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바다 향이 담긴 맛, 속초 별미 여행
- 여행
- 2020. 12. 16.
겨울 바다 향이 담긴 맛
속초 별미 여행
‘속초’를 떠올리면 짜르르 군침이 돈다. 겨울 바다 향이 나는 별미들이 물밀듯 생각나서다. 이 딱딱 부딪혀가며 먹는 물회, 알이 꽉 찬 도루묵을 넣고 자박하게 끓인 찌개, 새콤달콤하게 양념한 명태회를 얹어 먹는 함흥냉면, 그리고 바닷가 카페에서 호호 불어가며 마시는 차 한 잔이 있다. 당장이라도 짐을 꾸리고 싶지만, 기다린다. 겨울바람이 땡초처럼 매서울 때를.
글|사진. 김혜영 여행작가
바다 위 산책로 외옹치 바다향기로
‘추우니까 바닷가에 아무도 없겠지?’라는 생각은 속초해수욕장에 도착하자마자 깨진다. 맨발로 파도와 밀당하거나 패들보드를 타는 사람들도 있다. ‘청춘이네. 청춘이야’ 혼잣말하며 삿갓 모양 조도(鳥島)를 벗 삼아 걷는다. 외옹치해수욕장에 다다르면 ‘외옹치 바다향기로’ 해안 데크 산책로가 보인다.
이 산책로는 약 50년 동안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군사 작전 구역이었다. 재작년 ‘외옹치 바다향기로’를 개통하면서 개방됐다. 안보 철책과 빈 초소가 남아 있는 언덕을 넘자 바다 위에 세운 ㄷ자형 전망대가 나온다. 송혜교, 박보검이 주연한 드라마 tvN <남자친구>에서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 사랑을 싹틔운 장소다. 누군지 몰라도 촬영지 캐스팅이 기막히다.
그래도 바다 풍광이 가장 좋은 곳은 하늘데크길 구간이다. 전설이 전해오는 지네바위, 굴바위에 귀 기울이고, 은비늘처럼 반짝이는 바다와 눈 맞추며 걷는다. 하늘데크길이 끝나는 곳에는 대나무숲이 기다린다. 대나무 터널 안에서 바람에 스치는 댓잎 소리를 듣는다. ‘쏴’ 한여름 소나기 같은 소리가 사방에 울린다. 대나무숲은 데크길과 다시 만난다.
한 시간 정도 걷고 나면 출출해진다. 명태회냉면 원조집 ‘함흥냉면옥’을 찾아간다. 냉면이 나오기 전에 양은 주전자에 담긴 뽀얀 고기 육수로 언 몸을 녹인다. 새콤달콤하게 양념한 명태회를 쫄깃한 면발에 싸서 한 입 크게 먹는다. 씹을 때마다 짭조름한 명태회 육즙이 배어 나와 감칠맛을 돋운다.
함경도 음식의 본고장 아바이마을
아바이마을은 6·25전쟁 때 함경도에서 피난 온 실향민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행정구역명은 청호동. 아바이마을도 남북으로 분단됐다는 사실을 몇 해 전에 알았다. 청초호와 바다를 연결하는 넓은 신수로를 뚫으면서 마을이 둘로 나뉜 것이다. 관광 명소인 아바이마을은 청호동의 북쪽 끄트머리다. 끊어진 마을은 2003년 설악대교를 세워 이어 놓았다.
북쪽 아바이마을 주민 대부분이 함경도 음식을 판다. 좁은 골목에 아바이순대, 오징어순대, 명태순대, 가자미회냉면 등을 파는 식당들이 빼곡하다. ‘단천식당’과 ‘신다신식당’이 함경도 음식 원조 식당으로 알려져 있다. 함경도식 육개장인 가리국밥은 신다신식당에서만 판다. 아바이순대와 소고기, 대파 등을 듬뿍 넣고 얼큰하게 끓인 국인데, 소고기국밥과 맛이 비슷하다. 한 그릇 먹고 나면 등줄기에서 땀이 흐른다.
아바이마을에서 속초 시내나 속초관광수산시장으로 가려면 갯배를 타야 한다. 갯배는 속초사람들이 청초호를 건널 때 실제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다. 중앙동 선착장과 아바이마을 선착장 사이에 걸어 놓은 쇠줄을 갈고리로 잡아당겨 갯배를 움직인다. 갯배를 끄는 아바이마을 주민이 있어도 승객도 눈치껏 힘을 보태야 한다. 갯배 요금은 편도 500원. 운행시간은 3분이다.
중앙동 선착장 주변에도 생선구이와 함경도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많다. 이 중에서 아바이순대를 직접 만들어 파는 ‘진양횟집’이 단골이다. 겨울에는 이곳에서 도루묵찌개나 도치알탕을 먹는다. 갈치살처럼 연한 숫도루묵은 구이로, 살이 없는 대신 알이 꽉 찬 암도루묵은 찌개로 제격이다. 도루묵 알을 한 숟가락 듬뿍 떠 입안에 넣고 오도독오도독 씹는다. 알이 톡톡 터질 때마다 쾌감을 느낀다. 12월이 지나면 알이 고무처럼 질겨지므로 지금 이때 먹어야 한다.
활어회가 당길 때는 동명항 활어센터에 간다. 이곳은 자연산 활어회만 취급하며 횟값이 싸기로 소문났다. 회센터 안에 횟감을 팔고, 손질하고, 상차림을 해주는 곳이 나뉘어 있다. 12월에는 대게를 찾는 손님이 많다.
오메가 일출을 선물한 영금정
동명항 근처에 속초등대, 영금정, 영금정 전망대, 해맞이 정자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영금정은 정자 이름 같지만, 속초등대와 동명항 사이 해안에 넓게 펼쳐져 있는 갯바위다. 우뚝 솟은 갯바위 위에는 영금정 전망대가 올라앉았다. 이곳에서 바다를 향해 길게 뻗은 해맞이정자가 한눈에 보인다. 겨울에는 해맞이정자 앞으로 해가 뜨므로 연말 연초 일출 명소로 유명하다. 눈곱만 떼고 영금정으로 달려와, 해뜨기 30분 전부터 발을 동동거리며 해를 기다린다. 날씨 운이 억세게 좋은 날에는 오메가 일출을 볼 수 있다. 입이 벌어진 것도 모를 만큼 황홀한 순간을 맛본다.
영금정 서쪽에 있는 속초등대의 전망대에 오르면, 영금정과 동명항, 속초 시가지와 설악산 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북쪽 등대해수욕장의 산홋빛 바다색이 아름다워서 바닷가에 횟집과 전망 좋은 카페가 속속 들어섰다. 이 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물회집이 ‘봉포머구리’다. 잠수부였던 주인장이 작은 가게로 시작해서 음식 맛 하나로 큰 건물을 세웠다. 해삼, 비단멍게, 문어숙회, 광어회, 성게알, 백골뱅이를 넣은 모둠물회 앞에선 누구나 눈이 휘둥그레진다. 여덟 가지 찬과 소면 두 덩이가 밥상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꼬들꼬들한 해산물과 아삭한 채소와 소면을 차가운 육수에 말아 호로록 먹는다. 머리가 띵하고 이가 덜덜 떨릴지언정 물회는 겨울에 먹어야 제맛이다.
속초 토박이가 운영하는 오래된 공간
속초가 예전의 속초가 아니다. 오래된 책방들이 세련된 분위기로 단장해 명소가 되고, 도시재생 트렌드를 반영한 레트로 콘셉트 카페들이 핫플레이스로 등극했다. 속초를 대표하는 ‘문우당서림’과 ‘동아서점’은 속초 토박이가 창업한 오래된 서점이다. 앞집 뒷집이므로 거리도 가깝다. 이 두 서점은 책을 파는 것을 넘어 지역 문화를 만들어가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성장하고 있다. 작가와의 만남, 시 낭송회 주최, 속초 인문학 서적 출간 등의 이벤트를 때때로 연다.
속초관광수산시장 입구에는 속초에 하나뿐인 작은 헌책방 ‘대경중고서점’이 있다. 70년대 스타일 건물이 시선을 끈다. 책방 천장 턱밑까지 책이 꽂혀 있다. 허리가 휜 나무 선반이 세월을 말해준다. 주인장이 말하길, 헌책방을 인수해 장사한 지가 26년이고 이전 세월까지 합하면 책방 역사가 50년쯤 됐을 거라고 한다. 그녀는 책을 팔아 돈 벌 생각이면 책방 못한다며 손사래 친다. 손님들이 이 공간을 좋아해 주니 그 보람으로 책방을 지킨다고 한다. 속초에 간다면 이 책방의 안부부터 물을 것 같다.
문우당서림에서 바닷가 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속초 핫플레이스 ‘칠성조선소 살롱’이 나온다. 조선소에서 더 배를 만들지 않게 되자, 칠성조선소의 3대 대표가 조선소 건물을 카페와 전시 공간으로 개조했다. 배를 만들고 수리했던 건물이 추억을 담은 전시장이 되고, 만든 배를 바다에 띄우기 위해 마당에 설치했던 철 구조물들이 벤치가 되고, 옛 살림집은 작은 책방이 되었다. 어쩌면 폐허 같은 이 공간이 인기 있는 이유는 오래된 공간에 시간의 이야기가 입혀졌기 때문이 아닐까.
속초 여행 팁
1. 영랑호 스토리자전거: 문화해설사가 운전하는 전기자전거를 타고 영랑호 둘레를 한 바퀴 도는 자전거 여행이다. 속초 여행을 많이 했어도 문화해설사가 들려주는 영랑호의 자연 풍광, 역사, 생태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새로웠다. 겨울에는 무릎 담요를 덮고, 겨울 호수를 달린다. 소요 시간은 약 50분. 2인 요금 35,000원. 예약(033-637-7009)
2. 영랑호 범바위: 영랑호는 알아도 영랑호 범바위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 영랑호 스토리 자전거 대여소 뒤쪽 돌산에 범바위라는 큰 바위 무더기가 있다. 범을 닮아 범바위라는데 아무리 봐도 범 같지 않다. 바위가 둥글둥글한 것이 하늘에서 떨어진 공깃돌이 아닐까 싶다. 범바위로 오르는 숲길에 영랑정이 있다.
[ 출처 : 사학연금지 12월호 바로가기 ]http://tpwebzine1.com/page/vol409/view.php?volNum=vol409&seq=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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