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Febru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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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비 맞으러 떠나는 아산 만추 여행

단풍 비 맞으러 떠나는 아산 만추 여행

전국이 단풍놀이로 떠들썩할 때 호젓한 충남 아산을 찾아갔다. 집마다 감나무에 까치밥을 남겨놓은 외암민속마을의 돌담길을 걸으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공세리 성당을 지키는 아름드리 보호수와 봉곡사 천년의 숲길 앞에서 숙연해졌다. 곡교천 은행나무 비를 맞으며 가을을 배웅했다.

글/사진. 김혜영 여행작가


내 외갓집 같은 외암민속마을

송악면 설흘산 자락 외암민속마을은 예안 이씨들이 약 500년 동안 살고 있는 마을이다. 마을 사람들은 옛날 방식대로 농사를 짓고, 해마다 초가지붕을 새로 올린다. 정월 대보름 달집태우기, 장승제 같은 전통 행사와 세시풍속도 살뜰히 챙긴다. 외암민속마을에서 하는 달집태우기는 전국에서 구경꾼들이 모일 정도로 성대하게 치러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마을에 가려면 누구나 앞내라 불리는 개울을 건너야 한다. 마을 입구에 서면 남녀 장승이 가장 먼저 맞아준다. 추수가 끝난 논에서 허수아비들이 두 팔 벌려 반기는 것 같다. 논두렁 뒤로는 초가지붕이 황금빛 가을볕을 이고 섰다.

포근한 정적을 깰까 봐 발소리를 죽이고 마을 안으로 들어선다. 돌담이 이끄는 대로 걷다 보면 목적지도 잊는다. 그냥 천천히 거니는 이 순간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을 돌담을 모두 이으면 길이가 5km에 달한다고 한다. 길고 긴 돌담길이 걷다 막히는 일이 없고, 모퉁이를 돌면 새로운 길이 기다린다.

단풍 물든 담쟁이덩굴이 돌담을 휘감고, 돌담 위에는 미처 따지지 못한 호박이 넉살 좋게 올라앉았다. 집마다 감나무, 살구나무, 은행나무, 밤나무를 심어 마을이 풍요로워 보인다. 감나무 가지 끝에는 까치밥이 대롱대롱 달렸다.

건재고택과 마주 보고 있는 탐스러운 은행나무

외암민속마을의 보호수로 마을 한가운데에 있다

외암민속마을의 보물, 돌담과 고목

돌담 안에는 전통가옥 60여 채가 자리했다. 고래등 같은 기와집도 있고, 단출한 초가집도 있다. 기와집은 담이 높아 까치발을 들어야 겨우 지붕이 보인다. 대문에는 ‘참봉댁’ 택호가 붙어 있다. 외암민속마을은 주인장의 관직명이나 출신지명을 따서 ‘참판댁’, ‘종손댁’, ‘송화댁’, ‘교수댁’, ‘감찰댁’ 등으로 택호를 붙여 놓는다. 사립문을 활짝 열어 놓은 초가집 마당에는 고추, 호박, 산나물 등이 널려 있다.

마을 안 깊숙이 들어가면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만난다. 수령이 600년 된 보호수이자 마을의 터줏대감이다. 굵은 가지를 사방으로 뻗은 모습이 언뜻 보아도 범상치 않다. 이 나무보다 위엄은 없지만, 수형이 아름다운 은행나무가 건재고택과 마주 보고 있다. 건재고택은 조선 시대 학자 외암 이간이 태어난 집이며 이 마을 고택 중에 으뜸이다. 은행나무 아래 앉아 가을볕을 쬐며 오랜만에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 이따금 바람이 살랑 불기만 해도 은행잎이 ‘쏴’ 댓잎 소리를 내며 흩날린다. 단풍이 한창일 때보다 질 때 더 뭉클한 건 왜일까.

마을 입구로 돌아와 외암민속마을에서 진행하는 전통 체험 프로그램을 엿본다. 체험장에서 디딜방아 체험, 두부 만들기, 솟대 만들기, 떡메치기 등의 농촌체험과 투호, 널뛰기, 그네뛰기, 제기차기 등의 전통놀이를 한다. 민박을 치는 집도 많아 한옥 체험도 할 수 있다. 늦가을 전통 마을에서의 하룻밤은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감나무에 남겨 놓은 까치밥

외암민속마을 입구의 평화로운 풍경

언덕 위 마음의 안식처 공세리 성당

120여 년 전, 인주면 공세리에 프랑스인 신부 드비즈가 부임했다. 그는 공세 창고를 매입해 성당을 짓기 시작했다. 당시 이 마을에는 충청도 일대에서 거둬들인 세곡을 저장하는 창고가 있었다. 그래서 마을 이름도 공세리다. 1922년 드디어 근대식 성당인 공세리 성당이 완공되었다.

공세리 성당은 강원도 횡성의 풍수원 성당, 전북 전주의 전동 성당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아름다운 성당으로 손꼽힌다. 그중 제일이 공세리 성당이라 생각한다. 고딕 양식의 절제미를 갖추어 소박하면서도 기품이 넘친다.

주위 풍광과의 조화도 뛰어나다. 본당 앞 너른 마당에 서면 발아래 아산만이 까마득히 펼쳐진다. 350년이 넘은 국가 보호수 네 그루와 아름드리 고목들이 성당을 에워싸고 있다. 성당 입구 우람한 느티나무 한 그루는 성당을 지키는 수문장 같다. 비탈진 지형에 맞춰 자란 뿌리는 굳세고, 성당을 향해 뻗은 가지는 경건해 보인다.

성당 둘레에 조성된 오솔길 ‘십자가의 길’을 거닐며 사색에 잠겨 본다. 낙엽 밟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릴 만큼 고요한 숲길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세상을 떠날 때까지의 고난을 표현한 14개 조각상을 묵묵히 감상한다. 공세리 성당은 조선 말 천주교 박해 사건 때 이곳 교인 28명이 끌려가 순교를 당한 순교 성지이기도 하다. 종교와 상관없이 이곳에서는 숙연해진다.

아름다운 성당으로 이름난 공세리 성당

곡교천 제방에 은행나무 가로수가 도열해 있는 모습이 장관이다

가을을 송별하러 가는 곳 곡교천 은행나무길

11월 초중순 염치읍 백암리 곡교천 제방길에 은행나무 가로수가 노란 단풍 터널을 이룬다. 길이가 곡교천 충무교에서 현충사 입구까지 무려 2.2km에 달한다. 이 길은 1966년 현충사 성역화 사업 당시 조성된 길이다. 1973년에 이곳 주민들이 심은 10년생 은행나무들이 훌쩍 자라 40~50년생 아름드리나무가 된 것이라고 한다.

주민들의 정성에 보답이라도 하듯 2000년 산림청과 생명의 숲 국민운동본부가 공동 주관한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 대회 ‘아름다운 거리 숲’ 부문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2006년에는 건설교통부가 주최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됐다. 2013년 10월부터 차 없는 거리로 지정돼 주민과 관광객들이 마음 놓고 거닐 수 있는 단풍 명소로 더욱 사랑받고 있다.

매년 10월 말과 11월 초 사이에 은행나무길 축제를 여는데 아쉽게도 올해는 코로나19로 개최 계획이 없다. 축제는 열리지 못해도 이곳의 은행나무는 예년처럼 곱게 물들 것이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은행잎이 함박눈처럼 날리고, 나들이객들의 환호성이 폭죽처럼 터질 것이다.

곡교천 은행나무 단풍 절정기는 매년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11월 초순과 중순 사이다. 축제가 끝났다고 곡교천 은행나무길 나들이를 포기하기에는 이르다.

홀로 걷고 싶은 봉곡사 천년의 숲길

송악면 봉수산 동북 자락에 자리한 봉곡사는 아담한 사찰이다.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온다. 사실, 봉곡사보다 봉곡사 진입로인 솔숲길을 걷기 위해 봉곡사에 간다. 약 700m 길이의 이 솔숲길을 ‘봉곡사 천년의 숲길’이라 부른다. 아산시의 걷기 좋은 관광명소로 등록되어 있으며 운치 있는 오래된 숲이라 인기가 높다.

이 숲에는 우리나라 토종 소나무 500여 그루가 살고 있다. 소나무의 평균 높이는 15m, 수령은 100여 년 정도라고 한다. 우리나라 숲이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상당수 파괴되어 1960년대 산림녹화 사업 때 새로 조성한 숲이 많다고 한다. 봉곡사 솔숲은 다행히 보존되었으나 상처는 깊다. 소나무 밑동을 자세히 보면 나무마다 도끼에 찍힌 듯한 흉터가 또렷하다. 일제가 패망 직전 송진을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주민을 동원해 나무에 상처를 낸 자국이다. 70여 년이 지났는데도 흉터가 사라지지 않으니 애틋하지 않을 수 없다.

고통을 견디느라 그랬을까. 이곳 소나무들은 몸통이 유달리 구불구불하다. 안개가 자욱한 날에 이 길을 걷는다면 신비한 분위기를 매료되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를 것 같다.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솔숲길 끝까지 걸어가면 봉곡사에 닿는다.

토종 소나무 500여 그루가 살고 있는 봉곡사 진입로 천년의 숲길이라 부른다

아산 여행 팁

1. 맛집: 외암민속마을 인근에 있는 시골밥상 마고(041-544-7157)는 오랫동안 아산 맛집으로 소문난 곳이다. 마고정식, 한방 백숙, 한방 수육 등을 판다. 마고정식을 주문하면 돼지고기 수육과 야채 쌈, 도토리전, 두부김치, 된장국, 톳밥이 한 상 차려진다. 외암민속마을 매표소 앞 외암촌(041-543-4150)은 잔치국수, 묵채밥, 떡국, 손두부, 전류 등 간단히 요기할 수 있는 메뉴를 판다. 음식 맛도 괜찮다.

2. 숙소: 파라다이스스파도고(041-537-7100)는 행정안전부가 심사하고 각 도에서 승인한 국민 보양 온천이다. 2019년에는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웰니스 관광지’로 지정되었다. 유황 온천수를 이용한 실내외 스파풀장, 키즈랜드, 아쿠아플레이, 실외유수풀 등도 인기 요소다. 실내 숙박 시설은 없고, 너른 뜰에 카라반 50대를 설치한 캠핑장을 운영하고 있다.


마을 입구에서 요기하기 좋은 외암촌 묵채밥

보양 온천으로 유명한 파라다이스스파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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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사학연금지11월호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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