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November

kyung sung NEWS LETTER

인천 곳곳을 예술에 담다: 예술,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

[출처: 한국서부발전 웹진 서부공감 VOL. 119]

도심에서 슬쩍 비켜났을 뿐인데 골목골목 정겨운 풍경이 이어진다. 개발이 한창인 건설 단지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주민들이 골목에 나와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곳. 송림동에서 삶을 예술로 담아내는 박지혜 작가를 만났다.

글. 정재림 사진. 조병우

 

 
Q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시각예술창작가로 활동 중인 박지혜입니다. 창작 활동을 시작한 지는 12년째네요. 그리고 2개월 차 인천 시민이기도 하고요. 최근에는 송림동 작업실과 집안 곳곳을 수선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어요. 본업인 전시는 기회와 뜻이 맞을 때 가끔씩 하고 있고요. 예전에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했는데 지금은 주변의 소개로 소소한 일거리를 받아 뚝딱뚝딱 만드는 일로 먹고삽니다. 너무 욕심내지 않고 자연의 섭리대로 건강하게 사는 게 꿈이거든요.

 

Q 설치 작업과 소설 집필 등 다양한 분야의 활동을 이어오고 계십니다. 예술 활동에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저에게 창작, 그리고 삶의 원동력은 가족입니다. 나 또는 누군가의 어머니가 이해할 수 있는, 그리고 아버지가 가치를 발견할 수 있는 예술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가족 안에는 이미 시대와 사회, 각자의 사연과 입체적인 관계, 그리고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촘촘히 얽혀있어요. 그래서 가족이 피부에 와닿는 진짜 현실 세계라고 생각했거든요. 나의 가족으로부터 시작해 이웃의 가족, 더 큰 공동체 이야기까지 차근차근 확장해가고자 합니다. 제 전공은 입체조형인데요. 본질을 더 잘 구현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찾다 보니 글도 쓰고 영상, 퍼포먼스 작업도 조금씩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Q 작가님이 만드는 예술 세계가 궁금합니다. 평소 어디서 영감을 얻고 작업은 어떻게 진행하시나요?

평소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합니다. 걸어 다니면서 발견하는 생활의 흔적들을 통해 얼굴도 본 적 없는 누군가를 유추하는 일도 흥미롭거든요. 낯선 장소에서도 저는 외지인을 위해 잘 포장된 곳보다 현지인의 구역에 더 눈길이 가는 편이에요. 예를 들면, 보안 기능을 전혀 못 하는 낮고 엉성한 울타리라든지, 이미 태양빛에 삭아 흐려진 동네 슈퍼 간판, 아마도 양이 부족해 점점 묽게 칠한 듯한 경계석 페인트 도장 등을 통해 나와 다른 생태계를 감지하는 게 아닐까 해요. 딱히 예쁘지 않고 까칠한 그 모습에 더 인간적인 매력을 느낍니다. 사진을 찍거나 글을 써서 무작위로 데이터를 수집하는데, 그러면 언젠가 꼭 들어맞는 자리가 나타나요.

 

Q 2023년 5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인천아트플랫폼 입주작가로 활동하셨는데요. 어떻게 참여하게 됐는지, 어떤 활동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2020년, 아는 작가분의 초대로 동인천 일대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든 적이 있었어요. 당시에는 서울에서 오갔는데, 근대역사와 현대 도시의 흥망성쇠를 모두 겪은 인천 원도심에서의 생활이 만족스러웠고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활동 반경을 옮겼습니다. 감사하게도 창작자로서 기반을 잡기까지 인천문화재단과 인천아트플랫폼의 도움이 컸습니다. 입주 작가들에게 창작자로서의 성장을 위한 여러 기회를 제공했는데요. 그중 천 명 이상의 시민들이 찾아준 10월의 오픈 스튜디오와 1월 전시 《그래야 할 때(When you have to)》에서 초면인 방문객들과 화기애애 이야기를 나누었던 일, 레지던시 프로그램 폐지 위기 앞에서 동료 작가들과 고군분투했던 시간을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신경이 쓰인다1 ©박지혜

언제든지 ©박지혜

저에게 창작, 그리고 삶의 원동력은 가족입니다.
가족으로부터 시작해 더 큰 공동체 이야기까지 차근차근 확장해가고자 합니다.

 

Q 인천 도서지역 리서치를 바탕으로 공동체와 역사를 다루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경험한 인천이라는 지역이 가진 특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인천은 현재 인구 300만이 넘는 대도시로 특정 ‘지역성’으로 규정하기에 너무 광범위한 지형, 환경, 역사, 세대를 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도시 연구와 고유한 정체성을 구축하고자 하는 꾸준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죠. 커뮤니티의 회복과 또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공동체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서울에서 30년 가까이 살았는데 막상 스스로를 소개할 때 고향인 부산을 언급하곤 해요. 오랜 과거의 인류가 땅을 매개로 가졌을 공동의 경험, 연대의식이라는 감각이 현재까지 (일부) 유효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리고 송림동 주민으로서 가장 인상적인 점을 꼽자면 지극히 인간적인 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밤이면 동네가 고요해지고 아침에 운이 좋으면 수탉의 울음소리도 들을 수 있어요. 바꿔 말해, 365일 24시간 무엇이든 가능한 도시 시스템이 얼마나 기형적인 것인지 체감하는 중입니다. 인천 내 모든 지역이 그렇진 않겠지만 일단 제가 지내는 곳은 이 점이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단점은··· 없습니다.(웃음)

 

Q 앞으로 펼쳐나가고자 하는 활동 방향이 있다면 나눠주세요. 앞으로의 목표도 궁금합니다.

저는 아직까지 스스로를 예술 창작자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꼭 미술, 작품, 전시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요. 세계적인 작가가 되고 싶은 욕심도 없고, 작품을 수십억 원에 팔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다만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이웃들의 지원과 응원에 보답하며 사회 구성원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그러려면 건강도 챙겨야 하고, 집 안팎으로 청소도 열심히 해야 하고, 특별한 레시피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하고, 주변에 인사도 잘 해야겠지요. 세상 모든 자리에서 호흡을 나누고 있는 분들을 위해 경청, 인정, 존중, 공감하는 일이 창작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믿음으로, 그 형식에는 제한을 두지 않으려고 합니다.

 

Q 마지막으로 <서부공감> 독자분들께 한마디 해주신다면?

몇 날 며칠을 고민해 봤는데 제일 어려운 질문인 것 같아요. 저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 용기가 행복의 확실한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해 왔어요. 가능한 그렇게 살고 있고요. 그런데 짧게나마 겪었던 사회생활은 다르더라고요. 모욕, 분노, 원망, 자책의 하루를 간신히 버텨내면 다음날 다시 반복되고, 또 반복되고··· 피 말리는 일에 시달리던 어느 날, 체중이 10kg 넘게 빠져서는 몇 달 만에 부모님을 뵈었어요. ‘아··· 부모님은 나를 위해 이 모든 시간을 감내하셨구나···’라는 생각을 하니 제가 좋아하는 일의 무게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현재는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 덕분입니다. 그래서 감히 이렇게 말씀드려봅니다. 자리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처: 한국서부발전 웹진 서부공감 VOL.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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