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고향에서 가장 먼 곳으로
- 여행
- 2021. 2. 9.
쿠바, 고향에서 가장 먼 곳으로
제물포를 떠나 멕시코에 정착한 1,000여 명의 한인들. 그들 중 274명은 또 다시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는 말을 믿고 1921년 3월 쿠바 마나티 항구에 도착한다. 이주 초기 이들은 사탕수수 농장과 제당 공장에서 힘겨운 이민 생활을 시작한다. 자연스레 한인 마을이 생겨나는데 아직도 마나티 항구에는 ‘라 꼬레아(La Corea)’라 불리는 길이 남아 있다.
글|사진. 김동우 다큐멘터리 사진가
임천택, 쿠바의 대표적 독립운동가
쿠바의 힘겨운 삶 속에서도 한인들은 조국 독립을 위해 노력해 나간다. 쿠바에서 활동한 많은 독립운동가 중에는 임천택이 대표적이다. 그는 1903년 출생으로 3살 때 어머니의 품에 안겨 멕시코행 배에 오른다. 멕시코에 정착해 살던 그는 18세 때 쿠바 마탄사스로 이주해 애니깽 농장 노동자로 일한다. 임천택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마탄사스와 카르데나스 지역에 한국어 학교를 세우고 독립자금을 모금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송금하는 등 쿠바의 대표 독립운동가로 성장한다. 그는 쿠바의 유일한 한인 이민 역사서였던 『큐바한인 이민력사』의 저자이기도 하다.
쿠바에 도착한 한인들에게는 돈벌이를 제외하면 독립운동과 후손의 한국어 교육이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이에 쿠바 대한인국민회 지방회는 1923년 민성국어학교를 설립해 후원하다, 1932년 지방회 직속 기관으로 전환해 모든 운영비를 댄다.
임천택은 1925년부터 3년 동안 이 학교 교사로, 1931년부터 5년간 교장으로 활동한다. 또 그는 1932년 3월 10일 마탄사스 엘 볼로 한인 마을에 청년학원을 세우고 야학교실을 운영하며 민족혼과 애국심 심기에 노력한다. 그러다 신경쇠약 증세를 앓으면서 학교 운영이 어려워지기도 했지만, 1938년 쿠바에 대한여자애국단 지부가 설립되고 고문으로 추대돼 ‘독립군 후원 1전 모금운동’을 전개해 나간다.
임천택 등 쿠바의 한인들은 대한인국민회 지방회를 통해 1937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360.52원, 1940년 말부터 41년 초까지 78.30원 그리고 1941년 10월부터 12월까지 858.88원을 모금해 임시정부와 대한인국민회에 송금한다.
종교보다 민족이 먼저였던 사람
특히 임천택이 믿은 종교의 변화는 독립운동에 대한 그의 사명감이 얼마나 투철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원래 그는 기독교인이었는데 1928년 4월 1일 천도교에 입교, 1930년 3월 까르데나스에 천도교 쿠바종리원을 개설해 교리사업을 펼친다. 1933년에는 천도교 청년단에 입당해 중앙총회로부터 쿠바종리원장으로 임명된다. 그러다 1937년 천도교 본부(중앙교회)의 최린 일파가 친일로 돌아섰다는 소식을 듣고 이에 분노해 종교시설을 폐쇄하고 감리교인이 된다. 그에게 종교보다 위에 있었던 건 민족이고 또 독립이었던 셈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7년 8월 쿠바 한인으로는 처음으로 임천택에게 대한민국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물론 임천택 이외에도 지구 반대편 쿠바에서 조국독립을 위해 애쓴 사람들은 다 세기 어려울 정도다. 안타까운 건 쿠바에 새겨진 우리의 독립운동사가 지금까지 제대로 조명되지 못해 왔다는 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과 쿠바는 지금까지 한 번도 외교 관계를 맺어 본 적이 없다. 아마도 국외 독립운동 활동지 중 가장 외면받고 소외받은 이들이 살고 가고 있는 땅이 쿠바일지 모른다.
쿠바는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사탕수수를 자르며, 물 대신 우유를 마시고 원하는 대로 맥주를 마시는 에덴동산 같다고 알려져 있었다. 당시 쿠바는 사탕수수 재배로 최고의 호황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한인 이민자들이 쿠바에 도착했을 때는 바로 몇 달 전까지만 해도 22.5센트였던 국제 설탕 가격이 3센트까지 폭락하면서 이미 쿠바 경제가 추락한 시기였다. 마탄사스로 이주한 한인들은 엘 볼로 마을에 정착했고 대한인국민회 지방회와 한인교회 그리고 한글학교를 세웠다. 이를 통해 한인들은 정체성 유지를 위해 애썼고 조국의 독립운동을 위해서도 헌신했다.
라울 루이스, 마르따 임 김 『쿠바의 한인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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