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기울여 보세요 강릉의 소리에
- 여행
- 2023. 10. 11.
여기 강릉에서만큼은 잠시 귀에 꽂은 이어폰을 빼어보는 건 어떨까. 생각보다 평화로운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으니.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옛 노랫소리, 부드럽게 부서지는 파도 소리, 해변을 거닐며 걱정이라고는 잊은 듯한 사람들의 웃음소리…. 듣고 있노라면, 더 귀 기울이고 싶어질 것이다.
글. 임혜경사진. 정우철
강릉에서는 언제나 오감만족
언제부터인가 강릉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수도권과 가깝고 KTX로는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접근성도 한몫했다고 본다. 물론 강릉이 지닌 본연의 매력이 가장 컸을 테지만.
강문, 경포, 안목해변 등에서 푸른 바다를 볼 수 있고, 은은한 커피향이 번지는 분위기 좋은 카페들이 즐비하고, 배고픈 여행자들의 입맛을 돋우는 먹거리도 많고, 선선한 바닷바람을 느끼며, 잔잔한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언제고 찾아와도 아쉬움 없다. 그야말로 ‘오감’이 만족스러운 여행지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왠지 모르게 감성에 젖게 되는 이번 가을에 강릉을 찾았다면, 소리에 집중하는 여행을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강릉은 사실 지난 7월 개최한 ‘강릉 세계합창대회’와 소리박물관이라 불리는 ‘참소리에디슨손성목영화박물관’이 있을 정도로 소리와 밀접하기 때문이다. 물론 해변에 늘어선 카페 중에서 마음에 드는 곳에 앉아 파도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강릉의 분위기에 몸을 맡기고 귀를 열어 보자. 지난여름,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지친 심신을 달래기에는 이만한 치유도 없을 터이니.
“한때, 파나소닉의 창업주가 ‘도쿄 한복판에 1,000평 건물을 지어줄 테니 수집품을 일본에서 전시하자’라고 제안을 했지만, 손성목 관장은 ‘한국 아니면 안 하겠다’라며 딱 잘라 거절했다고 한다.”
박물관에서 축음기 소리를 듣다
강릉에만 있는 소리의 집합체, 참소리에디슨손성목영화박물관으로 향해본다. 이름이 워낙 길어서 ‘강릉 소리박물관’이라고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외관만 봤을 때는 우리가 흔히 아는 박물관다운 느낌은 사실 없다. 하지만 소장품 규모는 세계에서 최대치를 자랑한다고.
이 소장품은 박물관 이름에 있는 ‘손성목’ 관장의 삶과도 다름없다. 박물관의 설립자인 손성목 관장이 어렸을 때, 피아노와 전축을 좋아하던 어머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된다. 이 충격으로 방에만 틀어박혀 있던 그를 달래기 위해 아버지는 포터블 축음기를 선물했고, 관장은 거기에 매료되었다고. 이후 그는 중학교 때부터 동네 전파사를 돌며 축음기 10여 대를 모으기 시작해 더 나아가 전 세계를 여행하며 축음기를 수집했다. 이때, 에디슨의 발명품들과 마주치며 에디슨의 각종 발명품까지 수집하게 되었다. 관장은 이 수집품들을 1982년에 강릉 참소리 방을 열어 전시했고, 이어 1992년 참소리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박물관을 정식 개관했다.
명품 축음기, TV, 라디오, 뮤직박스와 에디슨의 발명품 등 전시품이 정말 많다. 그래서인지 관람의 편의와 이해를 돕기 위해 소리 특화 박물관인 참소리축음기박물관과 과학 특화 박물관인 에디슨과학박물관으로 나누어 전시를 선보이고 있다.
소리와 과학이라는 흥미로운 주제 덕분인지 아이들 교육을 위해 찾는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았다. 게다가 해설사들의 친절한 설명과 전시품에서 소리까지 직접 들을 수 있어 제대로 ‘귀가 호강’인 시간이었다.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는 LP판, 외국 축음기 등이 아이들에게는 신선함으로,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에게는 잔잔한 추억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분위기, 감성이 남다른 안목
참소리축음기박물관부터 에디슨과학박물관까지 다 둘러봤다면 그 옆에 위치한 영화, 라디오, TV박물관도 빼먹지 않고 가볼 것. 별관에 있어서 별도로 표를 끊어야 하나 오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처음 입장 시 끊었던 표를 보여주고 입장하면 된다. 옛 영화, 라디오, TV와 연관된 전시품들이 빼곡하게 차 있어 그 전 박물관과는 또 다르게 보는 재미가 있다. 특히 이곳은 바로 앞에 경포호가 있어 뷰도 좋다. 가을 초입에 들어서는 때였던 지라 자전거를 빌려 타고 경포호를 지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모습이 잔잔한 경포호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박물관에서 시간을 보낸 뒤 강릉 본연의 소리라고도 할 수 있는 바닷소리를 찾아 나섰다. 강릉의 상징과도 같은 안목해변으로. 유명한 곳은 실망을 시키는 법도 없으니까. 안목해변만의 감성이 듬뿍 담긴 상점과 카페 간판들이 가장 먼저 반겨줬다. 휴가철이 한참 지난 시기였는데도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그 속에 섞여 모래사장을 걸었다. 그러다가 모래사장 아무 데나 자리를 잡고 털썩 앉아 멍하게 보낸 잠깐의 시간. 거칠지 않은 파도 부서지는 소리와 여러 소리가 섞여 만들어 낸 백색소음에 어쩐지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 안목은 남대천 하구 반대편에 위치한 남항진에서 송정으로 가는 마을 앞에 있는 길목이라는 뜻에서 생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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