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시크릿 가든 산양큰엉곶
- 여행
- 2023. 12. 26.
[출처 : 한국남부발전 KOSPO FAMILY 11월호 웹진]
먼 옛날 화산이 터지고 용암이 흘렀다. 용암은 바다와 바람을 만나 단단해졌고 그 위로 나무, 풀들이 하나둘 자라 독특한 숲을 만들었다. 그렇게 무수한 생명을 품으며 제주를 지키는 곶자왈이 만들어졌다. 사람의 손이 묻지 않아 유지되던 원시림이 사람의 손길로 색다른 풍경을 형성했다. 산양큰엉곶 이야기다.
글. 이효정 사진. 조병우 영상. 최의인
색다른 여행지 곶자왈
제주도에는 화산, 오름과 더불어 곶자왈이란 특이한 형태가 있다. 이 중 곶자왈은 제주도 면적의 6.1% 정도를 차지한 지역이다. 곶자왈은 암괴들이 불규칙하게 널려 있는 숲을 일컫는데 독특한 식생을 지녔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열대 북방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한계 식물이 공존하고 있는 것. 이런 형태는 제주도가 처음 만들어질 때로 돌아가야 이해할 수 있다. 화산이 폭발하고 용암이 흘러내렸다. 점성이 약했던 용암은 흘러 흘러 바닷가의 평평한 암반이 되었고, 점성이 강했던 용암은 흐르며 강하게 깨어져 바위가 되었다. 이런 바위 위로 비가 내렸고 숭숭 뚫린 구멍이나 틈 사이로 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 틈으로 한라산과 인근 수풀에서 날아든 씨앗들이 뿌리를 내렸고 커다랗게 자란 나무들은 바위를 감싸고 뻗어나기 시작했다. 바위 구멍과 틈이 머금었던 물은 주변 식물들이 자랄 수 있는 알맞은 습도를 전달했고, 바위틈은 일정한 열을 유지하도록 해 식물들을 자라게 했다. 이런 환경의 곶자왈은 연중 15℃ 안팎 온도를 유지하며 남방계와 북방계 식물이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일 년 내내 푸름을 잃지 않는 곶자왈에서 사람들은 나무를 베거나 죽은 나무를 이용해 땔감으로 사용했고, 숯으로 만들었다. 버섯, 도토리를 비롯해 다양한 구황식물을 얻었다. 4·3사건 당시에는 피난처가 되어 주기도 했다. 하지만 산업화가 시작하면서 쓸모없는 땅, 버려진 땅이 되었고 사람의 발길이 끊기면서 다시 원시림의 형태로 돌아가 다양한 생명들의 터전이 되어갔다.
이런 곶자왈은 해발고도 200~400m 내외의 중산간에 분포되어 해안과 산간지역을 나누는 역할을 한다. 가장 보존 상태가 좋은 곶자왈은 총 4곳이다. 제주 4대 곶자왈이라고 불리는 곳은 제주도 서부의 한경-안덕 곶자왈, 애월 곶자왈, 동부의 조천-함덕 곶자왈, 구좌-성산 곶자왈 지대다. 이 중 한경-안덕 곶자왈에 속한 산양곶자왈이 지난 2022년 산양큰엉곶으로 이름을 바꾸고 새로운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공개되었다.
여기저기 포토존이 가득, 산양큰엉곶
엉은 ‘바닷가나 절벽 등에 뚫린 바위 그늘이나 굴’을 의미하는 제주어다. 여기에 ‘숲’을 의미하는 곶이란 단어가 합쳐졌으니 큰엉곶이란 말은 커다란 바위 숲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산양은 곶자왈이 있는 지역의 이름이다.
산양큰엉곶은 원래 마을의 공동목장이었다. 방치되어 있던 목장을 마을 주민의 아이디어로 산양곶자왈 중 3.5km를 정비했다. 이곳이 다른 곶자왈과 가장 큰 차이는 테마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곶자왈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즐기도록 했다면 산양큰엉곶은 다양한 포토존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놀고 즐길 수 있는 쉼터가 된 것이다. 크게 두 코스로 산양큰엉곶을 둘러볼 수 있다. 유모차나 휠체어도 다닐 수 있도록 잘 정비된 달구지길과 곶자왈의 모습을 그대로 볼 수 있는 숲길이다. 달구지길의 이름은 옛 모습 그대로 소와 말이 달구지를 끄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지어졌다.
입구에서부터 마을회에서 많이 신경 쓴 티가 났다. 동화 속에서 볼 법한 집을 시작으로 입구부터 쉬이 걸음을 옮길 수 없는 조형물들이 그득했다. 거울과 등불, 길 양옆에 놓여 있는 사슴 모양의 나뭇조각, 초승달에 앉아 있는 달토끼 세 마리와 절구, 조릿대로 엮은 거대한 새 둥지 등 어느 것 하나 포토존이 아닌 곳이 없다. 20여 분이 지났을까. 새로운 스타일의 포토존인 마녀의 집에 나왔다. 빗자루를 타고 나르는 마녀와 연주하는 해골들을 만나 신나게 촬영한 후 걸음을 돌리니 메인 이벤트 광장이 나왔다. 커피숍이 마련된 메인 이벤트 광장은 때에 따라 콘셉트를 달리하는 데 이번에는 호박 허수아비, 원숭이들이 넓은 광장을 메우고 있었다.
광장을 지나니 박공지붕의 백설공주 집, 난쟁이 집이 나왔다. 방문객들은 준비된 등불을 들거나 옆에 놓고 기념 촬영하고 있다. 어른, 아이 모두 까르르 웃으며 사진 촬영을 즐겼다. 포토존의 메인이라고 할 수 있는 기찻길. 커다란 돌담 사이로 갈색의 나무문을 열면 기찻길이 펼쳐진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이런 기찻길이 몇 군데가 마련되어 있어 인파가 많을 때도 적당한 장소를 찾아가 촬영할 수 있다.
곶자왈의 품으로 들어가는 숲길
진정한 곶자왈을 느끼고 싶다면 숲길로 향하면 된다. 초입까지 20여 분이 걸리는 숲길로 들어서니 사방이 온통 초록을 뒤덮여 있다. 공기부터 달라졌다. 달구지길보다 빛이 차단되어 어둑하지만 바위 위로 야자수매트가 깔려 있어 걷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뾰족한 바위를 피해 갈 수 있으니 어느 곶자왈 길보다 편했다. 바위 위로 이끼와 양치식물이 가득했다. 바위 틈을 뚫고 올라온 나무들이 제각기 모습으로 하늘을 향해 솟아나 있다. 전날 비도 오지 않았건만 바위는 촉촉하게 젖어 있고 빽빽한 나무 사이로 들어온 햇살이 부서졌다. 바닥이 돌투성이라 나무뿌리가 땅 위에서 내뻗은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 어수선하게 된 곳이란 ‘곶’의 의미를 숲길에서 바로 이해할 수가 있었다. 곶자왈에서는 제주에서만 자생하는 제주고사리삼과 가시딸기를 비롯해 멸종위기식물 500여 종이 넘는 식물을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
고요했던 숲길에 ‘툭’하고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때구루루. 소리가 난 지점에서부터 무언가가 굴러 왔다. 개가시나무의 도토리다. 국내에서는 개체 수가 극히 적어 멸종위기 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된 희귀식물인 개가시나무. 4월에 꽃 피우고 11월경에는 익는다는 열매가 초록의 모습으로 떨어졌다. 걷는 내내 ‘툭’, ‘툭’하고 떨어지는 열매로 고요한 곶자왈에 경쾌함을 더했다.
1시간 30여 분이면 모든 코스를 둘러볼 수 있다. 물론, 포토존을 즐기며 사진을 찍는다면 탐방시간은 더 길어질 것이다. 짧은 숲길 외에 전체를 둘러본다면 더 시간이 걸릴 것이니 입구에 비치된 팸플릿을 보고 자신에게 맞는 길을 잘 선택해 보자. 숲길 탐방 시에는 반드시 트레킹화를 신어야 한다는 걸 잊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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