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November

kyung sung NEWS LETTER

책방이라는 행복한 사치에 빠져버렸다. <오래된서점> 안현주 대표

파주는 책으로 유명한 도시다. 파주출판단지가 있고, 책과 관련된 행사도 수시로 열린다. 그래서 파주에서 서점을 한다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안현주 대표도 6년 전 파주로 옮겨와 책방을 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을 저지른 건 남편이었다. 중고책 판매 일을 하던 남편은 책을 보관할 창고를 구하다가, 엉뚱하게도 오리고깃집을 임대받았다. 오리고기가 지글지글 익어 나갔을 불판 테이블을 치우고, 그 자리에 커다란 책장을 놓았다. 서점은 오래되어야 가치 있는 법이라며 책방 이름은 <오래된서점>이라 지었다. 이렇게 안 대표는 얼렁뚱땅 책방 대표가 되었다.

글. 정윤미 편집위원사진. 김선미

 


처음에는 헌책을 쌓아둘 목적으로 얻은 공간이었거든요. 그런데 보니까 조금만 꾸미면 책방을 할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서울의 독립책방처럼 세련되고 예쁜 공간으로 꾸며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당장은 자본이 없으니까 좀 더 준비를 해야겠다 했는데, 남편이 그냥 하자는 거예요. 준비 다 하고 하려면 평생 못 한다고, 그러니까 지금 이대로 하자고요. 이렇게 무모하게 시작을 한 거죠.
책 팔아서 돈 생기면 페인트 사서 조금 칠하고, 또 돈 생기면 형광등 하나 갈고. 중고나라 같은 데서 가구 하나 사고, 재활용 수거함 뒤져서 괜찮은 물건 하나 가져오고. 이렇게 하나하나 채워 나가다 보니 지금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어요.


<오래된서점> 문을 열고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선 순간 나도 모르게 와,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책방 한가운데 자리한 드럼과 피아노, 그림책부터 독립출판물, 신간까지 고루 갖춘 서가, RM이 촬영하고 간 흔적들(BTS 이야기는 차차 해 보자), 손때 묻은 카메라와 카세트테이프까지··· 책방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리는, 묘한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여기 있는 카세트테이프는 제가 고등학교 때 모았던 거예요. 친구들이 H.O.T. 좋아할 때 저는 015B 좋아했거든요. 비디오테이프랑 DVD는 결혼 초에 남편이랑 같이 보던 거고요. 또 MBC에서 친하게 지냈던 카메라 감독님이 주신 카메라도 있어요. 제가 책방을 열었다고 하니까 그분이 대학 시절에 쓰던 수동 카메라를 두 상자나 가져다주신 거예요. 책방이랑 어울릴 것 같다고요. 그때는 정말 눈물 났어요. 그분의 추억을 고스란히 제게 선물해 주신 거잖아요. 지금도 생각하면 울컥하는 것 같아요.

저는 책방은 주인이 만드는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주인이 책을 어떻게 큐레이션하고 어떻게 기획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다 보니까 책방은 오는 사람들이 만들어주는 거더라고요.


손님들이 어떤 책을 주문하는지에 따라 서가의 색깔도 달라지고요. 손님들에 따라 서점이라는 공간도 새롭게 바뀌어요. 한번은 범상치 않은 포스의 손님이 온 적 있는데요. 정장에 모자, 운동화까지 근사하게 차려입고 오셔서 얘기를 하는데, 목소리가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혹시 가수나 배우시냐고 물어봤는데, 뮤지컬 배우라고 하시더라고요. 저희 책방에서 10분 거리에 산다면서, 이후로도 자주 오셨죠. 그러던 어느 날 그분이 당시 하고 있던 뮤지컬 작품을 좀 축소해서 책방에서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시는 거예요. 책방에서 뮤지컬이라니 엄두도 못 낼 일이잖아요. 그런데 그분 덕분에 이 공간에서 정말 공연을 한 거죠.

오래된서점 뮤직페스타 - ‘커플의 소리’ 김모아 작가, 허남훈 감독
≪환상의 책방 골목≫(책담) 저자, 라이브 북토크 / 2020년, 코로나로 돌잔치가 취소된차유진 어린이를 위한 깜짝 돌잔치

 

저희 책방에서는 재즈 음악회도 정기적으로 열었어요. 제가 방송작가로 일할 때 퇴근하고 홍대 라이브 클럽 가는 게 힐링이었거든요. 근데 아이 낳고는 이걸 못한 거예요. 그래서 책방을 하면서 엄마와 아이들이 같이 참석할 수 있는 음악회를 시작했죠. 음악회 하면서 이웃들끼리 서로 얼굴도 알게 되고, 맥주도 한 잔씩 같이하게 되고, 책방에서 자꾸 뭔가 더 해보자고 하고, 그러다 보니 저희 책방이 동네 사람들이 모여드는 마을회관 같은 곳이 되는 거예요. 어떤 날은 아침에 책방 문을 열면, 호박이랑 상추 같은 것들이 문 앞에 있어요. 텃밭 농사하는 이웃이 두고 간 거예요. 이런 일은 <응답하라> 시리즈 같은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건 줄 알았는데, 여기서 실제로 있더라고요. 제가 처음에 남편이 책방 하겠다는 걸 반대했었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알게 됐어요. 서점이라는 이 공간이 가지는 힘이 정말 크구나!


안현주 대표의 꿈은 고등학교 때부터 방송작가였다. 잡지에서 우연히 방송작가에 관한 기사를 보고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졸업 후 방송작가로 첫발을 디딘 곳은 MBC 보도국. <시사매거진 2580>, <사실은>, <경제매거진> 등의 시사 프로그램을 섭렵했고, <나훈아쇼>, <생방송 음악캠프> 같은 예능 프로그램도 경험했다. 그렇게 딱 10년을 일했다.



작가 일을 할 때는 늘 신경이 곤두서 있잖아요. 쉬는 날에도 로그아웃하지 못하고 계속 일에 신경을 써야 하고요. 책방을 하면서는 그런 예민한 안테나가 조금 꺾인 것 같아요. 여기선 행사를 하더라도 실수해도 괜찮잖아요. 방송국에서는 조금만 실수해도 죽을죄가 되는데. 방송 사고가 날 수도 있고요. 그래서 긴장을 늦출 수가 없고 늘 불안했는데, 여기 와서는 그런 강박에서 벗어난 것 같아요. 그래,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 하는 여유가 생겼어요.

서점을 하면서 책도 한 권 냈어요. 서점에서 독립출판 워크숍을 진행했었거든요. 그때 저도 같이 수업을 들으면서 책을 썼어요. 제목은 <하다하다 책방이라니>! 이걸 딱 1,000부 인쇄했거든요.

방송작가로 일하던 시절의 안현주 대표

근데 정말 예상치 못한 분들이 책을 읽어주시더라고요. 한 번은 수원에 계신 학교 선생님이 책을 읽고는 여길 너무 와 보고 싶었다며 월차를 내고 오신 거예요. 이런 인연은 한 명만 있어도 평생 기억에 남잖아요. 근데 제 책을 읽고 여기까지 찾아와 주신 분이 열 분 정도 돼요. 너무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죠. 그래서 저는 사람들 만나면 빨리 책 써라, 이 얘기부터 해요. 청소 노동자나 경비원, 유품 관리사 이런 분들이 독립출판으로 책을 내서 반향이 컸거든요. 책을 쓸 때 필력도 있어야겠지만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남녀노소 누구나 자기 이야기가 있잖아요. 모두가 한 권의 책을 내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아날로그 감성 가득한 서점에서 커피도 내리고, 맥주도 내리고, 손님이 없을 땐 혼자 책을 읽고 손님이 올 땐 같이 수다를 떨고. 작가들이라면 한 번쯤 꿈꿔봤을 듯한 인생 2막의 한 장면. 이 판타지를 현실로 살아내고 있으니 얼마나 행복할까 물었다. 그러나 낭만으로만 책방 주인이 될 수는 없는 법. 서점으로 어떻게 수익을 낼 수 있을까, 늘 고민한다고 했다.


서점 운영한 지 6년째인데, 아직 수익모델을 짜지 못했어요. 동네 책방들은 지역 도서관에 책을 납품하거든요. 납품해서 얻는 수익이 있고요. 또 문체부나 경기콘텐츠진흥원, 경기문화재단에서 하는 지원 사업이 많은데, 여기에서 지원을 받기도 해요. 이렇게 해서 책방 유지비는 나오는데, 수익을 내지는 못하는 거죠. 유지만 하면서 남편은 남편 일 하고, 저는 제 일 하면서 생계를 꾸리고 있어요. 지난 6년 동안은 저희 즐거움을 위해서 서점을 유지해 왔거든요. 저희 행복을 위한 사치였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이제는 서점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죠. 수익모델을 만드는 게 가장 큰 숙제예요.


돈보다는 책이 좋아서, 사람이 좋아서 했던 일들이었다. 그렇다 해도 언제까지 이 사치를 누릴 수는 없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꿈같은 일이 펼쳐졌다.


미국의 공영 라디오 방송 NPR 뮤직의 유튜브 채널에서 ‘타이니 데스크 콘서트’라는 걸 하거든요. 낡고 오래된 서점을 배경으로 가수들이 짧은 콘서트를 하는 건데, 제가 이 채널을 되게 좋아했어요. 그런데 BTS 멤버 RM이 저희 책방에서 타이니 데스크 영상을 촬영하고 싶다는 거예요. 우리가 로또 맞을 확률이 높을까, BTS가 여기 올 확률이 높을까, 남편이랑 이런 농담을 한 적이 있는데, 세상에나 정말 RM이 온다는 거죠. 지난 3년 동안 꾸준히 음악회를 했지만 전혀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RM이 온다고 하니까 그 시간을 다 보상받는 것만 같았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려는데 안 대표는 한사코 점심을 먹고 가라며 우리를 붙잡았다. 옆에 있던 남편이 쿨하게 중국집 주문을 했다. 자장면 먹자더니 탕수육까지 시켜주셨다. 이 책방이 동네 사랑방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점심을 먹으면서 이곳이 아미(BTS 팬덤)들에게 더 알려져야 한다며 흥분했다. 어떤 이유로든 <오래된서점>은 오래오래 있어 주기를, 이 행복한 사치가 끝나지 않기를, 마음을 담아 응원했다.

 

[출처 : 한국방송작가협회 방송작가 웹진 5월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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