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Octo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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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반小盤은 추억을 따라간다 이종구 소반 작가

[출처 : 신협 뉴스룸 웹진 9+10월호 바로가기]

 

음식을 먹을 때 음식 그릇을 올려놓는 작은 상, 소반(小盤). 누군가는 이 소반을 밥상으로, 술상으로 그리고 책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어떤 용도로 사용하든 상관없다. 그게 바로 소반이고, 그러면서 추억이 쌓여가는 것이라고 이종구 소반 작가는 말한다. 서울 북촌한옥마을 일대에 자리한 그의 소반공방을 찾아가 소반 이야기 한상차림을 받고 왔다.

글.손은경 사진.고석운

 


소반, 인생에 훅 치고 들어오다

인생은 사고와 같은 것이라고 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 무언가가 훅 치고 들어와 인생을 바꿔버린다. 이종구 작가에게 소반이 그런 존재다. 20년 가까이 사진작가로 활동하던 그는 그저 취미 삼아 나무 가구를 만드는 소목 강좌에 등록하러 갔다. 하지만 너무나 인기 강좌라 자리는 이미 다 찼고, 직원의 권유로 소반 강좌에 등록했다. 그때 그 직원도 이종구 작가도 몰랐다. 권유 한마디에 인생이 바뀔 줄은.

“사진도 좋아서 시작한 건데 일이 되니까 스트레스가 쏟아지더라고요. 스트레스 해소로 시작한 소반 만들기인데 다리를 깎기 위해 칼질하는 동안 집중하는 시간, 은행나무 특유의 꼬릿한 냄새가 마음을 편하게 해주더라고요. 그러다 점점 더 소반 만들기에 시간을 할애하게 되고, 오랫동안 카메라를 쥐고 있던 손에는 칼과 옻칠 붓이 들려 있더군요.”

인생을 이렇게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흘러가게 한 소반. 그에게 소반이란 무엇인지 물었다. 답은 굉장히 간단했다. 그가 생각하는 소반이란 한마디로 ‘정의 없음’이다. 소반은 처음부터 끝까지 만드는 사람의 손을 타는 수공예품이다. 그렇기 때문에 10개를 만들면 10개 다 다르고, 계획을 했더라도 언제든 변경해도 아무런 문제 될 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가 추구하는 소반은 편안함과 자연스러움, 그리고 자유로움이다.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소반은 물건을 놓는 넓은 부위인 천판, 천판 밑의 테두리인 운각, 소반을 지지하는 기둥인 다리, 다리와 다리 사이를 연결해 지지하는 11자 형태의 족대 구조로 되어 있다. 하나의 소반이 완성되기까지 톱으로 자르고, 대패로 다듬고, 칼로 문양을 만든다.

여기서 가장 마지막 단계가 옻칠이다. 소반에 옷을 입히는 과정이라 할 수 있는데, 보통은 옻칠을 6~7번 하지만 이종구 작가는 기본 15~20번 칠한다.

“소반은 이동하는 가구예요. 소반 위에 음식을 놓고 그대로 들고 이동해요. 꼭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한 곳에 고정해서 두고 쓰는 게 아니기 때문에 들었을 때 가벼워야 해요. 그렇다고 무게가 가볍다고 해서 소반이 주는 이미지까지 가볍게 보이고 싶지 않았어요. 옻칠을 하면 할수록 진해지면서 묵직함이 올라오죠. 그걸 표현하고 싶어 칠을 많이 하고 있어요.”

소목 하는 사람들도 한 번쯤은 만들어 보는 것이 소반이라 한다. 구조가 단순하기 때문에 쉽게 보는 면이 있다. 하지만 무엇이든 깊게 들어가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소반도 마찬가지. 사람들이 소반을 직접 만들지 않아 잘 모른다고 하더라도, 소반의 무게가 가볍더라도 가볍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 소반 만드는 사람의 자존심이다.

 

 
 


소반의 완성은 사용하는 사람이다

소반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옻칠이 마지막 단계이지만 이종구 작가는 진짜 완성은 사용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소반은 애지중지하며 다룰 것이 아니라 막 써야 한다는 것.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새겨진 생활의 흔적은 추억이 되고 시간이 흐르면 더 많은 이야기가 소반 위에 맛있는 이야기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기억은 또 소반을 찾게 되는 계기가 된다.

“소반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은 소반을 써본 추억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예전에 소반을 만들어 달라고 온 분이 있었는데요. 이유를 물어보니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소반에 밥을 먹었던 기억이 너무나 좋았대요. 그 기억을 아이들에게도 전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한 신혼부부는 소반에 가까이 마주 앉아 이야기하며 지내고 싶다면서 주문했는데요. 역시나 할머니와 함께 소반을 사용했던 추억이 있었어요. 소반은 사용했던 사람들의 추억을 따라간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어요.”

이종구 작가가 추구하는 소반의 편안함, 자연스러움, 자유로움이 다시 한번 드러나는 대목이다.


바꿀 게 없는 전통소반 디자인

이종구 작가는 지난해 미국 뉴욕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한식문화 해외 홍보 캠페인 ‘2022 K-Food 한식: 소반 & 도시락’에 참가하여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전통 소반을 선보였다. 뉴욕에서는 소반에 한식 도시락을 먹는 체험을 잔디밭에서 진행했다. 문화의 차이로 바닥에 앉아 밥 먹는 것이 마냥 편하지 않았지만 소반의 아름다운 형태와 한 사람을 위한 대접이 그들에게는 새로움 그 자체였다. 전통의 현대화를 추구하는 요즘, 가장 전통적인 우리의 밥상이 통한 순간이었다.

“전통소반은 바꿀 게 없는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소반의 문양 디자인도 다 의미가 있고 허투루 쓰는 게 없어요. 요즘 생활방식에 맞춰 높이를 높이거나 조색을 해서 노란색, 올리브색 등 전통 소반에서는 찾기 어려운 다양한 색을 선보이는 시도는 저도 하고 있지만 전통 소반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징은 절대 놓고 싶지 않아요.”


일제강점기에 조선의 도자기와 소반을 연구했던 일본인 아사카와 다쿠미는 조선인들에게 신기한 점을 발견했다. 상경할 때 집안의 큰 재산이 되었던 소는 팔아도 소반은 꼭 챙겨가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절대 맨바닥에 음식을 두고 먹지 않는 민족이다. 춘향전을 보면 변사또 생일 잔칫날 거지꼴로 나타난 이몽룡에게도 개다리소반에 한상 차려 먹여 보내라 했다. 그리고 유난히 밥으로 안부를 묻는 우리다. 이 때문에 밥의 민족으로도 불리지 않던가. 너무나 중요한 이 밥을 행복과 장수를 비는 소반에 올린다. 소반, 그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려온 우리 식문화의 근간이다.

 

 

[출처 : 신협 뉴스룸 웹진 9+10월호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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