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November

kyung sung NEWS LETTER

봄 숭어처럼 봄 바다 헤엄치는 섬, 여수 거문도

육지에서 먼 섬이 있다는 건, 여행자에게 축복이다. 여수와 제주의 중간쯤에 자리한 거문도는 다도해의 최남단이다.
봄은 바다가 빠른 법이다. 학꽁치는 몸이 간지러운 듯 유영하고, 숭어는 높이뛰기 선수처럼 튀어 오른다.
산에는 툭~ 동백꽃이 지고, 수선화가 환하게 핀다. 섬 구석구석 걸으면서 거문도의 화려한 봄을 만끽해 보자.

Text·Photo.진우석 여행작가

 

거문도 최고 절경으로 꼽히는 기와집몰랑에서 바라본 거문도. 잔잔한 섬의 내해는 보석처럼 빛난다.

 

녹산등대에서 만난 다정한 일몰

여수에서 출항한 배가 2시간 넘게 달려 거문대교 아래를 지나면, 호수처럼 잔잔한 거문도의 내해로 접어든다. 거문도는 서도, 동도, 고도 세 섬이 절묘하게 모여 있어 ‘삼도’라고 불렀다. 생김새는 서도와 동도가 마치 두 손이 가운데를 감싸듯 마주 본다. 북쪽 바다와 만나는 지점은 병목처럼 좁고, 남쪽 바다는 자그마한 고도가 떡하니 버티고 있다. 세 섬이 둘러싼 바다는 그야말로 호수다. 이곳을 ‘삼호’, ‘도내해(島內海)’라고 부른다. 삼호는 천혜의 항구 역할을 한다.

여객선은 우선 서도에 섰다가 고도로 간다. 서도에 서는 줄 몰랐다가 우르르 이동하는 사람들을 따라 내렸다. 우선 녹산등대에서 노을을 보기 위해서다. 녹산등대 가는 길은 널찍한 초원이 펼쳐져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 속이 시원하다.

작은 언덕에는 돌을 들고 있는 ‘신지끼’ 인어상이 있다. 신지끼는 상체는 여인, 하체는 물고기인 인어다. 섬사람들은 신지끼를 섬의 수호신으로 여겼다. 큰 풍랑이 일어나기 전날 어김없이 나타나 절벽에 돌을 던져 이를 알렸다고 한다. 인어상에서 조금 더 오르면 녹산등대가 나온다. 등대에 서면 걸어온 길과 서도와 동도를 이어주는 거문대교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녹산등대는 일몰 명소다. 시나브로 서도의 무구나무섬으로 해가 진다. 저무는 해를 받은 바다는 오묘한 빛을 내뿜는다. 노을 속에서 낚싯배 한 척이 기름 떨어진 배를 유유히 끌고 가는 모습이 다정해 보인다. 첫날은 서도의 민박집에서 묵으며 섬 백반을 받았다. 유명한 거문도쑥으로 만든 쑥국으로 봄기운을 오롯이 충전했다.

 

녹산등대 가는 길의 신지끼 인어상


기와집몰랑, ‘아 몰라 너무 좋아’

거문도의 최고 명소로는 기와집몰랑과 거문도등대를 꼽는다. ‘몰랑’은 전라도 사투리로 산마루라는 뜻이다. 바다에서 보면 이 능선이 기와집 영마루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침 일찍 덕촌마을에서 출발했다. 덕촌마을-불탄봉-기와집몰랑-거문도등대-삼호교 코스는 약 10km, 넉넉하게 4시간쯤 걸린다.

불탄봉은 거문도 최고봉이지만, 높이가 불과 195m로 만만하다. 덕촌마을에서 불탄봉까지는 완만한 오르막이다. 땅에서 올라오는 나른한 봄기운 받으며 천천히 40분쯤 가면 꼭대기에 다다른다. 정상에 널찍한 데크가 있어 조망이 시원하게 열린다. 주변은 온통 동백나무로 덮였다. 붉은 동백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지는 모습이 절경이다.

능선은 부드럽다. 군데군데 나타나는 동백숲 터널에서 붉은 꽃과 눈 맞추고, 조망이 열린 곳에서는 멈춰서 ‘바다멍’ 하는 맛이 있다. 세 개의 돌탑을 지나면 기와집몰랑으로 들어선다. 거친 암릉과 그 사이에 빼곡하게 들어찬 동백나무가 어우러진다. 보로봉 직전에서 오른쪽을 보면 바다 쪽에서 불끈 튀어나온 기암이 보인다. 이곳이 유명한 신선대다.

동백숲을 헤치고 신선대 꼭대기에 오르자 시야가 거침없다. 멀리 거문도등대까지 서도의 서쪽 해안이 한눈에 펼쳐지고, 반대 쪽은 천길 벼랑이라 오금이 저린다. 다시 능선으로 돌아와 보로봉에 오르자 이번에는 북쪽으로 거문도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동도, 서도, 고도가 옹기종기 모여 삼호를 부드럽게 감싼다.

기와집몰랑을 지나면 점점 등대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진다. ‘365계단’을 내려서 ‘목넘어’를 만난다. 거문도등대가 선 수월봉과 서도가 연결되는 지점으로 바람이 센 날은 파도가 길을 후려친다. 거센 바람을 맞으며 목넘어를 건너면 호젓한 동백숲길이 이어진다.

 

녹산등대에서 바라본 노을. 서정적인 일몰 풍경 속 두 척의 낚싯배가 다정하게 느껴진다. / 거문도 가장 북쪽에 자리한 녹산등대

 

거문도역사공원 안의 영국군 묘지. 영국군은 2년 동안 거문도를 불법 점령했다.

 

거문도등대 가는 길, 동백꽃과 수선화

동백꽃은 ‘나무 위에서 100일, 땅 위에서 100일 핀다’라는 말이 있다. 매달린 꽃보다 길에 떨어진 동백이 자꾸 발길을 붙잡는다. ‘툭~’ 소리와 함께 동백이 떨어진다. ‘가장 눈부신 순간에 스스로 목을 꺾는(문정희, 동백꽃)’ 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처연하다.

거문도등대는 1905년 남해안 최초로 세워졌다. 100년이 훌쩍 넘었다. 옛 등대는 왼쪽 절벽 위에 자리하고, 지금은 높은 새 등대가 밤을 밝힌다. 등대 뒤편의 관백정 정자는 백도가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관백정에 서니 수평선에서 눈부신 백도가 아스라하다.

거문도등대에서 꼭 봐야 할 게 수선화다. 등대 아래의 험준한 벼랑에서 피는데, 어떻게 뿌리를 내렸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하지만 찾기 어렵고 벼랑이라 위험하기도 하다. 등대 관리소에서 잔디밭에 심어놨기 때문에 이를 찾아보면 된다. 무릎을 굽히고 수선화와 눈을 맞추고 향기를 맡아본다. 진하고 깊은 향이 밀려온다. 여섯 개의 하얀 꽃잎 가운데 금색 꽃은 봉긋 솟았는데, 이 모습 때문에 금잔옥대(金盞玉臺)라고 불린다. 동백을 원 없이 보고, 수선화까지 만나니 봄이 내 안에 가득 찬 느낌이다. 등대로 되돌아가는 길, 어둑한 숲길에 떨어진 동백꽃들이 붉은 등을 밝힌다. 저 등이 꺼지면 봄도 떠나리라.

거문도의 가장 번화가인 고도에는 영국군 묘지가 있다. 영국 함대가 러시아의 조선 진출을 봉쇄한다며 1885~1887년 사이 약 2년 동안 거문도를 불법 점령했다. 이를 ‘거문도 사건’이라 부른다. 그들은 거문도를 ‘해밀턴 항구’로 불렀다. 거문초등학교 옆 돌담길을 따라 걸으면, 우리나라 최초로 생긴 ‘해밀턴 테니스장’과 영국군 묘지를 만날 수 있다. 묘지 근처에는 노란 유채와 수선화가 서로 소곤거린다. 바다에서는 학꽁치가 유영하고, 숭어가 물 밖으로 튀어 오르며 봄을 노래한다. 

 

거문도 여행 가이드

기와집몰랑 트레킹, 거문도등대와 녹산등대 산책, 거문도역사공원의 영국군 묘지 등을 둘러보면서 거문도를 즐길 수 있다. 거문도 내해인 삼호에 펼쳐지는 은은한 야경은 덤이다.

 

거문도 ECO TIP

 

 

[출처 : 한국지역난방공사 따뜻한난 3+4월호 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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