를 같이 쓰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있을 텐데요.
김은희
믿는 구석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못하는 부분, 모자란 부분은 분명 윤 작가에게 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믿음 말이죠. 중요한 이야기를 할 때는 서로 귀담아듣고, 서로 별 볼 일 없는 이야기 한다 싶을 때 그때 싸우는 거 같아요, 하하.
드라마를 쓰다 보면 수정, 또 수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많잖아요.
김은희
그럴 땐 일단 당 충전을 하고 산책을 합니다. 드라마 작가는 절대 고독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윤은경
스토리가 많이 안 풀릴 때 싹 다 다시 갈아엎고 스토리라인 자체를 새로 짜야 할 때가 있어요. 길 자체가 잘못되었는데 계속 이 길이 맞다고 스스로 우길 필요가 없는 거죠. 그렇게 새 길로 갔는데 그 길이 별로다? 그렇다고 해도 또 어쩔 수 없는 거죠. 저희는 기억력이 나쁜 것 같아요. 그게 단점이자 장점이기도 하죠. 고통을 빨리 잊어야 앞을 보고 달릴 수 있으니까요.
두 분 인연의 시작이 궁금합니다.
김은희
한예종영상원부터 친구 사이였어요. 술친구요. 독립영화 만들어서 상도 받고 그랬어요. 그때도 저희 둘이 함께였죠.
저희는 둘이 함께이기 때문에 드라마를 쓸 수 있는 겁니다. 요즘은 공동작업을 하는 드라마 작가 팀들이 많이 있지만 저희가 처음 시작할 때는 거의 드물었어요. 둘이서 같이 해서 속도가 빠르고 여러 작품을 공동 개발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저흰 한 우물만 파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한 작품을 할 때는 오직 그것만 생각해요. 그런 점까지도 둘 다 비슷한 성격이라서, ‘우리도 여러 작품을 동시에 개발해 보자’고 말로는 시도를 해봤는데 저희 스타일과는 맞지 않은 것 같아요.
윤은경
드라마를 딱 한편 따로 한 적이 있었어요. 제가 첫 아이를 낳고 육아에 대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서 조급한 마음에, 이제 막 둘째를 낳은 김 작가를 기다리지 못하고 혼자서 작품을 시작했었죠. 단순 육아만 하는 내 존재 자체를 견디지 못하고 혼자 시작했던 것 같아요. 다시 돌아간다면, 절대 혼자 안 쓸 거예요. 그때가 드라마 작가로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거든요.
김은희
저는 그때 윤 작가가 충분히 이해가 됐어요. 드라마 작가로서, 여자로서, 아이 엄마로서. 속으로는 ‘나 없이 잘 되나 봐라’(웃음) 그런 마음도 잠깐 있었지만, 힘들다고 하면 언제든 달려가서 바로 도와줄 생각이었습니다.
드라마 제작 현실이 계속 바뀌고 있습니다. K-콘텐츠의 위상도 많이 달라졌고요. 오랫동안 집필을 해온 작가로서 변화를 가장 많이 느끼실 때는 언제인가요?
김은희
유행을 민감하게 따라가는 건 포기했어요, 하하. 지금의 가치나 트렌드보다는 인간 본연이 가지고 있는 감정선에 집중하자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요즘 웹툰이나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제작이 활발한데요. 원작 각색에 대한 두 분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윤은경
모든 드라마 작가들은 본인들의 오리지널 작품 개발에 대한 욕망이 당연히 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계속 변하고 있잖아요. 드라마 작가는 꼭 본인이 개발한 원작을 해야 한다는 과도한 자의식을 내려놓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또 이번 작품을 하면서 배우게 된 점인데, 원작이 가지고 있는 좋은 것들을 과도하게 바꾸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는 거였어요.
김은희
원작이 있는 작품을 해보니 그 원작이 갖고 있는 에너지는 따로 있는 것 같아요. 그 원작을 우리가 드라마라는 장르로 새로 만드는 것. 시대에 맞춰서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로 바꾸는 것이 드라마 작가로서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작이 가지고 있는 매력에 또 무언가 새로운 영혼의 결을 넣고 색을 칠해서 만들어 내면, 어쩌면 그 드라마는 새로운 작품으로서 가지는 의미가 다르지 않을까요.
이십 년 넘게 드라마 작가로 살면서 어떤 작가이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 있으신지요?
김은희
재밌는 이야기꾼이 되자. 결국 그거더라고요.
윤은경
내 삶은 도덕책처럼 재미없고 심심할지라도 내가 쓴 한 편의 드라마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따뜻함을 주는,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였으면 합니다.
김은희 · 윤은경
우리는 결국 재미있는 이야기, 우리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앞으로도 계속 함께 만들고 싶어요. 우리 둘이라서 함께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꾸준히 노력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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