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October

kyung sung NEWS LETTER

죽음의 공간 위에 삶의 의지를 뿌리내리다: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죽음의 공간 위에 삶의 의지를 뿌리내리다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1909년과 현재 비석문화마을의 모습

 

가파른 산 중턱 비석 위에 지어진 마을.
이제는 비석문화마을이라는 이름 안에 담벼락 위로 벽화가 그려지고 조형물이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과거의 흔적을 기억하는 문화 공간으로 변화했다.
여전히 주민들이 생활하며 삶을 이어가고 역사를 기억하는 마을이 부산시 아미동에 있다.

Photo_ 부산광역시, 부산관광공사


생계를 짊어진 이들, 죽음의 공간에 터를 잡다

갑작스러운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한국전쟁은 국민들의 삶을 한순간에 뒤바꿨다. 전쟁 준비가 되지 않은 남한은 인민군에게 국토의 절반 이상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인민군은 낙동강 방어선까지 남하했다. 전쟁 시작 단 며칠만의 일이었다. 게다가 한반도의 중심부에 있던 남한의 수도 서울 역시 인민군이 점령한 상황이었다. 이에 정부에서는 긴급회의를 통해 안정적으로 수도의 역할을 할 임시수도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부의 기능을 수행하면서 피란민들을 보호할 수 있고 여러 국제기관과의 협력이 용이했던 항구도시 부산은 그렇게 임시수도가 됐다.

피란민들의 삶의 터전이 되기 전, 이곳에는 일본인 공동묘지와 화장장이 있었다. 강화도 조약으로 부산항이 개항되면서 부산에 정착하는 일본인들이 늘어나게 되자, 복병산에 일본인 공동묘지가 들어섰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자 거주지 확보를 위해 복병산에 있던 묘지가 아미동으로 옮겨졌다. 대신동에 있던 화장장도 이곳으로 이전됐다.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아미산 아래 계곡에 새로운 화장장도 생겼다. 화장장을 거쳐 묘지로 이동하는 죽음의 경계에 있던 아미동에 피란민들이 모여 삶의 의지를 깊게 뿌리내렸다.

부산시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전경
마을 초입 벽화지도

“어떻게 비석 위에 집을 짓고 공동묘지에 마을을 이룰 수 있었을까 싶지만,
전쟁을 버텨내기 위한 선택일 뿐이었다”

 

숨은 그림 찾듯 마을 곳곳에 숨어있는 비석을 찾다

일제강점기 이후 일본이 갑작스럽게 패망하면서 우리나라에 머물렀던 일본인들이 서둘러 귀국하기 시작했다. 묘지를 수습할 여유도 없었다. 비석문화마을은 수년간 방치되다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들의 거주 공간이 됐다. 일본인들은 광복 이후 모두 본국으로 돌아갔으므로 방해하는 사람도 없었다. 우리나라와 는 달리 돌을 쌓아 무덤을 만드는 일본의 묘지문화로 인해 집을 짓기가 한결 수월했다. 주민들은 천막으로 천막집을 짓거나 생선 상자나 널빤지로 판잣집을 지었다. 비석은 집의 주춧돌이 되기도 했고 계단이나 담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비석문화마을에 있는 비석의 일부는 아미동 대성사 내에 있는 일본인 추모공간으로 옮겨졌다. 대성사에는 원기둥 모양의 비석도 찾을 수 있는데, 본래 비석문화마을에 있는 가정집의 문지방으로 사용된 것을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이 비석에는 부처님이 열반을 앞두고 마지막에 이야기했던 법화경의 경전 제목인 ‘나무묘법연화경(南無妙法蓮華經)’이 쓰여 있다. 대성사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해마다 이곳에 묻힌 혼령을 위로하기 위한 제를 올린다. 하지만 대부분의 비석은 마을에 남아 계단이나 집을 지탱하고 있다.

치열한 삶의 흔적이 남겨진 비석문화마을에는 그 역사를 이어가는 주민들이 여전히 남아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아이들은 무덤 위를 뛰어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마을 아래에 위치한 화장터에서 피어난 연기 또한 주민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산 중턱에 위치해 물 공급이 어려워 물을 길으러 산 아래에 가기도 했다. 지금도 주거환경이 열악해 겨울철 연탄을 피우는 집이 많다. 여의치 않은 환경 속에서도 주민들은 공동 빨래터에서 함께 빨래를 하고 가족처럼 왕래하며 서로 힘을 보탠다.

한국전쟁의 상흔을 기억하는 감성 공간이 되다

하지만 비석문화마을이 전쟁의 상흔만을 간직하는 공간은 아니다. 담장에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나 아미동의 옛 모습이 그려진 벽화들이 있고 구석구석 조형물이 놓여있어 자칫 삭막해 보일 수 있는 마을의 분위기를 활기차게 만든다. 마을을 거닐다 보면 골목 문화를 구경하는 소소한 재미도 있다. 다만 주민들의 내밀한 삶의 공간임을 생각해 너무 시끄럽게 구경하는 것은 삼가는 것이 좋다.

마을 골목길을 따라가면 주민들을 위한 복합문화공간인 아미문화학습관이나 기찻길 예술체험장 등이 있으니 함께 들러도 좋다. 아미문화학습관에는 우리나라 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알려진 최민식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데,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사람들의 생활상과 1960년대 감천문화마을의 모습을 흑백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어려운 시절을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사진으로 남아 이곳을 지킨다. 구름전망대로 가는 입구인 갤러리 쉼터 반대편에는 피란수도 흔적길이라는 이름으로 해방 이전 서구의 모습과 피란민들의 행렬이 사진으로 남아 있다. 전망대에서는 서구 일대와 영도의 풍경을 한눈에 담긴다.

앞으로는 비석문화마을에 있는 비석들을 전수조사하고 보존해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마을의 생활상과 문화 자료를 수집할 예정이다.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가파른 산, 비석 위에 지어진 집을 중심으로 이뤄진 비석문화마을은 전쟁으로 인한 아픔과 절박함을 기억하고 산동네의 감성을 녹여낸 문화공간으로 변화해 삶의 희망과 의지를 피워내고 있다.

주소 부산시 서구 아미로 49
찾아가는 길 가파른 산 중턱에 위치한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은 부산 1호선 토성역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편하다. 하지만 토성역에서 도보로 약 1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이고, 이정표가 잘 돼 있어 까치고개를 따라 골목 구경을 하며 올라가도 좋다.

 

[ 출처 : 청아람 11+12월호 바로가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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